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ideposts 2019 | 06
Special Issue
Sundays With Nick
"전 교회 다니는 사람이잖아요"
Special Issue
Sundays With Nick
"전 교회 다니는 사람이잖아요"
Guideposts 2019 | 06
You know him as a trusted weatherman.
Now meet him as the father of a son with special needs
AL ROKER New York, New York
여러분은 이 사람을 신뢰 받는 기상 캐스터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특별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들을 둔 한 아버지로 만나 보십시오.
알 로커 뉴욕주 뉴욕
We’d spent the weekend at our house upstate, my teenage son, Nick, and me. My wife, Deborah Roberts, is a senior correspondent for ABC News. Nick’s sister Leila is at college, and his oldest sister, Courtney, is grown. Sometimes it’s good for just the two of us guys to get away. That drive up and back is some of the best time we have one-on-one. You know, when you have your teenager in a car with you, it’s a good chance to connect—if Nick doesn’t spend too much time distracted by his iPad or phone. Focus and conversation can be a problem for my son, more so than most kids, as he is a kid with special needs.
It was a Sunday and we had gotten up early—not my usual 3:45 A.M. wake-up for the Today show but still pretty early. We were driving back to Manhattan and hoped to make it in time for the morning worship service because back home, at St. James Episcopal Church, Nick is a crucial part of the worship team and he takes his responsibilities very seriously.
It’s not something Deborah or I would have expected. To see Nick process down the center aisle at the beginning of the service, carrying the cross, his eyes on the altar, our pastor and the other ministers following behind, the organist pulling out all the stops, the choir and congregation singing their hearts out, the other acolytes following his lead as the principal cross bearer. Nick is focused, dignified, reverent, the brass cross shimmering in the candlelight. “You must be proud of your son,” someone will say.
Yes, I am. More than they’ll ever know. The obstacles in this kid’s way were things that might have tripped up many others. Not Nick, not even with the disabilities he was born with.
That morning, driving into town, I looked at the dashboard clock and considered the traffic—where was everybody going so early in the morning? But I was determined we would make it. I know it’s important to him. Recently, explaining to Deborah why being at church was a priority for him, Nick told her, matter-of-factly, “Mom, I’m a churchgoing guy.”
Not your average teenager at all. I went to church when I was growing up in Queens, but in those days, everybody did. It was expected. Mom and Dad took us to worship every weekend, but in so many other ways my dad was not your typical 1950s dad. For one, he was really in touch with his emotions. He cried easily, laughed hard and hugged and kissed us kids a lot. I remember going off to college, to SUNY Oswego, in upstate New York, getting my first taste of freedom. That day I left, Mom put on a brave face. Dad was a puddle of tears.
우리는 주(州) 북부에 있는 별장에서 주말을 보냈다. 나와 내 십대 아들 닉 얘기다. 내 아내 데보라 로버츠는 ABC 뉴스의 수석 기자이고, 닉의 누나 레일라는 대학에 다니고 있으며, 큰누나 코트니는 장성했다. 때로는 우리 남자들만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단둘이서 주 북부까지 차로 여행하는 일은 큰 행복이다. 십대가 된 아이와 차 안에 함께 있는 시간은 가까워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닉이 아이패드나 휴대폰에 정신이 팔려 있지만 않다면 말이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집중하여 대화를 이어 가는 일은 내 아들에게 무척 어려운 일이다.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이기 때문이다.
어느 주일, 우리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나는 보통 <투데이> 방송 준비를 위해 새벽 3시 45분에 일어나는데, 이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이른 시간이었다. 우리는 맨해튼에 있는 세인트 제임스 성공회 교회에서 열리는 아침 예배에 제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가는 길이었다. 예배에서 중책을 맡은 닉이 자신의 역할에 꽤 진지했기 때문이다.
사실 아내와 나에겐 뜻밖의 일이었다. 예배가 시작되면 닉은 십자가를 들고 제단에 시선을 고정한 채 중앙 통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나온다. 그 뒤를 사제들이 따르고, 심혈을 기울여 연주하는 오르간 연주자의 연주에 맞춰 성가대와 신자들이 온 마음으로 찬양하는 가운데, 나머지 복사(服事)들이 십자가를 나르는 자를 뒤따라 걸어 나온다. 촛불 빛에 밝게 빛나는 황동 십자가를 들고 걸어가는 그 순간에 몰입한 닉은 위엄 있고 경건해 보인다.
“아들 정말 잘 두셨네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다.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들이 자랑스럽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 아이를 가로막은 장애물에 걸려 넘어졌을지도 모르지만, 닉은 자신이 안고 태어난 장애 앞에서도 남달랐다.
