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기적의 화이팅게일
Guideposts 2020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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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화이팅게일
KBS 21기 공채 탤런트 김예랑 배우는 어릴 때부터 외교관을 꿈꿨다. 꿈을 위해 부모님을 졸라 호주 유학길에 올랐지만, 길거리 캐스팅으로 연예계를 경험하면서 꿈을 바꿨다. 배우의 길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 생각한 그녀는 성공한 배우가 되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자꾸만 길을 막으시는 하나님,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둘째 아이의 병까지…. 모든 것이 꼬여 버리고 하나님의 존재까지 부정하게 된 순간 하나님은 그녀에게 참 사랑과 사명을 깨닫게 하셨다.
KBS 2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셨는데, 어릴 때부터 배우가 꿈이었나요?
제 어릴 때 꿈은 사실 외교관이었어요.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는데, 마음속 깊이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던 것 같아요. 모범생이고 싶었고, 첫째 콤플렉스도 있었어요.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어린 나이에도 늘 외로움을 느꼈던 것 같아요. 모태신앙인이었던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그 외로움이 채워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교회 봉사도 열심히,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그것이 자연스레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죠. ‘내가 열심히 해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훌륭한 사람이 되면, 외롭지 않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이 꿈으로 제 안에 자리 잡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 인정 욕구의 원인이 뭔지 알 수 없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외로움’이더라고요.
중학교 3학년 때 호주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지만 이내 IMF가 들이닥치면서 귀국했어요. 절망의 시간이었지만 오히려 그때부터 저의 인생은 성공을 향하기 시작했어요.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길거리에서 모델 캐스팅이 되어 모델 일을 시작했어요. 이후 중앙대학교 연극과 특차 합격, KBS 공채 탤런트 합격에 이르기까지 배우로 유명해져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꿈을 하나님께서 이루고 계시는 듯했어요. 저 역시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면서 제 스스로 최면에 걸린 듯 그렇게 저의 성공을 주님의 영광에 끼워 맞추고 있었어요. 그때는 전혀 몰랐죠. 큰 역할에 캐스팅이 되어도 제 안에 자리하고 있는 외로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요. 제 성격이 밝기 때문에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조차 몰랐어요.
공채에 합격한 후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셨는데, 어느 순간부터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뵙지 못했어요.
제가 결혼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뭔가 계속 제동을 거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기하게도 작품에 들어가기만 하면 계획에 없던 아기가 생겨서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아기를 셋이나 주셨어요.(웃음) 그때 아마 계속 연기를 했다면, 제 꿈이 주님의 비전이라고 스스로 착각하면서 저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었을 거예요. 엄마가 되니까 조금은 더 깊이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나 자신보다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사랑, 그런 사랑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면서 첫째를 낳고 조리원에서 엄청 울었어요.
행복했던 시간을 보내던 중 둘째 려원이가 쓰러졌다면서요.
둘째 려원이가 33개월 되던 2018년이었어요. 예전에는 간질이라고 불리던 뇌전증이 발병했어요. 려원이는 성인들도 견디기 힘든 여러 검사들을 받아야 했어요. 그 작은 아이가 하나님을 찾고 예수님을 찾기 시작하더라고요. 아파도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했어요. 신촌 세브란스 병원 37병동(소아신경과) 복도 끝에 있는 작은 예배실로 틈만 나면 기도하러 갔어요. 그때부터 80일간 입원을 했는데 항경련제 때문에 부작용도, 인지 저하도 급격히 늘어났어요. 원인조차 찾을 수 없었어요. 부분 발작이었지만 80회나 일어난 발작과 독한 약들이 아이 몸에 엄청난 무리를 주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어요. 저 또한 혼자 힘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제가 아는 모든 분들에게 병실에서 밤마다 울며 기도 편지를 써서 보냈어요. SNS에도 올리고요. 