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인생 로드맵 '받은 만큼 돌려주자'


Guideposts 2019 | 07


Cover Story

인생 로드맵
'받은 만큼 돌려주자' 


Guideposts 2019 | 07


‘성형으로 희망을’ 선물하는 한국의 슈바이처, 백롱민 분당서울대학교병원장. 그는 ‘세민얼굴기형돕기회(smile for children)’를 통해 지난 1989년부터 국내에서는 4600명, 해외에서는 4400명의 얼굴기형 어린이를 수술해 주었다. 세상도 그의 올곧은 한길 인생을 인정해 주어 2013년 대통령 표창, 2016년 베트남 국가우호훈장 등을 그에게 수여했다. 그런데 정작 그는 자신이 헌신을 했다거나 봉사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병원 안에서뿐 아니라 병원 밖에서도 ‘받은 만큼 돌려주었을 뿐’이란다.

겸손하다고 했더니 그는 그의 손에 쥐어진 인생 로드맵을 펼쳐 보인다. ‘받은 만큼 돌려주자.’ 이 인생 로드맵이 그를 한결같은 사람, 겸손한 사람, 의로운 사람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과연 나의 인생 로드맵은 무엇인가? 아니 있기나 한 것인가?

오랫동안 의료봉사를 하고 계십니다. 봉사란 무엇일까요?


백롱민 교수(이하 생략) : 저는 솔직하게 말해서 봉사라는 말을 잘 안 씁니다.

의료봉사라는 표현을 쓰기는 하지만, 봉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봉사라기보다 제가 하는 일을 하는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매일 하는 일을 장소만 바꿔서 하는 것이지요. 그냥 숟가락 하나 더 놓는 셈입니다.

한국이든 외국이든 수술을 하는 것이니까요.

의료봉사 갈 때 베트남은 30명 정도, 미얀마는 15명 정도 가요. 그중 자원봉사자가 많아요. 의사, 간호사, 의대생들인데 20년 넘게 함께한 분도 있고 처음 가는 분도 있어요. 저는 휴가와 방학을 이용해 의료봉사를 떠나는 이분들이야말로 ‘봉사’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분은 긴 시간 병원문을 닫고 오십니다. 정말 자기 삶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죠. 그러면서도 항상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동참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봉사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의사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의대에 가기 전까지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고등학교 때 문과가 체질이 아니라서 이과를 선택했고, 당시 이과는 공대 아니면 의대라서 의대를 선택했죠. 당시 전 학문으로 공부도 하고 직업으로도 삼을 수 있는 분야에서 공부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누군가 의과는 예술과 과학을 함께하는 학문이라고 하더군요. 멋져 보였죠. 의대 졸업 후 의사로 일하고 있던 형님의 영향도 있었어요. 당시 전자공학이 가장 인기가 많았고, 원자력 공학도 전망이 좋아서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예술과 과학을 함께한다는 의대가 더 유혹적이었습니다.

의사가 좋은 점도 있지만, 힘든 점도 참 많습니다. 그래도 제가 하는 일이 남에게 좋은 일도 하고 칭찬도 받으니까, 친구들이 그런 직업이 없다고 부러워해요.

그때마다 당시 진로 선택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형님 이야기를 하셨는데, 성형외과 백세민 교수님이시지요?


네. 맞습니다. 백세민 교수님이 저보다 열다섯 살 더 많은 제 형님입니다. 형님이 대학을 졸업하고 인턴부터 미국에 있었으니까, 13년 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형님이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특히 성형외과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특히 얼굴기형 수술은 성형외과 분야에서 큰 획을 그은 업적입니다. 미국에서도 대단한 자리를 갈 수 있었지만, 다 마다하고 일찌감치 한국에 오셨습니다. 지금은 성형외과 수준이 세계적이지만 당시는 막 시작 단계라 여러 가지로 부족했는데 형님이 오셔서 학회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특히 학문적으로 큰 영향을 줬습니다. 당시 백세민 교수님은 성형외과에서 슈퍼스타였어요. 저도 그렇고, 제 동기도 그렇고 그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교수님의 제자로서 학문과 수술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인생 철학을 세우는 데도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백세민 교수님은 “우리는 환자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면서 환자 덕분에 의사가 있는 것이니 환자한테 받은 것을 돌려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철학과 신념이 확고한 분이었죠. 대단한 분이십니다.


‘받은 것을 돌려줘야 한다’는 신념이 얼굴기형 어린이들을 돕는 일을 하게 된 이유일까요?


