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coming Loneliness

나답게 혼자 살기


Guideposts 2020 | 08


Overcoming Loneliness

Guideposts 2020 | 08

나답게 혼자 살기


My sisters had been my roommates for nine years. 

Was I ready to live on my own?


나는 9년 동안이나 언니들과 함께 살았다.

그런 내가 과연 혼자 살 수 있을까?


BY DIANA AYDIN, Contributing Editor

다이애나 아이딘  편집위원





Isat at one end of my couch with my dinner for one: toast with a bit of cheese. The sound of each bite—had I always chewed so loudly?—seemed to echo around my new apartment. I glanced at my phone. Nearly 8 P.M. I’d had a long day at my new job. I’d been looking forward to getting home. Now that I was here, though, I didn’t know what to do. Play music? Watch TV? Do some vacuuming? There was so much… silence. I set down my plate and picked up the phone. Should I text my older sisters, Kristin and Priscilla? “It’s too quiet. Please send help, stat!”

I put down my phone, knowing that request would never fly. I could imagine their reply: “You’ll get used to living on your own. Just give it time.”

It had been two months since the three of us had gone our separate ways. If anything, I was even more lonely. My sisters and I had been roommates for nearly a decade in New York City. Sure, we’d squabbled over whose turn it was to load the dishwasher and take out the trash. But there was nothing like coming home from work to two people asking, “How was your day?”

Things changed after Kristin got married. At first, she and her husband, Ciaran, lived in the apartment with us. When our lease ended, they moved out. By then, Priscilla was getting married too. Our lives were clearly going in different directions.


나는 저녁으로 먹을 치즈 토스트 1인분을 들고 소파 한쪽 끝에 앉아 있다.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나는 소리가 새로 이사 온 집 전체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내가 원래 이렇게 씹는 소리가 요란했나? 나는 핸드폰을 흘끗 보았다. 저녁 8시가 다 되어 갔다. 새로 옮긴 직장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퇴근할 시간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막상 집에 오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음악을 틀까? 텔레비전을 볼까? 청소기를 돌릴까? 집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나는 접시를 내려놓고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큰언니와 작은언니한테 전화를 걸어 볼까? 

“너무 적막해. 도와줘, 당장!”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런 식으로 도움을 요청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에. 보나 마나 이런 답장이나 받게 될 것이 뻔했다. 

“이제 너도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져야지. 시간을 갖고 기다려 봐.” 

언니들과 따로 살게 된 것은 두 달 전부터였다. 굳이 말하자면 나의 경우는 전보다 훨씬 더 외로웠다. 우리 세 자매는 거의 10년 동안이나 뉴욕시에서 한집에 살았다. 물론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옮겨 넣는 일이라든지 쓰레기를 버리는 일 등을 두고 누구 차례냐며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퇴근하고 집에 가면 언제나 언니들은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는지 물어봐 주었고, 나는 그것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좋았다. 

크리스틴 언니가 결혼을 하면서부터 우리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아란 형부가 집으로 들어왔다. 그 후 임대 계약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맞춰서 큰언니 부부가 분가했다. 그 무렵에 프리실라 언니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우리의 삶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Almost overnight, it seemed, I went from seeing my sisters every day to having to make plans to get together. Priscilla lived more than an hour away in New Jersey. Kristin was a subway ride away, not close enough that I could just drop by. And they were busy with their own lives. I didn’t want to bother them. Priscilla and her husband were house hunting. Kristin and Ciaran were expecting a baby. And me? I was experiencing empty-nest syndrome…in my thirties.

Our old place had been a constant blur of activity. Game nights. Impromptu fashion shows with our latest sales-rack finds. We were always laughing. One night, Kristin and I came home from a Zumba class and found Priscilla in the living room, eating dinner. The perfect audience to show off our newly learned choreography, even if we both had about as much dance talent as Elaine on Seinfeld.

“Play the music!” I instructed.

Priscilla blasted the Zumba song on her cell phone. Kristin and I put on our best professional dancer faces and moved in time, arms swaying. Left hip, right hip. Then we walked with wide, exaggerated steps, circling around. Priscilla howled.

“I want to try!” she said. She jumped up from the couch and joined us. We were laughing so hard, we could barely take a step.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우리 세 자매는 매일 얼굴을 보던 사이에서, 약속을 해야만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프리실라 언니는 우리 집에서 한 시간도 넘게 걸리는 뉴저지에 둥지를 틀었다. 크리스틴 언니네 집은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그렇다고 오다가다 들를 수 있을 정도로 가깝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언니들은 각자의 삶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런 언니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프리실라 언니네는 이사 갈 집을 알아보고 있었고, 크리스틴 언니네는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빈둥지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그것도 삼십 대의 나이에. 

