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꿈과 위로를 양 날개 삼아 '지향드림'
Guideposts 2022 |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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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posts 2022 | 07
꿈과 위로를 양 날개 삼아 '지향드림'
현재 7만 구독자를 거느린 인플루언서이면서 캘리그래퍼이고, 프리랜서 디자이너이면서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의 홍보팀장인 그. 재능부자 N잡러로 살고 있는 김지향 작가의 이야기다. 웃는 얼굴이 예쁜 그는 불과 26세에 ‘지향드림’이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했다. 월급봉투에 길들여지면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쉽지 않은데 이 야무진 청춘은 과감히 도전했다. 뿐만 아니라 틈틈이 나눔의 삶을 실천한다. 우리 시대 건강한 청춘의 표상 같은 그는 “기회가 닿는 대로 많이 배우고 많이 경험하고 많이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고 자신의 인생철학을 밝혔다.
2017년부터 인스타그램 지향드림(@jihyangdream)을 운영하며 사람들에게 웃음과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씁쓸하고 ‘웃픈’ 우리들의 일상을 그림과 캘리그래피(손글씨)를 이용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 가고 있는데요. 채널명 지향드림은 제 본명인 ‘지향’과 ‘꿈(dream)’을 합성해 지었어요. 지향은 제 이름이면서 ‘나아간다’는 의미가 있고, 꿈·비전을 뜻하는 드림은 ‘캘리그래피로 위로·공감을 선물해 드립니다’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았습니다. 제 소개를 보태자면, 2020년엔 캘리그래피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꿀팁을 전수하기 위해 『우리들의 예쁜 손글씨‒일기체』를 공동 집필했고요. 지향드림마켓을 통해 지향드림 캘리그래피와 캐릭터를 활용한 다양한 굿즈도 제작·판매하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터’란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이는데요. 대학 신학부에서 기독교 교육을 전공한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지금의 일을 하게 됐나요?
원래 꾸미는 것,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중학교 때까지 미술을 배워서 예술고·미술대학을 목표로 했지만 가정 형편상 잠시 접어야 했죠. 대학에선 전공을 살려 우리 과의 10%에게만 주는 중등학교 정교사 2급 자격증(종교)을 취득했어요. 그런데 미래가 불투명해 다시 진로를 고민하던 중 더 늦기 전에 어릴 적 꿈을 실현해 보기로 했습니다. 국비 지원을 받아 컴퓨터 학원을 다니며 교육 이수를 하고 광고대행사 디자인팀에 들어가 일을 했죠. 꿈을 이뤘나 싶었는데 그게 끝이 아니더라고요. 미래에 대한 불안은 늘 따라다녔고, 디자인과 성장에 대한 고민도 계속됐어요. 그래서 회사 다니면서도 꾸준히 관심 분야에 대한 세미나, 컨퍼런스, 강좌들을 찾아가 수강했습니다.
캘리그래피는 미래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배우게 됐나요?
‘나만의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디자인 분야에서 제일 관심 갔던 캘리그래피를 배웠고, 연습하는 과정을 SNS에 꾸준히 올린 게 새로운 시작이 됐죠. 2017년부터 팔로워가 늘기 시작하더니 주문 제작 및 클래스 문의가 들어왔어요. 자연스럽게 이듬해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해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처음부터 이 일을 할 거야!’ 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도전하다 보니 길이 열렸어요. 저는 아직도 꿈을 찾기 위한 여정 중에 있습니다.
본인과 꼭 닮은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게 됐으며 작품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지향드림’ 채널을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선 나만의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2017~2018년에는 대표 캐릭터 없이 위로가 되는 글, 명언 등을 캘리그래피로 써서 업로드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정체기가 왔죠. 그래서 팔로워 수가 많은 작가들의 계정과 사람들의 취향을 분석했고 지향드림 스타일로 해석하려고 노력했어요. 그 과정에서 대표 캐릭터가 있으면 사람들에게 각인이 더 잘될 것 같아 저를 캐릭터화했어요. 2019년 초엔 팔로워 수가 1400명에 불과했지만 몇 달 만에 4만 명으로 늘었고 책 출간 요청도 들어왔죠. 작품의 아이디어는 일상에서 찾습니다. 일기 쓰다가, 친구들과 대화하다가, 재밌는 글을 서칭하다가, 수집한 글과 이미지들을 참고해 작업합니다. 늘 기록하려고 노력하고 사진은 습관처럼 찍습니다.
