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용처럼 뚜렷이

Guideposts 2021 | 12


Guideposts 2021 | 12

크레용처럼 뚜렷이

After two divorces, did I really know what I wanted in a relationship? 

Did I even know who I needed to be?

이혼을 두 번이나 했으니 나는 내가 관계에서 무엇을 정말 원하는지 알게 되었을까?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깨달았을까? 


St. Johns, Florida

캐서린 허친슨-헤이즈  플로리다주 세인트존스

I pulled myself onto the bathroom counter so I could see my face in the mirror close-up. Red-rimmed eyes. Runny nose. Cheeks streaked with mascara. The next time you get to thinking you want a man in your life, I told myself, remember this. Remember how miserable you are.

I held up my bare finger, the one that had once boasted a gorgeous diamond ring. Divorced. For the second time. I was a woman of accomplishment, a school principal. Mother to two beautiful girls. Yet I was a magnet for men who were not what they seemed. Why couldn’t I get marriage right?

That morning, my lawyer had called to tell me my divorce was finalized. I had known it was coming, but the emotions that boiled up surprised me. Anger. Shame. Confusion. I didn’t want the girls to see me like this. I dropped them off at my sitter’s house. Then I retreated to my bathroom and proceeded to have an epic pity party.

“God, do you even love me?” I choked out. “How could you let this happen to me again? Don’t you care about my children? Our happiness?”

I’d grown up in New York City, raised by strict parents of Jamaican and Portuguese descent. They instilled in my four siblings and me the importance of using our God-given abilities to succeed in life. My mother was a nurse, with a side business as a cake baker and designer. My father owned a construction company and used his basement barbershop to minister to young men. We kids were expected to be just as driven. I pushed myself to excel in everything I did—academics, piano, art. Marriage and family were sacred. Divorce was something spoken of only in whispers.

In college, I fell in love with literature and writing. I earned a master’s degree in education and got hired to teach sixth grade for a school district on Long Island, on top of teaching art at an inner-city school.

I often got assigned the kids the other teachers had given up on. The problem students. But I discovered I had a talent for keeping them engaged, motivated. I mentored several students outside the classroom and got involved in citywide programs. That’s how I met Husband No. 1. He worked for the New York City mayor’s office. Smart, motivated, handsome. And he had Caribbean roots like mine. That confirmed he was the one. I didn’t even have to pray on it. We married.

Then I discovered how little we actually had in common. Like the fact that he was a smoker and didn’t exercise, while I loved in-line skating. We were opposites in our approach to handling finances and emotions. He had zero interest in praying or reading the Bible together. Our first year of marriage, I got pregnant and gave birth to a baby girl we named Zaji. Parenthood didn’t bring us any closer. We divorced a year later.

My parents were supportive, but there was no hiding their disappointment. I threw myself into my work and made plans to pursue a doctorate, recruited by Arizona State for an intensive program. Meanwhile, I mentored new teachers in New York City. That’s how I met Husband No. 2. I knew the pitfalls to look out for by then. He was regimented, financially responsible, raised in the church. And the way he folded laundry made me melt.

거울로 얼굴을 가까이 보려고 세면대 쪽으로 몸을 끌어당겼다. 언저리가 벌건 눈. 콧물이 흐르는 코. 마스카라로 얼룩진 뺨. 

‘살면서 남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다음에 또 들 때면 이걸 기억해. 네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말이야.’ 

혼잣말을 했다.  

한때는 화려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뽐냈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없는 손가락을 들어 보았다. 이혼했다. 두 번째였다. 나는 성취한 여성으로 학교 교장이었고 고운 두 딸의 어머니였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남자들을 끌어당기는 사람이기도 했다. 왜 나는 제대로 결혼하지 못했을까? 