네. 맞습니다. 얼굴기형 어린이들을 돕기 시작한 건 1989년부터였습니다. 물론 이 일을 주도한 분도 백세민 교수님입니다. 당시만 해도 얼굴기형 수술은 방법도 몰랐고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던 때라 이 분야 백 교수님의 역할은 정말 지대한 것이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아이의 부모님과 상담을 하고 수술하기로 했는데, 당일에 오지 않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요즘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연락해 보면, 열에 아홉은 수술을 받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가지 못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당시 의료보험이 일부만 지원됐기 때문에 환자 부담이 컸습니다. 백 교수님이 본인이 도와주겠다면서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수술을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교수님 혼자 감당하기엔 힘에 부쳤죠. 친구와 동창들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했고 그렇게 한두 명씩 동호회처럼 모인 것이 ‘얼굴기형돕기회’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전국을 25개 정도로 나눠서 주말마다 보건소에서 얼굴기형에 대해 홍보하고, 양호 선생님, 보건소 직원, 부모를 대상으로 교육했습니다. 환자도 직접 보고요. 대부분의 환자가 어린이였기 때문에 부모에게 수술과 관련된 것들을 설명했습니다.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주변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연결해 주고, 큰 수술이 필요한 경우엔 서울에 와서 수술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든 아이들에게는 저희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지원을 했는데 7~8년가량 정말 많은 아이들을 도와줬습니다.



‘얼굴기형돕기회’가 처음엔 국내 아동들을 지원했군요.
그럼 언제부터 해외 의료봉사를 시작하게 된 건가요?


‘얼굴기형돕기회’가 사람들에게 조금씩 알려지면서 점점 범위가 넓어지고 규모도 커져서 내부에서 아마추어처럼 하지 말고 체계적으로 하자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1996년에 법인을 만들었습니다. 법인 이름도 

‘세민얼굴기형돕기회’로 바꿨습니다. 백세민 교수님의 이름을 넣은 거죠.

법인을 만들 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규정이 생겼습니다. 조직이 체계적으로 개편되면서 이전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보다 더 어려운 나라를 돕자는 의견이 모아져서 여러 곳을 조사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베트남대사관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갔다가 초대 대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우리나라가 1992년 베트남과 다시 수교하면서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무렵이었습니다. 제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설명했더니, 베트남 대사가 베트남으로 오면 정부 차원에서 적극 돕겠다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현역 장군인 의무사령관을 연결해 줬습니다. 1996년이었으니까, 벌써 23년이 지났네요. 수도통합병원의 판(Phan) 장군이었는데, 베트남은 군과 당이 통치하는 나라라서 군에 엘리트가 많았죠.


굉장히 기대를 하고 갔는데, 정말 열악했습니다. 그때는 전화도 되지 않았고,

이메일도 없어서 모든 의사소통을 팩스로만 했습니다. 팩스 한 번 보내면 답신이 한참 후에나 왔습니다. 전기시설이며 수도 등 기반시설과 수술과 관련된 장비와 물품을 점검하기 위해 팩스를 수백 장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마다 있는 게 없는 겁니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고, 마취기도 없으며, 수술을 할 수 있는 장비는 침대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수술 장비와 관련된 의료기구와 물품들을 다 가지고 가야 했습니다. 수술실 3개를 만들 수 있는 장비를 준비했는데, 컨테이너 하나였습니다.


30명 정도가 2주 계획으로 갔는데,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낮도 밤도 없이 해서 200명을 수술했습니다. 원래는 일회성으로 계획한 것이었는데, 우리도 한 번으로 끝낼 수 없다 생각했고 베트남 정부도 더 와 주길 바래서 그다음 해에도 간 것이 벌써 23년째입니다. 매년 다른 곳을 가는데 어느 곳이든 상황이 다를 게 없었습니다. 처음 갔던 하노이가 그나마 괜찮았을 정도였으니까요. 처음 10년은 수술실도 낙후했을 뿐 아니라 숙소도 마찬가지여서 고생이 참 많았습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아주 좋아졌지요. 하루 종일 수술하고 숙소에 돌아와 좀 쉬어야 하는데 벌레며 도마뱀이 돌아다니고 여자 숙소에선 비명소리가 나고 해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거든요. 더구나 먹는 것도 입에 맞지 않아 어떤 사람은 베트남에 있는 동안 내내 과일만 먹고 어떤 사람은 탈이 나서 고생하고 그랬어요.


밤낮없이 수술만 하셨다니 그 열의가 대단합니다.
‘세민얼굴기형돕기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1996년에 처음 베트남을 다녀온 다음 해에 백세민 교수님이 은퇴를 하셨습니다. 너무 빨리 은퇴하신 거죠. 이 상황은 백 교수님 본인뿐 아니라 아무도 예측한 게 아니어서 당황스러웠죠. ‘세민얼굴기형돕기회’도 활동하기 힘드셔서 결국 제가 이끌고 가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나이도 어리고 그렇게 큰 단체를 끌고 갈 역량도 안 되었어요. 다행히 도와주고 함께해 준 분들이 많아서 지금까지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었지요.


