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God loves you, Trust His love, I pray for you


Guideposts 2021 |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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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posts 2021 | 01

God loves you, Trust His love, I pray for you


에이즈 분야에서 아시아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면서 별명은 꼴찌박사인 조명환 박사. 대학에선 미생물공학을, 미국 유학 시절엔 면역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둘 다 당시엔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던 분야다. 성적이 안돼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했던 그의 인생은 우리 안에 소원을 두시고 행하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임을 증언하고 있다. 그의 양어머니 에드나 씨가 힘든 순간마다 들려줘서 힘이 되었다는 ‘God loves you. Trust His love. I pray for you’를 그는 삶으로 살아 냈다. 2021년 1월부터 제9대 한국 월드비전 회장으로서 인생 2막을 시작한 그의 삶에 그려 나갈 하나님의 터치가 기대되는 이유다.



『꼴찌박사』(두란노, 2017)를 읽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직접 뵙게 되니 너무 반갑습니다.


한국 월드비전 신임회장 조명환입니다. 2020년까지 건국대학교 생명과학특성화과 교수이자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학회 회장을 역임했어요. 저의 책을 읽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셨다니 감사하네요. 『꼴찌박사』는 제 삶의 이야기이자 신앙 간증이 담긴 책이에요. 사실 이 책은 저의 부끄러운 삶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출간까지 몇 번을 망설였어요. 출간하기로 결정한 후에도 ‘그만둘까’ 몇 번을 엎치락뒤치락했죠.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그 뜻에 순종했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태어나자마자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에서 원조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충무성결교회 장로님이 젊은 실향민 부부인 저희 부모님이 딱해 보였는지 세이브더칠드런을 연결시켜 주셨어요. 미국인 직원이 직접 저희 집을 방문해서 갓 태어난 저를 확인하고 미국인 후원자 헬렌 넬슨 씨와 연결해 줬어요. 그리고 매달 헬렌이 보낸 편지를 한국어로 번역한 편지와 15달러를 보내왔어요. 그런데 후원자가 3년 만에 돌아가시면서 후원자 언니인 에드나 넬슨 씨가 저를 후원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분유, 옷, 장난감 등의 구호품을 받았고, 조금 커서는 학용품을 받았어요. 그때는 15달러가 적지 않은 돈이어서 어머니는 주변의 아이들에게도 나눠 주셨어요. 가난했지만, 미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렇게 45년 동안 매달 편지와 15달러를 받았어요. 제가 1990년에 건국대학교 교수가 됐는데, 그때까지도 계속 15달러를 보내 주셨죠. 어머니한테 들은 바로는, 제가 중학생이 되던 해에 이제 돈은 그만 보내도 된다고 했는데도 계속 보내 주셨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에드나 어머니는 ‘너도 나처럼 남을 도우면서 살아라’ 하는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 싶으셨던 모양이에요. 저하고 주고받은 편지가 540여 통이나 돼요. 에드나는 저의 또 다른 어머니죠.

에드나 어머니에 대해 더 말씀해 주세요.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에드나 어머니와 직접 편지를 주고받고 싶어서 요청을 했고 이후로 죽 어머니와 직접 편지를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 왔어요. 그러다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몇 차례 직접 찾아가 뵙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에드나 어머니가 거절하셨어요. 1996년 어느 날, 이렇게 마냥 미루다가는 에드나 어머니를 뵙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보내 드릴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무작정 편지에 적힌 주소를 들고 찾아갔어요. 당시 에드나 어머니의 연세가 99세였거든요. 거절하시던 것과 달리 에드나 어머니께서 몹시 반겨 주셨죠. 어머니 집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어요. 105세에 돌아가셨는데, 그때 뵙지 않았으면 두고두고 한이 됐을 거예요.



대학에서 미생물공학을 전공하셨는데, 계기가 있나요?


제가 이해력이 조금 부족해서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성적은 오르지 않았어요. 성적이 늘 ‘양’이었어요. 가끔 ‘미’가 나오면 가족들이 기뻐할 정도였죠. 심지어 고3 때는 꼴찌도 했어요. 대학은 가고 싶은데, 제 성적으로 갈 학교가 없었어요. 어느 날, 아버지 지인이신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김명진 교수님이 저희 집에 오셨는데, 제 꿈이 교수라니까 대뜸 건국대학 미생물공학과에 지원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지금은 인기가 없어서 가끔 미달이 되는데, 10년 뒤면 생명공학 시대가 올 것이니 열심히 공부하면 교수가 될 수 있다면서요. 김 교수님이 미달이 안 될 경우를 대비해서 미적분만 공부하라 해서 시험을 앞두고 오로지 미적분만 공부했어요. 그런데 기적처럼 시험문제에 미적분이 나온 거예요. 그렇게 해서 대학 입학을 했죠. 하지만 실력이 없다 보니 1학년 때는 성적이 D학점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부단히 공부해서 3학년 때부터 성적이 올라 A-로 졸업을 했어요. 



대학 졸업 후에 위기를 맞으셨다고 들었습니다.


