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심장이 곧 우주예요


Guideposts 2021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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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곧 우주예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 마무리되는 모습이 의료기계 속 심장박동이 멈추는 장면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만큼 심장이란 삶의 시작과 끝에서 인간의 생명을 상징한다. 그 심장을 평생 동안 진료하고 연구해 온 사람이 있다. 심장질환 명의 김영훈 의료원장(이하 원장)이다. 국내 최초로 심방세동 치료를 위한 ‘전극도자절세술’과 ‘24시간 응급 심장마비 부정맥 시술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완치율 90% 이상의 세계적인 부정맥 권위자다. 실제로 만난 의사 김영훈은 그러한 세간의 평을 부인했다. 자신이 이룬 성과에서는 팀을 앞세우고, 그리스도인의 책무를 말할 때는 부끄럽다고 했다.

고려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인 김영훈 원장, 그에게서 신앙을 가진 현대인의 깊은 성찰을 엿볼 수 있었다.



원장님을 만나기 전에 역사관에 잠시 들렀습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초기 역사에서 여성 의료 선교사의 이름이 보이던데요.


로제타 홀 여사를 보셨군요. 대단한 분입니다. 이십대 초반의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조선에 왔죠. 조선은 아마 그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였을 겁니다. 로제타 홀 여사가 의대 재학 시절 선생님이 그러셨대요. “네가 인류를 위해 봉사하려거든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렴.” 거기에 울림이 있었는지, 필라델피아에서 한 달이나 걸려 제물포를 통해 한양으로 왔어요. 이 땅에서 결혼도 하고 아들과 딸도 낳았죠. 불행히도 얼마 되지 않아 남편과 딸을 잃었어요. 그쯤 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혼자서 아들을 키우며 그 삼엄한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대한민국 의료 현대화를 위한 초석을 놓았습니다. 아들 셔우드 홀은 우리나라 최초로 크리스마스‒실(Seal)을 발행하고 결핵 퇴치 운동을 벌인 분이에요. 한국에서 태어난 외국인 의사 1호입니다. 그야말로 온 가족이 삶과 죽음으로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지요. 저는 그분들 생각만 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부총장이 되고 난 뒤 보직자들과 함께 양화진엘 갔어요.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면서 묵례를 올렸습니다. 



그러셨군요. 아들 셔우드 홀에 대하여는 익히 들어 왔지만, 이 땅에서 태어난 외국인 의사 1호라는 설명을 들으니 더 새롭습니다. 백 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네요.


우리 의과대학의 뿌리를 찾으면 로제타 홀 여사에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열매가 여기까지 온 겁니다.



원장님은 평생 심장을 연구하셨어요. 심장이라고 하면 뭐랄까 굉장히 신비롭고도 또 고마운 느낌이 듭니다. 심장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던가요?


심장을 잘 보면 우주를 느낄 수 있어요. 질서 있는 상태로서의 우주, 코스모스입니다. 그 우주가 하나의 기관으로서 인간의 몸속에 자리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 심장의 박동이 고르지 않다면 우리는 그 상태를 무질서한 상태로서의 우주, 즉 카오스로 보는 거죠. 내 안에 있는 우주로서 심장을 생각해 보는 겁니다. 창세기를 보면 혼돈과 무질서에서 ‘빛이 있으라’는 말씀으로 세상이 창조됩니다. 의사가 심장을 치료하는 것에도 이러한 진리를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이 빛이 되어 세상의 질서가 잡히듯, 카오스 상태의 심장을 다시 코스모스로 돌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선입니다.

놀랍습니다. 굉장히 깊이 있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의학의 기본은 철학입니다. 인간의 생명과 삶을 다루기에 그렇습니다. 생명 자체가 존엄하기에 어떻게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느냐가 의학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죠. 심장은 다른 기관에 비해 견디는 힘이 굉장히 강합니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 심장에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는 그 원인을 찾아 통증을 제거하거나 완화시키고자 노력합니다. 인간으로서 살게 하기 위해서죠. 심장이 멎을 때까지 자신의 영혼을 더 풍부하게 하면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도록 돕기 위해 의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의학은 철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뇌가 죽었는데 심장은 뜁니다. 이것을 뇌사라고 하죠. 이 상태는 되돌리기가 어려운 비가역적인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심장이 건강히 뛴다면 우리는 그 심장이 다른 생명의 끈이 되도록 이어 줍니다. 이것도 의학과 철학이 서로 연동된 것이죠. 때로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연결을 지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원장님은 왜 의사가 되셨나요?


의사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나’라는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바라시고 꿈꾸시는 것은 무엇인가. 저는 이 질문에 ‘때’를 넣습니다. ‘나는 왜 이 시기에 의사가 되었는가.’ 우리는 지금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 유행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사람으로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살고 있죠. 코로나는 전 세계의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어요. 인간이 탐욕 때문에 끊임없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지구를 견딜 수 없게 만든다면, 또한 계속해서 많은 양의 탄소를 사용하고 남의 생명을 위협하고 빼앗는 삶을 이어 간다면, 더 이상 지구와는 공존이 어렵게 될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북한 사람들의 생명과도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면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해’ ‘그러기 위해선 저 사람들이 먼저 바뀌어야 해’라는 생각은 매우 자기중심적인 생각입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북한을 머리에 이고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북한 사람들이 겪는 질병의 패턴과 원인 정도는 학문적으로라도 접근하여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백신이 나오게 된다면 접경 지역 병사들과 나눠 맞을 수 있는 정도의 여유는 있어야 합니다. K‒방역이 정말로 롤모델이라면, 북한 주민들까지도 코로나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진정으로 성공한 K‒방역이 아닐까요.