그날 아침 변호사가 전화해서 이혼이 마무리되었다고 전해 주었다. 전화가 올 줄 알았지만, 끓어오르는 감정은 놀라웠다. 분노. 수치. 혼란. 딸들이 이런 모습을 보는 건 원치 않았다. 아이를 봐주는 사람 집에 아이들을 내려 주었다. 그런 다음 욕실로 도망쳐서 장엄한 연민 파티를 벌이기 시작했다. 

“하나님, 저를 사랑하시기는 하세요? 어떻게 제게 이런 일이 또 벌어지게 내버려 두실 수 있어요? 제 아이들은 신경 쓰지 않으시나요? 저희의 행복은요?”

목이 멘 소리로 말했다. 

나는 뉴욕시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자메이카인과 포르투갈인의 후손인 엄격한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나와 4남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꽃피워서 삶에서 성공하는 일의 중요성을 철저히 가르쳤다. 어머니는 간호사였는데 부업으로 케이크를 만들고 디자인했다. 아버지는 건설회사를 소유했으며 지하실에 있던 이발소를 이용해서 젊은이들을 보살폈다. 우리 형제자매는 이끌리는 대로 행동하게끔 기대되었다. 학업, 피아노, 미술 등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남을 능가하려고 스스로 밀어붙였다. 결혼과 가족은 신성했다. 이혼은 속삭이면서나 말할 수 있는 거였다.    

대학 시절에는 문학과 작문에 푹 빠졌다.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롱아일랜드에 있는 학구(學區)에서 6학년을 가르치도록 채용되었다. 거기에 더해 도심 빈민가 학교에서 미술도 가르쳤다. 

나는 종종 다른 교사가 포기한 아이들을 맡았다. 문제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문제아가 꾸준히 열중하게 하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재능이 내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교실 밖에서 몇몇 학생에게 조언해 주고 시 전역에서 행해지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러면서 첫 남편을 만났다. 그는 뉴욕시장 집무실에서 근무했다. 똑똑하고 의욕이 넘쳤으며 잘생겼다. 게다가 나처럼 카리브해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 점 때문에 그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기도할 필요조차 없었다. 우리는 결혼했다. 

그러다가 실상은 우리에게 공통점이 거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는 흡연자에 운동하지 않았지만 나는 인라인스케이트를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처럼 말이다. 수입과 감정을 다루는 우리 부부의 방식은 정반대였다. 남편은 같이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 결혼 첫해에 임신했고 딸을 낳았으며 ‘재지’라고 이름 지었다. 부모가 됐어도 우리는 더 가까워지지 못했고 1년 뒤에 이혼했다. 

부모님은 격려하면서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박사 학위를 딸 계획을 세웠으며 애리조나주 집중 프로그램에 선발되었다. 그러는 한편 뉴욕시 신규 교사들의 멘토를 맡기도 했다. 그렇게 두 번째 남편을 만났다. 그즈음엔 조심해야 하는 함정을 알았다. 그는 엄격하고 경제적으로 책임감이 있으며 교회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그가 빨래를 개는 방식에서 내 마음이 녹아내렸다.   

“He’s amazing!” I gushed to God one night. I wasn’t asking for confirmation exactly, but it sure felt right.

I got accepted into the ASU program. Neither of us realized how demanding the program would be. I got pregnant and had our daughter Kesia. Raising two children added to the strain. I graduated and found a job as an assistant principal at a school an hour from our home. Zaji cried every day when I left for work. In time, I learned my husband and I had different ideas about parenting and discipline. We stayed together for five years, but in the end, it was clear we couldn’t go on. That’s how I ended up with a second failed marriage.

I stared in the bathroom mirror at my tear-stained reflection and shook my head. It was obvious I couldn’t trust my own instincts. “God, what should I do?” I said. “Write it in crayon for me.” I needed the answer spelled out so clearly that a first grader would understand it.

The previous few weeks, I’d been going to a seminar for single people at my church, led by a guest pastor from the Bahamas. His words came to me now: “Work on yourself.” “Start with your relationship with God.” “Be whole and seek whole people.”

