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고난이 축복되게


Guideposts 2020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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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축복되게 


지난해 국민일보 미션라이프에서 제작한 유튜브 커버 콘테스트 ‘고난이 축복되게’에서 1등을 한 최형은 씨. 최형은 씨는 그녀 인생의 고난도 주님 안에서 축복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건강했던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2주 만에 돌아가셨다. 3년 뒤 남동생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하나님, 이건 아니잖아!’를 외치며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 내던 그녀에게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어 주셨고, 그녀의 삶을 이끌어 주셨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극배우와 뮤지컬 지도교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를 만나 보았다.



작년 10월에 국민일보 미션라이프에서 제작한 유튜브 커버 콘테스트 ‘고난이 축복되게’에서 1등을 하셨죠?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제가 처음부터 찬양 콘테스트에 관심을 가지고 출전을 한 건 아니었어요. 제가  ‘음악하는 여자’로 유튜브를 해요. 찬양, 뮤지컬 노래, 보컬 강의 등 업로드를 하는데, 어떤 분이 제 계정으로 메일을 보내셔서 유튜브 커버 콘테스트를 한다고 알려 주셨어요.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기 때문에 부담스럽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했어요. 그런데 ‘고난이 축복되게’라는 찬양을 들을수록 제 마음에 와 닿았고 좋았어요. 찬양을 들으면서 이 찬양에 대한 의미도 알았어요. 그 전까지 故 이관희 집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몰랐거든요. 믿음의 고백이 저를 움직이게 했는지 어느 날 제가 자연스럽게 반주를 제작하고, 녹음을 하고 있더라고요. 

영상 제출 등록 기간이 꽤 길었고, 때마침 아이가 낮잠을 많이 자서 할 수 있었어요. 주최 측으로부터 1등이라는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어요. 기쁘고, 신기했어요. 모두 주님의 은혜였고, 제게는 큰 영광이었습니다. 



그러셨군요. 최형은 씨의 어린 시절이 궁금하네요.


저는 모태신앙으로 어린 시절 동네 교회 친구들하고 거의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그땐 그저 달란트를 모으는 게 좋았고, 달란트 시장이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교회에서 부르는 찬양이랑 율동도 재미있었고요. 또 교회에서 맛있는 것도 많이 주잖아요. 그런 교회가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중고등학교 교사였어요. 집안이 조금 보수적이었고, 엄격했어요. 그래서 어릴 때 조금 소극적이었던 것 같아요. 학생생활기록부 발달사항에 보면 발표할 때 목소리가 작다는 기록이 많아요. 자라면서 점점 더 활달해졌죠. 부모님이 바쁘셔서 외할머니가 저하고 남동생을 많이 돌봐주셨어요. 그래도 방학이 되면 가족끼리 많이 놀러 다녔던 기억이 나요. 



중학교 때부터 성악을 전공하셨는데, 성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언제,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어머니가 피아노를 치고 계셨어요. 당시 유행하던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라는 곡이었는데, 제가 알고 있던 음이랑 다르게 치시는 거예요. 어머니에게 왜 다른 음으로 치냐고 물었어요. 어머니가 제게 피아노 음을 어떻게 아냐고 물으셨죠. 저는 피아노 음을 다 알 수 있었는데, 모두가 저처럼 다 아는 줄 알았어요. 어머니가 피아노를 치면서 어떤 음인지 물으셨고, 저는 다 맞혔죠. 그때 제가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절대음감은 4세 이전에 완성된다고 하던데, 그걸 열한 살 때 알게 된 거죠. 그때부터 어머니가 예중에 보내기 위한 준비를 하셨고, 성악으로 예중 시험을 봐서 합격했어요. 고등학교도 예고를 다녔고, 당연히 대학에서도 성악을 전공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제가 절대음감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제 삶의 여정이 성악으로 정해진 거죠. 

예고 1학년을 특히 재미있게 보낸 것 같아요. 그때까지만 해도 예고를 다닌다는 게 자랑스러웠고, 특히 예고의 예쁜 교복이 좋았어요. 다양한 전공을 가진 멋진 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죠. 노래를 부르는 게 좋아서 마냥 즐겁게 보냈어요. 그러다가 성악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예요. 소프라노 조수미 씨가 참여한 방송에 방청객으로 갔다가 그 모습에 반해서 제 꿈이 되었어요. 그때부터 지금 당장 내 앞에 있는 친구들부터 따라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했어요.


성악에 대한 큰 꿈을 꾼 시기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고등학교 2학년 때 갑자기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져서 2주 만에 돌아가셨어요. 전날 거실에서 기타를 치다가 주무신 것을 보고 방에 들어갔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집안이 어수선하고 병원 응급차가 왔어요. 저는 학교에 갔다가 중간에 조퇴를 하고 응급실에 갔더니 아버지가 수술을 하고 나오셨어요. 그때 아버지의 모습은 저에게 큰 충격이었어요. 담당 의사가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하면서 회복이 되더라도 식물인간으로 살아야 된다고 이야기했어요. 중환자실에 며칠 계셨는데, 그때 제가 태어나서 가장 많이 기도를 했어요.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하실 때 교회를 다니셨는데, 결혼 후에는 교회를 안 다니셨어요. 제가 교회에 다니는 것도 싫어하셨죠. 그런데 중환자실에서 목사님들이 오셔서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면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셨어요. 어머니가 병상에서 세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세례를 받고 그다음 날 주일에 돌아가셨어요.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요. 친할머니가 권사님이셨는데, 할아버지는 믿지 않아서 1년에 제사를 12번 드렸죠. 큰아들인 아버지가 쓰러지자, 할아버지가 병원 기도실에서 기도를 하셨다고 해요. 그렇게 할아버지가 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삼촌들도 다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12번 있던 제사도 모두 없애 버렸어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팔순쯤 세례를 받으셨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친가도 외가도 온 가족이 구원을 받게 되었어요.



