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One Hot Meal
오병이어의 기적


Guideposts 2020 | 01


SPECIAL ISSUE

Guideposts 2020 | 01

오병이어의 기적 


For this top chef, cooking is a calling—and a call to action

이 유명 셰프에게 요리는 소명이다. 그것은 행동하라는 부름이다.



JOSÉ ANDRÉS   Washington, D.C.

호세 안드레스  워싱턴 D.C.

My wife, Patricia, knows. I always have my Orvis fishing vest and two backpacks at the ready. I took them with me to Haiti after the earthquake in 2010, to New York when Hurricane Sandy struck in 2012. Last year, I went to Houston in Harvey’s wake. Two weeks later, Hurricane Maria ripped through Puerto Rico. I needed to go.

I am a cook. I came to the United States from Spain and opened a restaurant, Jaleo, which just turned 25 years old. I now have more than 30 restaurants, from fast casual to Michelin-starred.


내 아내 패트리샤는 알고 있다. 내가 ‘오비스사(社)’의 낚시용 조끼와 두 개의 배낭을 항시 준비해 놓는다는 사실을. 나는 2010년 아이티에서 지진이 났을 때,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뉴욕을 강타했을 때 그것들을 가지고 갔다. 작년에는 허리케인 ‘하비’가 지나간 휴스턴에 갔다. 그로부터 2주 후, 허리케인 ‘마리아’가 푸에르토리코를 휩쓸었다. 기필코 가야만 했다. 

나는 요리사다.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할레오’라는 이름의 식당을 연 지도 어언 25년이 되었다. 현재 가벼운 분위기의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미슐랭 별이 붙은 식당에 이르기까지 30여 개의 식당을 소유하고 있다.


My team and I feed the few, but I also believe in feeding the many. That’s why I volunteer at places like DC Central Kitchen, learning about the world outside professional kitchens. I have also learned about the spiritual world: I’ve twice walked the Camino de Santiago in Spain, a route walked by thousands of pilgrims each year. While food will restore us physically, churches restore us spiritually.

When I arrived in Puerto Rico, the island was in trouble like I’ve never seen before. Flying into San Juan five days after Maria, I could see that the destruction: roofs ripped off, homes peeled open like tin cans, toppled trees stripped of every leaf. And when I landed, I saw that people were hungry. There was no electricity, no fuel. The entire island was shut down. I knew I needed to get involved.

I had already established a nonprofit, World Central Kitchen, where professional chefs could come together to feed the hungry. Before going to Puerto Rico, we went to REI and bought solar lamps, water purification pills and basic survival items. I took out as much cash as I could from the ATM—no telling when banks on the island would reopen. In San Juan, we rented a four-wheel drive. Driving was a test of nerves. No traffic lights. Downed phone and power lines everywhere. I thought we could set up at the Coliseum, or El Choli as it’s called, San Juan’s biggest sports arena. But as I’ve seen time and again, red tape was our biggest enemy. We were told that the kitchen could be used to feed only the people working there. One hundred and fifty of them. When millions were in peril of starving!

Where next? We needed a loaves-and-fishes miracle. When people tell me something can’t be done, I am even more determined. I knew a lot of chefs on the island. We headed to my friend José Enrique’s place in historic Santurce, a neighborhood usually crowded with tourists. Everything was dark, but José’s generator was working overtime. “Bienvenido,” he said, giving me a hug.


나를 비롯한 우리 팀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일에 신념을 가지고 있다. 내가 ‘디씨 센트럴 키친(DC Central Kitchen : 직업이 없는 성인들을 훈련시켜 워싱턴 D. C. 주변의 음식을 재활용하여 현지 봉사 기관에 식사를 제공하는 ‘커뮤니티 키친’ 개념의 조직체―역주)’과 같은 곳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곳에서는 전문적인 주방의 바깥 세계를 배울 수 있다. 매년 수천 명의 발길이 닿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두 차례 완주하며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도 배웠다. 음식이 우리의 육체를 회복시켜 준다면, 교회는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켜 준다.