공감과 위로를 얻는다는 팬들의 반응이 많은데, 본인 역시 팬들에게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최근 코로나19 후유증으로 무기력과 피곤함이 몰려와 작업이 좀체 손에 안 잡힌 적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여. 내 인생 어쩔 꺼냐고’라는 작품을 올렸는데 ‘꿈지’님들이 많은 위로를 해주셨어요. 꿈지는 저를 팔로우하는 분들의 애칭입니다.(웃음) 특히 어떤 꿈지님의 위로가 제 초심을 떠올리게 해줬어요. 그분이 자신은 악필 중의 악필인데 우연히 제 작품을 보고 ‘적어도 글 쓰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자, 꾸준히 한 번 해보자’라고 마음먹었대요. 솔직히 저도 캘리그래피를 시작하면서 ‘디자인 전공자가 아닌데 잘해 낼 수 있을까?’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두려움이 컸어요. 그때 제 마음가짐이 바로 ‘두려워하지 말자. 꾸준히 해보자!’였어요. 그 마음가짐을 잊고 지냈던 거죠.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떻게 극복했나요?
돌이켜 보면 결국은 좋아서 버틴 것 같아요. 디자인과 캘리그래피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행복했던 일들이 많았지만, 상처받은 일들도 있었거든요. 그만두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날도 많았습니다. 때론 이 악물고 버티고, 울거나 웃으면서 버티곤 했어요. 결국은 좋아서 버틴 것 같아요. 특히 실수로 (구매자에게) 한 권 더 배송된 책이 내게 다시 돌아온 날, 조금 더 책임감을 갖고 작업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내 일도 더 좋아졌고요. 전 십대 시절부터 뭔가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늘 내 생각을 정리했고 지금은 ‘마인드맵’을 많이 그려요. 목표를 마인드맵으로 그려 놓고 이걸 이루려면 뭘 해야 할지, 그 방법을 찾고 하나씩 실천합니다.
신앙심이 깊어진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고등학교 3년 내내 다니던 한국기독청소년교육원의 영향이 컸습니다. 독서교육과 신앙교육, 지도자 훈련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특히 신앙교육 시간에는 교회에서 설교 말씀을 요약해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 숙제를 위해 매주 말씀을 듣고 필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성경 지식을 받아들였고, 또 방학마다 했던 광야학교에서 예배드리는 시간을 통해 신앙이 성장했습니다. 신학대에 간 것도 이때의 영향이 커요. 원래는 디자인·영상 관련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신앙 공부를 먼저 한 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더 좋은 영향력을 갖게 될 것 같았죠.
종교가 본인의 직업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창립 멤버이자 홍보팀장인데요.
종교는 제 삶의 기본 바탕이에요. 무슨 일을 선택하든 기준은 기독교 세계관입니다.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는 제 꿈을 키워 주고 성장하게 해준 빅퍼즐문화연구소가 2019년부터 ‘혐오 대신 도모, 배제 대신 축제’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매년 개최하고 있는 영화제예요. 디자인을 배우고 취업을 준비할 때쯤 대학교 은사였던 윤영훈 교수님(현 빅퍼즐문화연구소 공동대표)이 운영하던 빅퍼즐문화연구소와 연이 닿아 간사로 합류하면서 영화제도 함께하게 됐어요. 고등학때 때부터 ‘문화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영화제를 통해 기독교 세계관을 확장하고, 연결해 주는 이 일이 제게는 가슴 뛰는 일이에요.
