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ideposts 2019 | 07

OVERCOMING ADDICTION

The Burden of Truth
진실과 마주하기


OVERCOMING ADDICTION

The Burden of Truth
진실과 마주하기  


Guideposts 2019 | 07


For years this sportscaster hid the secret about her parents' deaths from everyone-including herself


LAUREN SISLER Birmingham, Alabama


로렌 시슬러는 오랫동안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유를 비밀에 부쳤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그랬다.

로렌 시슬러 앨라배마주 버밍엄


Sometimes people approach me and ask, “Don’t I know you?”

If they’re sports fans, they probably do. In addition to covering sports for AL.com, I’m a sports broadcaster for ESPN and SEC Network. Here in football-crazy Alabama, I get recognized a lot.

The attention is flattering. But it’s also ironic. For a long time, even after I became a presence on TV, I worked very hard to keep myself hidden.

No one knew the real me. Not my


사람들이 내게 다가와 물을 때가 있다.

“전에 뵈었던가요?”

스포츠팬이라면 아마 그럴 거다. 나는 AL.com에서 스포츠를 보도하며 ESPN과 SEC 네트워크의 스포츠 방송 진행자이기도 하다. 여기는 풋볼에 열광하는 앨라배마인 만큼 나를 알아보는 이도 많다.

그런 관심 덕분에 으쓱해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구석도 있다. 아주 오랫동안, 심지어 TV에 출연한 이후에도 나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굉장히 애썼다.

누구도 진짜 내 모습을 몰랐다. 동료들


coworkers. Not my teammates and mentors during my competitive gymnastics days. Not my closest friends and family members. Not even me.

What was the secret I worked so hard to hide?

My mom and dad were drug addicts. They were wonderful, supportive parents, people of abiding faith and love. But from the time I was a teenager, both were hooked on prescription pain medicine. I was in college when they died, hours apart, from drug overdoses. By that point, they were barely functioning. Their finances were so chaotic, everything they owned was auctioned off to pay bills after they died. My older brother anaged to bid on a few keepsakes from our childhood.

That’s what really happened. Here’s the version I told everyone else, including myself: Mom and Dad were normal people who took medication for some chronic pain issues. Their lethargy, financial woes and explosions of anger when pills ran low were just everyday family problems.

“Mom had respiratory failure,” I said after they died. “Dad had heart failure. It was such tragic bad luck they died on the same day.”

It wasn’t bad luck. Mom died after ingesting an entire patch of fentanyl. Dad found Mom dead, ingested his own fentanyl patch, then collapsed and hit his head on the kitchen counter.

My aunt Linda, my mom’s sister, who had often bailed out my parents financially and learned the extent of their drug problem after they died, tried to tell me the truth. I refused to listen. I left the room or talked right over her.

As a child, I was either unaware or too naive to acknowledge the truth. As I got older, shame replaced ignorance. The shame grew so intense, I concocted a separate reality in which my parents’ drug use was normal. How could they be drug addicts if they lived in a nice house and Dad had a job?

The lie worked for years—until suddenly it didn’t. After Mom and Dad died, I reached a breaking point.


도, 팀원들도, 경쟁하며 체조하던 시절의 멘토들도, 가장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들도 몰랐다. 심지어 나조차도 몰랐다.

내가 그토록 감추고자 애썼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엄마 아빠는 마약 중독자였다. 훌륭하고 날 지지해 주는 부모님이었고, 변치 않는 신앙심과 애정을 지닌 분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십대였을 때부터 두 분 모두 처방전이 필요한 진통제에 빠졌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부모님이 몇 시간 간격으로 돌아가셨는데, 약물 과다 복용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두 분은 거의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었다. 재정 상황도 굉장히 혼란스러웠던 터라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청구서 지불을 위해 두 분이 소유했던 모든 물품이 경매로 처분되었다. 오빠가 유년기의 기념품 몇 가지를 간신히 입찰했다.

이게 바로 진짜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다음처럼 말했다. 엄마 아빠는 만성 통증 때문에 약을 복용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약이 떨어져 갈 때 나타나는 무기력감, 재정 문제, 분노 폭발은 그저 일상적인 가족 문제에 불과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이렇게 얘기했다.

