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UAL NOTEBOOK
Connecting the Dots
"단지 하나의 점일 뿐이야"
Guideposts 2019 | 08
Spiritual Notebook
"단지 하나의 점일 뿐이야"
Guideposts 2019 | 08
Her life was in upheaval. How would she ever make sense of it?
DANITA JONES Madison, Alabama
그는 인생에서 격변의 시기를 겪었다. 대체 어떻게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다니타 존스 앨라배마주 매디슨
I sat in my parents’ den—in my mama’s old chair—watching my dad wrestling with my almost-two-year-old twins. He would playfully toss one away from him, and then the other would come around and attack him from behind, giggling. It was impossible not to smile. But I was still confused and angry about the string of events that had brought us here. God had some explaining to do!
Less than two years earlier, against my better judgment and without my doctor’s knowledge, I’d come down to Alabama, where my parents lived, to produce and direct a show that my
나는 부모님 사실(私室)에 있는 엄마의 오래된 의자에 앉아 거의 두 돌이 된 쌍둥이들과 아빠가 몸싸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빠가 재미있게 한 명을 저쪽으로 던지면, 다른 아이가 돌아와서 킥킥 웃으며 뒤에서 아빠를 공격했다.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한 연이은 사건들에 여전히 혼란스럽고 화가 났다. 하나님께서 무언가 설명을 해 주셔야 했다!
거의 2년 전쯤 나는 어쩔 수 없이, 의사에게도 알리지 않고, 제작사가 의뢰받은 공연의 제작과 감동을 위해, 부모님이 살던 앨라배마로 오게 됐다. 당시 나는 쌍둥이 임신 32주였지만, 연극계에서 일하며 깨달은 사실은 기회가 찾아왔을 때, 답해
production company had been commissioned to perform. I was 32 weeks pregnant with the twins, but one thing I’ve learned working in the theater is that when opportunity knocks, you answer.
My husband, Paul, and I already had two other kids, one-year-old Layna and five-year-old Ethan, and they came with us. We drove straight from our home in Columbus, Ohio. All the while, I was reassuring Paul that it would just be a short visit. I’d do the gig, Mama and Daddy would have a chance to bond with their grandkids, and then we’d go home.
I was in this very spot—in the den—when my water broke. Six hours later, the twins arrived for their surprise birthday. Immediately they were whisked off to the NICU, where they stayed for the next 14 days.
Paul had to get back to work, and Ethan needed to get back to school. Even after being released from the hospital, the preemies were too fragile to handle the eight-hour drive to Ohio, so I stayed at my parents’ house with them and little Layna.
It was a rough separation. I was running on empty. Up all hours to feed the newborns while trying to maintain some sense of normalcy, making calls back and forth to Paul (“How was work?”) and Ethan (“How was school?”). At least my parents were able to lend a hand. Mama had been a third-grade teacher, and nobody was better with kids than she was. She never missed a chance at a teachable moment, passing along a life lesson, no matter how young you were.
Ultimately Paul and I decided to live permanently in Alabama. It seemed the best solution. There was the promise of good work for my production company, Paul would get a new job, and we’d stay with my parents for a month or two until we were able to find our own house.
I wish! Paul had to take a significant pay cut at his new job. The golden opportunity for my production company collapsed, and we didn’t have the means to buy a new house or even rent one. There we were—all six of us—
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편 폴과 나에게는 이미 한 살 난 레이나와 다섯 살 이던, 이렇게 아이가 둘 있어서, 그 아이들도 우리와 함께 갔다. 우리는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있는 집에서 곧장 차로 떠났다. 계속해서, 나는 폴에게 잠깐 다녀오는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나는 공연 작업을 하고, 엄마, 아빠는 손주들과 유대를 맺을 기회를 갖게 되고, 그리고 우리는 집으로 가게 될 것이었다.
양수가 터졌을 때, 나는—부모님의 사실—바로 이 자리에 있었다. 6시간 후, 쌍둥이는 깜짝 생일을 맞이하기 위해 태어났다. 나오자마자 바로 아기들은 신생아집중치료실로 급히 보내져, 그곳에서 14일을 입원했다.
