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부탁해

Guideposts 2021 |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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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를 만들라"

After my cancer diagnosis, I needed all the support and prayer I could get. 

So why was I having trouble asking for it?

암 진단 후 구할 수 있는 모든 지지와 기도가 필요했다. 

그런데 왜 그걸 부탁하는 게 어려운가?  

BY SHARON MANGAS, Columbus, Indiana

샤론 맹거스  인디애나주 콜럼버스 

4/9/2016, 11:21 a.m.

Dear friends, family and acquaintances,

I got some news this week that threw my world out of orbit. I stopped and stared at the computer screen. Since being diagnosed with Stage I invasive ductal breast cancer a few days before, I’d been fretting about how to tell people outside my immediate family. Was Facebook really the best way to share the news? There wasn’t time for lots of phone calls. I’d considered e-mailing, but it was frustrating trying to compile all the addresses. With Facebook, I could reach more than a thousand friends at once, some I hadn’t spoken with in years. I tapped at the keyboard: So send all your good thoughts, encouragement, prayers, jokes, meditations, favorite Bible verses, good karma and funny stories my way.

Wait, what if I got inundated with pity? That was the last thing I wanted. Once I posted my news, I’d have no control over people’s reactions to it and how those might make me feel. I just couldn’t bring myself to hit enter.

The diagnosis at the Community Hospital in Indianapolis had felt like a bad dream, even with my husband, Mike—my rock—at my side. Dr. Zusan, my surgeon, exuded confidence and kindness, but just hearing the C-word made me break down in sobs. Dr. Zusan took my hand. “Sharon, it’s going to be okay. This is very treatable.” She told me about the surgical options, then directed me to medical oncology. “It’s time to meet Dr. Agarwala,” Dr. Zusan said. “He and I like to say, ‘We have you covered, A to Z!’”

2016년 4월 9일 오전 11시 21분  친구, 가족, 지인들에게 

내 세상을 궤도 밖으로 내던지는 소식을 이번 주에 들었다. 멈춰서 컴퓨터 스크린을 응시했다. 며칠 전에 침윤성 유관암 1기를 진단받았을 때부터 직계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할지 고민했다. 정말 페이스북이 이 소식을 공유할 최선의 방법일까? 전화 여러 통을 걸 시간은 없었다. 이메일도 생각했지만, 주소를 전부 모으는 게 곤욕이었다. 페이스북이라면 한 번에 1000명 넘는 친구에게 연락할 수 있었다. 그중 몇몇과는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다.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러니 내가 가는 길에 모든 좋은 생각, 격려, 기도, 농담, 사색, 좋아하는 성경 구절, 좋은 느낌,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내 주세요.’

잠깐, 동정이 밀려들면 어쩌지? 그건 절대 원하지 않는 거였다. 일단 소식을 올리고 나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그런 반응이 내 기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내 영향력 밖이다. 엔터키를 누를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인디애나폴리스에 있는 커뮤니티 병원에서 진단받은 일은 악몽이었다. 남편 마이크‒내 버팀목‒가 옆에 있는데도 그랬다. 외과의 주산 박사는 자신감과 친절함이 넘쳤으나 C로 시작하는 그 단어(cancer, ‘암’을 의미‒역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흐느끼면서 무너졌다. 박사가 내 손을 잡았다.

“샤론, 괜찮을 거예요. 치료할 수 있어요.” 

박사는 수술이라는 선택지를 얘기해 준 다음, 나를 종양학과로 보냈다. 

“이제 아가왈라 박사를 만날 시간이에요. 박사와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드릴게요!’라고 말하고 싶어 하죠.”

Dr. Agarwala was reassuring, even if he was young enough to be my son. “When I see the results from the Oncotype DX—genetic—testing on your tumor after surgery,” he told me, “that will give us direction on whether chemotherapy is necessary.” Chemo—

another terrible C-word. I envisioned myself gaunt and bald. The faces of my grandchildren flashed through my mind. I was 65. Would I live to see them grow up? Last, we conferred with Dr. Patel, my radiation oncologist, who outlined radiation options.

The weeks before surgery went by fast, with important decisions that had to be made. After Dr. Zusan told me that the survival rate for my type of breast cancer was almost the same whether I chose a mastectomy or a lumpectomy, I opted for a lumpectomy, which meant removing only the tumor and the tissue around it. I decided against reconstruction.

Now, just days before surgery, here I sat, staring at my computer, agonizing over whether to share my situation. Why is this so hard, Lord? I needed all the prayer partners I could get. Mike and I were new to our church and didn’t know many people there yet. Posting my diagnosis might prod other women to get mammograms. But I still didn’t want to let go. Was it because I felt helpless to control what was happening in my own body? Afraid that cancer would take over my life? I’d been down the road with trying to control situations before, and it had nearly been my unraveling. Yet I’d never felt so vulnerable as now, so powerless. I seemed paralyzed.

Suddenly I felt something, like a metaphysical tap on my shoulder. It was God, I was sure. And he was asking a question: When are you going to surrender control? Some things were bigger than me. Wasn’t it better to share my burden with him and, through him, with the people in my circle?

I hit enter. After Mike and I had dinner, I logged back on to Facebook. There were already 70 notifications, with new ones being added as I watched. I heard from people across the country: family, childhood friends, high school and college buddies, former coworkers, even friends of friends. I got hundreds of  “likes” and “loves.” 