“엄마는 호흡부전이었고 아빠는 심부전이었어요. 두 분이 같은 날 돌아가신 건 굉장히 애석하고 운 나쁜 일이었죠.”

운이 나빴던 게 아니다. 엄마는 펜타닐(강력한 효과를 지닌 마약성 진통제-역주) 패치를 통째로 삼킨 후에 돌아가셨다. 아빠는 엄마가 돌아가신 걸 발견하고 펜타닐 패치를 삼키고서는 졸도하는 바람에 부엌 조리대에 머리를 부딪쳤다.

종종 부모님의 재정 문제를 해결해 주었지만 두 분이 돌아가신 후에야 약물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게 된 린다 이모가 내게 진실을 전해 주려고 애썼다. 그렇지만 나는 듣고 싶지 않았다. 방을 나와 버리거나 이모보다 큰 목소리로 얘기하고는 했다.

어렸을 땐 뭘 모르거나 너무 순진해서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라면서는 수치심이 무지를 대신했다. 수치심이 너무 강해진 나머지 부모님의 약물 사용은 정상이었다는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 낼 지경이었다. 근사한 집에 살았고 아빠는 직장도 있었는데 어떻게 두 분이 약물 중독일 수 있겠는가?

몇 년간은 거짓말이 먹혔다. 갑자기 효과가 없어질 때까지는 그랬다. 두 분이 돌아가

I found release in the last place I expected. There’s a reason Jesus says, “The truth shall set you free.” When at last I admitted the truth, I found a freedom I desperately needed.

Looking back, I can trace the start of my family’s problems to the year we moved from Roanoke to rural Giles County in Virginia, where Dad, a Navy veteran, inherited some land. Dad had grown up in the country, and he wanted my brother, Allen, and me to have the same upbringing.

It was a beautiful area, and the house Mom and Dad built was lovely. But Dad’s commute to his biomedical engineering job at the VA medical center more than doubled. Mom’s social life, much of it centered on our old church, shrank to mostly family, especially ferrying Allen and me to sports practices.

Soon after the move, Mom was diagnosed with degenerative disc disease and had multiple surgeries. Feeling isolated and daunted by her condition, she and Dad both fell into depression. Dad had had his own back surgery.

Many people prescribed postoperative pain medication take it when they need it, then stop. Not Mom and Dad. By the time I was in high school, our house was constantly getting shipments—paid for by Dad’s excellent insurance—of 90-day supplies of pills, opioid lollipops and fentanyl patches.

I don’t know who exactly was prescribing all of this medication, maybe the pain management specialist Mom and Dad saw after their surgeries.

For a while, my parents kept up a façade, attending sports competitions for Allen and me, saying good-night prayers with us, keeping tabs on our homework. Gradually, as the drugs’ grip tightened, things fell apart. By senior year, there were shouting matches over who took whose medication.

I’d heard about people getting hooked on prescription pain medicine. Of course such a thing would never happen in my family. Junkies living under highway bridges had a drug problem, not my middle-class parents in their beautiful house with Dad’s respectable job. Addiction was shameful. Scary. Nothing to


신 후 나는 한계점에 이르렀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해방감을 맛봤다.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있었다. 마침내 진실을 받아들였을 때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를 찾았다.

되돌아보니, 우리 가족의 문제는 로어노크에서 버지니아의 시골인 자일스 카운티로 이사하던 해에 시작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퇴역 해군이던 아빠는 자일스 카운티에서 땅을 조금 상속 받았다. 아빠는 시골에서 자랐고 오빠 앨런과 나도 같은 방식으로 자라길 원했다.

아름다운 지역이었고 부모님이 지은 집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버지니아 의료원에서 생명 의학 공학 일을 하던 아빠의 통근은 배 이상 늘어났다.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 집중되어 있던 엄마의 사회생활도 주로 가족에게로 축소되었는데, 대개 오빠와 나를 운동 연습에 데려다주는 일이었다.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엄마는 퇴행성 추간판 질환이라는 진단을 받고 몇 차례 수술도 받았다. 엄마는 병 때문에 고립되고 위축되었으며, 엄마 아빠 모두 우울증에 빠졌다. 아빠도 등 수술을 받은 터였다.

