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들의 음클루

Guideposts 2022 | 07


Guideposts 2022 | 07

코끼리들의 음클루

Two days after the Elephant Whisperer died, his herd said goodbye

코끼리와 소통하던 로렌스가 세상을 뜬 이틀 후, 

친구들이 와서 고별인사를 전했다. 

By FRANÇOISE MALBY ANTHONY, Empangeni, South Africa

프랑수아즈 말비 앤서니  남아프리카공화국 엠판게니

Ican still hear them. The rumbling that vibrated through the reserve that dry evening in March. Their grief-filled moans. The 1agitated movements of their ears. Those big eyes fixed on me and me alone. My husband, Lawrence, always said there were things in this world that cannot be explained by reason, cannot be seen. Deep roots that connect all living things, humans and animals. It wasn’t until that night, two days after Lawrence died, that I truly understood.

This was a man who’d somehow charmed me into leaving my native France for an old Dutch farmhouse out on the savannah of Zululand in South Africa. A man who suddenly suggested we buy an old game 2reserve and transform it into Thula Thula, a lodge and an animal haven where leopards, zebras and white rhinos could roam free. A man who, after watching a news report on the Iraq War, sneaked into Baghdad in the midst of battle to rescue trapped zoo animals. And then, of course, there were the elephants.

Everyone called Lawrence the Elephant Whisperer. He earned the nickname after adopting a herd of nine “3delinquent” elephants about to be put to death. The herd was prone to escaping its protected habitat and 4rampaging through populated areas. Dangerous. Lawrence’s mind was made up, though. Maybe the elephants kept wandering because they weren’t in the right home, he said.

He had no knowledge of wild African elephants. Yet night after night, he camped out with them to earn their trust, a move that almost got him trampled. He sang to them, talked to them. Crazy, people said. But little by little, the herd took him in. First the 5matriarch, Nana, then the rest. They forged a deep bond, one based on trust and respect. The elephants stopped escaping and made Thula Thula their home.

Sometimes I tagged along with Lawrence on his visits to the elephants deep in the bush. Nana would extend her trunk to him and 6caress his face, as if he were a member of the family. The herd increased to 21 elephants and our property doubled over the years. But the bond remained. So did Lawrence’s nickname, though he preferred to be called the Elephant Listener.

“I don’t have a special talent,” he told me. “The elephants talk to me if they want to. If they don’t want to, I don’t insist. I just listen.”

지금도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건조한 3월 그 저녁, 보호구역을 온통 흔들던 나지막하게 울리는 소리. 깊은 슬픔으로 가득 찬 그들의 신음. 흥분으로 움직이는 그들의 귀. 큼지막한 그들의 눈망울은 나에게, 오직 나에게만 꽂혔다. 남편 로렌스는 언제나 세상엔 이성으로 설명할 수도 볼 수도 없는 일들이 있다고 했다. 인간과 동물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를 이어 주는 깊은 뿌리. 나는 남편이 세상을 뜨고 이틀이 지난 그날 밤이 되어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  

로렌스는 내가 모국인 프랑스를 떠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줄룰란드 대초원의 낡은 네덜란드식 농가로 향하도록 꾀어 낸 사람이었다. 느닷없이 오래된 사냥 금지 구역을 사들여서 숙박시설과 표범, 얼룩말, 흰코뿔소가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는 동물의 안식처를 갖춘 ‘툴라 툴라’로 바꾸자고 제안한 사람이었다. 이라크 전쟁 소식을 접한 후에는 동물원에 갇힌 동물을 구하려고 전투가 한창인 바그다드에 잠입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물론 코끼리가 빠질 수 없다. 

다들 로렌스를 ‘코끼리와 소통하는 이’라고 불렀다. 그는 죽을 위기에 처했던 ‘삐뚤어진’ 코끼리 9마리를 입양하고서 그 별명을 얻었다. 코끼리 무리는 보호 서식지를 탈출하고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위험했다. 그렇지만 로렌스는 마음을 정했다. 그는 코끼리들이 알맞은 서식지에 자리 잡지 않는다면 계속 돌아다닐 거라고 했다. 