예전 집에는 늘 활기가 넘쳤다. 우리는 함께 밤에 게임을 하거나, 최근에 쇼핑한 아이템들을 걸치고 즉흥 패션쇼를 열거나 하면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했다. 집에는 항상 웃음이 가득했다. 어느 날 밤, 나와 크리스틴 언니가 함께 줌바댄스 수업을 듣고 집에 왔는데 마침 프리실라 언니가 거실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새로 배운 댄스 안무를 선보이기에 언니만큼 좋은 관중은 없었다. 비록 크리스틴 언니와 나는 둘 다 시트콤 <사인필드(Seinfeld)>에 등장하는 엘레인 못지않은 ‘몸치’였지만 말이다.

“음악 큐!” 

내가 지시를 내렸다. 프리실라 언니가 핸드폰으로 줌바 음악을 크게 틀어 주었다. 크리스틴 언니와 나는 최선을 다해 전문 댄서 못지않은 표정을 짓고는 두 팔을 흔들거리며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왼쪽 엉덩이, 오른쪽 엉덩이. 그런 다음, 한껏 과장된 큰 보폭으로 원을 그리며 돌았다. 프리실라 언니는 박장대소했다.

“나도 해볼래!” 

언니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합류했다. 우리는 배꼽을 쥐고 웃느라 춤은 고사하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Those days were over. I hadn’t giggled like that since I’d moved in. At first, I’d been excited to live on my own. I had a busy social life, a good group of friends and hobbies like my improv class. How hard could it be living alone? But I was so used to operating as one of a trio. Everyone knew me as Diana and her sisters. When I talked about what I was up to, I always said “we” and “our,” as if I were part of some clandestine government unit. Now, even when I was out with friends or at improv class, my stories fell flat. Without Kristin and Priscilla, I felt lost. Unsure. Uninteresting. And no one wanted to hear about how much I missed them. It didn’t help that I was new at work. I’d been at my old company for nearly six years. There had always been someone to grab lunch with. Not anymore. I found myself pulling away even from the people I did know. Somehow even God felt missing and my prayers lost in the unfamiliar silence.

Everyone had been so supportive when I told them I was going to be living on my own. “Once you get settled, you’ll love it,” they all said. I looked around my living room. The pictures were hung. The Wi-Fi installed. The furniture where I wanted it. Nothing needed to be done. There wasn’t anything I could buy or rearrange to fill the emptiness. I leaned back into the couch and closed my eyes. “Please, God, just help me out here,” I said. “Can’t you see I’m lonely?”

No response. No still small voice. Just the silence.


이제 그런 시절은 끝이 났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그때처럼 크게 웃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처음에는 나 혼자 살게 된 것이 마냥 신났다. 사회생활도 바쁘게 하고 좋은 친구들도 있고 즉흥 공연을 배우는 취미도 있었으니까. 혼자 사는 것이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나? 하지만 나는 삼총사로서의 삶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었다. 모든 사람들의 인식 속에 나는 늘 언니들과 한 세트였다. 나는 내 안부를 말할 때조차 항상 ‘나’라는 단어 대신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마치 내가 비밀 정부 조직의 일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나는 친구들 모임에서도, 즉흥 공연 학원에서도 무슨 이야기를 해도 호응을 얻지 못했다. 두 언니들이 없으니 나는 길 잃은 아이가 되었다. 자신감도 잃고,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내가 언니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따위의 이야기는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직장을 옮긴 것도 한몫했다. 나는 거의 6년을 한 직장에 다녔다. 전 회사에서는 함께 점심 먹을 사람이 늘 있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심지어 지인들과도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하나님조차 사라져 버린 것 같았고, 내 기도는 낯선 적막 속을 떠도는 듯했다. 

내가 혼자 살게 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전했을 때 지인들은 하나같이 긍정적으로 말했다. 

“짐 정리만 끝나면 너도 분명히 좋아할 거야.”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나는 거실을 빙 둘러보았다. 그림도 다 걸었고, 인터넷도 설치했다. 가구 배치도 끝났다.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었다.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구입해야 할 물건도, 자리 배치를 다시 해야 할 물건도 더는 없었다. 나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하나님, 저 좀 도와주세요. 제가 얼마나 외로운지 안 보이시나요?” 

나는 기도했다.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고요하고 나지막한 음성 같은 것도. 오직 정적만이 흐를 뿐이었다.

That weekend, I pulled out my laptop and did what everyone does to find answers. I typed “loneliness” into Google.

Up popped an assortment of articles, a few videos and links to a couple of scientific studies. I clicked on one. Loneliness was an epidemic, the researchers said. Nearly half of Americans reported feeling sometimes or always alone. But those very feelings caused people to withdraw, to grow depressed and discouraged, to view even friendly faces as threatening. There were significant health consequences. Loneliness, research had found, was as bad as smoking 15 cigarettes a day!

