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GET WISE CHRISTMAS CLASSIC

Hope Recovered
크리스마스 선물


Guideposts 2019 | 12


BUDGET WISE CHRISTMAS CLASSIC 

크리스마스 선물 

Guideposts 2019 | 12


Some gifts come when you need them most

Rick hamlin Executive Editor


가장 절실할 때 찾아오는 선물이 있다.

릭 햄린 편집장


This is a bittersweet Christmas story, all about disappointment and hope and despair. I’m not even sure it’s my story to tell, but it happened to my family and anything that happens to those you love happens very much to you. The hero is my mother-in-law, but you’re not going to realize for a long time she’s heroic. We certainly didn’t know.

Moon was her given name. She was a brilliant, charming, clever woman who did The New York Times 


이 글은 달콤하고도 씁쓸한 크리스마스 이야기로 실망, 희망, 체념이 뒤섞여 있다. 내가 해도 되는 이야기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하겠지만, 이 일은 우리 가족에게 벌어졌던 일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에게 벌어진 일은 무엇이든지 간에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이야기의 영웅은 우리 장모님이지만, 한참 동안은 그분이 대단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없을 거다. 우리도 정말 몰랐다. 

장모님의 성함은 ‘문’으로, 빼어나고 매력적이며 똑똑한 여성이다. 잉크로 <뉴욕 타임스>에 실린 십자말풀이를 풀었으며



crossword puzzle in ink—finished it by 9 A.M.—and could cook anything. Soft-shell crabs dipped in batter, sweetbreads for my wife Carol’s birthday, lobster with tons of butter, pecan pies at Thanks­giving. She was a voracious reader, going through books so quickly that she gave most of them away to the library because there was no room on her shelves. She loved her dogs, coddling her pugs and addressing her German shepherds in German as though it were their native tongue.

She’d been a beauty in her youth, tall and blonde with blazing blue eyes and a strong chin. She was the queen of the annual pageant in the Midwestern city where she grew up, and sometimes I wondered if that was part of the problem. All that attention before she was 20, posing at civic events in her tiara, having her picture in the newspaper. It would have to be all downhill from there.

By the time I knew her, she’d been divorced for a dozen years, although there was always some man in the picture, enjoying her humor, her cooking and, truth be told, the chance to drink together. For by then my mother-in-law had a serious drinking problem. The morning began with vodka. She’d drink it from a jam jar glass while she did the crossword, and the drinking continued throughout the day. There were times of day when Carol simply didn’t call her.

This was always most noticeable in the fall, when Moon wanted to know about Christmas. As early as September, she’d call us: “Tell me, what should I get the boys? What do they want this year?”

Carol steeled herself for these conversations. She checked caller ID and looked at her watch—anytime after 5 P.M. was hopeless. She wanted to be sure her mother was lucid. She didn’t want to be disappointed again. “Okay, Mom,” Carol would say, finally giving in. She’d pick something off Santa’s list and send Moon a catalog, dog-eared with the perfect present circled in red.

The conversations continued intermittently all fall. “What was it that the boys 


―아침 9시면 끝났다―무슨 요리든 해냈다. 아내 캐럴의 생일에는 딱지가 연한 게에 튀김옷을 입힌 요리와 스위트브레드(요리 재료로 쓰는 어린 소, 양, 돼지 등의 췌장―역주)가, 추수감사절에는 버터를 듬뿍 바른 바닷가재와 피칸파이가 나왔다. 또한 대단한 독서광이었다. 아주 빨리 읽고 책 대부분은 도서관에 기증했는데 책장에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한 개를 사랑해서 퍼그들의 응석을 받아 주고 저먼 셰퍼드의 모국어가 독일어인 것처럼 녀석들에게 독일어로 말을 걸었다.