그날 아침 시내로 달려가는 틈틈이 나는 계기판의 시계를 흘끔거리고 교통 상황을 가늠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른 아침에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럼에도 나는 제시간에 교회에 도착하리라 마음먹었다. 닉에게는 중요한 일이니까. 최근 엄마에게 교회 가는 일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를 설명하면서 닉은 태연하게 말했다.
“엄마, 저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잖아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십대 이미지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퀸스에서 성장한 나도 어렸을 때 교회에 다녔다. 하지만 그 시절 교회 나가지 않은 사람이 있었던가? 교회는 으레 가는 곳이었다. 부모님은 주말마다 우리를 데리고 예배에 참석했다. 아버지는 1950년대의 전형적인 아버지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를테면 아버지는 감정에 아주 솔직한 분이었다. 울기도 잘 우셨고 웃음소리도 화통했으며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안고 입맞춤을 퍼부었다. 뉴욕 북부에 위치한 뉴욕 주립대 오스위고(Oswego)에 합격해 집을 떠나던 날이 떠오른다. 내가 처음으로 자유를 맛보게 된 날, 어머니는 의연한 표정을 지었고 아버지는 눈물바람이었다.
The comfort he had with his emotions was a good model for me when I entered parenthood. Children can test your patience. Even an even-tempered guy like me can raise his voice. But I always knew I was loved. Dad’s hugs and kisses said as much. I try to do the same. I don’t always succeed, but with Deborah’s help and cajoling, I try.
When Deborah and I got married, we knew we wanted children. My older girl, Courtney, was adopted during my previous marriage, but we wanted to add to our family. When we first found out we were pregnant, we were over the moon. The miscarriage that followed broke our hearts. We ended up doing in vitro fertilization, and after a few attempts, we welcomed Leila into this world. I told that story in GUIDEPOSTS in 2003. “Science may have helped us on our path to pregnancy,” I wrote back then, “but it couldn’t get us all the way to the end. The only thing that could do that was the power and grace of God.”
Leila was a walking miracle. We wanted to tell the world. We were just as thrilled when her brother, Nick, was born, four years later. He too was an answer to prayer—like all children—but we knew right from the beginning that he would be up against a whole different set of challenges. He wasn’t developing as fast as he should have, not holding our fingers as tightly, not always meeting our gaze, not as quick to crawl. At three, he hardly talked and could barely walk.
Doctors and specialists put him through a slew of tests. Was it cerebral palsy? Autism? Maybe it was a processing disorder. Now that he’s 17, I can tell you that, yes, he’s somewhere on the spectrum and maybe obsessive-compulsive. But those labels can be frustrating; they don’t begin to describe who Nick really is.
감정 표현에 솔직했던 아버지는 부모가 된 나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아이들은 자주 부모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나처럼 침착한 성격의 사람도 한 번씩 목소리가 높아진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항상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버지의 포옹과 입맞춤이 그 증거였다. 나도 아버지가 우리를 대하던 방식대로 아이들을 대했다. 때로는 실패할 때도 있지만 데보라의 조력과 회유로 다시 기운을 차린다.
결혼할 때 우리 두 사람은 모두 아이를 원했다. 맏이인 코트니는 나와 전 부인 사이에서 입양한 아이다. 가족을 늘리고 싶었던 우리였기에, 데보라의 임신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이는 유산되고 말았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결국 인공수정을 시도했고 몇 번의 실패 끝에 레일라를 얻었다. 2003년 <가이드포스트>에 이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과학의 힘으로 우리는 임신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이후의 일은 오직 하나님의 힘과 은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레일라는 그야말로 기적의 산물이었다. 우린 온 세상에 말하고 싶었다. 4년 뒤 막내 닉이 태어났을 때의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 세상 모든 아이들처럼 닉도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어나자마자 닉은 수많은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정상적인 아이들보다 발달이 더뎠다. 우리 손가락을 쥐는 힘도 약했고, 우리와 시선도 마주치지 못했으며, 기어가는 것도 다른 아이들보다 느렸다. 세 살이 되었는데도 말을 거의 하지 못했고 걷는 것도 서툴렀다.
결국 의사와 전문가들에게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뇌성마비일까? 자폐? 어쩌면 일종의 처리장애일지도 모른다. 이제 열일곱 살인 닉은 이 질병들의 양극단 사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강박장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꼬리표들은 닉이라는 사람을 전혀 설명하지 못할뿐더러 좌절만을 안겨 줄 뿐이다.
...
이후 내용은 2019년 6월호 잡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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