Whoa. This was serious. I could see all the ways loneliness was dragging me down. I had to do something, or it would only get worse. “Surround yourself with people,” one article advised. “Go where you can meet others. Make conversation. Keep at it!”

The idea of putting myself out there, by myself, was terrifying. Even at office holiday parties, my sisters had come with me. At my improv shows, they would sit in the front row, laughing loudly even when I bombed. I needed to know someone was there for me, if just in spirit.

God? We hadn’t exactly been buddy-buddy lately, but it struck me that putting myself out there meant taking a leap of faith. If I couldn’t do that with God, there was no chance of success with anyone else. I’m trusting that you’ll be by my side, Lord, I prayed. In social situations, I would think of him as my plus-one.

I started with improv. At my next class, I sat in my usual spot in the corner of the room but, during break, pulled out a bag of chips I’d brought. “Anyone want some?” I asked, holding out the bag. “Ooooh, yes,” one woman said. The guy next to her took some too. We munched away silently, and that was that. They turned around, and class resumed. I’d accomplished absolutely nothing.


그 주말에 나는 노트북을 열고 사람들이 해답을 찾고 싶을 때 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구글 검색창에 ‘외로움’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한 것이다.

검색 결과 다양한 기사를 비롯해 동영상 몇 개와 연구자료 링크 두 개가 나타났다. 나는 그중 하나를 클릭했다. 연구자들의 말에 따르면 외로움은 일종의 유행병이다. 미국인 중 절반 가까이가 이따금씩 혹은 항시 외로움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하지만 외로움이라는 바로 그 감정으로 인해 사람들은 집에 틀어박혀 점점 우울해지고 의욕을 잃게 되며 결국 친근한 얼굴조차 마주하기를 두려워하게 된다. 건강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끼친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맞먹는 결과를 초래한다!

와! 심각한 내용이었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외로움은 나를 파괴하고 있었다. 나는 무슨 조치든 취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오직 악화일로를 걷게 될 것이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라.” 

한 기사에서 이렇게 충고했다.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대화를 나누어라.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라!”

나 혼자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휴일에 열리는 회사 파티에조차 언니들과 함께 가던 나였다. 내가 즉흥 공연을 할 때도 언니들은 늘 맨 앞줄에 앉아서 내가 큰 실수를 할 때조차 큰 소리로 웃어 주곤 했다. 이제 나는 다른 누군가가, 그것이 비록 영적 존재일지언정, 늘 나와 동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했다. 

‘하나님?’

비록 최근에는 하나님과 가까이 교류하지 않았지만, 내가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믿음이 한 뼘 성장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나님과 함께 극복해 낼 수 없다면 다른 누구와도 성공할 리 만무했다. 

‘주님, 당신께서 늘 저와 동행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그 후로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늘 하나님과 같이 왔다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즉흥 공연 학원에서 시도해 보기로 했다. 다음번 수업에서 나는 평소처럼 구석 자리에 앉기는 했지만, 쉬는 시간에 집에서 가져온 과자 봉지를 꺼내 앞으로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과자 드실 분 계세요?” 

그러자 한 여성이 대답했다. 

“와, 저요.” 

그녀 옆에 앉은 남성도 같이 먹었다. 우리는 조용히 오물오물 씹어 먹었고 그것이 전부였다. 그들은 돌아앉았고 다시 수업이 시작되었다. 내가 성취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I tried again. The following Monday, I texted the class on our group chat: “I’m going to a comedy show tonight if anyone’s interested.” An hour passed. Then another. It was almost showtime, and no one had replied. I felt embarrassed. Rejected. Should I still go? I wondered. I remembered the advice from the article, to go where there are people. Besides, I had to do things I enjoyed—activities that made me feel like myself again.

I walked into the theater. Would people judge me for being alone? “You can take a seat there,” the usher told me, pointing to an area by the stage. I glanced around. There were plenty of people sitting by themselves. Like me, they were just there to laugh. By the time the lights went down, the place was so packed I forgot I was there by myself. Everyone cracked up at the same parts. I left the theater feeling confident. I’d connected with people even if I hadn’t talked at length with anyone. And the show was great. It had been months since I’d laughed that hard. At my next improv class, I had something to share besides chips.

A few days later, I got an e-mail at work: “Charity bake sale volunteers needed.” I signed up, figuring some others from my department would go too. But when I got to the event, I didn’t recognize a soul. I was assigned to a registration table with two other volunteers. One of them was an older woman with the funkiest eyeglasses. I said the first thing that popped into my head.