아가왈라 박사는 내 아들이라고 해도 될 만큼 젊었지만, 날 안심시켜 주었다. 

“수술 후 환자분 종양의 온코타입 DX‒유전자 관련‒검사 결과를 보면 항암 치료가 필요한지 알 수 있을 겁니다.”


C로 시작하는 또 다른 끔찍한 단어(chemotherapy, ‘항암 치료’를 의미‒역주)였다. 초췌하고 머리가 빠진 내 모습을 그려 보았다. 손주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번쩍 떠올랐다. 나는 예순다섯이었다. 살아서 손주들이 어른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우리는 파텔 박사와 논의했다. 방사선 종양 전문의인 그는 방사선 치료 선택지를 대략 설명했다. 

수술 전 몇 주는 쏜살같이 지났는데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들이 있었다. 나와 같은 종류의 유방암은 유방 절제술을 택하든 유방 종양 제거술을 택하든 생존율이 거의 동일하다고 주산 박사가 얘기해 줬고, 나는 종양 제거술을 택했다. 종양과 주변 조직만 제거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재건술은 받지 않기로 했다. 

이제 수술을 불과 며칠 앞두고 컴퓨터를 응시하면서 내 상황을 공유할지 몹시 고민하면서 여기 앉아 있다. 주님, 이 문제는 왜 이리 어려운가요? 가능한 한 많은 기도 파트너가 필요했다. 마이크와 나는 우리 교회의 신참이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내 진단에 관한 글을 올리면 다른 여성들에게도 유방 검진용 X선 촬영을 하라고 독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제하는 데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일까? 암이 내 삶을 집어삼킬까 봐 두려웠을까? 예전에는 상황을 통제하려고 노력했고 거의 내가 해결해 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취약하고 무력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내가 마비된 듯했다. 

갑자기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추상적인 힘을 느꼈다. 하나님이심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질문을 던지셨다. 통제하겠다는 마음은 언제 단념할 것이냐? 어떤 일들은 나보다 강했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통해서,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과 짐을 나누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엔터키를 눌렀다. 남편과 저녁을 먹고 페이스북에 다시 접속했다. 이미 알림 70개가 있었고, 쳐다보는 동안에도 새로이 늘어났다. 전국 각지에 있는 이들에게 소식을 들었다. 가족, 어린 시절 친구, 고등학교와 대학 때 친구, 예전 동료에다가 친구의 친구까지 있었다. 수많은 ‘좋아요’와 ‘사랑해요’가 달렸다. 

Most heartening was hearing from women who were on their own cancer journey or in remission. I had an instant Facebook support group! “Stay positive,” a friend from California, battling melanoma, posted. “Only let the pity party last a minute…if you even attend it!” An old friend in Colorado told me how her mother had been filled with shame and guilt while facing breast cancer during the 1970s. “I am so proud that you chose to share your story. Big props for letting in all the love you can!” A guy I knew from high school wrote, “The fact that you are opening your heart to go public and inviting love and support is tremendously powerful.” With this mighty group of prayer partners backing me, I knew I could handle the challenges that lay ahead.

The surgery went well, confirming that I was Stage I. Because my lymph nodes were free of cancer and the score from the genetic testing was in the acceptable range, I was able to forgo chemotherapy. I underwent a month of concentrated radiation treatments and started on a hormone-suppressing medication, which I still take. At 69, I’m now four years out from my diagnosis, and my prognosis is good.

I’ve never regretted sharing my story. I can’t control the cancer or people’s reactions or my worries sometimes. What I can do is let go, let God and let love in, as my Facebook friends reminded me.

Just one more post: Thank you for being part of my circle of life.

가장 고무적인 건 암이라는 여정 위에 있거나 차도를 보이는 여성들의 소식이었다. 나는 즉시 페이스북 서포트 그룹을 만들었다! 흑색종과 싸우고 있는 캘리포니아주의 한 친구는 “긍정적으로 지냅시다”라는 글을 올렸다. “동정심으로 가득한 파티는 1분만 이어지게 하세요… 만약 당신이 그 파티에 참석하고 있다면요!” 콜로라도주의 옛 친구는 1970년대에 유방암과 싸웠던 자기 어머니가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얘기를 꺼냈다. 

“네가 이야기를 공유하기로 마음먹어서 무척 자랑스러워. 받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맞이했다는 점에 경의를!” 

고등학교 때 알고 지내던 이는 “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마음을 열고 사랑과 지지를 청한 일은 굉장히 감동적이야”라고 썼다. 내게 힘을 보태는 기도 파트너들로 이루어진 이 대단한 그룹과 함께라면 앞으로 닥칠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는 걸 알았다.  

수술은 잘됐고 1기 암이라는 것도 확실했다. 림프샘에는 암이 없었고 유전자 검사 점수도 그런대로 괜찮은 수준이었기에 항암 치료 없이 끝낼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고 호르몬 억제제를 복용하기 시작했으며 여전히 먹고 있다. 예순아홉의 나는 이제 암 진단을 받고 4년이 지났으며 예후도 좋다. 

내 이야기를 공유했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암, 사람들의 반응, 내 걱정은 종종 통제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건 페이스북 친구들이 일러주었듯, 떨쳐 내고 하나님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만 더 써야겠다. 내 삶의 주기에서 일부가 되어 준 여러분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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