많은 이가 수술 후에 진통제를 처방 받아서 필요할 때 약을 복용한 다음에는 끊는다. 부모님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쯤, 집에는 택배가 끊임없이 밀려들었는데―아빠의 훌륭한 보험이 지불해 준―90일 치에 달하는 약,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역주) 사탕, 펜타닐 패치 등이었다.

정확히 누가 이 모든 약을 처방했는지는 모른다. 아마 엄마 아빠가 수술 후에 만난 통증 조절 전문의였을 거다.

한동안 부모님은 오빠와 나의 운동 시합에서 자리를 지키고, 잠자리에서 함께 기도하며, 우리 숙제를 검사해 주면서 겉보기에는 괜찮은 듯했다. 하지만 약이 지배하는 힘이 강해짐에 따라 모든 것이 무너졌다. 내가 졸업반이었을 즈음에는 누가 누구의 약을 먹었는지를 놓고 두 분이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처방받은 진통제에 중독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우리 가족에게는 절대 벌어지지 않을 그런 일이었다. 도로교 아래 사는 마약 중독자에게는 약물 문제가 있었지만, 좋은 직장에서 일하는 아빠가 있고 아름다운 집에 사는 중산층 부모님에게


do with my stable, normal world.

I went to Rutgers University on a gymnastics scholarship. My first Thanksgiving home, Dad collapsed on the living room floor, his face blue. Allen, home from the Navy, tried to revive him. Paramedics took Dad to the hospital.

“Your father had a bad reaction to some medicine,” Mom said at the hospital. She looked at me, as if waiting for me to challenge that explanation. After a moment’s hesitation, I asked, “And he’ll be okay?” Mom nodded.

It was an unconscious decision to go along with Mom’s story. Some part of me must have known it wasn’t the whole truth. But after years of lying to myself, how could I blow things up now?

“How’s your dad?” friends asked.

“Still in the hospital,” I said. “The doctors say he needs further evaluation.”

I also covered up for Mom, who abused not only pain pills but the antidepressants she was prescribed.

My parents’ death certificates both listed “accidental overdose” as the cause of death. “Accidental” meant it wasn’t their fault, right? I convinced myself I wasn’t really lying when I told people they’d died of respiratory failure and heart failure.

But I could forestall reality only so long. Aunt Linda grew alarmed when she realized I hadn’t acknowledged the truth about my parents’ addictions. Several times she tried to explain everything. Sometimes I fought back.

“Mom and Dad were not drug addicts,” I’d insist. “They took medication for pain and had an accident. What are you trying to do, shame our family?”

One day at Rutgers, I hurt my leg at gymnastics practice. Somehow in my mind, the pain from the injury became bound up with my pain over Mom’s and Dad’s death. I said nothing to my coaches about it, even after the pain got so intense I began limping around campus.


는 없을 일이었다. 중독은 수치스럽고 두려운 일이었다. 안정적이고 정상적인 내 세상과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나는 체조 장학생으로 러트거스 대학교에 입학했다. 첫 추수감사절을 맞아 집에 돌아갔는데, 아빠가 얼굴이 파래지면서 거실 바닥에 쓰러졌다. 해군으로 복무하다가 집에 돌아온 오빠가 아빠를 소생시키려고 애썼다. 응급구조대원들이 아빠를 병원으로 싣고 갔다.

“아빠는 약물에 거부 반응이 있었어.”

병원에서 엄마가 말했다. 날 바라보던 엄마는 내가 설명해 달라고 다그치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그럼 아빠는 괜찮아지시는 거야?”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말에 동조하겠다는 무의식적인 결정이었다. 분명 내 일부는 엄마의 말이 온전한 진실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스스로 몇 년간 거짓말을 해왔는데 이제 와서 그걸 비난할 수 있겠는가?

“아빠는 어떠셔?”

친구들이 물었다.

“아직 병원에 계셔. 의사 말로는 추가 검사가 필요하대.”

진통제뿐만 아니라 처방받은 항우울제도 남용하던 엄마까지 감싸 주었다.