Scanning the room, I found a big brown paper bag that was sticking out of my purse. I hopped down from the counter and snatched it up, then found an eyeliner pencil. Not a crayon but close enough. One by one I listed the things I wanted to work on:

1. Develop a consistent prayer life.

2. Connect more intentionally with my children.

3. Learn to date myself.

A total of 11 items.

Then I heard something deep in my spirit: Just believe.

A sense of rightness filled me. I needed to follow the roadmap God had laid out, to trust in him more than I did in myself.

I turned the bag over and began listing the qualities to seek in a husband. There was nothing about looks or a Caribbean ancestry. This was about the kind of man God wanted for me. A man who truly wanted to be a father, who treated his parents with love and respect. Who had the highest integrity and was a Christian in both word and deed. There were 12 qualities by the time I was done.

In the months that followed, I focused on being the best person and mother I could be. I spent a half hour each morning praying and reading Scripture, opening myself to God’s presence. It was like a protein shake for my soul, a great way to start each new day.

I established routines for the girls, giving them simple chores, limiting screen time and enrolling them in Sunday school. I also scheduled weekly game nights and outings to the park. It wasn’t easy being a single mother, but I felt closer to my girls than I ever had before.

I joined a gym and worked out regularly. Took up painting again, even entered local art shows. And I went on dates with myself. I would hire a sitter and go to a movie on my own. Or out to a nice restaurant. I still felt lonely at times, but there was no longer a sense of desperation. My life was full. I had become whole.

Nearly three years went by. One day, on a lark, I created a profile on a Christian dating site. A few days later, I saw a message from a man named Tony in my in-box: “Hi. Would love to chat!” He was handsome. Career military. Divorced, with children. Interesting, but I wasn’t going to leap into anything.

I messaged him back. We hit it off. “Would you like to meet for coffee at the bookstore?” he asked one day.

“그는 대단해요!”

어느 날 밤 하나님께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꼭 집어서 확인을 요청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 프로그램에 입학했다. 우리 둘 다 프로그램이 얼마나 까다로울지 실감하지 못했다. 임신했고 딸 ‘케시아’를 얻었다. 중압감에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이 더해졌다. 졸업하고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에 교감으로 취직했다. 재지는 내가 출근하면 매일 울었다. 그러는 사이 남편과 내가 양육과 훈육에 관해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5년을 함께했지만 결국 계속 같이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그렇게 실패한 두 번째 결혼 생활을 마무리했다. 

눈물로 얼룩진 내 모습을 욕실 거울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내 직감을 믿을 수 없음이 확실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하나요? 절 위해 크레용으로 써 주세요.” 

분명하고 확실하게 써서 1학년도 이해할 만한 대답이 내게는 필요했다. 

앞선 몇 주 동안 교회 독신자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바하마에서 온 객원 목사가 진행하는 거였다. 이제 그의 말이 내게 와 닿았다. 

“여러분 자신을 돌보세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작하세요.”

“온전한 존재가 되어서 온전한 사람을 찾으세요.” 

방을 훑어보다가 가방에서 삐져나온 커다란 갈색 종이봉투를 찾았다. 세면대에서 뛰어나와 봉투를 잡아챘고 아이라이너 펜슬도 찾았다. 크레용은 아니지만, 충분히 비슷했다. 노력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 

1. 견실한 기도 생활하기

2. 아이들과 좀 더 계획적으로 교류하기 

3. 나 자신과 데이트하는 법 배우기  

모두 11가지였다. 그러다가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들려왔다.

‘그저 믿어’. 

올바르다는 느낌이 날 채웠다. 하나님께서 펼쳐 놓으신 로드맵을 따르고 나 자신을 믿는 것보다 그분을 더 믿어야 했다. 

종이봉투를 뒤집은 다음, 남편에게서 찾아야 할 자질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외모나 카리브해 지역에 뿌리를 두는 것과는 상관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날 위해 원하시는 남자에 관한 것이었다. 진심으로 아버지가 되려 하고 사랑과 존중으로 자기 부모를 대하는 사람이었다. 극히 고결하면서도 언행이 모두 기독교인인 사람이었다. 다 끝냈을 즈음에는 12가지 특성이 있었다.    