젊은 시절 장모님은 큰 키에 금발, 눈부시게 빛나는 파란 눈, 강한 턱선을 지닌 미인으로 고향 미드웨스턴 시에서 열린 연례 미인 대회의 우승자이기도 했는데, 가끔 나는 그게 문제였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작은 왕관을 쓴 채 시(市)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신문에 사진이 실리기도 하면서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쏟아졌던 그 모든 관심. 그때부터 만사가 내리막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장모님을 알았을 무렵에는 장모님이 이혼한 지 이미 12년이 지났을 때였지만, 언제나 교제 중인 남자가 있었다. 그들은 장모님의 유머와 요리를 좋아했으며, 사실대로 말하자면 함께 술을 마시는 기회를 즐겼다. 그때쯤 장모님의 음주 문제는 심각했다. 보드카로 아침을 시작했다. 십자말풀이를 하는 동안 큼지막한 잼병 같은 유리컵으로 보드카를 마셨고, 음주는 종일 이어졌다. 그리고 캐럴은 장모님에게 전혀 전화하지 않기도 했다. 

이런 일은 가을에 가장 두드러졌는데, 바로 장모님이 크리스마스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시기였다. 이미 9월이면 장모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얘기해 보렴. 손자들에게 뭘 줘야 하니? 올해는 아이들이 뭘 원하니?” 

아내는 그런 대화에 대비해서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발신자 번호를 확인한 다음 시계를 봤는데, 그게 언제든지 간에 오후 5시 이후라면 가망이 없었다. 아내는 엄마가 맑은 정신인지 확인하고 싶어 했고, 다시는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좋아요. 엄마.” 

결국 포기한 아내가 말했다. 캐럴은 크리스마스 선물 목록에서 무언가를 고른 다음 장모님에게 카탈로그를 보냈다. 가장 적당한 선물에는 빨간 동그라미를 치고 페이지 귀퉁이도 접었다. 



wanted for Christmas?” There were other talks about Christmas—whose family would we be with when and what should we eat this year, turkey or roast beef? But it was the conversations about the boys’ presents that were the hardest to take.

The final call always came a week or two before the twenty-fifth. Carol answered. Moon sighed. “Could you buy something for the boys and tell them it came from me? I’ll send you a check later.”

I wished I could have protected Carol from the despair she plunged into after this last conversation. I prayed I could relieve the sorrow. Sometimes I was tempted to say, “Don’t do it. Don’t buy them anything from your mom.” What was a gift if it didn’t involve some effort? Instead, Carol had to wonder if her mom really loved the boys—she could do so little for them when she was under the influence. Moon made promises but was too unwell to be able to be generous. But that realization didn’t relieve the anguish. Dutifully, Carol wrapped up something for the boys from their grandmother and buried her pain.

Then the year the boys turned 12 and 9, Carol and her sisters gathered together, determined that their mother get some help. We organized an intervention. On an August morning at seven o’clock, we arrived at Moon’s house and asked her, as lovingly as possible, to go into a 28-day inpatient treatment facility. She listened to us with strained patience. The jam jar was full, the crossword was waiting. “All right,” she sighed. “I’ll go.”

I can’t fathom how hard this must have been. For a 69-year-old woman to leave her comfortable home, bid farewell to her dogs, her kitchen and her garden and live in a dormitory with total strangers, all going to mandatory seminars, AA meetings, group therapy and one-on-one sessions. None of us had any hope the treatment would really work—this wasn’t the first time we’d tried. But none of 


그런 대화가 가을 내내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에 뭘 원하니?” 

다른 크리스마스 대화도 있었다. 누구네 가족과 함께할지, 언제할지, 올해는 칠면조를 먹을지 로스트비프를 먹을지 등이었다. 그렇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아이들의 선물 얘기였다. 

마지막 전화는 항상 크리스마스 1~2주일 전에 걸려왔다. 아내가 받으면 장모님은 한숨을 쉬었다. 

“애들 선물 좀 사서 할머니가 보냈다고 해주겠니? 나중에 수표를 보낼게.” 

