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시간의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은 여느 때처럼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들은 열차를 기다리기 위해 줄을 길게 섰다. 아침 시간이어서인지 피곤해 보이는 사람이 많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 모습이 가지각색이었다.
학생으로 보이는 어떤 여자는 누구와 통화를 하는지 연신 킥킥대며 웃고 있었고,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는 출근 시간에 늦었는지 휴대폰 화면을 껐다 켰다 하며 초조하게 열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때였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지하철 문 앞으로 뛰어 들어온 한 여자에게 나의 눈길이 쏠림과 동시에 내 머리 뒤로 큰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 줄 서 있는 거 안 보입니까! 뭔 짓거리입니까!”
사람들은 자세를 살짝 고쳐서 그 남자를 쳐다보더니 괜한 갈등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듯 다시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본을 좀 지키세요!”
나는 궁금했다. 지금 이 남자의 감정은 어떤 것일까? 그는 무엇을 바랐을까? 그러는 사이 열차가 들어와 문이 열렸고, 사람들에게 휩쓸려 나도 모르게 열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남자의 눈과 입은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두 정거장이 지난 어느 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르르 몰려서 내리는 사람들 속에서 그 남자는 한쪽으로 매고 있던 자신의 가방을 잡아챘고, 그때 그 남자의 어깨가 한 여자의 얼굴을 쳤다.
“괜찮습니다. 조금만 조심해 주세요.”
얼굴을 맞은 여자가 자신의 손으로 얼굴을 한번 쓱 만지더니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다. 남자는 연방 “죄송합니다”고 말했다.
위압적인 “기본을 좀 지키세요!”와 미소 띤 “조금만 조심해 주세요”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우리는 상대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더 큰 힘을 사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더 큰 목소리, 더 자극적인 단어들을 사용한다. 부모는 엄친딸과 엄친아들과 비교하며 자녀를 자극하고, 부부는 치약 짜는 방식을 놓고서 설전을 벌이다 상대를 비난하는 말로 마무리한다. 그 힘이 클수록 상대의 반발심과 적대감도 크다. 그렇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사용해서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부작용을 낳기 쉽다.
그 남자는 분명 ‘옳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것을 좀 더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했다. 좀 더 큰 목소리,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상대에게 나의 바람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싶다면 그와 다른 방식을 사용해야 했다. 그 여자의 옅은 미소를 띤 “조금만 조심해 주세요”는 남자의 마음을 좀 더 부드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녀의 요청을 당연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남자는 자신의 실수를 사과할 수 있었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갈등을 겪게 된다. 이때 강한 힘을 사용하기보다 작은 미소와 함께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협조가 필요합니다”라는 말을 전달할 수 있다면, 갈등은 상대와 나를 연결하는 협력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