KAIST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했는데, 건강진단을 받고 결핵 판명을 받았어요. 심각한 상태여서 모든 것을 중단하고 시골에 내려가 요양을 했어요. 저는 하나님께 잘 보이면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고 나의 꿈을 실현시키신다고 확신했기에 대학 생활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어요.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고 전도한 것밖에 없는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원망과 절망의 시간을 보내다 어느 날 농작물 옆에서 자라는 잡초를 보면서 ‘아! 하나님의 은혜는 고난과 공존하는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고난이 있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즉시 회개기도를 드렸죠. 그날부터 말씀을 읽으며 영적인 눈을 뜨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골에서 1년 동안 살면서 결핵도 고치고, 몸무게도 20kg 늘어서 예전보다 더 건강한 상태로 회복됐어요. 이후 유학 생활을 하면서 제가 결핵을 앓은 것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만일 당시 20kg이 늘어나지 않았다면 체력이 달려서 고난의 연속인 유학 생활을 중도에 포기했을지도 모르거든요.

미국 유학 생활도 우여곡절이 많았지요?


네. 미국 유학을 준비하면서부터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7년 동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오하이오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유전공학을 공부했는데, 두 학기 만에 학교에서 쫓겨났어요. 성적이 미달되었거든요. 망연자실했죠. 제가 실력이 없어서 쫓겨났으면서 하나님이 방관해서 쫓겨났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 바에는 차라리 미국 유학을 막으시지 왜 여기까지 보내셨느냐고 원망했어요. 어느 대학원에서도 절 받아 주지 않아서 공원 벤치에 앉아 절망하기를 반복했죠. 그러다 에드나 어머니에게 저의 상황을 이야기했어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했는데, 지금 내 꼴이 뭐냐고 따졌죠. 그때 에드나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신다고, 그분의 사랑을 믿으라고, 그리고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씀하셨어요(God loves you. Trust His love. I pray for you). 저와 주고받던 편지에서 매번 하시던 말씀이에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기다리고 있으니 기도하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면역학으로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지낸 시간이 다섯 달 정도 됐던 것 같아요. 에드나 어머니의 말씀처럼 기도하며 지냈죠. 사실 기도밖에는 할 일이 없었어요.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어요. 오하이오주립대학교 도널드 딘 교수님이 추천서를 써주신다는 거예요. 제게 C학점을 주신 분인데 말이에요. 덕분에 애리조나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찰스 스털링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모시고 수학하고 싶다면 박사과정에 입학할 수 있다는 조건이 따라붙었어요. 애리조나대학원에서는 이미 저에게 불합격 통지를 보냈는데, 미생물 면역학과 스털링 교수님이 저를 가르치고 싶다고 해서 연락이 온 거였어요.

생물학에서 면역학 학위로는 한국에서 교수가 될 수 없었어요. 면역학은 의과대학에서 가르치기 때문에 의료 관련 학위가 있어야만 했어요. 그러니 생물학과 교수가 되기를 원한다면 면역학 학위는 제게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제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그렇게 해서 스털링 교수님 문하에 들어갔는데 그분이 마침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를 연구하고 있었어요. 당시까지만 해도 관심조차 없던 분야였는데, 그분과 함께 에이즈를 연구하고 공부했고, 그 결과 지금 저는 ‘아시아 최고의 에이즈 전문가’가 됐어요. 하나님의 계획은 제 계획보다 크고 놀랍다는 걸 가르쳐 주신 사건이었어요. 

만약 제가 계속 유전공학을 공부했다면 교수가 되기 힘들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당시 공부 좀 한다 하는 학생들은 죄다 유전공학을 전공했거든요. 그들과 경쟁해서 교수가 되는 건 정말 어려웠을 거예요. 그런데 면역학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대학 입학 당시 미생물학과에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죠. 

제가 박사학위를 받던 1989년 말에 한국의 대학에서 생물학과에 면역학 과목을 개설했어요. 면역학 공부를 시작할 때는 전혀 가망이 없던 교수의 길이 갑자기 활짝 열린 거죠. 이듬해인 1990년에 건국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로 채용이 됐어요. 면역학으로 생물학 분야에서 교수가 된 건 한국에서 제가 두 번째예요. 꼴찌였던 제가 마침내 교수가 된 거예요. 저는 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제 안에 소원을 심어 주시고 그 소원을 이루어 주셨어요.



월드비전 회장으로서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요?


지난 4년 동안 ‘꼴찌박사’로 살아온 것은 제가 계획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에요. 제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길로만 하나님은 저를 인도하셨어요. 올해 하나님께서 한국 월드비전 회장으로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어요. 이곳에서 ‘인생 2막’을 아름답게 펼쳤으면 좋겠어요. 한국 월드비전은 국제 파트너십과 리더십을 강화하고 기부 투명성 제고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어요. 지금도 월드비전은 투명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앞으로 후원자들이 어떤 부분을 더 투명하게 공개했으면 하는지 파악하고 실행하려고 합니다. 후원자 확보를 위한 마케팅 전략도 ‘뉴노멀’ 시대에 맞게 패러다임을 새롭게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직원이 행복한 월드비전이 되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가이드포스트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분은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은 그분의 기쁘신 뜻을 위해서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직접 일하시며 우리를 자라게 하세요. 우리는 다만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지금 내게 맡겨진 일을 하면 돼요. 지금 어떤 자리에 있든지 지금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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