‘세민얼굴기형돕기회’의 활동은 크게 국내 의료봉사와 해외 의료봉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국내 의료봉사는 1983년부터 시작됐는데, 경제적인 이유로 수술을 받지 못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수술 봉사를 하고 있으며, 그밖에 얼굴기형에 대한 계몽과 전문가 양성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1995년부터는 ‘세민얼굴돕기후원회’를 조직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후원을 받고 더 많은 사람들이 후원하고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직접 찾아가는 전국순회 진료는 전국 관공서에 환자 모집 협조 공문을 발송한 후 20여 개 팀을 구성하여 해당 보건소를 방문하여 진료하고, 인근 대학병원에서 치료가 가능한 환자는 대학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 것으로, 2004년까지 진행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인터넷 접수를 통해 병원 진료와 연계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얼굴기형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을 온라인과 간행물 등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한편, 얼굴기형 관련 연구와 교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해외 의료봉사는 베트남, 미얀마,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에 나가고 있습니다. 먼저, 베트남 의료봉사는 1996년부터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베트남을 방문해서 매년 150명 안팎의 얼굴기형 어린이들을 무료로 수술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천 명 이상의 어린이에게 새로운 삶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지 의사들이 직접 배워서 수술할 수 있도록 교육도 하고 있으며, 매년 수술 장비와 시설도 기증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12명의 현지 의사를 교육했는데, 유망 있는 젊은 의사는 1년 동안 국내에 초청해서 교육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고기만 잡아 주면 성장할 수 없으니까 낚시하는 법도 가르치고 낚시 장비도 주는 것입니다.

‘세민얼굴기형돕기회’가 발족한 지 10여 년 지나자 베트남 이외의 다른 나라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미얀마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190여 명의 어린이들을 수술해 줬고, 우즈베키스탄은 2004년부터 2009년까지 140여 명을, 인도네시아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4명을, 캄보디아는 2017년에 33명의 얼굴기형 환자들을 수술해 주었습니다. 몽골과 미얀마 어린이 23명은 한국에 초청해 수술해 주었습니다. 물론 이들 나라의 현지 의사들에게도 의술을 전수해 주었을 뿐 아니라 한국에 초청해 교육을 받도록 했습니다.


병원에 근무하면서 이 많은 일을 어떻게 하시는지요?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철학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 준 백세민 교수님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저뿐 아니라 많은 제자들이 그 길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병원과 학교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의료봉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은 성형외과뿐만 아니라 다른 진료과도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등지로 의료봉사 갈 수 있도록 시간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병원의 이 같은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아마 의료봉사를 계속 진행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병원뿐 아니라 기업과 단체, 그리고 개인의 후원도 의료봉사를 지속할 수 있는 커다란 힘입니다. 베트남 의료봉사는 1996년부터 SK그룹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위태롭던 IMF 시절에도 묵묵히 후원해 주었지요. 나머지 나라들을 위한 의료봉사나 국내에서 교육하는 비용을 후원하는 곳들도 있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그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요?


제가 정말 안타까운 것은 북한입니다. 법인을 만든 해부터 저는 북한을 염두에 두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여러 경로로 알아봤지만 현재로선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2000년에 북한과 관계가 좋아지면서 평양에 간 적이 있습니다. 북한 관계자들을 만나 ‘세민얼굴기형돕기회’에서 하는 일들을 설명하고 현지 의사들을 교육하고 장비를 지원해서 스스로 수술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당시 북한의의과대학에는 성형외과가 없었는데 과 신설을 돕겠다고도 했습니다. 북측도 호의적이었으나 중간에 다른 문제가 생겨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2010년에도 재방문해 설명하고 제안해서 진행하다가 다시 일이 생겨서 틀어져 버렸습니다.


얼굴기형은 생명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정부나 정치인들이 중요하게, 급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본인에게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얼굴기형을 가진 사람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외부 활동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 원만하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사회가 이해하고 배려하려면 먼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너무 가난한 나라에선 얼굴기형에 관심도 없고 전문가도 없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북한도 비슷할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저희가 하는 의료봉사만도 벅차지만 북한만큼은 꼭 돕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온 의료봉사를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병원을 비롯해 많은 곳에서 협력해 줬기에 가능했던 일인데, 더 많은 분들의 정성과 섬김이 필요합니다. ‘세민얼굴기형돕기회’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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