푸에르토리코에 도착해 보니 섬은 처참했다. ‘마리아’가 휩쓸고 지나간 지 5일째 되던 날, 비행기 안에서 나는 참상을 목도했다. 지붕은 떨어져 나갔고, 주택은 뜯긴 통조림 깡통처럼 속을 훤히 드러냈으며, 이파리가 다 떨어져 나간 나무는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섬에 내렸을 때는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기도, 연료도 없었다. 섬 전체가 폐쇄되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나는 굶주린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전문 셰프들이 의기투합한 ‘월드 센트럴 키친’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설립했다. 푸에르토리코에 가기 전 우리는 아웃도어 매장 ‘레이’에 가서 태양열 램프, 비상용 정수 알약, 기본적인 생존 장비들을 샀다. 그리고 현금 인출기에서 현금을 있는 대로 찾았다. 섬에 있는 은행이 언제 문을 열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산후안에 도착해서 사륜구동 자동차를 한 대 빌렸다. 그런 난리통에서 운전을 한다는 것은 담력 테스트나 마찬가지였다. 신호등도 고장 났고, 핸드폰 신호도 안 잡히고, 모든 송전선도 끊겼다. 나는 일명 ‘엘 콜리(콜로세움)’라고 불리는 산후안에서 규모가 가장 큰 스포츠 경기장에 자리를 잡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하지만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당국의 형식적 절차가 발목을 잡을 것이다. 관할청에서는 우리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만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기껏해야 150명이었다. 밖에서는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해 있는데 말이다!

그다음은 뭐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였다는 예수의 기적―역주)의 기적이 필요했다. 사람들이 안 된다고 하면 나는 더 하는 사람이다. 푸에르토리코에서 활동하는 셰프도 여럿 알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관광객으로 북적일 역사적 명소, 산투르세에 사는 친구 호세 엔리크의 집으로 향했다. 주변은 온통 어두웠지만 그 집의 발전기만은 돌아가고 있었다. 

“비엔베니도(어서 오게).” 친구가 나를 끌어안으며 인사했다.


He’d been feeding the hungry with his sancocho stew. The lines were huge. “We run out early every day,” he said.

“We can help,” I told him. José’s place became our center of operations. We’d serve sancocho outside. Inside we set up a sandwich-making assembly line run mostly by volunteers. What we needed were supplies, literally tons of them.

I served two years in the Spanish Navy, sailing on the tall ship Juan Sebastián de Elcano. I’ll never forget coming into New York Harbor on July Fourth and seeing Lady Liberty and hundreds of boats flying the American flag, a symbol of all that’s good about this country. I became a U.S. citizen in 2013, alongside my wife. I knew that citizenship came with an obligation to make a positive difference, to improve the lives of my fellow Americans.

The biggest food supplier in San Juan was José Santiago. We drove to his place. We needed bread, cheese, vegetables, plates and utensils. We’d have to buy on credit. The cash in my backpack wouldn’t go far. As we talked, I was amazed to see a picture of the Juan Sebastián de Elcano on his wall. “That’s the boat I sailed on in the Navy,” I said. He asked where my family was from. “Asturias,” I said. His people had come from Asturias too. That did it. We shook hands on a deal and filled up the four-wheel drive.

The loaves-and-fishes miracle was becoming a reality.

Back at José Enrique’s place, we gathered our team, a growing group of chefs. I sketched out our needs on a flip chart. ENERGIA—gasoline, natural gas and diesel. ALIMENTOS—dry goods and fresh goods, especially water. COMUNICACIÓN—social media to get the word out. VOLUNTARIADO—volunteers. When I helped out in the Rockaways in New York after Hurricane Sandy, I saw what a group of very organized church volunteers could do. The Southern Baptists were everywhere, dishing out mashed potatoes, chicken tenders and gravy. Their mission: to be “the hands and feet of Jesus to people seeking hope during a time of crisis.”


친구는 이미 ‘산꼬초(점심에 먹는, 고기, 유까, 바나나 및 다른 재료를 넣고 끓인 탕―역주)’ 탕을 끓여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있었는데, 매일 장사진을 이룬다고 했다. 

“음식은 오전에 동이 난다네.”  친구가 말했다.

“우리도 돕겠네.”

내가 말했다. 그리하여 호세의 집이 우리의 베이스캠프가 되었다. 밖에서는 산꼬초를 배식했고 안에서는 샌드위치 제조 라인을 구축했다.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말 그대로 수천 킬로그램이 필요했다. 

