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are

사랑의 질문


Guideposts 2020 | 08


Loving Care

Guideposts 2020 | 08

사랑의 질문


My relationship with my mom was complicated. 

Would caregiving make it more difficult?


우리 모녀는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엄마를 돌보다가 관계가 더 꼬이지는 않을까? 


BY JEANETTE LEVELLIE, Paris, Illinois

지넷 레벨리  일리노이주 패리스 





“Mom, we need to take you to the emergency room.”

I’d rushed to my mother’s apartment at the assisted living facility with my husband, Kevin, after one of the nursing assistants had found Mom on the floor beside her bed, dazed.

My 92-year-old mother pressed her lips together in a thin line—an expression of defiance I knew all too well. “I don’t need to go to the hospital,” she said. “I just lost my balance.”

I tamped down my frustration. I wanted so badly to be a good daughter. Patient. Kind. Full of grace. But oh my goodness! Could anything be easy with her? Mom behaved like a stubborn middle child even as an adult. Sandwiched between a favored older sister and an adorable baby brother, she’d learned to push back and act out to get attention. But couldn’t she see the huge bruises that were forming on her arms like watercolor splotches? How could I convince her she needed help?

“She keeps tapping on the side of the bed or the bathroom counter,” said the nursing assistant. “As if she’s typing words she can’t think of.”

Mom had worked as an accounting clerk for many years. Her mind must have wandered back to those days. Did she have a urinary tract infection? Sometimes infections caused delirium in the elderly, especially those with Alzheimer’s. Mom had been diagnosed six years earlier, in 2014, not long after she’d moved from the pine forests of northern California to the facility near us in the prairies of Illinois. She had lived on her own until she’d lost everything to a house fire. She was a widow, and my brother had died. I needed to step up and take care of her.

In the beginning, Kevin and I were relieved that she lived so close by. I’ll be the perfect daughter, I thought. I felt guilty that she couldn’t live with us. Our cats might trip her. Kevin and I worked long hours and traveled often. But I promised I would be her advocate and her supporter. I would take care of her the way an aging parent deserves to be taken care of.


“엄마, 응급실에 모셔 가야겠어요.” 

간호조무사가 멍하니 침대 옆 바닥에 누워 있는 엄마를 발견한 후, 나는 남편 케빈과 함께 노인 요양 시설에 있는 엄마의 아파트로 달려갔다.  

아흔두 살의 엄마는 입술이 한일자가 되도록 꼭 다물었다. 익히 아는 거부의 표시였다.

“병원 안 가도 된다. 그저 균형을 잃고 넘어진 거야.” 

타는 속을 눌렀다. 정말이지 좋은 딸이 되고 싶었다. 인내심 많고 다정하며 아주 예의 바른 그런 딸. 하지만 맙소사! 엄마와 함께 쉬운 일이 있을까? 엄마는 어른인데도 고집불통 둘째 아이처럼 굴었다. 특별 대접받는 언니와 사랑스러운 남동생 사이에 껴 있던 엄마는 관심을 끌기 위해서 반발하고 행동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팔에 물감 얼룩처럼 자리 잡은 커다란 멍들이 보이지 않는 걸까? 어떻게 해야 엄마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납득시킬 수 있지? 

“침대 옆이나 세면대를 계속 두드리세요. 생각나지 않는 단어를 타이핑하는 것처럼요.”

간호조무사가 말해 주었다. 

엄마는 오랫동안 경리로 일했다. 엄마의 마음이 그 무렵을 떠도는 게 분명했다. 엄마에게 요로감염증이 있었나? 염증은 때로 노인, 특히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노인에게 착란 증세를 일으켰다. 엄마는 6년 전인 2014년에 알츠하이머병을 진단받았다. 캘리포니아 북부의 소나무 숲에서 일리노이 초원에 있는 우리 집 근처의 요양 시설로 이사하고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엄마는 주택 화재로 모든 걸 잃을 때까지 홀로 생활했다. 미망인이었고 나의 오빠도 이미 세상을 떠났다. 내가 나서서 엄마를 돌보아야 했다. 

처음에는 엄마가 아주 가까이 살게 되어서 남편도 나도 안심했다. ‘완벽한 딸이 되겠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우리 부부와 함께 살지 못해서 죄책감도 느꼈다. 우리 고양이들이 엄마에게 발을 걸 수도 있었다. 케빈과 나는 오랜 시간 일했고 여행도 자주 갔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옹호자, 엄마의 지지자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나이 들어 가는 부모가 마땅히 돌봄 받아야 하는 방식으로 엄마를 보살피려고 했다. 


