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를 만들라"

Guideposts 2021 | 03


Guideposts 2021 | 03

"파이를 만들라"

I knew a message from God when I heard one, but why this?

그걸 듣는 순간, 하나님의 메시지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왜 이런 메시지였을까? 

BY ROSE MCGEE, Golden Valley, Minnesota

로즈 맥기  미네소타주 골든 밸리   

I sat in my living room in Minnesota, watching news coverage of the protests in Ferguson, Missouri, after the fatal shooting of Michael Brown, a Black 18-year-old, by a white police officer. Video of police in riot gear, tear gas snaking through dark streets, people’s eyes filled with anger and fear. How horrible it was that violence had led to more violence! But what could I do?

Go make pies.

The thought came to me in a flash. Not a big booming voice but the seed of an idea. I got up and went into my kitchen. Make pies? Seriously, God?

I couldn’t imagine how pies would help a community torn apart by violence. Sure, my pies were good. The basic recipe came from my grandmother and great-grandmother, who’d raised me in Tennessee. Both were strong, capable women; my grandmother took me to civil rights marches in the mid-1960s. They knew the importance of nourishing our community with good food and collective activism.

My job in our house was cleaning, so I didn’t learn to cook until I was grown. I was married and living in Denver when I tried my hand at making the desserts of my childhood.

“You want four medium sweet potatoes,” my grandmother told me over the phone. “Bring them to a boil in a large pot, then simmer until tender.”

I got pretty good at making pies. When I brought a sweet potato pie to my office for Black History Month, coworkers were amazed by the flavor. That’s Southern Black comfort food for you! Everyone wanted a piece.

미네소타주 우리 집 거실에 앉아서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18세 흑인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의 총격으로 숨진 후에 벌어진 항의 집회를 다룬 뉴스 보도를 보고 있었다. 영상 속 경찰은 폭동 진압 장비를 갖췄고 최루탄이 컴컴한 거리를 갈랐다. 사람들의 눈에는 분노와 공포가 가득했다. 폭력이 더 많은 폭력으로 이어지다니 얼마나 끔찍한가! 하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지? 

‘가서 파이를 만들어라.’ 

별안간 떠오른 생각이었다. 크고 우렁차게 울리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생각의 단초가 되었다. 일어나서 부엌으로 향했다. 

‘파이를 만들라고요? 진심이세요, 하나님?’ 

폭력으로 산산이 찢긴 공동체를 파이가 어떻게 도울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물론 내 파이는 근사했다. 기본 조리법은 테네시주에서 날 키워 주신 할머니와 증조할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 두 분 다 강인하고 수완 좋은 여성이었다. 할머니는 1960년대 중반에 시민 평등권 시위행진에 날 데려가기도 했다. 두 할머니는 맛있는 음식과 단체 행동으로 공동체를 키워 내는 일의 중요성을 알았다. 

집에서 내 할 일은 청소였기 때문에 어른이 될 때까지 요리를 배우지 않았다. 결혼하고 덴버에 살면서 어린 시절에 먹던 디저트를 만들어 보았다. 

“중간 크기 고구마 4개가 필요해. 큰 냄비에서 고구마를 익히는데 부드러워질 때까지 약한 불로 끓이렴.”

할머니가 전화로 얘기했다. 

나는 파이를 제법 잘 만들었다. 흑인 역사의 달(인권을 위해 투쟁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기리는 것으로 2월에 행사가 있다‒역주)을 맞아 사무실에 고구마파이를 가져가면 동료들이 그 맛에 깜짝 놀랐다.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남부 흑인의 그리운 옛 맛이랍니다! 모두 한 조각씩 원했다. 

“Rose, this is really good pie. Have you considered selling them?”

After my marriage ended, I got a job at IBM in Minnesota. I started selling sweet potato pies at farmers markets on the side. I’d come home from work on Friday, bake until 3 A.M., then drag myself to the market by sunrise. My pies sold well, but sweet potato is not a cheap pie to make, and I wasn’t earning enough money to justify the time.

By then, I had remarried and had two children to keep me busy. I made pies for family events and special occasions, but I figured I was done as a professional pie lady.

Yet in August 2014, with my kids grown and my spirit troubled by what was happening in Ferguson, I found myself in my kitchen, with a strange compulsion. Go make pies! I couldn’t fathom the reason, but I knew a message from God when I heard one. So I started baking.

When I finished, I asked my son, Adam, who was visiting, if he would accompany me south. “I’m driving down to Ferguson to deliver pies,” I told him.

“You’re what?” Then Adam saw I was serious. “Of course I’m coming with you.”