스페인 해군에서 2년 복역하는 동안 나는 거대한 훈련 범선 ‘후안 세바스띠안 델까노’를 타고 항해했다. 그렇게 뉴욕항으로 들어갔던 7월 4일을 잊지 못한다. 자유의 여신상과 미국에 대한 모든 좋은 의미를 담고 있는 성조기를 단 수백 척의 배. 나와 아내는 2013년 미국 시민이 되었다. 나는 시민권을 얻는 것은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미국 국민들의 삶을 향상시킬 의무도 함께 따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산후안에서 가장 큰 식품 유통업자인 호세 산티아고 회장의 자택으로 향했다. 빵과 치즈, 야채, 접시와 식기가 필요했다. 수중의 현금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외상으로 구입해야 할 상황이었다. 대화를 나누던 도중 ‘후안 세바스띠안 델까노’ 사진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무척 반가웠다. 

“저 배는 제가 해군에 복무했을 때 타던 배입니다.” 

내가 말했다. 그는 우리 집안의 출신 지역을 물었다. 

“아스뚜리아스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의 집안도 그 지역 출신이었다. 그걸로 됐다. 우리는 계약이 성사되었다는 의미로 악수를 했고 사륜구동차에 채워 넣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호세 엔리크의 집으로 돌아가 팀원들을 모았다. 참여하는 셰프의 수도 점점 늘었다. 나는 플립 차트에 필요한 항목을 간단히 적었다. ENERGIA―휘발유, 천연가스, 디젤. ALIMENTOS―건조식품, 신선 식품, 특히 물. COMUNICACION―소식을 전할 소셜 미디어. VOLUNTARIADO―자원봉사자. 허리케인 ‘샌디’가 뉴욕의 로커웨이를 휩쓸었을 때 매우 조직적으로 활동하던 교회 자원봉사자들을 본 적이 있다. 남침례교 신도들이었는데, 그들은 곳곳에 흩어져 으깬 감자, 치킨 텐더, 그레이비를 나눠 주고 있었다. 그들의 사명은 ‘위기의 시기에 희망을 찾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는 것’이었다.



We could do the same. We could learn from them.

We branded ourselves #ChefsForPuertoRico and set up a WhatsApp group. Phone calls and e-mails were unpredictable, but WhatsApp worked. I insisted on preparing hot meals and sandwiches. In a moment of crisis, a simple sandwich looks like heaven. And if you feed the people, you are creating an army of first responders. They in turn help others.

We found food trucks, drivers. We fed the local police, and they donated diesel in return. We kept doubling our output. From 500 sandwiches to 1,000, from 2,000 hot meals to 4,000. Soon we were doing 10,000 meals a day. Could we do more? More than the government?

I often thought of something my father told me. We would cook paella over an open fire on weekends. I, of course, wanted to help. “Build the fire,” my father said. Gathering wood, building the fire—these didn’t seem as important as being the chef, stirring the paella. One day, I complained. My father replied, “The fire is everything. If you don’t control the fire, nothing else matters.”

The fire for us was building this network of helpers. Anybody and everybody. We reached out to corporate donors: Goya Foods sent supplies, UPS sent bottled water, Chili’s restaurants donated thousands of pounds of chicken. A restaurateur friend was abroad when Maria hit, but he sent me a message: “Take everything out of my refrigerator and anything in storage.”

I went back to the Coliseum. This time my efforts were successful. Soon El Choli was a buzzing scene inside and out, generators humming, the scraping of huge paella pans, cooks heaping mountains of rice in stock. So many amazing volunteers came to help.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ChefsForPuretoRico(푸에르토리코를 위한 셰프들)’라는 이름을 붙여 ‘왓츠앱 그룹’ 계정을 만들었다. 전화와 이메일은 예측할 수 없었지만 ‘왓츠앱’은 효과가 있었다. 나는 따뜻한 식사와 샌드위치를 준비하자고 주장했다. 위기의 순간에는 단순한 샌드위치도 천상의 음식이 될 수 있다. 또한 음식을 제공받은 사람들은 응급구조사 역할을 하며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 

우리는 음식을 운반할 트럭과 운전할 사람들을 물색했다. 현지 경찰관들에게 음식을 제공하자 그들은 디젤을 선뜻 내주었다. 음식량을 배로 늘려 갔다. 샌드위치 500개에서 천 개로, 따뜻한 식사는 2천 명분에서 4천 명분으로, 그러다 하루 1만 명분으로 늘어났다. 이보다 더할 수 있을까? 정부 당국이 할 수 있는 일 이상으로?

나는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종종 되새기곤 한다. 주말이면 우리는 불을 지피고 그 위에서 파에야를 만들곤 했다. 물론 나도 돕고 싶었다. 

“너는 불을 피우거라.”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땔감을 모아 불을 지피는 일은 셰프가 파에야를 젓는 일에 비하면 하찮아 보였다. 어느 날 내가 불만을 터뜨렸더니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불이 전부야. 네가 화력을 조절하지 않으면 다 소용없단다.”

