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하늘에 영혼을 쏘다
Guideposts 2022 |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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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영혼을 쏘다
맨손의 마술사 ‘맥가이버’처럼 하룡 목사는 둘뿐인 직원과 함께 웬만한 교회 잡무는 직접 해결한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봉미산 중턱에 있는 생명의빛예수마을을 방문한 지난 3월, 하 목사는 신기쁨 부목사와 함께 기부자 명패를 걸 현판을 손수 만들고 있었다. 이날은 실내에서도 외투를 벗지 못할 정도로 쌀쌀했는데, 꽃샘추위를 달래 주는 화목난로 역시 하 목사의 작품이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원래는 카이스트 지망생이었다는 그는 “하나님의 영음을 듣지 않았다면 항공우주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요즘도 심심하면 ‘재미’로 수학 문제를 푼단다. 그런 하 목사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9)이다.
생명의빛예수마을에 있는 예배당은 ‘국내 성지순례 코스’로 꼽힐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데요. 어떻게 오게 됐으며 어떤 사역을 하고 계십니까?
생명의빛예수마을은 남서울은혜교회의 홍정길 원로목사(밀알복지재단 이사장)께서 은퇴·귀국 선교사들의 쉼터로 조성한 곳입니다. 은퇴·귀국 선교사들이
은퇴 후 갈 곳 없이 떠도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겨 봉미산 자락에 약 11만 6000평의 땅을 매입해 예배당을 품고 있는 선교센터를 지은 거죠. 이후 故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이 생전인 2015년 당시 100억 원 상당의 개인 주식
1만 주를 기부하면서 홈타운 건립이 시작됐고요. 저는 직군이 두 개인데 남서울은혜교회 디렉터이면서 2016년 분리 독립한 생명의빛예수마을교회 담임목사입니다.
예배당 건립에 얽힌 아름다운 비화가 있다죠?
JK건설 이장균 사장이 러시아산 홍송 800여 그루를 기증했는데, 이때 기도가 우리와 연결고리가 되었어요. 이 사장은 어릴 적 가출한 자신을 위해 어머니가 평생 기도하며 살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유지에 따라 200년 이상 된 홍송을 기증했어요. 예배당을 설계한 신형철 교수도 그가 어린 시절 기도해 온 바람이 우리 교회와 닿은 계기였어요. 신 교수는 프랑스로 이민 간 홍 목사님 친구의 아들인데, 열두 살에 프랑스 롱샹 성당에 갔다가 “저도 이런 예배당을 하나님께 지어 드리고 싶다”며 눈물의 기도를 올렸다고 해요. 이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당시 35세의 젊은 건축가에게 예배당 설계를 의뢰했고, 그렇게 해서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예배당이 탄생하게 되었어요.
예배당 시공이 건축학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으로 압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을 때, 예배당을 시공한 케이돔 건설의 최승렬 사장님이 하나님께 기도하던 중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고정된 건물이 아닌 움직이는 건물의 실시설계도를 만들었고, 성공적으로 건축할 수 있었죠. 최 사장님은 초등학교 6학년에 집을 떠나 어려운 건축 현장을 많이 다녔는데, 최 사장님 어머니 역시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죠.
이렇게 예배당이 세 아들의 어머니의 기도로 만들어진 덕에 우리 교회는 선교사님뿐 아니라 자녀들을 위해서도 늘 기도합니다.
코로나19 전만 해도 한 달에 무려 2천~3천 명 다녀갈 정도로 교회가 붐볐다고 들었습니다.