We drove more than 500 miles to Missouri with 30 freshly baked pies in the trunk, each in a box with a poem written by my daughter, Roslyn, who’s a pastor.

Southerners are persnickety about their sweet potato pie. Everyone thinks their mama makes it best. Would the folks in Ferguson be leery of me and my pies?

Adam and I pulled up near the Michael Brown memorial. It had been a few weeks since Michael had been killed, and the spot where he died was piled high with flowers, soft toys and cards. A teenage girl was fussing in front of the memorial.

“로즈, 이건 정말 맛있는 파이네요. 팔아 볼 생각해 봤어요?”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후에는 미네소타주 IBM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부업으로 농산물 직매장에서 고구마파이를 팔기 시작했다. 금요일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 새벽 3시까지 파이를 구웠고, 동틀 무렵이면 힘겹게 시장으로 향했다. 파이는 잘 팔렸으나, 고구마파이는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시간에 합당한 돈을 충분히 벌지는 못했다. 

그때쯤 재혼을 했고 두 아이가 생겨 분주해졌다. 가족 행사나 특별한 일이 있으면 파이를 만들었지만, 직업으로서 파이를 만드는 일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14년 8월에는 아이들도 다 자랐고 퍼거슨에서 벌어지는 일로 마음이 괴로워서 불가사의한 충동에 이끌려 부엌에 있었다. ‘가서 파이를 만들어라!’ 이유를 헤아릴 순 없으나, 메시지를 들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베이킹을 시작했다. 

끝마쳤을 땐 날 찾아온 아들 애덤에게 남부까지 동행하겠는지 물었다. 

“차로 퍼거슨까지 가서 파이를 배달할 거야.” 


그러다 아들은 내가 진심이라는 걸 알아챘다.

“물론 같이 가야죠.”

우리는 트렁크에 갓 구운 파이 30개를 싣고 미주리주까지 800km 이상을 달렸다. 모든 상자에는 목사인 내 딸 로슬린이 쓴 시가 같이 들어 있었다. 

남부 사람은 고구마파이에 까다롭다. 다들 자기 엄마가 가장 맛있는 파이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퍼거슨 사람들이 나와 내 파이를 미심쩍어할까?

애덤과 나는 마이클 브라운 기념비 근처에 차를 세웠다. 마이클이 살해당하고 몇 주가 지난 시점이었고 그가 숨을 거둔 지점에는 꽃, 봉제 인형, 카드가 높이 쌓여 있었다. 10대 소녀 하나가 기념비 앞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You should have been inside!” she cried out.

I walked over. “Are you all right?”

The girl paused. “I just wish Michael had been inside.”

I nodded. I wished things had been different too. I wished that folks listened to and respected each other better and didn’t resort to violence. I wished people who loved Christ cared more about the racism in our country. I asked the girl, “Would you like a pie?”

“What kind?”

“Sweet potato.”

“Yes, please.”

I walked back to my car, pulling out one of the carefully boxed pies. I handed it to the girl. She opened the lid.

“It smells so good!” she said and burst into tears. She said Michael had been her neighbor.

I hugged her tight. I wanted to take away her pain, to change what had happened. I couldn’t, but now I understood why God had sent me.

Adam and I drove around Ferguson, asking folks if we could give them sweet potato pie. People were grateful, more than I could have ever imagined.

A woman outside a church held the pie to her chest. 

“My mother used to make us soul food like this,” she said, “but I wanted French fries. 

That’s what the other kids ate.” Her eyes filled. 

“I can’t eat this pie.”

“Oh no, girl,” said her sister, “we’re going to eat this pie.”

“You should enjoy it with your family,” I said.

The woman shook her head. “I’m putting it in the freezer. I need this pie to remind me of my mother.”

On our drive back north, Adam and I talked about what we’d seen, the people we’d met. How can I help more, Lord? I prayed.

You have to lead me.

“안에 있었어야지!” 

소녀가 울부짖었다. 걸어서 다가갔다.


소녀가 잠시 멈췄다.

“그저 마이클이 안에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상황이 달랐기를 바랐다. 사람들이 서로 귀 기울여 듣고 더 존중하며 폭력에 의존하지 않기를 바랐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인종차별에 좀 더 관심을 쏟기를 바랐다. 소녀에게 물었다.

“파이 먹을래?”

“어떤 거요?”


“네. 주세요.” 

차까지 걸어가서 상자에 꼼꼼하게 담은 파이 하나를 꺼내 소녀에게 건넸다. 소녀가 뚜껑을 열었다.

“냄새가 정말 좋아요!”