폴은 회사로 돌아가야 했고, 이던은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병원 퇴원 이후에도, 미숙아인 쌍둥이들이 오하이오까지 차로 8시간 거리를 감당하기에 너무 연약했기에, 나는 쌍둥이 그리고 어린 레이나와 함께 부모님 집에 머무르게 됐다.
그렇게 떨어져 있는 일은 힘들었다. 있는 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매 시간 신생아들을 먹이면서 동시에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며, 폴(“일은 어땠는지?”)과 이던(“학교는 어땠는지?”)에게 번갈아 가며 전화를 했다. 어쨌든 부모님은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엄마는 3학년 담임 선생님이었고, 그래서 엄마보다 아이들을 더 잘 다루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상대가 아무리 어리더라도, 가르침이 가능한 순간에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고 인생의 교훈을 전해 주었다.
결국 폴과 나는 앨라배마에서 계속 살기로 결정했다. 최선의 해결책 같았다. 제작사가 괜찮은 일을 계약했고, 폴은 새 직장을 구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집을 찾을 때까지 한두 달 정도 부모님과 함께 지내면 됐다.
그랬다면 얼마나 좋을까! 폴은 새로 옮긴 직장에서 월급이 상당히 삭감되었다. 제작사가 잡은 절호의 기회가 무산됐고, 우리는 새집을 살 수도 심지어 임대할 방법도 없었다. 우리는—우리 여섯 전부는— 부모님 집에 꼼짝없이 머물게 됐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던 것인가?
그때 엄마가 쓰러졌다. 원래 심장에 문제가 있었지만, 어느 화요일 이른 아침 일어난 일에 우리는 그 어떤 준비도 할 수 없었다. 아침에 깼을 때, 엄마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빠는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러 나갔다. 엄마를 주방에 남
stuck at my parents’ place. Where was God now?
Then Mama collapsed. She’d had heart problems, but nothing could have prepared us for what happened early one Tuesday morning. She woke up not feeling well. Daddy went out to warm up the car to take her to the hospital. He left her in the kitchen. The next thing I knew, he was calling to me. Mama was slumped over in a chair, unconscious. I called 911. The paramedics rushed in and worked on her, desperate to revive her. They thought they could hear a heartbeat, but it was just her pacemaker. She was gone.
I had to do all those things you do when a loved one dies: comfort my father, call my sister, let the church know, post something on social media, make the funeral arrangements, contact Mama’s friends, find musicians to play for the service, make sure it was a funeral that would have made Mama proud. I might have looked as if I had everything together, but inside I was a mess.
And angry. Angry at God, angry that we’d been uprooted, angry that our kids had to have a front-row seat to this tragedy. I couldn’t understand why so much of what we’d planned for our family had fallen apart: the move, the jobs, the loss. I’d often heard people quote the Bible and say,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to them that love God.” How was any of this working for anybody’s good?
I rehashed this for the hundredth time, sitting there in Mama’s chair and watching our toddlers play with my dad. And then all at once, I heard her say, “This is a dot, Danita.”
I flashed back to a particular afternoon in high school when I was upset—I’d been passed over for a part in a school play. I drove over to Mama’s school and found her in the classroom. I unloaded all my teenage angst. It wasn’t fair. I should have gotten the part. Why me?
“It’s just a dot, Danita,” she said.
“What do you mean?”
겨 둔 채. 그다음 내가 아는 사실은 아빠가 내게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의식을 잃고, 의자에서 푹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911에 전화했다. 구급대원들이 달려 들어와 엄마를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처치를 했다. 그들은 엄마의 심장박동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단지 심장박동기 소리뿐이었다. 엄마는 떠나고 말았다.
아버지를 위로하고, 언니에게 연락하고, 교회에 알리고,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리고, 장례식을 준비하고, 엄마의 친구들에게 연락하고, 장례 음악을 연주할 연주자들을 찾고, 엄마가 자랑스러워했을 만한 장례식을 준비하는 일 등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하는 모든 일을 내가 해야 했다. 모든 일을 다 해결한 듯 보였겠지만, 내 마음속은 엉망이었다.
그리고 화가 났다. 하나님께 화가 났고, 우리의 삶이 송두리째 뽑혔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우리 아이들이 이 비극의 맨 앞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이사, 직장, 이별을 비롯해, 왜 우리가 가족을 위해 계획한 일들의 대부분이 실패로 돌아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성경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들었다. 이중 어느 하나라도 누군가에게 이익이 됐는가?