우리에게 조력자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은 곧 불을 지피는 것과 같았다. 누구든 상관없었다. 기업 후원자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고야 푸드’는 식료 및 소모품을, ‘유피에스’는 생수를, ‘칠리스’ 레스토랑은 수천 킬로그램의 닭고기를 보내 주었다. ‘마리아’가 강타할 당시 해외에 체류 중이던 레스토랑 운영을 하는 한 친구는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냉장고와 창고에 있는 것들 전부 가져가게.”

나는 다시 콜로세움으로 가 보았다. 이번에는 내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경기장 안팎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윙윙 돌아가는 발전기 소리, 커다란 파에야 팬을 긁는 소리, 산더미처럼 쌀을 쟁이는 요리사들. 엄청난 수의 자원봉사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Sometimes a priest would lead us in prayer. But those weren’t the only prayers. One cook said “God bless Puerto Rico” every time she poured oil into a pan of rice. The blessing was the exact amount of time for the oil she needed.

I felt like I was living two lives. I’d hear from our R&D department in Washington, the general manager at our new Zaytinya in Texas, the chef at our new restaurant in Beverly Hills. Then I’d talk to the cooks and volunteers about the sandwiches they were making. “More mayonnaise,” I said. “The sandwich has got to have fat, calories, to be moist. And it has to taste good.” A plate of food is more than food. It sends a message that someone cares about you, that you are not on your own.

We fed the National Guard and Homeland Security. Partnered with the Salvation Army and the Red Cross. We partnered with FEMA—eventually. But this network of restaurants and chefs made it happen. We even had a pastor in the hills, Eliomar Santana, who insisted on using his church’s kitchen to feed his community. We sent meals to the elderly, the homebound, hospitals.

Both of my parents were nurses, so I understand the stress that the hospital workers were under. Air conditioning, ventilators, operating rooms barely functioning with old, unreliable generators. This is what they were facing while working to save lives every day.

Still, we overcame blocked roads and collapsed bridges, red tape, supply bottlenecks, lack of electricity. To date, we have served over 3.5 million meals with 20,000 volunteers working across 25 kitchens. It has been hot, sweaty, exhausting work. But it has also been life-changing. My friend Robert Egger once said, “Too often charity is about the redemption of the giver, not the liberation of the receiver.” Our food was liberating.


한 신부님께서는 이따금 기도를 해주시곤 했다. 하지만 기도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요리사 한 분은 쌀이 든 팬에 기름을 두를 때마다 “푸에르토리코에 하나님의 축복을 내리소서”라고 기도했다. 한 번의 기도는 그녀가 기름을 두르는 시간과 정확히 일치했다. 

나는 마치 두 개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워싱턴에 있는 연구 개발 부서에서, 텍사스에 새로 오픈한 우리 식당 ‘자이티냐’의 총괄 매니저와 역시 이번에 베벌리힐스에 오픈한 식당의 셰프로부터 자문이 오면, 나는 이곳 요리사와 자원봉사자들이 샌드위치를 만들 때 그 내용을 전달했다. 

“마요네즈를 더 쓰세요. 지방과 칼로리가 높으면서 촉촉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맛도 좋아야지요.”

한 접시의 음식에는 음식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누군가 당신을 걱정하고 있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도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국토안보부의 국민위병에 음식을 전달했다. 구세군과 적십자사와 제휴를 맺었고, 결국 미연방재난관리청과도 제휴를 맺었다. 여러 식당과 셰프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언덕에 위치한 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는 엘리오마 산타나 목사님은 교회의 주방을 기꺼이 내주셨고, 덕분에 우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마을 어르신들, 병중이라 집 밖으로 외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병원에 음식을 보냈다. 

부모님 모두 간호사로 일하셨기 때문에 나는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지 잘 알고 있다. 병원은 낡고 고장이 잦은 발전기에 의지해 냉방과 환기, 그리고 수술실을 운영하며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전쟁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끊긴 도로, 무너진 다리, 관리 당국의 형식적인 행정 절차들, 공급 차질, 단전과 같은 수많은 장애물을 극복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25곳의 주방에서 2만 명의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3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했다. 무더운 날씨에 땀을 줄줄 흘리며 해야 하는 고된 일이지만 인생의 전환점이 된 의미 있는 일이기도 했다. 내 친구 로버트 에커는 한때 이렇게 말했다. 