그렇게 말하더니 눈물을 터트렸다. 소녀는 마이클이 이웃이었다고 했다.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소녀의 고통을 덜어 주고 이미 벌어진 일을 바꾸고 싶었다. 그럴 수는 없었지만, 이제 왜 하나님께서 날 보내셨는지 이해했다. 

애덤과 나는 퍼거슨 인근을 차로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고구마파이를 나눠도 될지 물었다. 그들은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고마워했다.  

어떤 교회 밖에 있던 여자는 파이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저희 어머니가 이런 소울 푸드(미국 남부 흑인의 전통 음식‒역주)를 해주시고는 했어요. 하지만 저는 감자튀김이 먹고 싶었죠. 다른 아이들은 그걸 먹었으니까요. 이 파이는 못 먹겠네요.”

여자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오, 안 돼, 언니. 우리는 이 파이를 먹을 거야.”

여자의 여동생이 말했다.

“가족이랑 같이 먹는 편이 좋아요.”

내 말에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냉동실에 넣을 거예요. 어머니를 떠올리려면 이 파이가 필요하거든요.” 

북쪽으로 운전해서 돌아오는 길에 아들과 나는 우리가 본 것과 만난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주님, 제가 어떻게 더 도울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이끌어 주셔야 해요.’

나는 기도했다. 

God led me to partner with the Minnesota Humanities Center and to hold gatherings over Martin Luther King Jr. weekend. People of all races can come together and discuss how to make our community stronger.

Each year, we’re flooded with volun­teers from all walks of life, who join us in baking pies for the MLK Day of Service. The recipe is mine, passed down from my grandmother, with little tweaks here and there. “What do you think we should add?” I ask volunteers. A bit of lemon, sweetened condensed milk, some salt.

I want folks to bring their communal knowledge to baking pies. We make more than 90 pies per batch, and every batch is a little different. The pies are given out to health-care workers, firefighters, teachers and others. Whenever the world gets me down and I think about all the injustices still left to fix, I remind myself of what I tell our volunteers: “Keep your eyes on the pies.”

I’ve brought pies to comfort people all over the country. To Charleston, South Carolina, after the shooting at Mother Emanuel AME Church, a historic Black church. To the water protectors at Standing Rock(pies baked with the indigenous Circle of Grandmothers). Kosher pies to the survivors of the Tree of Life Synagogue shooting in Pittsburgh. Everyone is appreciative. I’m grateful to come from a line of women who nourished their loved ones and found ways to uplift their communities, one sweet potato pie at a time.

하나님께서는 내가 미네소타 인문과학 센터와 손잡고 킹 목사 탄신일 주말(1월 세 번째 월요일을 킹 목사 탄신일로 기념하므로 그 직전 주말을 의미한다‒역주) 동안 모임을 열게 하셨다. 모든 인종의 사람이 와서 공동체를 더 견고하게 만드는 법을 토론할 수 있었다.

해마다 각계각층의 자원봉사자가 밀려드는데, 그들은 우리와 함께 킹 목사 탄신일 기념 예배를 위한 파이를 굽는다. 조리법은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내 방식이지만, 이곳저곳에서 조금씩 바꾼다.

“뭘 더 넣어야 할까요?”

나는 봉사자들에게 묻는다. 레몬 조금, 가당연유, 소금 약간. 

사람들이 공유하는 지식을 나누면서 파이를 만들면 좋겠다. 우리는 조마다 90개 이상의 파이를 만드는데 모든 조가 조금씩 다르다. 파이는 의료진, 소방관, 교사 및 다른 이들에게 돌아간다. 세상 때문에 낙담하고 여전히 바로잡아야 하는 모든 부당함을 생각할 때마다 봉사자들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파이에서 눈을 떼지 마세요.”  

전국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려고 파이를 날랐다. 유서 깊은 흑인 교회인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 교회에서 총격 사건(2015년 6월 17일에 인종주의자가 총으로 9명을 살해한 사건‒역주)이 있고 난 후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을 찾았고, 스탠딩 록(그 지역의 할머니 모임과 함께 파이를 만들었다)의 물 보호 운동가들(미국 원주민의 성지와 강을 통과하는 원유 수송관 건설 공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역주)도 찾았다. 

피츠버그에 있는 생명의 나무 유대교 회당 총격 사건(2018년 10월 27일에 유대인을 증오하는 백인 남성이 총으로 11명을 살해한 사건‒역주)의 생존자들에게는 유대교 율법에 맞게 만든 파이를 전했다. 모두 고마워했다. 한 번에 고구마파이 한 개씩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기르고 공동체의 힘을 북돋는 방법을 찾아낸 여성들이 있는 가족에 내가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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