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coming  Addiction

또 한 번의 기회

Guideposts 2020 | 09

Overcoming Addiction

Guideposts 2020 | 09

또 한 번의 기회

Why this steel-processing plant offers hope to recovering addicts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인바이로세이프는 알코올 혹은 약물 중독 이력이 있거나, 

구속된 적이 있거나, 심지어 수감된 적이 있는 입사 지원자들을 환영한다

BY GEORGE VOREL,  Butler, Pennsylvania

조지 보렐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I’m the founder and owner of an industrial steel processing company in Carnegie, Pennsylvania, called Envirosafe. Our 25 employees sandblast large pieces of fabricated steel, then apply coatings and paint to prepare the steel per strict specifications for construction projects across the United States. Drive over a bridge or walk into a building and it’s possible Envirosafe processed the steel for it.

It’s tough, exacting work. Giant forklifts and cranes carry up to 20-ton pieces of steel to sandblasting machines that have to be adjusted precisely for every job. Full-time inspectors on our 80,000-square-foot factory floor ensure that the steel we process is safe to use in construction. Employees must be focused, alert and ready to respond if something goes wrong.

Surprising as it may seem, Envirosafe welcomes job applicants who have a history of alcohol and drug abuse, arrests and even stints in prison. We’ve hired a number of guys with backgrounds like that. Some of them have established successful careers here.

Why would such a high-skill, high-risk industrial operation go out of its way to help people most employers wouldn’t consider—especially industrial employers?

There’s a story behind that question. My family’s story. I’ve learned through experience that addicts and anyone else who makes a big mistake in life deserve—no, need—a second chance. No one should be shut out of society because they were ensnared by addiction to drugs or alcohol. If I didn’t believe that, my wife, Marg, and I would have given up on our own daughter a long time ago. We didn’t give up, and neither did she. And so neither does Envirosafe.

Growing up in a dysfunctional family, I learned to be self-sufficient from a young age. I trained as a mechanical engineer at the University of Cincinnati and decided early in my career that I’d be happiest running my own business instead of working for someone else.

I started Thermojet Inc., an industrial combustion service company, when I was 28. Along the way, I married my high school sweetheart, and Marg and I had three children—two girls and a boy. Our younger daughter took after me. When she was 12, I jokingly told her that if she could refrain from watching TV for a whole year, I’d give her $500. She earned that $500.

나는 펜실베이니아주 카네기에 위치한 산업용 철강 가공회사, 인바이로세이프(Envirosafe)의 창립자 겸 사장이다. 총 스물다섯 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우리 회사에서는 대형 철강 구조물에 샌드블라스트 연마 공정을 수행한 다음, 미국 전역의 건설 프로젝트에서 요구하는 엄격한 사양에 부합하도록 피복제와 도료를 도포한다. 차가 다니는 대교나 건물에 사용되는 구조물은 대부분 우리 손을 거쳤을 가능성이 높다.

철강 가공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강도 높은 분야다. 거대한 지게차와 크레인으로 무려 20톤에 달하는 철강 구조물을 들어 올려 샌드블라스트 기계로 옮겨 와야 할뿐더러, 매 작업 기계를 새롭게 정밀 조정해야 한다. 약 2250평 규모의 공장 부지에는 감독관들이 상주해 있어 우리가 가공하는 강재가 건설 자재로 사용되기에 안전한지 여부를 점검한다. 직원들은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며, 문제 발생 시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인바이로세이프는 알코올 혹은 약물 중독 이력이 있거나, 구속된 적이 있거나, 심지어 수감된 적이 있는 입사 지원자들을 환영한다. 실제로 우리 회사는 이러한 이력이 있는 남자 직원을 상당수 고용해 왔으며, 그들 중 일부는 회사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구축했다.

왜 인바이로세이프는 그렇게 고도의 기술을 요하고 위험성이 큰 산업 분야에서 대부분의 고용주, 특히 산업 회사의 고용주라면 더더욱 꺼리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행보를 시작했을까?

그렇게 된 데에는 사연이 하나 있다. 우리 가족의 사연. 나는 중독자를 비롯해 인생에서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누구에게든 또 한 번의 기회가 반드시 주어져야 한다는 믿음을 경험을 통해 갖게 되었다. 그 어떤 사람도 술이나 약물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나에게 그러한 믿음이 없었다면 나와 내 아내 마그는 오래전에 딸아이를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포기하지 않았고, 우리 딸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바이로세이프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가 있는 가정에서 자란 나는 어린 나이에 자립하는 법을 터득했다. 신시내티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고용되는 것보다 내 사업체를 운영해야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결국 스물여덟 살에 산업용 연소 서비스 회사인 써모제트㈜를 설립했다. 와중에 고등학교 시절의 여자친구인 마그와 결혼을 해 1남 2녀,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둘째 딸은 나를 쏙 빼닮았다. 딸이 열두 살 때 내가 딸에게 1년 동안 텔레비전을 안 보면 500달러를 주겠노라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딸은 결국 그 돈을 거머쥐었다.