빅퍼즐문화연구소의 활동이 작가님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빅퍼즐문화연구소에서 기획한 인문학과 영화, 음악 관련 강좌를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2016년에 당시 대중음악 전문 웹진 〈이즘〉의 편집장이던 정민재 음악평론가가 제 또래였는데,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강의하는 것을 보고 큰 자극을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의 취향은 무엇인지’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잘 몰랐고 그래서 고민이 많았거든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고, 깊이 공부했으며, 전문가로서 인정받고 있는 정민재 음악평론가가 제겐 도전이 되었어요. 뿐만 아니라 빅퍼즐문화연구소에서 들은 수많은 강좌들 덕분에 저 자신을 더 많이 탐색하게 됐고, 지향드림을 만들 수 있었어요.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의 차별점을 꼽는다면요?
기독교인이 기획하고 개최하는 영화제이지만, 상영작은 기독교 영화로 제한하지 않아요. ‘이런 영화를 기독교 영화제에서 다루냐’고 놀라는 관객들도 있는데, 영화를 통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장’을 만드는 걸 지향해요. 현실적인 이야기들에서 기독교적인 고민을 할 수 있는 영화를 소개하는 거죠.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함께 성찰할 수 있는, 즉 ‘모두를 위한’ 영화제를 만들고자 합니다. 저는 프로그래머들이 기획하고 선정한 영화를 보고, 의도를 파악하고, 대중들에게 영화제가 어떻게 하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 영화제를 어떻게 해야 잘 소개할까를 고민하며 영화제 관련 SNS 콘텐츠 제작·홍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했는데요. 젊은 나이에 쉽지 않은 결정을 했습니다.
어려운 결정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죽으면 쓸모없어지는 육신인데, 이왕이면 도움이 되는 분에게 나누고 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누군가에겐 삶의 기회가 주어지는 거니까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통해 공감을 많이 했어요. 내가 가진 것의 일부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이처럼 의미 있는 일이 또 있을까 해요. 생명 나눔에 대한 가치는 숭고한 일인 것 같아요. 이미 가치 있는 일을 하시는 ‘도너패밀리’(뇌사 장기기증 유가족) 분들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천뮤직 명반 선정 위원으로 활동한 적도 있던데, 힘들 때 즐겨 듣는 음악이 있나요?
음악은 가리지 않고 듣는 편입니다. K-팝뿐 아니라 인디 음악도 좋아하는데, 보아, 아이유, 악동뮤지션, 자우림, 장필순, 장기하, 잔나비를 특히 좋아합니다. 메시지가 공감이 되거나 힘들 때 위로가 되는 가사는 손글씨로 써서 SNS에 공유합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건 니 생각이고’의 가사는 저의 20대와 닮아 공감이 많이 됩니다. 뮤지컬도 좋아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조승우 배우를 좋아합니다. 종교 음악은 위러브크리에이티브팀(@welovecreativeteam) 음악을 많이 듣는데, ‘공감하시네’ ‘사랑을 구하는 사람’ ‘세상 가운데 소망을’을 즐겨 들어요.
기회가 닿는 대로 재능기부를 하면서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데요.
내가 갖고 있는 재능이란 게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잖아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까 나누면서 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래야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고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사는 거니까, 나도 도움을 많이 받고 살고 있으니까, 받은 사랑을 필요한 사람에게 내리사랑처럼 나누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엄마가 늘 베풀었어요. 음식을 수북이 만들어 늘 나눠 주셨죠. 어릴 적엔 남는 게 없다, 이러다 손해 보겠다 투정도 했죠. 그런데 나중에 다 채워지더라고요. 지금은 엄마가 많이 베풀어서 내가 사랑받고 사는구나 싶어요.
평소 좋아하는 성경 말씀은 무엇인가요?
딱 하나를 꼽는다면 빌립보서 4장 13절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입니다. 잠언 16장 9절의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도 좋아합니다.
젊은 세대로서 한국 교회가 개선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말씀과 다르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실망한 적이 많습니다. 착한 가면을 쓰고 있다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솔직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SNS에 올리는 글도 직접 느끼고 공감한 것을 올리려고 노력하고요. 말씀대로 사는 건 너무 어렵지만, 최대한 말씀을 되새기며 도덕적으로 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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