청소년 시기라 힘든 시간이었겠어요.


그때 많이 힘들었죠. 제가 친구들의 사정을 다 알 순 없지만, 예고에는 잘사는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저희 집도 부유하진 않아도 부모님이 저를 부족하게 키우시진 않았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없는 사람은 저밖에 없는 것 같았고, 친구들도 저를 측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저를 엄청 불쌍한 아이처럼 생각하는 것이 싫었어요. 제가 기도를 정말 열심히 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잖아요.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하나님도 교회도 정말 싫었어요. 그런데 찬양팀을 하면서 싱어도 하고, 건반도 치고, 합주도 하면서 그냥 친구들이랑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아서 교회는 계속 다녔어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교회를 친구들 때문에 다니셨다고 했는데, 이후 하나님을 만나고 믿음이 깊어진 계기가 있었나요?


고3 때 집에서 가까운 무학교회로 옮겨 다녔는데, 대학입시에 성공하면 예전 교회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전에 다니던 교회보다 무학교회가 규모도 크고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제가 있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예전 교회가 그립기도 했고요. 12월까지 다니고 예전 교회에 가려고 했는데, 12월 마지막 고등부 예배에 청년부 선배들이 와서 고3 아이들을 입양한다며 청년부 예배에 데리고 갔어요. 청년부 예배를 드리는데 정말 신세계에 와 있는 것 같았어요. 당시 무학교회 청년부가 폭발적으로 찬양하고 기도하던 모습이 지금까지 눈에 선해요. 그래도 다음 주부터 예전 교회에 가려고 마음을 먹었죠. 예배가 끝나고 광고 시간에 동계수련회를 간다고 해서 저는 이게 무학교회에서 마지막이겠구나 생각하고 간다고 했어요. 저에게 수련회란 놀고먹으면서 저녁 집회 때 눈물 조금 흘리면서 반성하는 시간이었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어요. 둘째 날 저녁 집회였던 것 같아요. 저는 그때 간절함도 없었고 기도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주변 청년들의 열정이 얼마나 뜨겁던지 그들의 영의 흐름이 저에게 전달이 됐어요.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있는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원망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육신의 아빠가 없지만, 내가 너의 아빠가 되어 줄게’ 하는 음성이 들렸고, 그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때까지 하나님은 제게 무섭고 두려운 분이었어요. 제가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잘 들어주시지 않는 큰 존재였고, 저는 힘이 없는 나약한 존재였죠. 원망과 불평을 하면서도 막연히 하나님이 제 곁을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저의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고 하니까 하나님이 이전과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어요. 그러면서 신앙인의 삶을 살아 보자고 다짐을 했어요. 이후 큐티를 시작했고 진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어요. 예전 교회로 돌아가지도 않았고요. 나름대로 이것저것 계획을 하지만, 제 인생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가게 되더라구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뒤 또 한 번 큰 고난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02학번인데, 1학년 때부터 술을 먹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신앙생활을 했어요. 저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하나님이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제가 2학년 때 갑자기 남동생이 세상을 떠났어요. 그때 하나님께 ‘이건 아니잖아요.’ 하면서 원망했어요. 동생을 위해 교회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는데, 갑자기 데려가신 게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순 없다고 생각했어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정말 알 수가 없었어요. 정말 교회에 나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하나님께 원망을 하는 게 참 아이러니한 거예요.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한테 원망을 하고 있으니까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죠. 

제가 교회를 떠나지 않고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저를 이끌어 주는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교회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은혜의 자리, 선교의 자리에 있다 보니 제 마음에 하나님의 평안이 채워지고, 천국에 가서 다 만날 것이라는  큰 소망이 생겼어요.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린도전서 13:12)는 말씀이 있는데, 저는 이 말씀이 기독교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고난이 축복되게’ 찬양이 정말 최형은 씨 마음에 와 닿았겠어요. 


네. 돌아보면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제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지요. 하지만 이후 제가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연극배우로, 뮤지컬 배우로, 그리고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로 다양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전하는 일을 하게 되었어요. 작년엔 결혼해서 딸아이 열음(기쁠 열, 소리 음)이도 낳았어요. 그런데 열음이 태어나고 2시간쯤 지나서 신생아 호흡곤란증후군이 나타났어요. 위급한 상황이었어요. 대학병원으로 옮겨서 중환자실에 갔는데,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셔서 중환자실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무서웠어요. 빨리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꽤 오랜 시간을 거기서 보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기도하면서 제 인생에 의지할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지금은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유튜브 콘테스트에서 이런 저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됐기 때문에 심사하시는 분들이 좋은 점수를 주신 것 같아요. 제가 음악을 하는 사람이어서 이사야 43장 21절(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을 좋아했는데, 열음을 낳은 뒤로 기도하면서 시편 121편의 말씀을 열음이한테 읽어 주고 찬양을 불러 주고 있어요. 



앞으로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계시나요?


요즘 열음을 키우면서 비전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나 여유가 없었는데, 이 질문을 들으니 기분이 좋네요. 지금은 현숙하고 지혜로운 아내, 그리고 엄마가 되는 게 가장 큰 꿈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이 제게 주신 달란트를 썩히지 않고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때에 노래하고 음악을 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저의 삶을 돌아보면 제가 계획한 대로 하나도 안 됐어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순종하며 걸어가려고요. 

 


마지막으로 가이드포스트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의 이야기를 너무 쏟아 낸 것 같아서 부끄럽네요. 두서없는 제 이야기에서 독자 여러분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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