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내 삶을 좋은 예시로
Guideposts 2021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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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좋은 예시로
오래 하던 일을 그만두고 갑자기 시작한 일은, 학교 밖 청소년들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는 일이었다. 퇴사한 지 불과 3개월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 본인의 소감을 그대로 옮겨야겠다. “그니까 산꼭대기에서 급류를 타고 래프팅하듯 휩쓸려간 것 같아요. 어디로 갈지 모르는 마음으로 그냥 막 내려온 거지요.” 사실이 그랬다. 벌써 몇 년 전 일이지만, 그때 일을 회상할 때면 그의 눈빛이 유독 반짝였다. 최근에는 지인과 함께 회사를 설립했다. 카카오나 네이버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온라인 플랫폼 시장에서 스포츠 부문으로 대표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직 래프팅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다이내믹한 인생 스토리를 듣고자 인스포츠코리아 김현태 이사를 만나 보았다.
작년 11월이면 코로나로 수능도 연기된 때인데, 무려 창업이라니요.
좀 그렇죠?(웃음) 개인적으로 보면 무모한 일일 수 있는데, 사실 갑자기 나온 아이디어는 아닙니다. 회사를 설립하기까지 오래 준비해 왔어요. 이미 멤버들은 그 분야에서 자기 전문성을 가지고 일해 왔고요. 보다 체계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싶어서 회사를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인스포츠코리아는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가요?
우리가 네이버라고 하면 검색 엔진이나 블로그, 카페 등이 망라된 플랫폼으로 인식하잖아요. 배달 음식 하면 ‘배달의 민족’이 떠오르고, 중고거래 하면 ‘당근 마켓’이 떠오르고요. 스포츠 기록 관리 플랫폼이라고 하면 딱 저희 ‘스포탯’이 떠오르게 하고 싶은 겁니다. 비단 전문적인 프로선수들의 기록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체육 활동도 스포탯을 통해 좋아하는 선수의 기록을 조회하거나, 실제로 자신의 활동을 기록하여 관리할 수 있습니다. 가령 국내에 활성화되어 있는 조기축구의 경우, 매 경기 기록이 데이터베이스화되고 공유가 가능해진다면, 자신의 기록을 프로선수처럼 관리할 수 있고, 팀끼리 비교하며 경쟁할 수도 있게 되는 거죠.
흥미롭네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경기가 끝나면 꼭 기록을 찾아서 봅니다.
그동안은 어떤 협회나 연맹에서만 시스템을 가지고 기록 관리를 해왔는데요, 저희는 그걸 플랫폼 형식으로 풀어 버리고 싶은 것입니다. 스포츠 기록의 입력과 저장, 재생과 공유까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거죠.
그게 플랫폼의 매력이죠.
네. 언젠가는 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보고요, 결국 한국 스포츠가 흘러가야 하는 방향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좀 더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연말에 개발을 마치면 내년에는 상용화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이랜드에서 오래 일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퇴사하신 후에 학교 밖 청소년들과 카페를 운영하셨는데, 무슨 계기가 있었던 건가요?
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예전부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인생의 비전이 뭐냐고 물으면 그건 바로 청년들에 대한 마음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뭐가 잘나서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아니에요. 누군가를 키워 주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교만한 마음 같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청년들에게 신앙의 경험이나 인생의 경험을 물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제 삶에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다는 거겠죠.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하면서 교회도 작은 개척교회로 옮기게 되었고, 어쩐지 청년들을 향한 열정을 표출할 만한 통로가 막힌 느낌이었어요. 회사에서도 물론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았고요. 그러던 중 우연히 가게 된 세미나에서 가출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그날 강의를 듣고 집에 오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조금은 막연하지만, 뭔가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 싶었죠. 그리고 조금 고민하다 잊고 살았습니다. 그때가 2017년이었는데,
1년 후 친구에게 문자가 하나 왔어요. 신한은행에서 하는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학교 밖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카페를 열어서 커피 교육을 시켜 주고 이들을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라며, 네 생각이 나서 문자 보낸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순간 소름이 돋았죠. 나는 잊었는데 혹시 주님이 기억하셨나 싶었습니다. 아내에게 그 문자를 보여 줬는데 평소라면 당연히 반대했겠지만, “어, 이거 오빠가 하고 싶었던 거잖아” 그러는 거예요. 6월 2일에 그 문자를 받고 그달 말일에 바로 퇴사를 했어요. 그리고 무턱대고 시작하게 된 거죠.
아니, 그 공모사업에 당선된 것도 아닌데 퇴사부터 하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긴 해요. 퇴사한 지 열흘 만에 법인을 세우고, 그걸로 입찰에 나선 거니까요. 거의 산꼭대기에서 급류를 타고 래프팅하듯 휩쓸려 간 것 같아요. 어디로 갈지 모르는 마음으로 그냥 막 내려온 거지요. 뭔가에 사로잡힌 것처럼요. 법인명을 ‘좋은 예시’라고 지은 것도 세상에 좋은 예시가 되는 회사를 한번 만들어 보자는 취지였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되게 벅차요. 간혹 내가 왜 그때 이랜드를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같은 결정을 내릴 것 같아요.