많은 분들의 응원과 기도 덕분에 저와 려원이는 버틸 수 있었고, 그때까지는 원망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키토제닉 식단(원래 난치성 아동 뇌전증 환자의 치료를 위해 고안한 식단이었으나 지금은 저탄고지의 다이어트 식단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편집자 주)을 시작하는 날, 제 믿음 생활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어요. 려원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떡볶이인데, 키토제닉 식단 시작 전에 3일을 굶어야 했어요. 너무 마음이 어려웠지만 원망하지 말자고 다짐하고는 려원이와 함께 예배실로 가서 기도했어요. 다 순종하고, 감사로 이겨 낼 테니 제발 키토제닉 치료 전에 30분만 경기를 멈춰 달라고요. “병을 고쳐 달라는 것도 아니고. 떡볶이만 한 번 먹일 수 있게 해주세요. 려원아, 같이 기도하자. 그래야 려원이 좋아하는 떡볶이 먹을 수 있어, 알았지?” 하면서 십자가 앞에서 열심히 기도했어요. 그 순간, 려원이가 경기를 하더라고요. 십자가 앞에서요. 제 믿음이 딱 거기까지였어요. 뭔가가 머릿속에서 탁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태어나 처음으로 십자가를 노려봤어요. 려원이에게 “하나님께 기도해도 소용없어. 가자. 하나님은 죽었나 봐”라는 엄청난 말을 하고 십자가를 뒤로하고 예배실을 나왔어요. 그 짧은 순간에 제가 아는 모든 욕을 쏟아 내면서 다시는 믿지 않겠다고 원망하며 저주했어요.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는데, 저도 모르게 휠체어에 잠든 려원일 밀며 다시 예배실로 가고 있더라고요. 한없이 울었어요. 아무리 화가 나고 욕을 해도 제겐 주님밖에 없더라고요. 그 또한 은혜였어요. 그렇게 펑펑 울면서 앉아 있는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에 말씀하시는 거예요. “지혜야!(제 본명이 김지혜예요) 너는 왜 네 딸만 위해서 기도하니?”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그곳에는 훨씬 아픈 아이들이 많이 있어서, 사실 나름대로는 그 아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했거든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 맘의 중심을 보신 거예요. 그 기도들도 사실은 려원이를 위해서 했던 기도였던 거죠. 실상은 하나님도 이웃도 남편조차 사랑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몇 날 며칠을 울며 회개했어요. 우리는 모두 내 힘으로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죄인이더라고요. 그래서 외로웠던 거였어요.
그때부터 병실 아이들에게 다가가 진심으로 손을 얹고 기도하고, 진짜 친구가 되었어요. 기도해 줘도 되냐고 물었을 때 거절하는 엄마는 아무도 없었어요. 려원이가 경기를 계속 일으켰지만, 그때부터 제 안에 두려움도 눈물도 사라졌어요. 외로움도요. 려원이의 기도 편지에 다른 아이들의 이름과 기도도 추가되었어요. 서로가 서로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그곳에서 려원이보다 제가 먼저 치유되고 변화되어 갔어요.
하나님께서 자매님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셨네요.
려원이의 병 때문에 간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저의 믿음을 연단하고 계셨어요. 모태신앙인이던 제가, 그리고 항상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던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어요. 처음엔 이곳은 려원이가 올 곳이 아니니 빨리 탈출시켜 달라고 기도했는데, 나중에는 아픈 아이들에게 시선이 가고 그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마치 천사 같았어요. 려원이를 통해 기도도, 예배도, 사랑도, 믿음도 회복되어 갔어요. 아파도 슬퍼도 그곳이 천국과 닮은 곳이었어요.
그렇게 병원에서 70일을 보내고 난 아침에 려원이가 갑자기 제 눈을 보며 “하나님이 고쳐 주셨쪄” 하고 말했어요. 신기하게 그날부터 경기를 하지 않았어요. 믿을 수가 없었죠. 담당 의사인 강훈철 교수님도 그럴 리 없다고 못 믿으시며 2주간 퇴원을 안 시켜 주셨을 정도니까요. 주변에서 모두 진심으로 축하해 줬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무거웠어요. (37병동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거든요.) 불교 신자였지만 복음에 대해 마음을 열기 시작했던 한 엄마는 병원 입구까지 배웅해 주고 려원이를 위해 선물까지 준비해 주었어요. 눈물이 하염없이 나더라고요. 그 아들은 차도도 없고, 희망도 보이지 않는데…. 그때 제 맘속에 지울 수 없는 한 가지 질문이 생겼어요. “하나님, 왜, 려원이만 고쳐 주셨어요?” 그 물음의 답을 15개월이 흐른 뒤, 려원이의 경기가 다시 재발했을 때, 주님께서 알려 주셨어요.
작년 12월에 려원이가 예전과 같은 경기를 일으켰어요. 그 순간 숨이 턱 막히며 심장이 덜컥하더라고요. 그때가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 날 이무송 연예인 합창단 단장님이 면회 오셨어요. 그리고 그날 담당 교수님이 1년 반 만에 MRI(자가공명 영상장치)로 원인 부위를 찾았다고 하셨어요. 수술이 가능한 부위이고 80%의 수술 성공률이 있다고 했죠. 하지만 저희 부부는 마음이 어려웠어요. 뇌전증 뇌수술은 1차, 2차 수술로 뇌를 두 번 열어야 하고,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옆에 계시던 이무송 단장님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네” 하고 말씀하셨다는 거예요. 남편을 통해 그 이야길 전해 듣고, 저희 부부는 한 번 더 감사를 배우게 되었어요.
