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1학년 때, 심리학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에 흠뻑 빠진 적이 있다.
기말고사가 끝난 어느 날, 만화책 전권을 빌린 후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만화삼매경에 빠졌다.
이 만화의 주된 스토리는 주인공인 심리학자에게 사람들이 저마다 문제를 가져오면 심리학자가 그 문제 이면에 존재하는 심리적인 부분들을 분석하고 해결해 주는 것이었다. 내가 가장 재미있어 한 것은 사람들이 심리학자를 찾아가는 도입부 장면이었다.
“당신이 들어올 때 넥타이를 매만지는 것을 보니, 지금 이 장소를 아주 불안하게 느끼는군요.”
“잘 닦여진 구두, 정장 차림에 익숙한 걸음걸이. 당신이 회사의 고위간부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주인공은 사람들의 특징들을 세심하게 잡아내서 그의 직업과 심리 상태를 분석해 내고, 사람들은 얼굴만 보고 그런 것들을 맞히니 그저 감탄스러워서 “아! 그걸 어떻게!”만 남발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나름대로 누군가의 행동과 마음을 끊임없이 분석하며 살아가고 있다. 만화 속 심리학자처럼 말이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을 근거로 우리는 재빠르게 분석하고 평가하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것을 ‘사실’로 믿어 버린다.
가령, 누군가가 당신한테 인사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고 하자. 이때 우리는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떤 믿음을 갖게 될까.
‘나를 봤는데도 인사를 안 했다는 건 나한테 불만이 있는 게 분명해.’
‘저번에 그 일 때문에 나한테 인사도 안 하는 거야. 속 좁은 인간 같으니라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저렇게 밝게 인사하면서 나만 그냥 지나친다? 싸가지 없는 것!’
‘나를 싫어하나 보다. 처신을 제대로 못한 내가 문제야!’
문제는 이런 분석과 판단이 있은 뒤에는 반드시 상처가 따른다는 것이다. 우울과 불안, 분노와 같은 감정이 찌꺼기처럼 남아서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 버린다.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사람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관점에 의해서 고통을 받는다”고 했다. 사건 자체보다 사건에 덧붙이는 우리의 해석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해석은 우리가 자라온 환경이나 살면서 겪은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많은 경우 살면서 겪은 환경과 경험이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이 된다. 그래서 똑같은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불안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분노를 느끼며 어떤 사람은 우울해한다. 요동치는 나의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안경을 벗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본 대로 들은 대로 사건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사건은 우리의 감정을 좌지우지하는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고 그저 우연히 우리에게 발생한 하나의 사건(happening)이 된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현대인들에겐 만남은 없고 스침만 있다”고 말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건 앞에서 스치듯 떠오르는 판단과 평가에 좌우되지 않고 나에게 발생한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바라봄으로써 그 사건과 진정으로 만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