정말 다이내믹한 스토리네요.
그렇죠. 그때 그 프로젝트로 24명의 청소년들을 만났어요. 중간에 포기한 친구들도 있어서 실제로 다 수료하고 나간 사람은 18명 정도 됩니다. 그 친구들은 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지금 커피업계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절반 이상 돼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거의 매일 같이 있었어요. 카페에서 일도 같이하고, 얘기도 정말 많이 나눴죠. 그들 중에는 가정에 어려움이 있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그렇다 보니 고민 상담도 하게 되고, 또 중간에 그만두려는 친구들을 붙잡고 끝까지 해보자며 설득하고 달래기도 하고….
그 ‘좋은 예시’요. 제가 참고로 보내 주신 자료를 봤어요. 이런 문구가 있더라고요. “약자가 아니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원이다.” 저는 이 관점이 참 좋게 보이더라고요.
그 사업계획서를 쓰면서, 1년 전 들었던 강의가 참 많이 생각났어요. 세상이 문제아라고 부르는 이 아이들도 다시 건강해지고, 자기뿐 아니라 세상을 건강하게 바꾸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고. 누구나 다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가 있는데, 단지 살아온 환경이나 삶의 궤적이 그걸 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했던 것뿐이라고. 그러니까 기회만 주어진다면 누구라도 사회에 공헌하며 살 수 있다고 말예요.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제가 실제로 체험한 거죠. 정말 그랬어요.
유독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1기 때요. 1기가 제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왜냐하면 많이 어려웠거든요.
6명 중에 3명만 수료했어요. 6개월 과정이었는데, 다들 그만둔다고 했죠. 저도 하면서 속으로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기는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발 이 친구들이 수료만 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그 6개월의 과정을 견뎌 내고 졸업하는 첫 기수를 보니 너무 고맙고 감사한 거예요. 항상 새로운 기수를 시작하면서 이 6명이 다 수료할 수 있기를, 아무 갈등도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했지만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그 친구들이 결국은 사회에서도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가 그들을 선택했다기보다는 그들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저를 선택해 주었다고 생각해요. 그 친구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바뀌게 되었고, 제 아이들을 대할 때도 마음가짐이 달라졌어요. 제가 많이 배웠어요.
대화를 나누면서 궁금해졌어요. 보통 주님께서 주신 마음이나 가슴 뛰게 만드는 어떤 비전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무뎌지게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여전히 이 이야기를 할 때 선생님의 눈이 빛나는 걸 느낍니다. 세월이 흘러도 처음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저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면 청년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요. 너무 좋죠. 진짜 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못해도 상관없어요. 지금은 그래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은 제 생각과 다를 수 있으니까요. (손바닥을 안으로 펴고 손을 내밀며) 저는 여기까지밖에 못 보지만,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서는 제가 어디 있는지 모르니까요. 물론 하게 되면 너무 좋겠지만, 지금은 그냥 우리 아이 셋 열심히 양육해서 좋은 청년이 되게 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 해도 그것도 괜찮아요. 예전에는 뭐든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이랜드에 입사할 때만 해도 내가 이 회사에서 성공한 경영인이 되리라는 마음이 컸죠. 그런데 주님은 여기에 별 관심이 없으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가, 거기에 더 관심이 있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지금은 성공보다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살펴보는 마음이 더 강해요. 그때, 그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도 그랬어요. 이걸 꼭 성공시켜야겠다며 친구랑 밤을 새워 사업계획서를 준비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르겠어요. 왜 갑자기 그 생각이 든 건지. 그냥 하나님이 제게, ‘나는 네가 이 프로젝트에 성공하는 것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네가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나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여기에 훨씬 더 관심이 있어’라고 말씀해 주시는 거 같았어요.
그렇군요. 때론 내 생각보다 크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신앙이 한 뼘이라도 성장하는 길임을 새삼 되새겨 봅니다. 현재 출석하고 계신 교회가 가정집에서 출발한 작은 교회라고 들었습니다. 꼭 교회가 아니라 해도 작은 공동체를 일궈 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요. 혹시 그런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예배드리는 것도 어렵잖아요. 큰 교회에 다닐 때는 몰랐던 걸 요즘 많이 느낍니다. 규모가 있는 교회는 시스템이 잘 구비되어서 이런 시기에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어요. 구성원에 대한 관리도 잘하고요. 하지만 규모가 작을수록 그게 어려워요. 또 사역에 대한 기회들도 많지 않죠. 어떻게 보면 요즘은 신앙을 지키는 게 힘든 시기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힘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내가 왜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 하지, 내가 왜 이런 가시밭길을 걸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 신앙의 자리를 지켜 나가면, 뒤돌아봤을 때 하나님이 이래서 나를 이렇게 인도하셨구나, 내가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관점이 있으셨구나 하고 느끼게 될 때가 오리라 생각해요. 저희 애들과 잠자리에 누워서 그런 얘기를 가끔 해요. 애들이 아직도 저희랑 같이 자려고 하거든요.(웃음) 따로 재워서 눕혀 놔도 하나 둘 제 침대로 오죠. 그럼 아이들과 누워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이야기해요. 우리 모두 어렵고 힘든 길을 가고 있지만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모두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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