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ideposts 2019 / 01
HEALTH BREAKTHROUGH
Breath of Life
숨고르기
I was a runner. A restaurateur. In the prime of my life.
Then came the shocking diagnosis
여나는 달리기 선수이자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장이었다.
내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던 그때 충격적인 진단을 받게 되었다.
SEAN CUMMINGS Oklahoma City, Oklahoma
션 커밍스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시티
My wife, Cathy, sat with me in the doctor’s office. I needed her there. It was hard for me to process what was being said. When you don’t get enough oxygen in your lungs, it affects your brain too. After three years of seeing specialist after specialist with no diagnosis, I was depressed. I was constantly sick, too weak to help around the house, struggling for every breath and so exhausted I could barely work.
The doctor looked up from my chart, peered over his glasses and said, “Sean, from all that you’ve said and what the tests show, I think you have the beginnings of COPD.”
COPD. 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 It was like getting a death sentence. I’d read enough to know: There was no cure. It could only get worse. I’d be wheezing till the end. Cathy held my hand. She asked a few questions, but I hardly heard the answers. I wanted to get out of that office as fast as I could. COPD—the worst news I could have imagined.
I’d watched both of my parents die of lung-related diseases. They puffed on cigarettes all day long. Dad would fall asleep with a cigarette in his mouth—amazing the house didn’t burn down. He owned a tile-setting company, and my brothers and I helped in the family business. Inhaling clouds of powdered cement, breathing in construction debris. Dad’s first bout with cancer came when he was 40—and yet he lived another 48 years, hauling around an oxygen tank with him. Mom was diagnosed with 2emphysema decades after Dad got cancer.
I wasn’t going to be like them. I had smoked in my early twenties, then given it up. I was intent on living healthily. I ran marathons, swam at the Y, worked out at the gym, played soccer with my buddies, tossed a football with our kids. Call me a fitness fanatic. That’s fine by me. I wanted to rewrite the family script.
진료실. 내 옆에는 아내 캐시가 앉아 있다. 이 자리에는 아내가 꼭 필요했다. 나는 의사가 해 주는 말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폐에서 산소를 충분히 흡입하지 못하면 뇌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지난 3년간 수많은 전문가를 찾아다녔지만 병명조차 알 수 없었던 나는 침울해져 있었다. 끊임없이 몸이 아팠다. 집안일을 돕기는커녕 숨 쉬는 것조차 벅찰 정도로 체력이 약해졌고 기운이 없어서 일도 간신히 할 정도였다.
차트를 보던 의사가 안경 너머로 빤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상담 내용과 검사 결과를 종합해 보니 환자분은 지금 COPD 초기인 것 같습니다.”
COPD, 만성폐쇄성폐질환.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진단이었다. 다시 말해 치료법이 없다는 뜻, 계속해서 악화될 일만 남았다는 뜻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호흡 곤란과 함께 살아야 할 것이다. 캐시가 내 손을 잡았다. 아내는 질문을 몇 가지 했지만 답은 들을 수 없었다. 나는 가능한 한 빨리 이 방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만성폐쇄성폐질환. 내가 이런 최악의 병에 걸렸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부모님 두 분 모두 폐 관련 질병으로 돌아가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두 분은 하루 종일 담배를 피울 정도로 대단한 애연가였다. 아버지는 심지어 입에 담배를 문 채 잠이 들기도 했으니 집이 불에 타지 않은 것이 기적이었다. 나와 형제들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타일 시공 회사에서 일을 도왔다. 시멘트 가루를 마시고 공사장에서 나오는 분진을 흡입하면서. 아버지는 마흔 살에 처음으로 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그 후로 48년을 산소통에 의지한 채 살다 가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암에 걸리고 몇십 년 후에 폐기종 진단을 받았다.
나는 부모님과 전혀 달랐다. 20대 초반에 담배를 피우긴 했지만 그 후로 완전히 끊었다. 건강 관리도 열심히 했다. 마라톤에 나가고, YMCA에서 수영을 하고, 헬스클럽에 다니고,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우리 아이들과 미식축구도 했다. 운동에 미쳤다고 해도 괜찮다. 나는 우리 가족의 역사를 새로 쓰고 싶었으니까.
번역 김보경
--- 이후 내용은 2019년 1월호 잡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