엄마의 의자에 앉아서 우리 아기들이 아빠와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것을 수백 번 되뇌었다. 그러다 난데없이 엄마가 “이건 점이야, 다니타” 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등학교 때 연극 배역 선발에서 제외되어 마음이 상했던 바로 그 오후를 떠올렸다. 나는 차를 끌고 엄마 학교로 가서 교실에 있는 엄마를 발견했다. 나는 십대의 불안감을 모두 풀어냈다. 그건 공평하지 않았다. 내가 그 역을 땄어야 했다. 나만 왜?
“그건 점일 뿐이야, 다니타”라고 엄마가 말했다.
“무슨 뜻이에요?”
엄마가 책상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는데, 온통 번호로 뒤덮인 연습장이었다.
“이게 뭘까?” 엄마는 마치 선생님처럼 말했다.
“점 이어 그리기네요.”
나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해하며 답했다.
“어떤 그림이지?” 엄마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She pulled a sheet of paper out of her desk drawer, a worksheet with numbered dots all over it. “What is this?” she said, sounding just like the teacher she was.
“It’s dot-to-dot,” I said, wondering what she was getting at.
“What’s it a picture of?” she asked.
“I don’t know.” I couldn’t make sense of the dots. They seemed strewn all over the page in no apparent shape.
“That’s how life is,” she said. “God places things in our lives, and sometimes they seem confusing or out of order. Most of the time, we have no idea why things happen the way they do.”
“So…we’re the dots?”
“No, we’re the pencil,” my mother said, handing me one. “The pencil never knows what the dots make up—it just goes from one dot to the next. But God sees the big picture.”
I stood there and began to connect the dots. In no time at all, the lines had come together to reveal a fish. What I couldn’t see before had become clear.
Now, in my parents’ den, I reconsidered what we had been through. Maybe it did make sense. If I just connected the dots.
My water breaking here led to us being surrounded by family to help us take care of our premature twins, which convinced us to move back home, where I got to spend precious time with my mother during the last year of her life—and happened to be exactly where I was needed when she died. Dots, all of them. Everything that had seemed so random—even cruel—as it happened had come to create a larger picture, leading to this moment: my father laughing for the first time in weeks as he wrestled with his grandchildren, healing from his grief.
Right there in my mother’s chair, I stopped viewing all these events as blips of tragedy. I needed to trust God to reveal the beautiful bigger picture. All things could work together in our life for good, dot to dot.
그 점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명확한 형태 없이 페이지 전체에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생이 그런 거란다.” 엄마가 답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여러 상황을 배치하시는데, 때로는 그것들이 혼란스럽거나 뒤죽박죽인 것처럼 보이지. 대부분의 경우 왜 그런 식으로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어.”
“그렇다면… 우리는 점인가요?”
“아니, 우리는 연필이야.” 엄마가 내게 연필을 건네며 말했다.
“연필은 점들이 무엇을 만들어 낼지 결코 알 수 없어. 단지 이 점에서 그다음 점으로 옮겨 갈 뿐이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큰 그림을 보시지.”
나는 그대로 서서 점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선이 하나로 연결되어 물고기의 모습이 보였다. 아까는 볼 수 없었던 것이 뚜렷해진 것이다.
지금 나는 부모님의 사실에서, 우리가 겪은 일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말이 됐을지도 모른다. 내가 점만 연결했다면.
여기서 터진 양수가 우리를 조산한 쌍둥이를 돌봐줄 가족 곁에 있게 하여, 우리가 집으로 이사와야 한다는 확신을 심어 주고, 덕분에 내가 엄마의 마지막 1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으며, 엄마가 떠났을 때 마침 내가 필요한 곳에 정확히 있을 수 있었다. 점들, 그 모든 점들. 무작위로, 심지어 잔인하게 일어난 듯 보이던 모든 일이 우연히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일어났고, 이 순간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상실감으로부터 치유 중이던 아버지가 손주들과 씨름하며 몇 주 만에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은 바로 그 순간으로.
바로 저기 엄마의 의자에서, 나는 이 모든 사건을 일시적인 비극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더 큰 아름다운 그림을 드러내시리라 믿어야 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협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다. 점에서 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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