“너무 잦은 자선 행위는 수혜자의 해방이 아니라 자선가의 구원을 위한 것이지.” 

우리가 만든 음식은 곧 해방이었다. 



I went back at Thanksgiving with Patricia and our three daughters, and we cooked to thank all those who had helped after the storm, especially the chefs. Chefs understand how to create order out of chaos, just as they know how to control the fire. There were times when we didn’t know what to do. But we kept cooking. And the fire kept burning.

Sadly, there is always another natural disaster around the corner. While most of our team was in Puerto Rico, we watched from afar as wildfires devastated Sonoma and Napa counties in California. My friend Guy Fieri began cooking thousands of meals for evacuees and first responders, saying we were his inspiration. “If this guy is able to go to a city with no power or running water and is able to feed thousands, we’ve got to figure this out,” he said.

How to make a loaves-and-fishes miracle? You can’t possibly plan everything in advance. You show up. You spread the word. You pray. And help comes.

We needed a restaurant; we got one. We needed chefs; they came. We needed food trucks; we got them. We didn’t have gasoline, so we traded it for food. We needed more space and found it. We needed volunteers, and they came. Twenty thousand of them, making one plate at a time, feeding the many.

I’m back home now, but Patricia knows my vest is ready. Those well-traveled backpacks are ready. World Central Kitchen is working to increase resiliency in Puerto Rico so it can better withstand the next hurricane. We are working toward new solutions to combat hunger, new responses to emergency, new pragmatic approaches to disaster relief. And when the next hurricane strikes, we will be there, always working to change the world through the power of food.


나는 추수 감사절에 아내와 세 딸을 데리고 푸에르토리코로 돌아가 허리케인 이후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들, 특히 셰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 음식을 대접했다. 그들은 불을 조절하는 법을 아는 것처럼 혼돈 속에서 질서를 만드는 법을 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할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요리를 멈추지 않았다. 불은 결코 꺼지지 않았다.

슬픈 일이지만 재난은 지척에 도사리고 있다. 우리 팀이 푸에르토리코에서 고군분투하는 동안 멀리 떨어진 캘리포니아의 소노마와 나파 지역에서는 대형 산불로 신음하고 있었다. 내 친구 가이 피에리는 우리의 활동에 영감을 받아 이재민과 응급구조사를 위해 수천 명분의 식사 준비에 돌입했다. 

“호세는 전기도 수도도 끊긴 도시로 가서 수천 명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었지. 그렇다면 우리도 방법을 생각해 내야지.” 

그가 말했다.

빵과 물고기의 기적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물론 모든 것을 사전에 계획하기란 불가능하다. 일단 현장으로 가서 널리 알리고 기도할 뿐이다. 그러면 저절로 도움의 손길이 온다.

식당이 필요할 때 식당을 구했고, 요리사가 필요할 때 요리사가 왔다. 음식을 나를 트럭이 필요할 때 트럭을 구할 수 있었고, 휘발유가 없었을 때는 음식과 맞바꿔 얻을 수 있었다. 공간이 필요할 때 공간을 얻었고, 자원봉사자가 필요할 때 그들이 왔다. 2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한 번에 한 끼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제 나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내는 내 낚시용 조끼가 상시 대기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여행길에 항상 나와 함께하는 내 배낭도 마찬가지다. ‘월드 센트럴 키친’은 다음에 올 허리케인에 더 잘 대처하기 위해 푸에르토리코에서 회복력을 기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기아에 맞서 싸울 새로운 방법, 응급 상황에 대응하는 새로운 방식, 재난 구호에 접근하는 새롭고 실용적인 방법들을 강구하고 있다. 그래서 허리케인이 또다시 섬을 강타한다면 그곳에 갈 것이다. 우리는 음식의 힘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일에 정진할 것이다.


우편 보내실 곳

[03727]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서대문 우체국
사서함 181호

고객관리

Tel. 02-362-4000

(평일 09:00 ~ 17:00 | 점심 11:30 ~ 12:30)

E-mail. guideposts@fnnews.com

계좌안내

기업은행 082-112675-01-014

(예금주 가이드포스트코리아 주식회사)

우편 보내실 곳

[03727]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서대문

우체국 사서함 181호

고객관리

Tel. 02-362-4000

(평일 09:00 ~ 17:00 | 점심 11:30 ~ 12:30)

E-mail. guideposts@fnnews.com

계좌안내

기업은행 082-112675-01-014

(예금주 가이드포스트코리아 주식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