Around that time, I sold Thermojet and could have retired comfortably. I indulged myself with sports cars, family vacations and expensive hunting trips.

A few years later, I got restless and started Envirosafe with my son, Mike. We built up the business until we were handling steel for big construction projects in New York City, on military bases and at oil and gas facilities around the nation.

On the parenting end, I swore I wouldn’t repeat the child-rearing mistakes that had made growing up hard for me. I was affectionate with my kids and spent time with them coaching, vacationing, fishing and bicycling—all the things I never experienced as a child. Unfortunately it wasn’t enough to keep our younger daughter out of trouble. She was in eighth grade when the police caught her drinking beer with friends in a park late at night.

We gave her a big talking-to and reassured ourselves that even good kids do that sort of thing sometimes. But she kept hanging around with those friends, and we didn’t know how to shield her from their influence.

Her grades declined. She turned sullen at home. After getting her driver’s license, she and a friend—the daughter of a school principal—took off in our car with a crazy plan to drive to California. Finally she called us, and we figured out where she was: Colorado. My wife flew there and drove the girls home.

Our daughter entered her first rehab in her junior year of high school. She barely graduated from a program for at-risk students. Less than a year later, a friend introduced her to heroin as a cheaper alternative to the opioid pills she’d been abusing. Before we knew it, she disappeared into hard-core drug use.

Owners of industrial steel processing companies aren’t known for being in touch with their feelings. The pain of watching my daughter spiral out of control was like nothing I’d experienced. My wife and I tried everything. We tracked her down, tried to talk her into treatment and even brought her home—only to have her steal from us to feed her habit.

One thing we hadn’t tried much was prayer. We attended church regularly but, like I said, I lived by a self-reliant philosophy. Surely there was some way we could fix our daughter. How could I build successful businesses but not do a thing about my child’s addiction?

One fall, I threw a bunch of gear into a Jeep and headed to a hunting camp in northern Pennsylvania. I needed to clear my head. It was evening when I arrived at the camp. I turned off the engine and sat in the gathering gloom.

I needed to think. Marg and I were having a hard time—many marriages struggle when there’s addiction in the family. I looked at the passenger seat and saw a hunting magazine. Beside it was a Bible. I’d brought it thinking it might have some wisdom to offer. I sure needed some.

그 무렵 써모제트를 매각한 나는 그냥 은퇴해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다. 당시에는 스포츠카와 가족 여행, 고가의 사냥 캠핑에 푹 빠져 지냈다.

몇 년 후 나는 결국 가만있지 못하고 아들 마이크와 함께 인바이로세이프를 설립했다. 사업체를 열심히 키워 나간 결과, 뉴욕시의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비롯해 미국 전역의 군사기지와 석유 및 가스 시설에 들어가는 철강 가공을 맡을 정도로 성장했다. 

아이들에게는 어떤 부모였는가 하면, 나는 성장기 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내 부모님의 과오를 절대로 되풀이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나는 다정한 아빠였고, 아이들과 코칭, 여행, 낚시, 자전거 타기 등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어렸을 때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전부 해주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정도로는 둘째 딸이 나쁜 길로 빠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딸은 밤늦게 공원에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다 경찰에게 붙잡혔다.

아내와 나는 딸을 호되게 야단치고는, 착한 아이들도 이따금씩 그런 사고를 칠 수 있다고 애써 생각하며 우리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 후로도 딸은 계속 그런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고, 우리는 딸아이가 물들지 않도록 지켜 주고 싶었지만 어찌할 바를 몰랐다.

딸은 성적도 떨어졌다. 집에서는 늘 뚱하게 굴었다. 딸은 운전면허를 취득하자 친구 한 명(교장의 딸이었다)과 함께 우리 차를 몰고 나가 버렸다. 캘리포니아에 가겠다는 무모한 계획을 갖고서. 마침내 딸에게 전화가 와서 위치를 알아냈다. 콜로라도였다. 아내는 비행기를 타고 달려가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딸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중독 치료를 시작했다. 위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재활 프로그램을 가까스로 마쳤다. 그 후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한 친구의 꾐에 넘어가 마약성 진통제의 저렴한 대안인 헤로인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부지불식간에 딸은 심각한 약물 중독의 길에 들어서 있었다.