Day by day, the reality of having Mom so near sank in. She would call us all the time with some small chore or errand that needed to be done.

“Jeanette, do you have any pink thread?” 

“No, Mom. Do you need Kevin to go out and get some?”

“Oh, there’s no rush.”

When Kevin arrived at the facility with pink thread, Mom looked up at him. “Oh,” she said, holding up a needle, “I found some.”

Everything was a problem for Mom. The food at the assisted living facility—“The vegetables are overcooked.” The songs they sang at the socials in the dining room—“They’re too old.” The doctors who tried to help her—“They don’t listen.” I was soon overwhelmed. Mom seemed to need more of my time and patience every day. More than I could give. Friends wrote on Facebook, “It’s an honor and a privilege to care for my aging parent.” Was I doing something wrong?

No matter what I did for her, it never felt like enough. I wanted to be the most patient. The most kind. The best possible caregiver. I wanted to be more than Mom had been for me growing up. When my brother and I were little, she had been warm and doting, a mother right out of storybooks. Then she divorced my father—an alcoholic who cheated on her—when I was six, later marrying another alcoholic.

Unlike my father, who was charming and affable, my stepfather was abusive. He would berate my brother and me, stomping through the house, yelling and cursing. Mom let him. It felt as if she suddenly didn’t care enough to protect us. Had I done something to deserve this? I was too young to understand the complexities of marriage to an addict. All I knew was that I felt alone and abandoned.

That was decades ago, I reminded myself. I’d long since forgiven Mom for the wrongs of my childhood. I’d made her a part of the family I built with Kevin. Why didn’t I feel honored to care for her as the Bible taught? Why couldn’t I be a better daughter?


서서히 엄마가 지척에 있다는 현실이 실감 났다. 엄마는 해야 하는 사소한 일이나 심부름이 있으면 늘 우리에게 전화했다. 

“지넷, 분홍색 실 있니?”

“없어요, 엄마. 케빈이 가서 사 오길 원하세요?”

“오, 급한 건 아니란다.” 

남편이 분홍색 실을 들고 요양 시설에 도착하자 엄마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바늘을 들고 말했다. 

“오, 실을 좀 찾았어.” 

만사가 엄마에게는 문젯거리였다. 노인 요양 시설의 음식은 “채소가 너무 익었어”, 식당에서 친목 모임 중에 부르는 노래는 “너무 구닥다리야”, 도와주려고 애쓰는 의사들은 “제대로 듣지 않아”. 나는 곧 압도되었다. 엄마는 매일 내 시간과 인내심이 더 필요한 것 같았다. 내가 줄 수 있는 이상을 원했다. 친구들은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노쇠해지는 부모님을 돌보는 일은 영광이며 특권이야.”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엄마를 위해 무슨 일을 해도 충분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최고로’ 참을성 있고 ‘가장’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가능한 한 최고의 돌보미가 되고 싶었다. 내 성장기의 엄마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우리 남매가 어렸을 때 엄마는 따뜻하고 사랑이 넘쳤다. 동화에서 막 나온 듯한 엄마였다. 그러다 내가 여섯 살 때 엄마는 바람피우는 알코올중독자였던 아버지와 이혼했다. 그리고 나중에 다른 알코올중독자와 재혼했다. 

매력적이고 서글서글했던 아버지와 달리 계부는 폭력적이었다. 그는 오빠와 나를 호되게 꾸짖으며 집에서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해댔다. 엄마는 계부를 내버려 뒀다. 갑자기 엄마가 우리를 보호해 줄 만큼 충분히 관심을 쏟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할 일이라도 했나? 중독자와 함께하는 결혼생활의 복잡함을 이해하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다. 그저 외롭고 버려진 기분뿐이었다.  

‘몇 십 년 전 일이야.’ 

스스로 되뇌었다. 내 유년기에 엄마가 잘못한 일은 오래전에 용서했다. 케빈과 이룬 가족의 일부로 엄마를 받아들였다. 어째서 나는 성경의 가르침처럼 엄마를 돌보며 영광을 느끼지 못할까? 왜 나는 더 좋은 딸이 되지 못했을까? 


I looked at my mother, sitting up in her bed at the assisted living facility, her mouth still set in a stubborn line, and took a deep breath. “Mom,” I said, “I’m worried about you because you are confused and you’ve been typing with your hands all day.”

She blinked slowly. “Have I?”

I nodded. “I think you might have a UTI. If we don’t take you to the doctor, it could develop into a kidney infection. Would you put on your coat for us?”