뇌수술을 하기 전날, 그 불교 신자 동생에게 연락이 왔어요. 자기 아들은 아직도 그대로 훨씬 더 많이 아픈데, 저를 위로하기 위해서요. 려원이 수술 잘될 거라고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요. 하나님께 기도하면 제 기도를 또 들어주실 거라고요. 그 소리를 듣고 엄청 울었어요. 그리고 그때 바로 제 안에 2018년에 생겨났던 물음, ‘왜 려원이만 고쳐 주셨어요?’라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주님께서 저의 입술을 통해 고백하게 하셨어요. 전 펑펑 울며 그 동생에게 말했어요. 언니가 정말 미안하다고, 기도를 잘못 알려 줬다고, 우리 아이 고쳐 달라고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기도가 있다고, 예수님 믿어서 꼭 천국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말했어요. 이 땅에서의 삶은 잠깐이지만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하자고, 려원이가 뇌수술이 잘되면 좋겠지만, 만약에 잘 안되더라도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고,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고, 그러니까 지금 이곳에서 아파도 나중에 죽어서는 절대로 아프지 않는 곳으로, 주님 계신 천국으로 다 같이 가자고 말했어요. 그때 그 동생이 처음으로 알았다며 자기도 기도하겠다고 말했어요. 하나님을 믿어 보겠다고도 했어요. 려원이의 경기가 멎었던 그때는 주님을 못 믿겠다던 그 동생이 오히려 려원이가 재발해서 다시 입원하고 뇌수술을 앞두게 되자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한 거예요. 지금은 염주도 빼고 이름도 하은이(하나님의 은혜)로 바꾸고 함께 카카오톡 온라인 기도 모임인 ‘화이팅게일’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함께 기도하고 있어요. 수술 후 못 걸을 거라고 했던 려원이가 일주일 만에 걷고 뛰는 영상을 보고 많은 분들이 기적이라고 하세요. 그 또한 기적이고 은혜지만, 진짜 기적은 하은이의 기도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아픈 아이들의 엄마들, 나밖에 모르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인 우리가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게 된 것이 그게 진짜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려원이를 통해 진짜 하나님의 사명과 사랑을 깨닫게 되었네요.
맞아요.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쓰임받는 일이고 영광 돌리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그런 저를 치료해 주셨어요.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서 사명을 감당한다고 했는데, 사람이 계획을 할지라도 이끄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더라고요. 요즘 가장 많이 고백하는 말이 제 인생이 제 것이 아니라서 감사하다는 거예요.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이 우리의 생각과 너무 다르다는 것도요. 가만히 누워만 있는 아픈 아이들이라도 그들을 통해 오히려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시니까요. 려원이가 퇴원한 후 병원에서 만난 엄마들과 함께 온라인으로 예배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공동체인 ‘화이팅게일’이 생겨났어요. 그리고 려원이와 아픈 아이들의 이야기를 유튜브 ‘애밴져스’에 연재 중이에요. 뇌전증으로 아픈 아이들을 위한 응원과 기도를 함께 보태 주시면 힘이 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가이드포스트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예전에 들었던 설교 말씀 중에 이 세상에 슈퍼 크리스천은 없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저는 연약한 죄인이고, 그걸 매일 고백하고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는 걸 경험해요. 제가 만약 유명해지고 세상적으로 성공한다면 그때가 가장 큰 위기일 거라고 생각해요. 예전엔 왜 계속 나의 길이 막힐까 하고 고민했는데, 이제는 선한 길로 이끌어 주신 주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돼요. 잘못된 가치판단 기준을 벗어 버리니까 모든 것이 감사 제목이 되더라고요. 세상의 기준에 속았던 제가 진짜 복음의 가치에 눈을 뜬 거죠.
고난을 축복으로, 눈물을 감사의 화관으로 바꾸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지금 힘들고 아프신 분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이에요.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많은 경우 예수님을 한쪽에 밀쳐 두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예전에 믿음으로 착각했던 저의 자아처럼요. 예수님이 아니면 그 누구도 우리를 채울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시지 않듯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주님께서 목숨보다 사랑하신다는 걸 믿으세요. 또 다른 어려움과 고난이 오겠지만, 다윗처럼 다니엘처럼 주님을 찬양한다면, 그것 또한 우릴 향한 주님의 사랑임을 알려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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