산업용 철강 가공회사의 사장들은 대체로 자신의 감정에 무딘 사람들이다. 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된 딸아이를 지켜보는 고통은 이제껏 내가 경험한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것이었다. 아내와 나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다. 딸을 추적하는가 하면, 치료를 받도록 달래 보기도 하고, 심지어 집으로 강제로 끌고 오기도 했다. 하지만 딸은 결국 마약을 구입하기 위해 우리 지갑에까지 손을 댔다.

아내와 내가 열심히 해보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기도였다. 우리는 꼬박꼬박 교회에 나갔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자립을 원칙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분명히 딸의 중독을 고칠 어떤 방법이 있을 터였다. 내 아이의 중독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겠는가?

어느 가을 날, 나는 지프차에 캠핑 장비를 싣고 펜실베이니아 북부로 사냥 캠핑을 떠났다. 머리를 좀 식힐 필요가 있었다. 캠핑지에 도착하니 저녁 시간이었다. 나는 차 시동을 끄고 짙게 깔리는 어둠 속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내와 나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식구 중에 중독자가 있으면 결혼 생활도 순탄치 못한 법이다. 조수석에는 사냥 잡지 한 권이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성경책이 있었다. 어쩌면 성경책에서 어떤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하여 들고 온 터였다. 지금 나에게는 지혜가 절실했다.  

I started reading at chapter 12: “Do not conform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What was this about? Definitely not gladiators. But it sounded like what I needed—to be transformed, to have my anxious, heartbroken mind renewed.

I read on: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God’s will. What did that mean? For me? My daughter? Our whole family?

I needed those answers most of all. “Lord,” I heard myself pray. “Transform me. Renew me. Show me what your will is for me. I can’t do this on my own.”

I glanced at the dashboard clock. It was just about 9 P.M.—how long had I been sitting there? Out of habit, I reached for the radio to listen to news headlines. The radio must have been tuned to a Christian station. A pastor was just wrapping up his sermon.

“Let us conclude by turning to Romans, chapter 12,” he said. Then he read out the very Bible verses I had just read. A chill ran down my spine.

I couldn’t wait to get home from that hunting trip. I had no magic insights about treating my daughter’s addiction. But I did know how my own life needed to change. Marg and I began praying more. We recommitted to church. I went to Bible studies, classes, anything to learn more about this God who had spoken to me in the Pennsylvania hills.

Our daughter continued to struggle. She landed in jail several times, and I visited her. What I stopped doing was trying to fix her. “I’m praying for you, and I love you,” I told her.

I prayed for other inmates I saw. Some of them I knew. Ours is a close-knit area, and by this point the scourge of opioids had claimed many local victims. A small group of church families began meeting weekly to pray for our children and the drug problem scarring our community. Through that group, we began a weekly support meeting for addicts and their loved ones. When our church started a prison visitation ministry, I was quick to sign up. 

At last my daughter got sick and tired—as they say in recovery—of being sick and tired. She entered rehab and stuck with it. She’s been sober for 12 years now. She earned a master’s degree in social work and is now employed as a drug and alcohol counselor.

About five years ago, she wanted me to meet someone. “Dad,” she said, “this is the guy who introduced me to heroin. He needs a job.”

Maybe, once, I would have wanted nothing to do with this guy. But he too had turned his life around. Like my daughter, he deserved a second chance.

Envirosafe was looking for workers. There’s turnover in this business. The work is not easy. I thought about the people I’d encountered in the jails and prisons I’d visited. How hungry some of them were for a fresh start.

“How would you like to try working at my company?” I asked my daughter’s friend. He said he would.

He turned out to be a terrific employee. Smart. Motivated. Eager to learn. It took me and Mike a long time to trust him. But gradually we did.

We began considering other applicants with black marks on their record. We’ve never recruited people with checkered backgrounds. But we’re open to them. Provided they’re willing to work hard and submit to random drug testing, we offer them a job.

We’ve hired dozens of guys looking for a second chance. Not all of them work out. Even my daughter’s friend, after close to four years of sobriety, relapsed and had to be let go. He continues to fight for sobriety. Opioids are among the hardest drugs to kick, and addiction is so often a disease of relapse.

Thanks be to God, our daughter’s sobriety has held. She got her second chance and, in a way, so did I. I’ll never forget that night in the Pennsylvania hills. I know now what God’s will is for me. And for Envirosafe. God extends his infinite mercy to a world that so badly needs it. I try to do the same.

성경책을 집어 든 나는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인 로마서를 펼쳤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성경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을까? 로마서가 검투사들에 관한 이야기겠거니 생각했으니 말이다!

