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일상이 기적입니다


Guideposts 2020 |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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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posts 2020 | 09

일상이 기적입니다


외국 기업의 정규직으로 취직이 되었을 때 이제 인생은 탄탄대로로 곧게 뻗어 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전신이 마비되는 사고를 당했고, 인생은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그를 데려갔다. 그러나 스물여덟 살의 젊은 나이에 찾아온 시련은 그에게 일상이 기적이라 감사할 수밖에 없는 삶을 선사했다. 세상 어디든 무엇이든 어느 순간이든 기적이 아닌 것이 없다는 그는 지금 ‘우리 모두에게 기적을’ 선사하기 위해 유튜브 ‘위라클’(구독자 약 12만 명)을 운영하고 있다. 유투버 박위의 이야기다.





유튜브 ‘위라클’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위라클’은 무슨 뜻이고, 어떤 프로그램인지 궁금합니다.


‘위라클’은 제 동생이 지어 준 이름이에요. 제 이름의 ‘위’, 그리고 

영어로 우리를 뜻하는 ‘we’와 기적을 뜻하는 ‘miracle’을 합성(we+racle)해서 ‘우리 모두에게 기적을’이라는 의미가 담긴 말입니다. 

유튜브 채널 ‘위라클’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제가 감당하는 방법이에요. 보시다시피 저는 지금 휠체어를 타고 있는데, 스물여덟 살(2014년) 되던 해에 사고로 전신마비가 왔어요. 하나님께 매일 다시 일으켜 달라고 기도했죠. 그렇게 해주시면 뭐든 다 하겠다고 하면서요. 그때 하나님께서 “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거야”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낫게 해달라는 제 기도와 상관없는 응답이었죠. 꼼짝도 못하는 내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저희 병동에 계시는 환자분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저는 전신마비였지만, 그분들에 비하면 경증이었어요. 그때부터 그분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했어요. 저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죠. 하나님께서 저에게 긍휼함을 주신 거예요. 

퇴원 후 재활을 하면서도 ‘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거야’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시간과 장소에 제약받지 않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 유튜브가 송곳처럼 생각났어요. 이걸 소통의 매개체로 삼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했어요.

유튜브 ‘위라클’은 휠체어 타는 제 일상을 통해 우리 삶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으며 지금 이 순간이 기적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프로그램입니다.

2014년에 어떤 사고를 당하신 건가요?


저의 꿈은 축구선수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영국에서 축구를 했어요.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중학교 때까지 축구부 생활을 했죠. 그러다 축구선수를 직업으로 삼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으로 축구부를 그만두었어요. 하지만 축구는 친구들과 어울려 계속했죠. 

대학은 점수에 맞춰 들어간 터라 미래에 대한 설계가 없는 상태에서 졸업을 앞두게 되었는데, 마침 외국 브랜드 회사 자라(ZARA)에서 인턴을 채용한다 해서 지원했다가 운 좋게 합격을 했어요. 5개월의 인턴 생활을 거친 후 정직원으로 채용되었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취업이 어려워서 친구들은 취업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전 정말 운이 좋았어요. 이제 내 인생은 탄탄대로라고 생각했죠. 그날 이후 고생한 나에게 주는 보상이라면서 주말마다 술을 마셔댔어요. 제가 워낙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데다 큰 짐 하나를 내려놓고 나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굴었던 거죠. 그리고 어느 날 잠에서 깼는데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전날 만취 상태에서 3~4m 높이의 건물 사이로 떨어져 목이 부러졌고 전신마비가 온 거예요. 



전신마비라는 말을 듣고 충격이 컸겠어요.


사실 병원에서 눈을 뜬 뒤 일주일 동안 제가 전신마비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어요.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전신마비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거야’ ‘다시 축구할 수 있어’ ‘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까, 하나님이 일으켜 주실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전신마비를 현실로 받아들이기는 정말 어렵더라고요. 한참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아버지는 제 소식을 듣고 걸어 다닐 힘조차 없어서 휠체어 신세를 졌다고 하더라구요. 반면에 어머니는 정신을 차리시고 제 상황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겨 놓으셨어요. 어머니는 제가 꼭 일어날 것이라 믿었고, 이 일을 간증할 때 필요할 것 같아서 촬영했다고 하더군요.