그 후 몇 달 동안은 내가 될 수 있는 최선의 사람과 어머니가 되는 데 집중했다. 아침마다 30분씩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으며 하나님의 임재에 내 마음을 터놓았다. 영혼을 위한 단백질 셰이크처럼 매일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근사한 방법이었다. 

딸들을 위한 일과를 정하고 간단한 집안일을 맡겼으며 미디어 사용 시간을 제한하고 주일 학교에 등록시켰다. 매주 같이 게임을 하는 밤과 공원으로 놀러 가는 일정도 정했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가 되는 건 쉽지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딸들과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체육관에 등록해서 규칙적으로 운동했다. 그림 그리기를 다시 시작하고 지역 미술 전시회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나 자신과 데이트했다. 아이들을 봐줄 사람을 고용하고 혼자 영화를 보러 가거나 근사한 레스토랑에 갔다. 여전히 때때로 외롭다고 느꼈지만, 절망감은 없었다. 내 생활은 충만했고 나는 온전한 존재가 되었다. 

거의 3년이 지났다. 어느 날 재미 삼아 기독교인 데이트 사이트에 프로필을 만들었다. 며칠 뒤 수신함에서 토니라는 남자가 보낸 메시지를 보았다. 

“안녕! 대화하고 싶어요!” 

그는 잘생겼으며 직업군인이었다. 이혼했으며 아이들이 있었다. 흥미로웠지만 나는 어떤 행동도 바로 취하지는 않았다. 

답장을 보냈고, 우리는 죽이 잘 맞았다. 

“서점에서 만나서 커피나 할까요?” 

어느 날 그가 물어왔다. 

We wandered around the store on a Saturday afternoon. He laughed easily, seemed genuinely interested in me. We gravitated to the section on nutrition and fitness, then fiction. He was looking for a book for his daughter and asked for my suggestions. His thoughtful questions made it clear he was really listening.

We went to the coffee bar. The conversation never lagged. He was a chief warrant officer with the Army. He had just come home from a deployment in Iraq. He asked about my daughters and talked about his parents, his upbringing, the importance of family and faith. He didn’t have Caribbean roots, but I knew my parents would approve of his values.

Neither of us wanted the date to end. We went to dinner. A movie afterward. Then a jazz club. On the dance floor, he pulled me close and whispered, “Just believe.”

Only after I got home did I remember I’d heard those exact words three years earlier, that night of my bathroom pity party. Where was that list I’d written? I found the paper bag stuffed in the bottom of my closet.

I read over the qualities in a husband I’d felt directed to write. My pulse quickened. I could see so much of the list reflected in Tony. But before I opened my heart to him, there was someone I needed to ask first.

“God, is he the one?” I prayed. “Help me to be sure.”

The next morning, after church, I waited impatiently for two young women at the end of the pew to exit. They’d been staring at me throughout the whole service. Irritating.

The taller of the two strangers turned and asked, “Are you married?”

What business is it of yours? I thought. But I said, “Why do you ask?”

“God asked my friend to tell you something,” she said. “I’m trying to convince her to share it with you.”

“Okay,” I said slowly.

“You’re not married, but you want to be, right?” the shorter woman said.

Anyone could see that I wasn’t wearing a wedding ring. This is your divine message?

The woman pressed on. “You have two girls who need a father figure. You’ve been praying for a godly husband, a protector. A man of integrity and honor.”

The woman kept talking, but I no longer saw her or her friend or the pew. I felt as if I were alone with God. “God has heard all your prayers, and they will be answered speedily. The man God has chosen for you, you’ve either just met or will meet soon. Just believe.”

The message could not have been more clear if it had been written out in crayon.