부모님의 사망 진단서는 두 분 모두 ‘우발적인 약물 과다 복용’이 사인이라고 했다. ‘우발’은 두 분의 잘못이 아니란 뜻이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들에게 부모님이 호흡부전과 심부전으로 돌아가셨다고 얘기하면서도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고 스스로 설득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진실을 막아설 수는 없었다. 내가 부모님의 중독에 관한 진실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린다 이모는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이모는 몇 번이나 모든 걸 설명하려고 했다. 나는 때때로 대들었다.

“엄마 아빠는 마약 중독자가 아니었어요. 통증 때문에 약을 드셨고 사고가 있었죠. 이모는 뭘 하려는 거예요? 우리 가족을 망신 주는 거요?”

대학생이던 어느 날, 체조 연습 중에 다리를 다쳤다. 어째서인지 마음속에서는 부상으로 인한 통증이 부모님을 잃었을 때의 고통과 뒤섞였다. 통증이 극심해져서 절룩거


My coaches noticed and forced me to see a doctor. “Lauren, you’ve been practicing on a partially broken femur,” he said. “If you’d kept going, you could have broken the bone clean through. That’s a very difficult injury to heal from.”

Here at last was a reality I could not conjure away. Unable to compete, I became depressed. I was prescribed medication for both pain and depression. I was scared to try either one.

When I was back home, Aunt Linda saw my struggle. She sat me down and said, “You can’t do this anymore, Lauren. You have to acknowledge the truth about your parents.”

She told me everything from the beginning. When she finished, I felt an instinctive impulse to deny or run away. Then a new feeling came over me. A sensation of light and space. A glimpse of freedom I didn’t even know I needed.

“Lauren,” Aunt Linda said gently. “You can’t run away from the truth. You can’t control what people think about your parents. What you can control is how you choose to remember them. Do you really think your Mom and Dad are honored by lies? By your denial?”

Aunt Linda’s question haunted me. What had all my lies achieved so far? They sure hadn’t kept Mom and Dad alive. They’d nearly cost me my place on the gymnastics team. The assumption behind the lies was that Mom’s and Dad’s addictions were shameful.


리며 캠퍼스를 돌아다닐 지경이 된 후에도 코치 선생님들에게 털어놓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부상을 알아차리고 진료를 받게 했다.

“로렌, 넌 대퇴골 일부가 골절된 상태로 연습하고 있었어. 계속했으면 뼈가 완전히 부러졌을 수도 있어. 그럼 회복하기 몹시 어려운 부상이 된단다.”

결국 여기가 내가 마법으로 쫓아낼 수 없는 현실이었다. 시합에 나갈 수 없게 되자 우울해졌다. 통증과 우울증으로 약을 처방받았다. 어느 것도 먹기가 두려웠다.

집에 돌아왔을 때 린다 이모가 내 고군분투를 눈치챘다. 날 앉히고는 말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지낼 수는 없어, 로렌. 부모님에 관한 진실을 인정해야 해.”

이모는 처음부터 모든 걸 털어놓았다. 이모가 이야기를 끝냈을 땐 부정하거나 달아나고 싶은 본능적인 충동을 느꼈다. 그러다가 새로운 감정이 들었다. 빛과 공간이 느껴졌다. 내게 필요한지조차 몰랐던 자유가 얼핏 보였다.

“로렌, 진실에서 도망칠 수는 없어. 사람들이 네 부모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통제할 수 없지. 네가 좌우할 수 있는 건 부모님을 어떻게 기억할지 선택하는 일이야. 정말 엄마 아빠가 거짓말과 부정(否定) 속에서 명예로울 거라고 생각해?”

이모가 부드럽게 말했다.

이모의 질문이 날 괴롭혔다. 여태까지 거짓말로 뭘 이뤘지? 분명 거짓말이 엄마 아빠를 살려 내는 건 아니었다. 거짓말 때문에 체조팀에서 내 자리를 거의 잃을 뻔했다. 거짓말 바탕에 있던 전제는 엄마 아빠의 중독이 수치스럽다는 거였다.


...

이후 내용은 2019년 7월호 잡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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