마지막 통화 후에 절망에 빠진 아내를 내가 지켜 줄 수 있기를 바랐다. 아내의 슬픔을 덜어 줄 수 있기를 기도했다. 때로 “하지 마. 아이들에게 할머니가 보낸 선물을 사 주지 마”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도 들었다. 수고를 들이지 않은 선물이 무슨 선물인가? 그런데도 캐럴은 엄마가 손자들을 정말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장모님은 술에 취해 있을 때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장모님은 약속했지만, 아낌없이 내주기에는 상태가 좋지 못했다. 하지만 그걸 잘 알아도 괴로움이 덜어지지는 않았다. 아내는 책임감으로 할머니가 보낸 아이들 선물을 포장했고 자기의 고통은 감춰 버렸다. 

그러다가 두 아들이 각각 열두 살, 아홉 살이 되던 해, 아내와 처제들이 모였고 장모님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중재 치료(알코올 사용 장애를 회피하려는 마음을 해결하고 이를 치료하지 않을 시 발생할 부정적인 결과를 인지하게 하는 과정―역주)를 준비했다. 8월 어느 아침 7시에 우리는 장모님 댁에 도착했고, 28일 동안 입원 치료 시설에 입소하자고 가능한 한 애정을 기울여 부탁했다. 장모님은 참을성을 억지로 짜내며 우리 얘기에 귀 기울였다. 커다란 유리컵은 가득 차 있었고 십자말풀이가 준비되어 있었다. 

“좋아. 갈게.”

장모님이 한숨을 쉬었다.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예순아홉 할머니가 편안한 집을 떠나고 개들과 주방, 정원에 작별 인사를 하며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필수 세미나와 익명의 금주 모임(AA, Alcoholics Anonymous의 약자로 알코올중독자들의 자조 모임―역주),



us could tolerate the status quo. We hoped that we’d done the right thing.

Moon came out of the program looking great. She even managed to thank us. “I will never let that happen again,” she said. She went to meetings regularly. She saw a therapist. She talked about the changes she would make in her life. We were hopeful but wary, Carol wariest of all.

That fall there were none of the usual phone calls about what she would get the boys for Christmas. “It’s just as well,” I said. “She’s got other things on her mind. She’s working on her sobriety.” If only we had known what was really wrong.

In November, Moon collapsed at home with what seemed to be a massive stroke. She had no speech, no movement. It wasn’t even clear if she recognized any of us at the hospital. Every day for 10 days, Carol sat at her mother’s bedside. At first there was some faint hope that she would recover. Then the doctors determined that the stroke had been caused by an aggressive cancer that riddled her body. All we could do was wait and make sure she was in no pain.

Two days before Thanksgiving, she died. At her burial service, we gathered around her grave, all of us crying. It was hard not to ask ourselves a hundred what-ifs? What if we had done the intervention earlier? What if we had worked harder at getting her to give up drinking? Maybe she would have discovered the cancer sooner. Maybe we wouldn’t be standing around a grave but celebrating birthdays and Thanksgivings and Christmases for many years to come.

An old family friend, another recovering alcoholic, held up a coin. “This was to commemorate Moon’s first 90 days of sobriety. Nothing made her prouder.”

Our mood that Christmas was muted. Carol was only going through the motions. She bought the presents, did the decorating, read the Christmas cards, sang the carols, but her heart wasn’t in any of it. “You don’t have to go to any parties this year,” I told her. “Everybody will understand.”


그룹 치료와 일대일 면담에 참석해야 했다. 우리 중 누구도 치료가 정말 성공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때가 첫 시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누구도 현 상황은 견딜 수 없었다. 우리가 옳은 일을 했기를 바랐다. 

프로그램에서 돌아온 장모님은 좋아 보였고, 심지어 우리에게 고맙다고 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게 내버려 두지 않으마.” 

장모님은 규칙적으로 모임에 참석하고 치료사도 만났다. 앞으로 생활에서 꾀할 변화를 얘기하기도 했다. 우리는 희망을 걸었지만,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웠고 그중에서도 아내가 가장 신중했다. 

그해 가을에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손자들에게 무엇을 사 주어야 하냐는 일상적인 전화가 한 번도 걸려오지 않았다. 

“다행이야. 다른 일에 신경 쓰고 계시겠지. 금주하느라 노력하고 계시잖아.”

