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공감으로 플러스해요
Guideposts 2022 |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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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posts 2022 | 01
공감으로 플러스해요.
“개인뿐 아니라 직장인 대화 상담에서도 누구와 잘 지내고 싶은지 물으면, 열의 아홉이 가족을 꼽습니다. 1위 배우자, 2위 자녀, 3위 원가족입니다.” 대화 훈련·갈등 중재 전문가인 박재연 리플러스 인간연구소장의 말을 듣고 순간 뜨끔했다. 남편과 말이 안 통해 답답할 때가 있는데 남의 집 사정도 다르지 않구나 싶어 안도감도 들었다. 다수의 사람들이 칭찬보다 비난하기를 좋아하고,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며 산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닌 상황에서 박재연 소장이 쓴 『사실은 사랑받고 싶었어』(한빛라이프)의 프롤로그에서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을 만났다. “만약 누군가 대화를 왜 배워야 하냐고 묻는다면, 상대를 바꾸거나 이기지 않고도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 바로 대화에 있기 때문”이라는 대목이었다. 또 한 살을 먹는다. 금연, 다이어트도 좋지만 올해는 ‘건강하게 대화하기’를 신년 목표로 삼아 보는 것은 어떨까? 어릴 적 부모의 이혼과 학대, 한 아이의 엄마가 된 후 갑작스럽게 찾아온 공황장애의 시련을 딛고 대화 전문가로 거듭난 박재연 소장을 만났다. 그는 8~15주 과정의 ‘연결의 대화’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이를 책 『말이 통해야 일이 통한다』 『엄마의 말하기 연습』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를 통해 소개했다.
신년 목표를 세웠나요?
“저는 매년 목표를 세우기보다 하루하루 잘하는 데 집중합니다. 오히려 10년 단위로 장기 목표를 세우는데 30대엔 ‘연결의 대화’ 프로그램을 널리 자리 잡게 하는 게 목표였죠.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두루 강의하며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어요. 앞으론 집단 상담보다는 개인 상담을 더 깊이 있게 할 계획입니다.”
소장님 책을 읽고 저는 ‘대화 잘하기’를 올해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럼 누구와 어떤 관계가 되길 희망하는지 설정해 보세요. 직장인 상담에서 늘 하는 질문이 바로 ‘누구와 잘 지내고 싶은가?’예요. 그럼 다수가 자신의 아내를 꼽습니다. 직장 상사나 동료를 꼽는 경우는 열에 한 명 정도뿐이죠. 대부분 내가 아니라 상대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또 동료보다 더 가까운 사람들의 말에 더 큰 상처를 받기 때문입니다.”
기업 대상 강의인데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누네요?
직장인 역시 누군가의 배우자이고 부모고 자식이잖아요. 대화의 본질은 같거든요. 상담 기간 동안 이메일을 열어 놓고 참가자 모두의 고민을 공유하는데, 명절이 끼어 있으면 재밌는 사례가 많아요. 이때 동료들 간의 거리감도 많이 좁혀져요. 철두철미한 팀장이 아내와 설거지 문제로 싸운다니, 정말 인간적이잖아요. 좋은 대학 나와 억대 연봉 받는 사람도 부모를 용서 못해 괴로워하는 사례도 있고. 우리네 인생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많이 느껴요.
불통을 해결해 주는 직업인데, 본인의 불통 문제로 어려움을 겪진 않나요?
“겪죠. 그래서 가끔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와요.(웃음) 남의 고통을 들어주는 직업인데, 정작 내 집안일은 무기력하게 바라봐야 할 때, 가족을 보살피는 대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일하러 갈 때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죠. 내가 잘하고 있나, 내가 자격이 있나, 그런 생각도 들고요. 그럴 때면 저도 제 스승에게 상담을 받으면서 격려를 받습니다.
마음이 힘들 때 누구와 상담하기보다 기도를 하는 등 혼자 극복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그건 기질의 차이입니다. 내·외향성 수치에 따라 달리 반응하죠. 전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외향성에 속해요. 성격유형 검사를 하면 개방성이 높고 친밀성 수치가 낮게 나와요. 그런 측면에서 저는 노력형 공감가입니다. 저의 공감력은 훈련의 결과예요. 누군가를 이해하면서 살아 보니 정말 좋아서 꾸준히 노력하는 겁니다.
