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악순순환을 끊고 선순환으로

Guideposts 2021 |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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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posts 2021 | 01

악순환을 끊고 선순환으로

He survived 15 seasons playing pro football. Yet nothing compared to the violence in his home growing up. As an NFL executive, husband and father, he’s committed to…

트로이 빈센트는 프로 미식축구 선수로서 15시즌 207경기를 뛰었다. 

지금은 프로미식축구협회 임원이 되었다. 이렇듯 자기 분야에서 성공적인 삶을 산 

그이지만, 어린 시절 그가 가정에서 겪은 폭력의 기억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제 그는 자신이 헌신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

By TROY VINCENT, Purcellville, Virginia

트로이 빈센트  버지니아주 퍼셀빌

The sound is seared into my memory. Heavy footsteps. Pounding. Screaming. A storm of violence on the other side of my bedroom wall. More heavy footsteps and a slammed door. Eerie silence.

I was seven years old when my mom’s boyfriend, the father of my younger brother, terrorized our family. He was a jealous, controlling man with a volcanic temper. If another man as much as looked at Mom on the street, she was in for a beating.

My brother and I cowered, terrified. When the storm had passed, I crept through the apartment, eventually finding my mom sprawled unconscious and bloody. I ran into the hall and knocked on neighbors’ doors. No one dared answer. I had to go to the bar next door to call 911 on a pay phone.

I grew up to become a star defensive player and a high-ranking executive for the National Football League. During my 15 seasons in the NFL, I played 207 games, intercepted 47 passes and racked up nearly 900 tackles. Yet nothing in my career as a hard-hitting defensive back compares to the violence experienced by my family growing up.

Which is why my life on and off the field has been devoted to combating domestic abuse and promoting the dignity of women and the responsibility of men to end this scourge. How does someone who makes his living in an inherently violent sport fight violence in the home?

The answer to that question encompasses a lifetime, but it can be boiled  down to one word: faith. It was God who steered me away from a path followed by many kids who experience domestic violence—becoming an abuser myself. It was God who enabled football to become a transformative force in my life.

그 소리는 내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묵직한 발소리, 두드리는 소리, 비명. 내 침실 벽 맞은편에서 격하게 몰아치는 폭력이었다. 무거운 발소리가 더 이어지고 문이 쾅 닫힌다. 으스스한 침묵.  

엄마의 남자친구이자 남동생의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공포로 몰아넣었을 때 나는 일곱 살이었다. 그는 폭발하는 성미를 지녔으며 질투심이 많고 강압적인 사내였다. 길에서 다른 남자가 바라보는 정도로도 엄마는 맞을 터였다. 

동생과 나는 겁에 질려서 움츠렸다. 폭풍이 지나가면 아파트를 살금살금 가로질러 의식을 잃고 널브러진 피투성이 엄마를 마침내 찾아냈다. 복도로 달려 나가 이웃집 문을 두드렸다. 누구도 감히 응답하지 못했다. 이웃한 술집까지 가서 공중전화로 911에 알려야 했다.   

나는 자라서 인기 수비수와 프로미식축구협회(NFL)의 고위 임원이 되었다. 리그에서 15시즌을 뛰는 동안 207경기에 출장했으며 패스 47개를 가로챘고 거의 900개에 달하는 태클을 해냈다. 그렇지만 적극적인 수비수라는 내 경력도 성장기에 가족 때문에 경험해야 했던 폭력에 비할 순 없다. 

그런 이유로 경기장 안팎에서 내 삶은 가정 폭력에 맞서 싸우고 여성의 존엄과 남성의 책임감을 끌어 올려서 이러한 재앙에 종지부를 찍는 데 헌신했다. 본질적으로 폭력적인 스포츠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 어떻게 가정 폭력에 맞서 싸우는가? 