By the grace of God, she relented. Kevin and I drove her to the hospital, and the three of us sat for more than an hour in the waiting room.

“Doris Kidgell?” a nurse finally called. For the next three hours, nurses, technicians and a doctor peppered Mom with questions and marshaled her through a slew of tests. Urine samples. X-rays. Blood work.

“You have to speak directly into her ear,” I had to say again and again. Mom was hearing impaired. Was anybody on staff capable of reading her chart? It was right there in black and white! “She’s lost her hearing aids,” I explained.

None of the staff members seemed to listen. I felt my blood pressure spike every time a nurse or a technician spoke too softly. I understood it took more time to explain things to Mom, but didn’t she deserve the same courtesy as other patients?

“Mom, the doctor wants to keep you overnight,” I said after the first few rounds of tests.

“No,” she whispered.


요양 시설의 침대에 꼿꼿이 앉아 있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의 입은 여전히 고집스러운 한일자로 꾹 닫혀 있었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엄마, 엄마가 혼란스러워하면서 종일 손으로 무언가 타이핑하니까 걱정스러워요.”

엄마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내가 그랬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로감염증일지도 몰라요. 병원에 모셔 가지 않으면 신장염으로 악화될 수도 있어요. 우리를 위해 코트를 입어 주실래요?” 

하나님의 은총으로 엄마의 마음이 누그러졌다. 남편과 내가 차로 엄마를 모시고 병원까지 갔고 우리 셋은 대기실에 1시간 이상 앉아 있었다. 

“도리스 키드젤?” 

마침내 간호사가 호출했다. 그 후 3시간 동안 간호사들, 기사들, 의사까지 엄마에게 질문을 퍼부으며 수많은 검사로 이끌었다. 소변 샘플에 X레이, 혈액 검사까지.  

“귀에 직접 대고 얘기해야 해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일러주어야 했다. 엄마는 청각 장애가 있었다. 하지만 어떤 직원이 엄마의 차트를 읽게 될까? 바로 거기에 분명히 적혀 있다고! 

“엄마는 보청기를 잃어버렸어요.” 

내가 설명했다. 

직원 누구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간호사나 기사가 지나치게 소곤소곤 말할 때마다 혈압이 치솟는 걸 느꼈다. 엄마에게 설명하려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는 점은 나도 이해했지만, 그래도 다른 환자들같이 정중함을 누릴 자격이 있지 않은가? 

“엄마, 의사는 엄마가 밤새 있으면 좋겠대요.”

몇 차례의 초기 검사 후에 내가 말했다.

“싫구나.”

엄마가 속삭였다. 

Her brown eyes seemed enormous behind her glasses; her face, so often fixed in opposition, seemed softer, vulnerable. She looked how I must have looked as a little girl. Scared. Alone. Afraid of being abandoned. I wanted to do everything in my power to protect her. To shield her from pain. It dawned on me that I’d never felt this way about Mom before. It was as if our roles were reversed, as if I were the mother and she were the child. “They’ll take good care of you,” I said. “Kevin will be here first thing in the morning, and I’ll come to see you on my lunch break.”

As soon as I woke up the next morning, I knew a lunch break visit wouldn’t be enough. Mom needed me. All of me. I took the day off and drove to the hospital. The same feelings from the night before—the ones I’d experienced when my kids were tiny and helpless—welled up inside me. None of my usual guilt or shame. None of the questions that normally cycled through my mind: Am I doing as much as I can? Am I enough? It was pure protective energy.

A young technician came to take Mom for an MRI. “Where are you taking me?” Mom asked.


안경 뒤로 비치는 엄마의 갈색 눈은 큼지막했다. 그와 반대로 종종 경직되는 얼굴은 더 유약하고 연약해 보였다. 엄마는 어린 내가 내비쳤을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겁먹고 외로워하며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했다. 힘닿는 대로 엄마를 보호하고, 고통에서 지켜 주기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전에는 엄마에게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음을 깨달았다. 우리 역할이 바뀌어서 내가 엄마가 되고 엄마가 아이가 된 듯했다. 

“사람들이 잘 돌봐줄 거예요. 케빈이 아침에 제일 먼저 올 거고요. 나는 점심시간에 엄마를 보러 올게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점심때 찾아가는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는 걸 알았다. 엄마에게는 내가, 내 전부가 필요했다. 하루 휴가를 내서 병원으로 차를 몰고 갔다. 전날 밤과 같은 기분―내 아이들이 작고 힘없던 시절에 느꼈던 감정―이 내 안에 복받쳤다. 보통의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이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걸까? 내가 충분한가?’처럼 평소 마음속에서 맴돌던 질문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보호해 주고 싶은 힘이었다. 

