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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것을 돌려줘야 한다’는 신념이 얼굴기형 어린이들을 돕는 일을 하게 된 이유일까요?
네. 맞습니다. 얼굴기형 어린이들을 돕기 시작한 건 1989년부터였습니다. 물론 이 일을 주도한 분도 백세민 교수님입니다. 당시만 해도 얼굴기형 수술은 방법도 몰랐고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던 때라 이 분야 백 교수님의 역할은 정말 지대한 것이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아이의 부모님과 상담을 하고 수술하기로 했는데, 당일에 오지 않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요즘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연락해 보면, 열에 아홉은 수술을 받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가지 못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당시 의료보험이 일부만 지원됐기 때문에 환자 부담이 컸습니다. 백 교수님이 본인이 도와주겠다면서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수술을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교수님 혼자 감당하기엔 힘에 부쳤죠. 친구와 동창들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했고 그렇게 한두 명씩 동호회처럼 모인 것이 ‘얼굴기형돕기회’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전국을 25개 정도로 나눠서 주말마다 보건소에서 얼굴기형에 대해 홍보하고, 양호 선생님, 보건소 직원, 부모를 대상으로 교육했습니다. 환자도 직접 보고요. 대부분의 환자가 어린이였기 때문에 부모에게 수술과 관련된 것들을 설명했습니다.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주변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연결해 주고, 큰 수술이 필요한 경우엔 서울에 와서 수술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든 아이들에게는 저희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지원을 했는데 7~8년가량 정말 많은 아이들을 도와줬습니다.
‘얼굴기형돕기회’가 처음엔 국내 아동들을 지원했군요.
그럼 언제부터 해외 의료봉사를 시작하게 된 건가요?
‘얼굴기형돕기회’가 사람들에게 조금씩 알려지면서 점점 범위가 넓어지고 규모도 커져서 내부에서 아마추어처럼 하지 말고 체계적으로 하자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1996년에 법인을 만들었습니다. 법인 이름도
‘세민얼굴기형돕기회’로 바꿨습니다. 백세민 교수님의 이름을 넣은 거죠.
법인을 만들 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규정이 생겼습니다. 조직이 체계적으로 개편되면서 이전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보다 더 어려운 나라를 돕자는 의견이 모아져서 여러 곳을 조사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베트남대사관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갔다가 초대 대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우리나라가 1992년 베트남과 다시 수교하면서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무렵이었습니다. 제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설명했더니, 베트남 대사가 베트남으로 오면 정부 차원에서 적극 돕겠다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현역 장군인 의무사령관을 연결해 줬습니다. 1996년이었으니까, 벌써 23년이 지났네요. 수도통합병원의 판(Phan) 장군이었는데, 베트남은 군과 당이 통치하는 나라라서 군에 엘리트가 많았죠.
굉장히 기대를 하고 갔는데, 정말 열악했습니다. 그때는 전화도 되지 않았고,
이메일도 없어서 모든 의사소통을 팩스로만 했습니다. 팩스 한 번 보내면 답신이 한참 후에나 왔습니다. 전기시설이며 수도 등 기반시설과 수술과 관련된 장비와 물품을 점검하기 위해 팩스를 수백 장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마다 있는 게 없는 겁니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고, 마취기도 없으며, 수술을 할 수 있는 장비는 침대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수술 장비와 관련된 의료기구와 물품들을 다 가지고 가야 했습니다. 수술실 3개를 만들 수 있는 장비를 준비했는데, 컨테이너 하나였습니다.
30명 정도가 2주 계획으로 갔는데,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낮도 밤도 없이 해서 200명을 수술했습니다. 원래는 일회성으로 계획한 것이었는데, 우리도 한 번으로 끝낼 수 없다 생각했고 베트남 정부도 더 와 주길 바래서 그다음 해에도 간 것이 벌써 23년째입니다. 매년 다른 곳을 가는데 어느 곳이든 상황이 다를 게 없었습니다. 처음 갔던 하노이가 그나마 괜찮았을 정도였으니까요. 처음 10년은 수술실도 낙후했을 뿐 아니라 숙소도 마찬가지여서 고생이 참 많았습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아주 좋아졌지요. 하루 종일 수술하고 숙소에 돌아와 좀 쉬어야 하는데 벌레며 도마뱀이 돌아다니고 여자 숙소에선 비명소리가 나고 해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거든요. 더구나 먹는 것도 입에 맞지 않아 어떤 사람은 베트남에 있는 동안 내내 과일만 먹고 어떤 사람은 탈이 나서 고생하고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