그 질문의 답은 평생을 아우르지만, 결국 한 단어, ‘신앙’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하나님께서 가정 폭력을 경험한 많은 아이가 따르는 행로, 즉 나 자신이 학대자가 되는 길에서 나를 떼어 놓으셨다. 미식축구를 내 삶에서 변화를 이끄는 힘으로 바꾸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And it was God who led me to Tommi, my wife of 26 years and the mother of our five children. Tommi also experienced abuse growing up, and she taught me how to be a tender husband and father. Together we have made campaigning against domestic violence a family mission. Never doubt God’s power to turn tragedy into hope, love and healing.

My mom, Alma, was a good person with an inner reservoir of strength. But she was young when I was born, just 19 years old. She fell prey to domineering men who used violence to compensate for their own insecurities.

Too young to defend her, I did my best to support her. My brother and I nursed her back to health whenever she returned from the hospital, bandaged and in a cast.

Why didn’t she just leave? It’s the age-old question. The answer is complex, but it’s important to remember that many women see no way out.

Some women depend on their abuser financially. Others have been emotionally warped into believing that the violence is their fault. They trust the abuser’s seemingly sincere apology and hope against hope there won’t be another beating. They fear that if they leave, the abuser will track them down and kill them.

Eventually, Mom’s abusive boyfriend moved on and she found a better path. Being raised with the help of Mom’s parents, Jefferson and Julia Vincent, was a blessing. Grandpa, a World War II veteran, and Grandma were devoted members of Shiloh Baptist Church in Trenton, New Jersey.

I was raised in that church. The decisive moment in my life is not an interception in a championship game or being a first-round NFL draft pick or making the Pro Bowl. One Sunday morning when I was 16 years old, the pastor preached a sermon about Jesus sacrificing himself on our behalf. “God has a plan for your life,” the pastor said.

26년 동안 내 아내였으며 우리 다섯 아이의 어머니인 토미에게 날 인도하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토미 역시 자라는 동안 학대를 경험했고, 온화한 남편과 아버지가 되는 법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우리 부부는 가정 폭력에 맞서자는 캠페인을 가족의 사명으로 삼았다. 비극을 희망, 사랑, 치유로 바꾼 것은 의심할 바 없이 하나님의 권능이었다. 

나의 어머니 앨마는 내면에 무한한 힘을 품은 좋은 분이셨다. 하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고작 19세밖에 되지 않았고 어렸다. 엄마는 강압적인 남자들의 먹잇감이 되었고 그들은 자신의 불안감을 상쇄하려고 폭력을 행사했다.  

엄마를 지키기에 너무 어렸던 나는 엄마를 지원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동생과 나는 엄마가 붕대를 감고 깁스를 한 채로 병원에서 돌아올 때마다 건강을 되찾도록 간호했다. 

엄마는 왜 그저 떠나지 않았을까?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 답은 복합적이지만, 많은 여성이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한다는 점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어떤 여성들은 학대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한다. 다른 이들은 정서적으로 왜곡되어 폭력이 자신의 탓이라고 믿는다. 언뜻 진솔해 보이는 학대자의 사과를 믿고 또다시 구타는 없으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는다. 만약 떠났다가는 학대자가 찾아내서 자신을 죽일까 봐 공포에 떤다. 

결국 폭력을 쓰던 엄마의 남자친구는 떠나갔으며 엄마는 더 나은 길을 찾았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뉴저지주 트렌턴에 있는 샤일로 침례교회의 헌신적인 교인이었다. 

나는 그 교회에서 성장했다. 내 삶의 결정적인 순간은 챔피언 결정전에서 공을 가로채거나 NFL 1차 지명에 오르거나 프로 볼(미식축구 각 팀에서 가장 우수한 선수들을 뽑아 벌이는 경기‒역주)에 출전한 게 아니었다. 열여섯 살 어느 일요일 아침, 목사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하신 예수님을 설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삶을 위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내게 직접 얘기하시는 것 같았다.