젊은 기사가 와서 MRI 검사를 위해 엄마를 모시고 갔다.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죠?”

엄마가 물었고, 기사가 멈춰 섰다.


The technician stopped. “You don’t remember?”

I shot the tech a stern look. I wanted to scream, She’s 92 years old. She has Alzheimer’s. I’m worried she may have had a stroke. Of course she doesn’t remember! Instead, I said calmly, “No, she doesn’t remember.” Then I held Mom’s hand as the technician wheeled her gurney down the hall.

“This is as far as we can allow you to go,” the tech said at the end of the hallway. “You can sit here and relax. We’ll have your mom out in a jiffy.”

No way could I relax. I watched the tech wheel Mom away and felt my heart go after her. This wasn’t about guilt. This wasn’t about obligation. This was about love.

An hour later, the doctor came into Mom’s room and explained she needed surgery on one of her carotid arteries. It was 90 percent blocked. “You’ll need to discuss it with each other and her regular doctor,” he said. He released her to go home, and we scheduled an appointment with a surgeon for the following week.

That evening, Kevin and I hugged Mom goodbye in her apartment at the assisted living facility. It wasn’t until I flopped into my bed that night, exhausted, that I realized the enormity of my devotion to Mom over the past 30 hours. Had I really stood up to those doctors and nurses and technicians? Taken off work? I never do those things, I thought. Maybe I wasn’t such a terrible caregiver after all. Or such a terrible daughter.

A thought flashed through my mind, something my friend Dee had told me when she was taking care of her father-in-law at the end of his life. “There’s no place for guilt in caregiving. All the things you do for your loved one—that’s what really matters.”

If I could forgive Mom for not being a perfect parent when I was a kid, I could forgive myself for not being the perfect daughter and caregiver now. I’d been doing my best to support her, not just for the past 30 hours but for the past six years. Lord, however many more years you give me with Mom, I’ll be beside her. I let go of the idea that the only good caregiver is a perfect one. What I do for my mother is enough. So am I.


“기억 안 나세요?”

나는 가차 없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소리 지르고 싶었다. 

‘아흔두 살에 알츠하이머병도 있어요. 엄마가 뇌졸중일까 봐 걱정스럽다고요. 물론 엄마는 기억 못 해요!’ 대신 차분히 얘기했다. 

“네, 엄마는 기억을 못 하세요.” 

기사가 복도를 따라서 환자 수송용 침대를 미는 동안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여기까지만 오실 수 있어요. 앉아서 마음 편히 계세요. 어머니는 금방 나오실 거예요.”

복도 끝에 이르자 기사가 말해 주었다. 

절대 느긋하게 있을 수 없었다. 기사가 엄마의 침대를 밀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내 마음도 엄마를 따라갔다. 죄책감도 의무감도 아니었다. 사랑이었다. 

한 시간 후 의사가 엄마 병실로 와서는 경동맥 한 곳에 수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90%가 막혀 있었다.

“서로 얘기해 보시고 평소 주치의와도 상의하세요.” 

의사가 퇴원을 허락했고 우리는 그다음 주에 외과의와 진료 약속을 잡았다. 

그날 저녁 남편과 나는 요양 시설의 아파트에서 엄마를 껴안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밤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침대에 털썩 주저앉을 때까지는 내가 지난 30시간 동안 엄마에게 헌신한 일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깨닫지 못했다. 내가 전에 의사, 간호사, 기사에게 맞선 적이 있던가? 휴가를 낸 적이 있던가? 

‘한 번도 그러지 않았어.’ 

어쩌면 나도 그렇게 나쁜 돌보미는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쁜 딸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생각이 번개처럼 마음에 떠올랐다. 친구 디가 삶의 막바지에 이른 시아버지를 보살피던 시기에 해준 얘기였다.

“돌보는 일에 죄책감이 끼어들 여지는 없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는 모든 일은 정말 중요하거든.”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완벽한 부모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용서할 수 있다면 이제 완벽한 딸과 돌보미가 되지 못하는 나 자신도 용서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지난 30시간뿐만 아니라 6년 동안 엄마를 도우려고 최선을 다했다. 

‘주님, 당신께서 엄마와 함께할 시간을 얼마나 주시든지 간에 엄마 곁에 있겠습니다.’ 

좋은 돌보미만이 완벽하다는 생각을 버렸다. 내가 엄마를 위해 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나 또한 충분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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