It was only after Tony asked me to marry him, four months later, that I shared this experience with him. By then he had shown he possessed every quality on my list and then some. We married nine months after our first date, on Valentine’s Day, 2007. Fourteen years later, I’ve memorized the list I wrote in eyeliner on that brown paper bag. I think of it as a love letter from the One who knew what and who I needed far better than I did.

우리는 토요일 오후에 서점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는 여유롭게 웃었고 내게 진정으로 관심이 있는 듯했다. 우리는 ‘영양과 건강’ 코너에 이끌렸다가, ‘소설’로 옮겨 갔다. 그는 딸을 위한 책을 찾으면서 내 의견을 구했다. 사려 깊은 질문으로 보아 그가 경청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커피숍으로 향했다. 대화는 한 번도 시들해지지 않았다. 토니는 육군 선임 준위였다. 이라크 파병에서 막 돌아온 차였다. 내 딸들에 관해 묻고 자기 부모님, 양육 방식, 가족과 신앙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카리브해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지는 않았지만, 나의 부모님이 그의 가치를 좋게 볼 것임을 알았다. 

우리 둘 다 데이트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저녁을 먹었고 영화가 이어졌으며 그다음에는 재즈 클럽으로 향했다. 댄스 플로어에서 그는 날 가까이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그저 믿어요.” 

집에 돌아온 후에야 3년 전에 정확히 똑같은 말을 들었음이 기억났다. 욕실에서 연민 파티를 벌였던 그날 밤 말이다. 내가 작성한 목록은 어디에 있지? 옷장 바닥에서 꽉 찬 종이봉투를 찾아냈다. 

이끌리듯 써 내려간 남편의 자질을 읽어 보았다. 맥박이 빨라졌다. 목록의 많은 부분이 토니에게 보인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에게 내 마음을 열기 전에 먼저 물어봐야 할 이가 있었다. 

“하나님, 토니가 그 사람인가요? 제가 확신하도록 도와주세요.” 

다음 날 아침 예배가 끝난 후, 신도석 끝에 앉은 여자 둘이 나가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두 사람은 예배 내내 날 빤히 쳐다보았다. 짜증스러웠다. 

낯선 두 사람 중 키가 더 큰 쪽이 돌아서더니 물었다.


‘당신이 무슨 상관이죠?’라고 생각했지만, 대신 다음처럼 물었다.

“왜 묻는 거죠?”

“당신에게 무언가를 전해 달라고 하나님께서 내 친구에게 부탁하셨어요. 그걸 당신에게 얘기하자고 친구를 설득하는 중이거든요.”


나는 천천히 답했다. 

“당신은 결혼한 상태가 아니지만 하고 싶어 해요. 그렇죠?”

키가 더 작은 여성이 말했다.  

누구든 내가 결혼반지를 끼지 않은 걸 볼 수 있었다. 

‘이것이 당신의 계시인가요?’ 

여자는 꿋꿋이 계속했다. 

“당신에게는 아버지 같은 존재가 필요한 두 딸이 있어요. 당신은 신실한 남편감이자 보호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죠. 고결하고 명예로운 남자를요.”  

여자가 말을 이어 갔지만, 그 사람이나 그 친구, 신도석은 이제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마치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기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기도를 모두 들으셨고 즉시 응답하실 거예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선택하신 남자를 이제 막 만났거나 곧 만나요. 그저 믿으세요.” 

메시지가 크레용으로 쓰였다면 이보다 더 명확할 수 없었다.  

4개월이 지나 토니가 청혼한 후에야 이 경험을 그와 함께 나눴다. 그즈음 토니는 내 목록에 있던 모든 자질과 그 외에 더 많은 걸 갖췄음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첫 데이트를 하고 9개월 후인 2007년 밸런타인데이에 결혼했다. 14년이 지났지만, 갈색 종이봉투에 아이라이너로 썼던 목록을 외고 있다. 내게 필요한 것과 필요한 사람을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계셨던 그분께서 보내신 러브레터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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