나는 로마서 12장을 읽기 시작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무엇에 관한 말씀일까? 분명히 검투사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나에게 필요한 말씀이었다. 완전히 변화하는 것, 근심으로 가득하고 상처로 얼룩진 내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

나는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뜻.’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를 위한, 내 딸을 위한, 우리 가족 전체를 위한 하나님의 뜻은 대체 무엇일까? 우선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저를 변화시켜 주소서. 저를 새롭게 하소서. 저를 위한 주님의 뜻을 저에게 보여 주소서. 제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오니.” 

대시보드의 시계를 보니 밤 9시가 다 되어 갔다. 내가 얼마나 오래 여기에 앉아 있었던 것이지? 습관적으로 나는 뉴스 헤드라인을 듣기 위해 라디오를 켰다. 주파수가 기독교 방송에 맞춰져 있던 모양이었다. 한 목사가 설교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로마서 12장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목사는 이렇게 말하더니 내가 방금 전에 읽었던 바로 그 구절을 낭독하는 것이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나는 얼른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딸의 중독을 치료해 줄 마법 같은 아이디어 따위는 없었다. 그렇지만 나 자신의 삶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켜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기도를 더 많이 하기 시작했고 교회 활동도 다시 열심히 했다. 나는 성경 공부 모임과 수업에 등록하는가 하면, 펜실베이니아 산속에서 나에게 응답해 주신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아 갈 수 있는 활동이면 무엇이든 참여했다.

딸아이의 방황은 계속되었다. 몇 차례나 수감되었고 나는 딸을 만나러 면회를 다녔다. 딸의 중독을 고치려는 시도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말해 줄 뿐이었다. 

“아빠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어. 사랑한다, 내 딸.” 

그곳에서 마주친 다른 수감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그중에는 내가 아는 얼굴들도 있었다. 우리 동네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공동체인데, 그 당시까지 다수의 동네 사람들이 마약이라는 재앙의 희생자가 되어 있었다. 교회 식구들 몇 명이 매주 기도 모임을 열고 우리 아이들을 위한 기도, 나아가 지역사회를 병들게 하는 약물 중독 문제를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모임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는 중독자와 그 가족을 지원하는 또 다른 주간 모임도 결성했다. 교회에서 감옥 방문 사역을 시작했을 때도 나는 재빠르게 신청했다. 

마침내 딸아이는 아프고 피곤한 것에 넌더리를 내기 시작했다(회복의 신호라고 한다). 딸은 중독 치료를 시작했고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12년째 약물을 입에 대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취득해 기관에서 약물 및 알코올중독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약 5년 전의 일이었다. 딸이 나더러 누구 좀 만나 봐 달라고 부탁했다. 

“아빠, 나한테 헤로인을 처음 권유했던 남자애인데요. 일할 곳이 필요해요.”

예전 같았으면 나는 어쩌면 그 친구와 엮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역시 삶의 전환점을 지나 온 터였다. 내 딸처럼 그 친구도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을 자격이 있었다.

인바이로세이프에서는 직원을 구하고 있었다. 이 업계는 사람이 자주 바뀌는데 일이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나는 그동안 방문한 교도소와 감옥에서 마주쳤던 사람들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그중에는 새 출발할 기회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딸의 친구를 만나 이렇게 물었다. 

“우리 회사에서 일해 보고 싶은가?” 

그는 그러고 싶다고 대답했다. 겪어 보니 그 친구는 아주 훌륭한 직원이었다. 똑똑하고, 의욕이 넘치고, 배움에 대한 갈망도 컸다. 아들과 내가 그를 신뢰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차츰 믿음이 쌓여 갔다.

우리는 이력에 오점이 있는 다른 지원자들도 채용을 고려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우리 회사는 파란만장한 배경을 가진 사람을 고용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사람들에게도 채용의 문이 열려 있다.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의지와 무작위 약물 테스트를 받을 용의만 있다면 누구든지 지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찾는 수십 명의 남자 직원을 채용했다. 물론 항상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심지어 딸의 친구조차도 약을 끊은 지 약 4년 만에 재발해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는 다시 약을 끊고 재발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마약성 진통제는 끊기가 가장 어려운 약물에 속하며, 중독은 쉽게 재발하는 병이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딸아이는 지금까지 재발하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딸은 자신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어떻게 보면 나도 그랬다. 나는 펜실베이니아 산속에서의 그날 밤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나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안다. 인바이로세이프를 위한 하나님의 뜻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세상에 대해 무한한 자비를 베푸신다. 나도 그렇게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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