It was as if he spoke those words directly to me. Studies show that children who witness domestic violence are three times more likely than their peers to commit violent acts themselves. Even though I didn’t know the statistics back then, I knew I didn’t want the violence and fear I’d experienced to become my future.

In the sermon, I heard a promise. If I gave myself to God, God would show me a way out.

I want that, I thought. I don’t have to be what I’m surrounded by. I want a different life.

Immediately God put another thought into my head: “Honor your mother. Take up her cause.” I vowed to become a lifelong advocate for victims of domestic violence.

God made good on his promise. I excelled on the football field in high school and was recruited by the University of Wisconsin.

I honored my own promise by visiting safe houses for abused women while in college and took on additional study under professors specializing in issues surrounding domestic abuse. It was all preparation for using my platform as a football player to become a spokesperson on ending domestic violence.

A few years after I started playing in the NFL, as a cornerback for the Miami Dolphins, I asked my mom if I could speak publicly about the abuse she endured.

“Absolutely,” she said. “People need to hear. I’m proud of you, son.”

I’m not sure what meant more to me, her blessing on my activism or her pride in the man I was becoming.

I was newly married by then. Tommi and I had met while we were in high school. My best friend was dating her sister. “Who is that young lady who’s always with your girlfriend?” I asked. We started dating while she was in college and I was going into my rookie year with the Dolphins. Tommi and I married two years later.

I thought I understood domestic violence until Tommi told me her own story of being abused by boys she had dated in high school. I realized then there was much more I had to learn.

Now I was the man putting a woman in a position of potential vulnerability. Everything I did—talking, holding Tommi’s hand, hugging her—was an opportunity to demonstrate love, tenderness and support. Or the opposite.

My responsibility extended beyond that. At first, I tried to stay out of it when players talked disrespectfully about women in the locker room. As I gained confidence on the field, I spoke up.

A teammate was once joking about women while holding a dirty magazine for everyone to look at. I waited until he was done, then took him aside.

“I’ve heard you say you want to find a nice young lady and raise a daughter and have a good family,” I told him. “Would you want your daughter to hear you talking like that? You’re a leader on this team, but what you’re doing right now is not leading.”

He was mad at first. But he never repeated that behavior. Years later, we appeared onstage together at a benefit. He told that story and said that moment changed his attitude.

연구에 따르면 가정 폭력을 목격한 아이들은 그 자신도 폭력적인 행동을 저지를 가능성이 또래보다 3배나 더 높다. 그 당시에 그런 통계는 몰랐지만, 예전에 겪은 폭력과 공포가 내 미래가 되는 건 원하지 않는다는 정도는 알았다. 

설교에서 약속을 들었다. 나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출구를 보여 주시리라는 것이었다. 

‘그걸 원해요. 꼭 제 환경처럼 되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저는 다른 삶을 원해요.’ 

하나님께서는 즉시 내 머리에 다른 생각을 심어 주셨다. 

“네 어머니를 공경해라. 어머니의 소신에 동참하라.” 

나는 가정 폭력 피해자의 평생 옹호자가 되겠다고 맹세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셨다. 고교 시절 나는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위스콘신 대학교에 스카우트되었다. 

대학 시절에는 학대 여성을 위한 안전 가옥을 찾아가며 약속을 지켰고, 가정 폭력을 둘러싼 문제를 전공하는 교수진 아래에서 추가로 공부했다. 모든 것이 미식축구 선수라는 내 기반을 이용해서 가정 폭력에 마침표를 찍는 대변인이 되려는 준비 과정이었다. 

마이애미 돌핀스의 코너백(후방 측면을 지키는 수비수‒역주)으로서 NFL 선수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몇 년 뒤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견뎠던 학대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도 되는지 여쭤보았다. 

“당연하지. 사람들은 들어야 해. 네가 자랑스럽구나, 아들아.” 

내 활동에 대한 어머니의 축복과 장성한 내 모습에 대한 어머니의 자부심 중 무엇이 더 내게 의미 있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즈음 나는 신혼이었다. 토미와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만났다. 가장 가까운 친구가 토미의 언니와 사귀고 있었다. 