2007년 극도로 혐오하던 폭력성을 내 안에서 발견하고 대화 공부를 시작했다죠?
네. 전 어릴 적 이혼한 아버지에게 학대받은 기억이 있어요. 아버지가 왜 나를 때리지? 납득이 안 됐지만 내 역할을 아버지 화풀이 대상으로 잡고 그걸 당연시 여겼죠. 그러다 고등학교 때 같은 사건을 두고 두 교사의 서로 다른 반응을 보면서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죠. 그 사건을 계기로 어른에 대한 불신, 폭력적인 사람에 대한 적개심이 커졌어요. 아버지와 다르게 살고자 했으나, 저 역시 이혼 후 혼자 아이를 키웠을 때 아들을 폭력적으로 대했어요. 엄마가 무섭다는 메모를 보고 충격을 받고, 비폭력 대화를 배웠어요. 한국비폭력대화센터 강사 자격증도 땄죠.
공황장애도 겪었는데 그때 하나님을 만났다고요?
“(메타인지행동치료연구소 정신과 대화팀장 근무 당시) 아들과 재난영화를 보던 중에 예고도 없이 공황장애가 찾아왔죠. 2012년 싱가포르에서 귀국할 당시만 해도 제가 현지에서 우연히 성경을 접하고 일대일 양육자 과정을 받았을 만큼 공부도 열심히 해, 굉장히 모든 일에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였어요. 그랬기에 공황장애가 올지 전혀 예상치 못했죠. 근데 발작 후 40일간 정말 악몽의 시간을 보냈어요. 제대로 못 걷고 먹은 거 다 토하고 (죽을까 봐) 교회 기도실 문조차 닫기 힘들 정도로 일상이 무너졌어요. 죽어야 이 고통이 끝나나 싶을 정도로 무력감을 느꼈어죠. 정말 매달릴 곳은 하나님밖에 없었어요. 당시 눈물이 피를 토하듯 나왔는데, 덕분에 진실로 하나님을 만났고 요한복음 21장의 말씀을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깊어진 신앙은 지금 하는 일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어요. 신앙은 내 평안함의 기반입니다. 전 아직도 열등감이 많아서 나 자신보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주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면 하나님께 맡겨요. 한번은 여러 노조가 한자리에 모인 곳에 갈등 해결을 하러 갔는데 “잘못되면 하나님 탓”이라고 하늘 보며 토로했죠.(웃음) 어떤 때는 이건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갈등이 잘 풀릴 때가 있어요. 그런 날은 감사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옵니다. 그들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면서, 나 자신을 긍정하게 됩니다.
오랜 공부에도 열등감·불안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군요?
아직 남아 있죠. 부모에게 폭력을 당한 사람들은 불신을 갖고 사는 경우가 많아요. 불안에 가깝죠. 전 그럴 때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합니다. 과거엔 엄청 노력해야 했는데, 이젠 회복 시간이 빨라졌어요. 교회라는 물리적 공간에 안 가도 될 정도로. 우울감이 조건 없는 수용이 필요하다면, 불안은 믿음이 전제돼야 합니다. 공황장애도 나는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심리 치료는 크리스천에게 잘 맞습니다.
아동학대 피해자를 생각하니 부모가 말해 주는 ‘나’도 정확한 ‘나’가 아니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인간은 부모의 육신을 통해 이 세상에 왔지만, 우리를 보낸 분은 하나님입니다. 내가 사랑받는 존재라는 걸 확인해 주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죠. 만약 주 양육자가 아이를 착취한다면 그건 (하나님과 나를 연결하는) 여과기가 잘못된 겁니다. 이렇게 뿌리를 아는 것은, 우울감을 회복하는 단서입니다. 우리 인간은 온전치 않으며 하나님의 온전하심이 유일한 표준입니다.
기업이 종교나 정치적 성향에 민감한데 크리스천 강사라서 불편을 겪은 적은 없나요?
기독교 색채를 빼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전 강의 중에 솔직하게 밝혀요. 강의를 성경 말씀인 ‘웃는 자들과 함께 웃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라는 대목을 띄우고 시작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리고 질문하죠. 당신은 셋 중 무엇을 함께해 줄 수 있냐고? 다수가 우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게 제일 쉽고, 같이 기뻐해 주는 것이 진짜 어려워요. 그 안에 내 욕구와 성취, 욕심, 질투, 시기심 등이 투영되어 잘 안 되는 거죠. 같이 기뻐해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감입니다.
