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018

                         

연결의 대화


귀로는 마음을 듣고

입으로는 용기를 내세요


  바람이 매섭게 불던 날, 아내와 함께 모임에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어디서부터인가 매서운 바람만큼이나 매운 목소리가 쨍 들렸다. 돌아보니 연인인 듯 보이는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고 있었다.

  “너만 잘났지! 너는 항상 너만 잘난 사람이야!”
  “너는 항상 말뿐이고 지킨 적이 없어!”

  평소엔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사랑스런 애칭으로 불렸을 두 사람이겠으나 그날은 단지 ‘너’라고만 상대를 지칭했다. 이 ‘너’들이 해소하지 못한 분노는 과연 무엇일까? 충족되지 못한 욕구는 무엇일까?
  이 분노의 감정에는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바람이 담겨 있다.

  “너만 잘났지!”에는 ‘당신과 나의 관계에서 나도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너는 항상 말뿐이야!”에는 ‘나는 당신을 신뢰하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그들이 거리에서 그토록 매운 바람을 일으키며 분노를 터뜨리는 대신 이 진짜 마음을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난 당신한테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고 싶어.”
  “나는 당신을 믿고 싶어.”

  길거리가 아니라 따뜻한 카페에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이렇게 말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우리는 나의 바람과 기대를 차분하고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사랑하니까 당연히, 가족이니까 당연히’ 하며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서 해 주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는가. ‘사랑하니까 당연히’는 사랑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사랑의 조건을 요구하는 말이라는 것을. 이 말이 두 사람의 관계를 피상적이고 조건적이게 만든다는 것을.
갈등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귀와 입을 여는 것이다. 귀를 연다는 것은 상대가 하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상대의 바람을 듣는 것이다. ‘당신은 신뢰를 바랐구나’ ‘당신은 존중받고 싶었구나’ 하고 말이다. 그럴 때 우리의 대화는 절대 파국으로 가지 않는다.
그리고 입을 연다는 것은 내 마음속 바람을 용기 있게 표현하는 것이다. 당신과 더 잘 지내기 위해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나도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당신이 도와주지 않을래?”
  귀로 마음을 듣고, 입으로 용기를 내는 것, 우리가 연결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박하승 리플러스 인간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