북한을 머리에 이고 있다는 표현이 와 닿습니다. 지정학적으로도 그렇습니다만, 말씀처럼 그렇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것이니까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이스라엘과 시리아 접경지에 가 보면 내전과 오랜 전쟁으로 환자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 접경 지역에 병원을 짓고, 밤에 의사들이 국경을 넘어 몰래 들어갑니다. 그리고 파편에 맞아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오지요. 그렇게 데려온 사람들을 수술하고 회복시켜 돌려보냅니다. 아이들을 위한 구호활동도 병행하면서요. 그 난리 중에 의료인들이 그렇게 합니다. 철조망을 뚫고 갑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런 게 없을까요? 70년 이상 갈라져 있으면서 의료활동을 위한 생명의 끈이 이어져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남한에 살고 계시다면 북한과 어떠한 물꼬도 트지 못하게 내버려 두셨을까요? 저는 그런 것이 굉장히 부끄럽습니다. 현재 북한 주민들은 면역력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전염병이 창궐하면 사망률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동물들이 살처분 당해도 산천이 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환경 자체를 만들면 안 됩니다

결국은 기독교인의 소명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현대사회는 기술적으로는 전보다 나아졌을지 몰라도, 예수님이 사셨던 옛날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정신세계는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정신세계는 더 피폐해지고 단순해졌지요. 요즘 하늘 보고 사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밤에 별을 보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달도 그렇고요. 어쩌면 자연과 사람이 교감하고 어우러지는 생태 환경은 더 안 좋아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매우 파격적으로 사셨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때로는 잘못된 제도나 이기적인 관행들을 쇄신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나 잘되게 해주세요’와 같이 나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하는 갇힌 신앙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곤 합니다. 어떻게 오로지 나만을 위해 살았나 해서요. 부끄럽습니다. 이제는 주위 사람들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새롭게 인식하게 되고요. 몸이 자라는 것처럼 우리의 내면도 신앙적으로 자라야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사회 안에서 살아 있는 기독교가 되기 위해선 도구로 쓰임받는다는 생각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원장님께서는 미국 부정맥학회에서 아시아 유일의 멤버로 참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심장박동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신 건데요.


우선 저는 세계적이지 않습니다. 손흥민 선수가 세계적이라면 맞겠지만 저는 부정맥 분야에서 그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아요. 갈 길이 멀다고 봅니다. 게다가 지금은 보직도 맡고 있고요.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가 나올 수 있는 의료 생태계는 한번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이것은 저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싶어도 아직은 여러 제한이 많습니다. 한 예로, 우리가 지금 코로나 시기를 지나고 있잖아요? 그럼 이 분야에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세계적인 업적을 낼 수 있는 의료 생태계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른바 K‒바이오생태계가 조성되어 코로나가 끝났을 때 메이드 인 코리아가 나올 수 있도록 말입니다. ‘왜 이 시기에 의사가 되었나’ ‘왜 이 자리에 서 있나’를 생각해 봐도 그렇습니다. 그저 ‘나 하나 살아남으면 된다’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방역 모델, 백신 플랫폼 등을 배우러 오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유치할 정도가 되어야 세계적인 것이죠. BTS 이상의 메디컬 모델이 나와야 합니다.



생각만 해도 멋진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부총장으로서 경영과 행정도 하시고 다양한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어떤 꿈을 꾸고 계시는지요?


요한복음에 나오는 베데스다 연못을 떠올려 봅니다. 은혜의 장소라는 뜻이죠. 누구든지 연못의 물이 움직일 때 먼저 들어가면 어떤 병이든 고침을 받게 되었다는 곳입니다. 그 당시에는 일종의 병원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사람들이 아프면 찾는 곳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38년 동안이나 물이 동하면 들어가려고 기다리던 환자가 있었습니다. 영어로는 ‘disabled man’, 움직일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들어가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먼저 들어가 버렸죠. 저 사람보다는 내가 먼저 들어가야지 하고서 말입니다. 그들에게 그 38년 된 환자가 보였을까요? 생각하면 괘씸한 일이지만, 그게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겉은 멀쩡해도 내면은 이미 병들었을 수 있습니다. 물론 거기 온 다른 사람들도 나름의 고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겠죠. 그들에게 움직이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던 그 남자가 보였을 리 없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이 다가가 말을 건네셨습니다. “낫고 싶으냐?” “일어나서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거라.” 예수님은 누워 있던 그 사람을 어떻게 발견했을까요? 아마도 그분에게는 발견의 은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38년이라는 의미도 생각해 봅니다. 그 오랜 기다림. 기다리다 죽을 것만 같은 기다림. 아마도 내 인생은 아무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이대로 끝나겠구나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 선물을 받았죠. 저는 우리 병원이 이런 베데스다 연못과도 같다면 좋겠습니다. 환자와 공감하고, 가슴으로 맞이하고, 같이 손잡아 주고, 아파해 주는 그런 의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의료는 단순히 신체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돌봄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베데스다에서 일어났던 기적이 여기서도 일어나기를 바라며, 그러한 가치가 우리 사회 전체에 퍼져 나가는 데 조금이라도 역할을 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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