평소 마음에 품고 다니는 성경 말씀이 있나요?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이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EBS〈부모〉출연부터 기업 강연, 학폭 피해자 상담, 배우의 캐릭터 이해를 돕는 일까지 다양한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를 꼽는다면요?
모친을 여섯 시간 동안 칼로 위협하고 위해를 가한 30대와 엄마를 화해시킨 일입니다. 상담하러 오는 길에도 자식이 엄마를 때려 상담실에 못 왔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죠. 너무나 슬픈 사실은 아빠가 여러 번이나 바뀔 정도로 혼란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엄마에게 무려 20년 가까이 맞았다는 거예요. 아이가 성인이 되면서 관계가 역전됐고 엄마는 또 죄책감에 자식의 폭력을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었죠. 가해자가 상담을 청한 경우가 드문데 이 경우가 그랬어요. 일단 두 사람을 분리시킨 뒤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씩 만났는데, 1년 만에 폭력이 사라졌고 1년 9개월이 지난 지금 둘이 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관계가 회복됐습니다.
상담을 통해 소장님 역시 많이 달라졌겠어요. 일을 통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폭력적인 사람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어요. 그들에 대한 혐오감과 두려움이 컸는데 이젠 호기심을 느껴요. 폭력은 마치 장롱 속 괴물처럼 두려움을 주나 본질은 괴로움이거든요. 특히 앞서 언급한 상담 사례가 저를 많이 성장시켰어요.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녹록지 않았지만, 그 상담자가 무너지며 통곡할 때마다 손을 잡아 주면서 그동안 이렇게 손잡아 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죠. 무엇보다 내가 폭력을 많이 직면한 결과, 두려움 대신 호기심을 갖게 됐다는 사실에 나를 많이 칭찬해 줬어요.
가족 간 대화가 힘든 사람들에게 대화법을 조언해 주세요.
가정에선 역할을 빼고 존재로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엄마나 아빠, 자식의 역할을 기준점으로 삼으면 기대치가 있기에 모든 게 못마땅해요. 엄마의 가사노동처럼 각자의 역할을 또 당연시 여기게 되죠. 제가 책 『사랑하면 통한다』를 집필하면서 어릴 적 트라우마를 상당히 극복했는데요. 당시 아빠, 엄마를 내 부모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보면서 그들의 고통을 많이 이해했고 나를 때리기만 한 아버지가 아니라 매일 아침 오빠와 나를 위해 김치찌개를 끓여 주던 아버지도 떠올릴 수 있게 됐죠. 무엇보다 가족 간 대화는 비즈니스와 달라서 이기고 지는 결과가 필요 없어요. 원인을 밝히거나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기보다 상처를 줬으면 인정하고 사과만 해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우리가 상대에게 진심으로 건네는 ‘미안합니다’라는 말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크게 마음을 녹이는 힘이 있어요. 진정한 사과는 상처받았던 과거의 ‘그때 그 시간’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죠.
3년 전 죽음학을 접하고 인생에 큰 변화가 올 것을 예감했다고 하셨는데요. 우리에게 죽음학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죽음학은 삶이 남아 있는 시간에 대한 학문입니다. 리빙(living)과 다잉(dying)을 같은 것으로 보죠.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 ‘삶의 마지막 날에 누구와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죽음학은 가장 소중한 것을 깊이 고민하게 만들죠. 이 때문에 오늘 당장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살아생전에 부모와 해결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죠. 더불어 죽음을 인식하면서 살아갈 때, 가장 하나님이 의도한 대로 잘살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소망했던 리플러스인간연구소 상담센터 개소를 앞두고 있습니다.
제가 부모와 자녀가 관계를 회복하고, 아이가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길 바랍니다. 저는 소중한 사람들이 대화로 즐거운 관계를 맺는 게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센터는 대화 훈련과 개인 상담도 하는 공간으로 꾸릴 예정입니다. 힘들고 지친 분들이 편히 오실 수 있는 용감한 사람들의 공동체로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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