관광객뿐 아니라 밀알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방문 프로그램을 통해 많이 오셨죠. 코로나19 이후엔 가족 단위로 오시는데, 건축물을 자랑스러워하는 교인들이 많아요. 요즘은 우리 교회의 이주민 사역에 많은 관심을 보이세요. 우리 교회는 기존 교회와 달리 모든 게 선교 중심입니다. 교인들에게도 그 점을 알리고, 저 역시 교회 운영엔 제 힘의 30~40%만 씁니다. 해외유학생·이주노동자를 위한 다문화 사역과 은퇴·귀국 선교사들이 제2의 삶을 살도록 돕는 ‘월드피플’을 설립하여 선교 플랫폼으로 키우는 데 애쓰죠. 교회 인력을 최소화한 것도 고정 지출을 줄여 이를 다문화 사역에 쓰기 위해서입니다. 교회 공간 역시 다문화 유학생과 이주민들을 위한 수련회 장소 등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어요.
은퇴·귀국 선교사를 국내 다문화 사역의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렸나요?
2017년 유럽에서 폭탄 테러 등이 많이 일어났던 거 기억하세요? 내전이나 경제적 이유로 유럽에 건너온 아프리카와 중동의 이주민들이 현지 적응에 실패한 탓이 컸죠. 우리나라도 이젠 이주민 250만 명 시대예요. 지하철, 대형마트, 어디서나 쉽게 다문화 유학생·이주노동자·탈북민을 볼 수 있죠. 생명의빛예수마을이 속한 경기 동부권엔 특히 많아요.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성공적인 다문화 사회로 가야 하는 이때, 세계 각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선교사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재원이 될 수 있다고 봤죠. 선교지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언어도 되고, 그야말로 다문화·이주민 분야에 있어 전문가니까요.
선교단체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좋은 아이디어라고 호응해 주셨어요. 처음엔 제 머릿속 아이디어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기도를 했고, 또 몽상이 아닌지 검증하려고 선교단체에 문의했어요. 선교단체에선 은퇴 선교사 문제로 고민이 컸어요. 우리가 미국 다음으로 기독교 선교사를 많이 파송했는데, 그 숫자가 2021년 기준 68개국 2만 2210명에 달해요. 그중 20~30%가 60대 이상이죠. 내년부터 연간 400~500명의 선교사가 귀국한다는 통계가 있는데, 한국 교회는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되어 있어요. 선교사들 입장에선 귀국하는 즉시 후원금이 끊기니까 생활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선교사의 세대교체도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이분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이주노동자·다문화 유학생들을 사랑으로 섬기고 복음으로 선교한다면, 선교사님들은 계속 사역할 수 있어서 좋고, 다문화·이주민들은 누구보다 자신들을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이웃이 생겨서 좋은 거죠. 국내 다문화 선교는 시대적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퇴·귀국 선교사 거주지 마련 사업이 국내 이주민 사역으로 확장됐고, 지난 1월엔 선교단체 ‘월드피플’ 설립으로 이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은퇴를 뜻하는 리타이어(retire)는 사실 타이어를 바꿔 끼고 다시 달린다는 뜻입니다. 선교사들이 보통 60대에 은퇴하는데, 요즘 60대는 아직 젊잖아요. 월드피플은 홍정길 목사님과 생명의빛예수마을교회 그리고 은퇴·귀국 선교사들이 이주민 250만 명을 사랑으로 섬기고 복음으로 선교하기 위해 지난 1월 16일에 세운 단체입니다. 제가 대표를 맡고 있는데 생명의빛예수마을은 은퇴·귀국 선교사들의 종착지가 아닌 새로운 사역과 삶을 준비하기 위한 터미널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월드피플의 주요 업무는 무엇인가요?
선교사들이 은퇴 2~3년 전부터 귀국해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는 데 필요한 지원 서비스와 은퇴·귀국 선교사의 전환 교육을 합니다. 기본적으로 한국 적응 기간인 3개월을 거친 뒤 국내 다문화 사역을 위한 전환 교육을 3개월 받고, 6개월 인턴십을 거쳐 정식 사역에 들어가도록 할 계획입니다. 이미 여섯 분의 선교사가 전환 교육을 마치고 인턴십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선교가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싶은 선교사가 있다면, 고령자 친화 기업과 연결하는 등 맞춤형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입니다.
도심에 제2의 홈타운을 짓는 것도 계획 중이라 들었습니다.