신앙생활은 언제부터 하신 건가요? 


저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닌 모태신앙인이에요.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언제나 저를 지지해 주셨어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분이시죠. 어머니는 강인하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분이세요. 1998년에 영국으로 유학 갔을 때 일이에요. 당시 IMF 때문에 환율이 굉장히 올라서 힘들게 생활했어요. 여러 가족이 한 집에 사는 쉐어 하우스에서 살았는데 저희 세 식구는 한 방을 쉐어했죠. 제 기억으로 저녁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어디서 오는지 저희 방으로 와서 저녁을 먹었어요. 제가 어느 날 우리도 먹고살기 힘든데 사람들이 왜 우리 방에 와서 저녁을 먹냐고 불평한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어요. 한국에 돌아온 후 어머니가 사업차 영국에 들르곤 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이 환영해 주고 챙겨 주는 모습을 보면서 값없이 주는 나눔은 언젠가 이렇게 돌아오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부모님의 이런 모습이 제게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그에 비해서 신앙생활은 대형 교회를 다니다 보니 잘 갖춰진 예배, 화려한 예배에 익숙해서 감사한 줄 모르고 편안하게 예배를 드리면서 매주 

지각을 했어요. 중등부 때는 제가 너무 지각을 해서 총무 선생님께서 저를 1년 동안 특별 관리를 했어요. 덕분에 일대일 양육도 받고 그 선생님과 한 약속을 지키려고 1년 동안 지각도 하지 않았어요. 그분 영향으로 고등부에 가서 찬양팀도 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중국 텐진(天津)으로 아웃리치를 갔다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었어요. 



하나님을 만난 뒤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고등학생 때 담당 전도사님의 영향으로 학교에서 중보기도 모임을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3명으로 시작했어요.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모여 우리가 모일 수 있는 장소와 동역자를 위해 기도했죠. 운동장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체육부장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이 시청각실에서 기도 모임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어요. 알고 보니 도와주신 분들이 모두 크리스천이셨어요. 그렇게 40명 정도 모여서 기도했어요. 그런데 대학 입학을 한 후 마냥 놀고만 싶어서 예배드리는 시간도 아깝더라구요. 그래서 예배 시간이 가장 짧은 오후 7시 새신자 예배를 주로 드렸어요. 언제나 잘 차려진 밥상을 받듯 예배를 드리다 보니 그것의 소중함도 갈급함도 없었던 거예요. 다시 선데이 크리스천이 된 것이죠. 그러다 정직원 발령 후 사고가 난 거예요. 



재활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요?


병원에서 6개월 있다가 퇴원했는데, 재활은 생활 그 자체예요. 처음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어요. 스스로는 전혀 움직이지 못하니까 욕창에 걸리지 않기 위해 시간을 정해 몸을 움직여 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제 체구를 감당하려면 성인 남자의 힘이 필요했어요. 친구들과 교회 친구들이 4명씩 팀을 짜서 한 달 동안 이 일을 감당해 줬어요. 그때 그 고마움은 평생 잊을 수 없죠.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저와 안면도 없는 분들의 기도로 그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 낼 수 있었어요.

전신마비 진단을 받고 2주가 지나서야 겨우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어요. 병원에서 재활운동을 했지만 일상생활에서 재활을 하는 게 더 중요해요. 친구들과 함께 해외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따라 하는가 하면 저에게 맞는 운동법을 만들어서 재활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헬스장을 꾸준히 다니고 있어요. 처음엔 휠체어를 끄는 것은 물론 앉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지금은 이촌동에서 난지도까지 약 11km 거리를 세 시간 정도에 갈 수 있어요. 의학적으로도 기적적인 회복 속도라고 해요.