우리는 무엇이 진짜 잘못되어 가는지 알았어야 했다. 

11월에 장모님이 집에서 갑자기 쓰러졌는데 중증 뇌졸중 같았다. 말도 할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병원에서 우리 중 누구라도 알아보는지조차 확실치 않았다. 캐럴은 열흘간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의 병상을 지켰다. 처음에는 회복하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지만, 의사들은 뇌졸중이 온몸을 좀먹는 공격적인 암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저 기다리면서 장모님이 통증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다. 

추수감사절 이틀 전에 장모님이 돌아가셨다. 장례식에서 무덤가에 모인 우리는 모두 울었다. 수많은 만약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중재 치료가 좀 더 일렀다면 어땠을까? 만약 장모님이 술을 끊도록 우리가 더 애썼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장모님은 암을 더 일찍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무덤가에 둘러선 대신 앞으로도 여러 해 동안 생일,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를 기념했을지도 모른다. 

알코올중독을 치료한 가족의 오랜 친구가 동전을 집어 들었다.

“문이 첫 90일 동안 금주한 걸 기념한 동전이야. 문에게 그보다 더 자랑스러운 건 없었어.” 

그해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침묵이었다. 오직 아내만이 마지못해서 하는 척이라도 했다. 선물을 사고 집을 꾸몄으며 크리스마스 카드를 읽고 캐럴도 불렀지만, 아내의 마음은 다른 데 가 있었다.



The packages piled up. Presents from relatives, from friends. Boxes from websites and catalogs where we’d shopped. Usually we knew what was in those boxes. Something I ordered. Something Carol ordered. But one day a package arrived from a company that neither Carol nor I had ever heard of. “Do you know what’s in here?” I asked. And why was it addressed to the boys and not to us? I wondered. It was a big box, perfect for a basketball.

I cut through the tape and dumped out all the Styrofoam worms. I put my hands in and pulled out a globe. A beautiful globe with all the new countries from the former Soviet Union in their right places. “Who’s this from?” I asked Carol.

She fished out the order form. She looked and then turned away. It was from her mother. A Christmas present for the boys.

They got other presents that year, Lego astronauts, a baseball bat, football jerseys, a set of Narnia tapes, but nothing quite like that present from their grandmother Moon, who loved them and had managed to express that love because she was finally well. In a season of hope when neither of us was feeling very hopeful, Carol and I received this sign that change is always possible, that nothing is too late and that you should never give up praying. Some gifts, however bittersweet, come when you need them most.


“올해는 어떤 파티에도 참석할 필요 없어. 모두 이해할 거야.”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소포가 쌓였다. 친척과 친구들이 보낸 선물, 우리가 쇼핑한 웹사이트와 카탈로그에서 온 상자였다. 대개는 상자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주문했거나 아내가 주문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우리 둘 다 들어 본 적 없는 회사에서 소포가 도착했다. 

“당신 여기 뭐가 들어 있는지 알아?”

내가 물었다. 그리고 왜 우리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왔지? 궁금했다. 큰 상자였고 농구공에 딱 맞을 크기였다.

테이프를 뜯고 스티로폼 포장재를 모두 꺼냈다. 손을 집어넣어서 지구본을 꺼냈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신생 국가도 모두 제자리에 있는 아름다운 지구본이었다. 

“누구에게서 온 거지?”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가 주문서를 찾아내서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장모님이 보낸 거였다. 손자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그해 아들들은 레고 우주 비행사, 야구 배트, 미식축구 유니폼, 나니아 연대기 테이프 세트 등 다른 선물도 받았지만, 그 무엇도 손자들을 사랑했으며 마침내 술을 끊은 덕분에 사랑을 표현할 수 있게 된 문 할머니가 보낸 선물과 비교할 수 없었다. 우리 중 누구도 희망을 품지 않았던 희망의 계절에 아내와 나는 ‘변화란 언제나 가능하며 지나치게 늦은 일은 없고 결코 기도를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는 신호를 받았다. 아무리 슬프고 아름다울지라도 어떤 선물은 가장 절실할 때 찾아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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