예수마을 내 홈타운은 노인복지주택이라 60세 이상만 거주가 가능해요. 그래서 다양한 연령의 귀국 선교사를 위한 주상복합형 숙소를 도심에 짓는 것을 꿈꾸고 있어요. 몇 년 전 안산시장이 예수마을을 방문해 안산 이주민이 10만 명이 넘어 시청에 외국인국이 따로 있다면서 제2의 예수마을은 안산에 지어 달라고 요청했는데요. 그때 땅을 마련해 주십사 부탁드렸는데 아직 별다른 진척이 없습니다. 기도가 쌓이면 독지가가 나설 것이라고 봅니다. 다문화 이주민들이 많은 도시에 제2의 홈타운을 지으면 더 효과적인 사역이 이루어지리라 봅니다.
생명의빛예수마을에 대한 목사님의 비전과 사명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의 슬로건은 ‘은퇴 선교사와 함께하는 교회, 다문화 이주민과 함께하는 교회’입니다. 최종 목표는 전국 곳곳에 다문화 교회와 학교를 세우는 겁니다. 장기적으로는 다문화 교회나 학교에서 자란 다문화 아이들이 그들의 고국에 선교사로 갈 날이 오지 않을까요? 더불어 선교단체와 함께 선교사에 대한 개념을 바꿔 나갈 예정입니다. 국내 이주민 사역도 선교로 보고, 후원자들에게 귀국 선교사에 대한 후원을 끊지 말아 달라는 등 인식 개선에 나서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풀어야 할 여러 숙제 중 하나를 풀고 계신데, 어떻게 목사가 되셨나요?
그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 당시 명문대와 의대에 매년 100~200명씩 입학시키던 전주신흥고(미션스쿨)에서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습니다. 그런데 2학년 무렵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혀가 꼬이면서 목회 쪽으로 가야 한다는 하나님의 강권함을 받았습니다. 그 뒤 철학을 공부하라는 목사님의 지도를 받았고, 과학도가 되고자 했던 제 꿈을 포기했습니다. 힘든 결정이었습니다. 면접을 보러 가는 날까지 힘들었습니다. 고려대 면접을 보러 가던 길에 우연히 들른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받았습니다. 난생처음 본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저를 부르더니 “자네가 기도할 때 등 뒤로 하나님이 자네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환상을 보여 주셨는데, 나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면서 “하나님이 잠언 16장 9절을 전하면 자네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라고 하셨다”고 말씀하셨죠.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9)는 말씀은 새벽에 저에게 주셨던 말씀인데 제가 갈등하자 그 목사님을 통해 또 말씀해 주신 겁니다. 제 걸음을 섬세하게 인도하신 거죠.
하나님이 인도한 길은 어땠나요?
솔직히 도망친 적도 있고, 하나님을 원망한 적도 있습니다. 졸업 후엔 목회를 거부하며 대학연합신문에 들어가기도 했는데, 그때 하나님이 ‘왜 거기 있냐’는 음성을 들려주셨어요. 그 영음을 듣고 영혼까지 떨리는 공포를 느꼈고 질병으로 죽을 고비도 넘겼습니다. “살려 주시면 목사 되겠다” 했습니다. 그다음부턴 도망갈 생각은 안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목회를 해야 하냐고 원망을 더러 했죠. 30년이 지나니까 이젠 다 이해가 됩니다. 애초 제 꿈은 하늘로 로켓을 쏘는 것이었는데 하나님의 인도로 사람의 영혼을 천국에 쏘는 목사가 됐네요.
마지막으로 가이드포스트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십시오.
앞으로 한국 사회는 한민족 국가에서 다민족 국가로 변화될 것입니다. 현재는 250만 명이지만 500만 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이분들이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또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저희 ‘월드피플’ 선교회는 은퇴·귀국 선교사들과 열심히 섬기겠습니다. 가이드포스트 독자들의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더 많은 정보는 월드피플 홈페이지(www.worldpeople.co.kr)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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