“항상 네 여자친구랑 같이 있는 저 아가씨는 누구야?”

토미가 대학에 다니고 내가 돌핀스팀에서 신인 시절을 시작할 때 우리는 사귀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 뒤에 결혼했다. 

토미가 고등학교 때 사귀던 남자애들에게 학대당했다고 이야기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가정 폭력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알아야 할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보니 내가 바로 여성을 잠재적으로 취약한 처지로 몰아넣는 남자였다. 내가 하는 모든 것‒대화, 손잡기, 포옹‒이 사랑, 다정함, 지지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었다. 

내 책임감은 그 너머까지 미쳤다. 초기에는 선수들이 탈의실에서 여성에 대해 무례한 이야기를 하면 끼지 않으려고 했다. 경기장에서 자신감을 얻으면서는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했다. 

한번은 팀 동료가 모두가 볼 수 있게끔 추잡한 잡지를 들고 여자에 대한 농담을 늘어놓았다. 그가 말을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옆으로 데리고 갔다. 

“멋진 아가씨를 만나서 딸을 키우고 좋은 가정도 꾸리고 싶다고 네가 얘기한 걸 들은 적이 있어. 네가 그렇게 지껄이는 걸 딸이 들으면 좋겠어? 너는 이 팀의 리더지만, 지금 하는 짓은 리더답지 못해.” 

처음에 동료는 화를 냈지만, 다시는 그런 행동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몇 년 후 우리는 자선 행사에서 함께 무대에 섰다. 그는 그때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그 순간이 자신의 태도를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 

I retired from playing after the 2006 season and moved into NFL leadership. As executive vice president for football operations, I oversee all aspects of the game-day experience: referees, stadiums, coaches, rules. I also coordinate outreach to high schools and colleges.

My advocacy continues to be an integral part of my life. Tommi and I started a nonprofit called Love Thy Neighbor, which supports after-school programs, college tours and other character-building activities for students in underserved neighborhoods.

At the NFL, I’ve helped develop training programs to prevent workplace harassment and abuse at home. Players, coaches and other league employees have been taught how to respond if they witness harassment or abuse. I travel the country speaking to men’s groups, colleges and youth.

After Baltimore Ravens running back Ray Rice was indicted in 2014 for punching his fiancée in a casino elevator, I gave an emotional address to a United States Senate hearing on domestic violence in professional sports. I helped rewrite the league’s personal conduct policy and offered to help Rice steer his life back on course after he was suspended from the NFL.

I believe in justice. I also believe in forgiveness. Domestic violence can be prevented only if perpetrators are given the support and education they need to overcome their inner demons.

A few years ago, my principles were put to a severe test when our oldest children, Desiré and Troy Jr., told Tommi and me a terrible secret. They had been sexually abused by an extended family member when they were little. They had been too frightened and confused to say anything.

I was devastated. I confronted the family member and notified law enforcement. The incident had happened too long ago to press charges.

The greater challenge was supporting my children after realizing I had failed to protect them. I held them. I told them I loved them and believed them. I made sure they got counseling.

Thanks be to God, Desiré and Troy Jr. had a strong enough foundation growing up that they were able to weather this crisis. They are both thriving now. Troy Jr. and his wife have three beautiful children, and he is launching a career in homeland security management. Desiré works as a communications strategist in Detroit, and she and her husband have a daughter. All of my kids volunteer.

Tommi and I are now grandparents. I may look like a former football player, but in reality I am Pop Pop. There is a new generation in my family. New parents. New children. New opportunities and responsibilities.

God has blessed me with this family. He has blessed me by opening my eyes to my responsibilities as a man, a football player, a husband, a father and now a grandfather. Domestic abuse is multigenerational. But so are love and tenderness and family members learning to take care of one another.