재활을 통해 몸은 회복되고 있는데 신앙은 언제나 기복이 심했어요. 당시 제 기도 제목은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였어요. ‘만족’(滿足)이란 ‘발에 물이 가득한 것이 모자람이 없어 흐뭇하다’는 뜻인데, 매일 기도의 응답으로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저는 만족할 줄 몰랐어요. 믿음의 눈이 없었던 거죠. 주변 사람들은 “일어날 거야”라고 말했지만 나중에는 그 말도 입에 발린 말처럼 들렸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냉랭해졌어요. 

사고가 난 지 2년 만에 청년부 공동체에 들어가서 신앙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2년째 되는 날 제 삶에서 정말 강력한 순장을 만났어요. 저하고 동갑인 이 순장 때문에 여름수련회까지 갔어요. 침대도 있고 수련회 기간 동안 무조건 도와주겠다는 말에 용기를 내어 참석한 거죠. 수련회 둘째 날 저녁 집회 시간이었어요. 담당 목사님이 아픈 사람은 강대상으로 나오라고 해서 순장과 친구들이 저를 끌고 강대상까지 갔어요. 900명가량의 사람들이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저를 위해 길을 열어 주었어요. 그리고 20명가량의 친구들이 제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었어요. 그 순간은 평생에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제가 하나님께 그 전까지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안 일어나도 좋으니,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지, 존재의 유무를 알게 해주세요. 음성이나 바람이나 촉감이나 어떤 방법으로든지 좋으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게 해주세요.” 그런데 그날 친구들의 손길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위야! 이게 바로 중보기도라는 거야!” 그 순간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신다는 것을 깨달았고 확실히 믿게 되었어요. 

그때 이후로 제주도, 일본으로 아웃리치를 갔고, 공동체 생활의 소중함을 깨달아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게 되었어요. 하나님은 늘 같은 곳에서 한결같이 저를 바라보고 계세요. 그리고 저를 정말 사랑하세요.

영상 콘텐츠 ‘위라클’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제가 다치고 나서 비로소 저에게 있었던 과거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어요. 걷고 뛰는 것이 평범해 보이지만,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이 신기하더라고요. 

서 있는 것은 그 이상으로 기적이라고 생각했고요. 제 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는 것도 기적이고 감사한 일이에요. 젓가락질해서 라면을 먹었을 때를 잊지 못해요. 세상 사람들은 삶이 고통이고 고난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을 맞추기 위해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며 살고 있죠.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잘 알아요. 하지만 저는 그걸 깨고 싶어요.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삶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 그 자체가 기적이에요. 이건 제가 경험한 것이고, 지금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에요.

저는 위라클에 매일이 무한도전 같은 제 삶을 영상으로 찍어 올리고 있어요. 제가 휠체어를 타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죠. 지금 구독자 수가 12만 명 정도 되었어요. 

저의 장애가 많은 사람들에게 다른 관점, 색다른 희망을 준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메일이나 SNS 댓글, 쪽지로 많은 이야기를 해주세요.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 있어요. “제가 오늘 삶을 마감하려고 했는데, 우연히 뜬 위라클 영상을 보고 살기로 했습니다.” 이런 댓글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병원 기도실에서 제 마음에 주셨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라는 소명이 새삼 생각나요.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요?


위라클을 통해서 저에게 일어난 기적이 다른 기적들을 낳았으면 좋겠어요. 1974년에 국제연합 장애인생활환경전문가회의에서 ‘장벽 없는 건축 설계’(barrier free design)가 보고되었는데 이것이 건축에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로 사용되고 있어요. ‘베리어 프리’는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입니다. 저는 배리어 프리의 일환으로 ‘위라클 무브먼트’라는 영상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이에요. 사람들은 나빠서가 아니라 몰라서 장애인을 배려하지 못해요. 영상 캠페인을 통해 우리 각자와 사회가 장애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리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가이드포스트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제가 신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져 보니까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 있어요. 바로 일상의 감사예요.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많이 불편하실 텐데, 정말 우리의 삶에서 감사할 일이 많아요. 우리가 불행하고 힘든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 때문이에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저처럼 다치지 않고서도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여러분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감사한 삶인지 말이에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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