October, 2017

                         

연결의 대화


이 가을, 공감의 꽃이 피었습니다


  창 일할 시간인 오후에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휴대폰에서 사진을 옮겨야 하는데 이상하게 잘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마침 그때 어떤 문제를 끌어안고 고민하던 중이라 엄마의 요청이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요새 통 엄마한테 연락드리지 못했다는 죄송한 마음이 들어 만사 뒤로 미루고 엄마를 돕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잠시 후. 똑같은 말을 몇 번 반복해도 엄마가 알아듣지 못해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 엄마, 그게 아니라 폴더를 누르라고 폴더를!”
  “아, 그거 그거… 알았어.”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다.
  “하승아, 지금 바쁘지? 그런데 엄마 일 봐 주느라 네가 답답하겠다.”
  그 순간 나만큼이나 답답한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고 그러자 엄마가 이해되었다. 그리고 엄마의 ‘답답하겠다’는 이 말 한마디는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에서 엄마와 내가 함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전환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엄마는 도움을 얻었고, 나는 도움을 준 멋진 아들이 될 수 있었다.
  때때로 공감은 마법과 같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공감은 한여름 더위를 식혀 주는 바람처럼, 한겨울 차가운 공기에 따뜻한 숨을 불어넣는 포옹처럼 우리의 마음을 휘감고 껴안는다. 누군가 내 감정을 알아주는 순간 우리 마음은 넉넉해져서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고 슬픔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기쁨이 확장되고 불안한 마음에 용기가 생긴다. 그래서 누군가와 공감한다는 것은 손발이 오글거리는 일이 아니라 상대와 내가 연결되는 관계의 고리가 튼튼해지는 선물 같은 것이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수없이 많은 문제들과 마주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좀 더 빨리, 좀 더 효율적으로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의 지식과 경험, 혹은 우리가 가진 힘을 이용해 판단하고 평가하고 진단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와 관련 있는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는 과정은 생략되기 쉽다.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마치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나 하는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공감 능력은 ‘1+1=2’라는 수학적 계산을 인간관계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인간관계에서 공감이 형성되면 그 관계는 플러스알파의 힘을 발휘한다. 심리치료자였던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인간을 씨앗에 비유하여 무한한 잠재력을 내면에 지닌 존재라고 정의했다. 공감은 이 씨앗에 물을 준다. 그리고 씨앗에 담긴 가능성에 싹이 나도록 만든다.
  인간관계에서 공감이 피워 낸 이야기는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든다. 리어카를 끄는 어르신의 뒤를 밀어 준 여고생, 자신의 골수를 기증한 어느 군인, 면접을 보러 가는 청년의 넥타이를 매어 준 아주머니, 거리의 노숙자와 함께 식사를 나눈 어느 경찰… 이들은 모두 상대의 마음에 접촉해서 상대의 감정과 욕구를 알아차리고 공감의 꽃을 피워 낸 사람들이다.
  우리 각자가 가진 마음의 모양새는 다 다르다. 그런데 그렇게 다른 마음들을 연결해 주는 것이 공감이다. 그리고 공감이 일으키는 물결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코스모스가 피어나는 이 가을에, 우리 사는 세상의 곳곳에서 공감의 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기대한다.




박하승 리플러스 인간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