I let God into my heart, and he interrupted that multigenerational spiral. He replaced it with a life of love and public witness. That’s a victory I celebrate every day. A victory far greater than anything achieved on the gridiron. A victory that I pray will inspire you and strengthen your faith to meet the challenges you face in your life.

2006년 시즌을 끝낸 뒤 선수로서 은퇴하고 NFL 지도부로 옮겨 갔다. 미식축구 운영이사로서 나는 심판, 경기장, 코치, 규칙처럼 경기 당일에 경험하는 모든 측면을 감독한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로 나가는 봉사 프로그램도 조정한다. 

내 삶에서 여성 권익 옹호는 계속되는 필수 요소다. 우리 부부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비영리 단체를 시작했는데, 정부의 원조가 충분하지 않은 지역에 사는 학생을 위한 방과 후 프로그램, 대학 탐방, 여타 인격 함양 활동을 지원한다. 

NFL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과 가정 내 학대를 예방하는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기여했다. 선수와 코치 및 리그의 다른 직원들은 괴롭힘이나 학대를 목격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교육받는다. 나는 남자 전도회, 대학, 젊은이에게 연설하며 전국을 돌아다닌다. 

2014년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러닝백(수비의 가장 뒤쪽에 있다가 공을 받아 달리는 공격수‒역주) 레이 라이스가 카지노 엘리베이터에서 약혼녀를 주먹으로 가격해서 기소된 후에는 프로 스포츠계의 가정 폭력을 다루는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감정에 호소하는 연설을 했다. 리그의 개인행동 강령을 개정하는 데도 일조했으며, 라이스가 NFL에서 출장 정지 처분을 받은 후에는 그가 삶을 돌이킬 수 있도록 이끄는 데 힘을 보탰다. 

나는 정의를 믿는다. 용서도 믿는다. 가정 폭력은 가해자가 내면의 악마를 이겨 내는 데 필요한 지지와 교육을 받을 때만 예방할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나의 신조가 가혹한 시험대에 올랐다. 장녀 데지레와 장남 트로이 주니어가 우리 부부에게 끔찍한 비밀을 털어놓았을 때다. 둘은 어렸을 때 친척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 아이들은 너무 무섭고 혼란스러운 나머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친척에게 따져 묻고 법 집행 기관에 알렸다. 고소하기에는 너무 오래전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더 큰 어려움은 내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걸 깨달은 후에 그들이 낙심하지 않게 지원하는 일이었다. 아이들을 껴안았다. 사랑하고 믿는다고 얘기해 주었다. 아이들이 확실히 상담받게끔 했다. 

하나님 덕분에 데지레와 트로이 주니어는 스스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토대를 아주 튼튼하게 키워 나갔다. 지금은 둘 다 잘 자랐다. 트로이 주니어는 아내와 함께 근사한 세 아이를 두었으며, 국토 안보 관리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데지레는 디트로이트에서 통신 공학 전략가로 일하며 남편과의 사이에서 딸 하나를 두었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 봉사활동도 한다. 

토미와 나는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다. 전직 미식축구 선수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현실의 나는 할아버지다. 우리 가족 안에는 새로운 세대, 새로운 부모, 새로운 아이들, 새로운 기회와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가족이라는 은혜를 베푸셨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남자로서, 미식축구 선수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이제는 할아버지로서 책임질 일에 눈을 뜨게끔 축복해 주셨다. 가정 폭력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일어난다. 하지만 사랑, 온화함, 서로 보살피는 법을 배우는 가족도 여러 세대를 아우르며 존재한다. 

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였고 그분께서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어 내셨다. 그리고 그 악순환을 사랑과 대중 간증의 삶으로 대신해 주셨다. 그것이 바로 내가 매일 축하하는 승리다.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성취한 무엇보다도 훨씬 더 위대한 승리다.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그들이 삶에서 맞닥뜨리는 난관을 헤쳐 나가게 해줄 믿음에 힘을 보태 달라고 기도드리는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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