“I love your glasses! I’ve been searching for a good pair since forever.” She and I gabbed like old friends, discussing the pros and cons of shopping for eyewear in New York City. The time flew by. At 2 P.M., my shift ended and I got up to leave.

“What’s your name again?” the woman said. “You seem like a delightful person. I’m so glad to have met you.”

I beamed. She didn’t know anything about me. I hadn’t regaled her with tales of living with my sisters. I’d just been me.

“I’m Diana,” I said. “It’s so nice to meet you too.” Thanks, God, I thought. For having my back.

With every encounter and experience, I felt my world expand. I pushed myself to do things I enjoyed, and the more I did, the more comfortable I felt striking up conversations with strangers. Best of all, I felt good about being on my own. Being myself. Even with my sisters, I wasn’t shy about making the first move.

“Let’s get dinner,” I’d text. Hanging out with them was different now. We didn’t know every detail in each other’s lives. But that meant there was so much for us to catch up on.

“You’re so busy!” Kristin said when I told her and Ciaran all that I’d been up to—shows, happy hours, dates, even church shopping—over dinner one night.

“Seriously,” Ciaran said. “You’re more social than any of us.”

I smiled. I liked the way they saw me. Really saw me. Not just as a sister or a roommate. But as me. Someone living on her own and loving it.


나는 다시 한 번 시도했다. 그다음 주 월요일에 나는 수강생들이 참여하는 단체 채팅방에 이렇게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 밤 코미디 공연을 보러 가려고 하는데 혹시 관심 있는 분 계신가요?” 

한 시간이 지났다. 또 한 시간이 지났다. 공연 시간이 다가왔지만 단 한 명도 대답이 없었다.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결국 거절당한 것이다. 

‘그래도 가야 할까?’ 

나는 궁금했다. 불현듯 그 인터넷 기사 속 조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라는 조언이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기분이 좋아지는 일을 해야 했다. 예전의 내 모습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활동을.

나는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혼자 왔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저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안내 담당자가 무대 옆 구역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혼자 온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들도 나처럼 그저 웃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불이 꺼질 즈음에는 관객석이 가득 차서 나는 혼자 왔다는 사실조차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장면에서 웃음을 터트렸다. 극장을 나올 때 자신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어느 누구와도 길게 대화를 나누지 않았는데 마치 사람들과 교감을 하고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공연도 최고였다. 그렇게 열렬히 웃어 본 지가 몇 달 만인지 모른다. 이제 다음번 즉흥 공연 수업 때 과자와 함께 나눌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며칠 뒤 나는 회사에서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베이커리 자선 바자회에 참여할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 

우리 부서 사람들도 가겠지 싶은 생각에 나는 신청서를 보냈다. 하지만 바자회에 도착해 보니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다른 두 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등록 업무를 담당했다. 그중 한 명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이었는데 상당히 독특한 안경을 쓰고 있었다. 나는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말로 인사를 건넸다. 

“안경이 참 멋스러워요! 저도 오래전부터 멋진 안경 하나 장만하고 싶었거든요.” 

그녀와 나는 뉴욕시에서 안경 쇼핑할 때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나누면서 오랜 친구처럼 수다를 떨었다.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오후 2시에 나는 교대 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그녀가 물었다.  

“참 유쾌한 분 같아요.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요.” 

나는 활짝 웃었다. 그녀는 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언니들과 살았던 이야기를 통해 재미있게 해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모습을 오롯이 보여 준 만남이었다.

“다이애나예요. 저도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요.” 

나는 대답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의 예전 모습을 찾아 주셔서.’ 

모든 만남과 경험을 통해서 나는 내 세상이 차츰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기분이 좋아지는 일들을 꾸준히 하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하면 할수록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무엇보다도, 내 본래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그리고 언니들과의 관계에서도 먼저 제안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같이 저녁 먹자.” 

나는 이렇게 문자를 보내곤 했다. 언니들과의 만남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번 만나면 그동안 못한 이야기보따리를 푸느라 정신이 없다.

어느 날, 크리스틴 언니 부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그동안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공유하고 있었다. 공연 이야기부터 시작해 즐거웠던 시간들, 데이트, 심지어 매주 다른 교회를 다니고 있는 이야기까지 시시콜콜 말하는데 크리스틴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엄청 바쁘게 지내는구나!”

“그러게 말이야. 처제가 우리 둘보다 더 사교적이네.” 

형부가 말했다. 나는 웃음을 지었다. 언니와 형부가 그렇게 봐 주니 기분이 좋았다. 내 참모습을 알아봐 주어서. 동생이나 룸메이트로서가 아닌, 다이애나 아이딘으로 봐 주어서. 혼자 사는 것을 즐기는 사람으로 봐 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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