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ideposts 2018 / 11
Finding a Path
One Stubborn Little Donkey
당나귀 ‘시씨’의 십자가
Mom’s care, the farm, the drought, our business…
God seemed so far away.
And now our donkey Sissy was having birthing problems
엄마의 병간호와 농장 운영, 가뭄에 사업까지….
하나님은 너무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우리 집 당나귀 시씨까지 난산으로 위험한 상태였다.
CAROLYN LOVETT LEGRAND Stillwater, Oklahoma
캐롤린 러벳 르그랑 오클라호마주 스틸워터
The sun beat down and the temperature was above 90 degrees when my husband, Alan, and I arrived at the farm late in the afternoon—and it was only May. A severe drought gripped our part of Oklahoma. Ponds were dried up, and the grass was brown. We had to truck in hay to feed the cattle.
Alan and I ran this 320-acre farm, but we didn’t live here. My parents had bought the land when they retired in the late 1970s. They raised wheat, oats, alfalfa, cattle and a small herd of Sicilian donkeys. The donkeys were miniature size, with distinctive cross-shaped markings on their backs. They served as excellent guard animals for the cattle. Donkeys are alert and protective. They’re cute—but watch out when they kick!
A few months earlier, my mom had fallen and broken her hip. She was 90. Dad had died nearly two decades earlier. Mom had continued farming with help from extended family and the occasional hired hand. Now she was in a rehab facility following hip replacement surgery. Alan and I were in charge.
Life was becoming too unpredictable and turbulent. In addition to coordinating Mom’s care, Alan and I worked long days running a farm equipment business where we lived in Stillwater, 130 miles from the farm. Several times a week, we made the two-and-a-half-hour drive from Stillwater to feed the animals and tend the crops. Extended family members who’d helped in the past were facing health crises of their own. We were exhausted, fearful of making a misstep and letting everybody down.
That May afternoon, I felt as parched and brittle as the grass. The house where we’d shared so many good memories with Mom seemed abandoned in her absence. I felt abandoned too. No matter how much I prayed, God seemed far away.
The donkeys hee-hawed as Alan and I got out of the truck and headed into the house. They were the one bright spot during this hard time. Curious, intelligent and alternately docile and stubborn, the donkeys always made me smile. Alan and I changed into work clothes, and he headed to the grain bin to get food for them. I watched him from the kitchen while I tended to things inside.
그날 나는 남편 알란과 함께 오후 늦게 농장에 도착했다. 아직 5월인데도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고 기온이 섭씨 32도를 웃돌았다. 우리 집이 있는 오클라호마 지역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다. 연못이 모두 말라 버리는가 하면, 잔디밭도 온통 누렇게 변해 버렸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소들에게 먹일 여물을 트럭으로 실어 날라야만 했다.
우리 부부는 39만 평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곳에서 살지는 않았다. 이 땅은 우리 부모님이 1970년대 후반에 은퇴하면서 구입한 것으로, 부모님은 밀과 귀리, 알팔파를 재배하고 소와 시칠리아 당나귀도 몇 마리 키웠다. 당나귀들은 크기가 아주 작고, 등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기민하고 방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탓에 소 떼를 지키는 ‘지킴이’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귀엽기까지 하지만, 가끔 발로 차기도 하니 조심할 것!
몇 달 전, 엄마가 낙상을 당해 고관절이 부러지고 말았다. 연세가 아흔이었다. 아빠는 20년 전쯤에 돌아가셨다. 그 후로 엄마는 친척들의 도움을 받거나, 때로는 사람을 써 가면서 농장을 운영해 왔다. 지금은 고관절 치환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 시설에서 지내신다. 농장은 알란과 내가 맡아 운영 중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예측 불허의 삶이 계속되었다. 알란과 나는 엄마의 재활치료도 신경 써야 했고 동시에, 농장에서 210km나 떨어진 우리 동네 스틸워터에서 농기구 사업체도 운영했으므로 매일 장시간 일을 했다. 일주일에 몇 번씩, 스틸워터에서 차로 두 시간 반을 달려가 동물들 사료를 챙기고 곡식을 돌보았다. 예전에 농장 일을 도와주었던 친척들도 이제는 다들 건강이 좋지 않았다. 우리는 지쳐 갔고, 혹여 실수를 해서 모든 사람을 실망시킬까 봐 두려웠다.
5월의 그날 오후, 나는 바싹 마른 잔디처럼 금방이라도 부서질 지경이었다. 엄마와의 숱한 추억이 깃든 이 집은 엄마의 부재로 마치 버려진 것 같았다. 나도 함께 버려진 것 같았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은 그저 저 멀리에 계신 듯했다.
알란과 내가 트럭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자 당나귀들이 히힝 소리를 냈다. 요즘처럼 고달픈 시기에 녀석들은 한 줄기 빛 같은 존재였다. 호기심 많고 영리하며, 유순하다가도 때로는 고집스러운 당나귀들은 언제나 나를 웃게 만들었다. 남편과 나는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남편은 녀석들에게 줄 사료를 꺼내러 곡물 저장고로 갔고, 나는 부엌에서 집안일을 하면서 남편을 바라보았다.
번역 김보경
--- 이후 내용은 2018년 11월호 잡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