남편은 야생 아프리카코끼리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하지만 코끼리의 신뢰를 얻으려고 매일 밤 그들과 함께 야영했다. 짓밟힐 수도 있는 행동이었다. 그는 코끼리들에게 노래해 주고 말을 걸었다.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코끼리 무리는 서서히 로렌스를 받아들였다. 처음에 우두머리 암컷 나나가 그랬고 그다음엔 나머지 무리가 그랬다. 그들은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깊은 유대를 맺었다. 코끼리들은 탈출을 멈추고 툴라 툴라를 집으로 삼았다. 

때때로 덤불 깊숙이 코끼리를 만나러 가는 남편을 따라갔다. 나나는 로렌스가 집단의 일원이라도 되는 양 코를 뻗어서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1년 사이에 무리는 코끼리 21마리로 불어났으며 우리 부지도 2배가 되었다. 하지만 유대감은 여전했다. 남편의 별명도 그랬다. 비록 그는 ‘코끼리에게 귀를 기울이는 이’라고 불리는 걸 더 좋아했지만 말이다. 

“내게 특별한 재능이 있는 건 아니에요. 코끼리들이 원할 때 내게 말을 거는 거죠. 그들이 원치 않는다면 강요하지는 않아요. 난 그저 귀를 기울일 뿐이에요.” 

남편이 얘기했다. 

I only wished he’d listen to me every now and then. Lawrence was physically strong, a robust six foot three. But lately he’d been having heart trouble. In September, at the age of 61, he’d suffered his second heart attack. He wasn’t supposed to fly, but he had insisted on traveling to Johannesburg for a weeklong business trip to help advance the mission of Thula Thula.

“Françoise, I’ll be fine,” he said before he left. “There’s no need to fret.”

The call came at seven o’clock in the morning on Friday, March 2, 2012. I was awake early, 7straightening up the house in preparation for Lawrence’s return. On the phone was David, Lawrence’s 8right-hand man, sobbing. I caught only 9snippets. Lawrence. Unconscious. Heart attack.

“I’m…so…sorry…Françoise,” he said. “He’s gone.”

I clutched the phone. “Impossible, impossible,” I whispered. But deep down I knew it was true.

The news hit Thula Thula like a bomb. Our staff of 70 was 10inconsolable. Lawrence wasn’t just the boss. His Zulu name was Mkhulu, or “grandfather.” That’s how everyone saw him. I knew they needed me to be strong, to assure them that we’d be okay, even without Lawrence. But I couldn’t think, couldn’t speak. My head was lost in memories.

Like the first time we’d met. Waiting for a taxi in London, where we had both gone on business. It was freezing, a mix of rain and snow. I finally made it to the front of the line. The concierge asked if I’d mind sharing a ride with the man at the back, also headed to the convention center. Lawrence was wearing a bright blue windbreaker in the middle of January, as if he were on safari. No way was I sharing a ride with that guy. “No, no,” I said.

To my great surprise, I ran into him later at a Tube station. It was hard to miss that windbreaker. This time, I introduced myself, apologized for my rudeness. It was one of those moments orchestrated by that invisible force Lawrence believed in. We met for dinner and a jazz show. One year later, I left Paris, headed for South Africa. It was easy to face the unknown with Lawrence. He made me less fearful.

I didn’t want to face the unknown without him. Didn’t want to live in a world without his fierce spirit and generosity. Life without Lawrence? Impossible, impossible!

Two days after Lawrence’s death, a Sunday, I was still holed up in our bedroom. People passed in and out of the house, paying their respects. It made no difference to me.

“They’re here!” someone said with a gasp. Who was here? The voice was followed by shouts. All kinds of 11commotion. What was going on?

나는 그저 로렌스가 이따금 내게 귀 기울이기를 바랐다. 그는 탄탄하고 키가 190.5㎝에 달하며 신체적으로 건강했지만, 근래 들어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 9월에는 61세 나이로 두 번째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비행기를 타면 안 되었지만, 툴라 툴라의 미션을 진척시키기 위해 일주일간 요하네스버그로 출장을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프랑수아즈, 나는 괜찮을 거예요. 마음 졸일 필요 없어요.”

떠나기 전에 그가 말했다. 

2012년 3월 2일 금요일 아침 7시에 그 전화가 왔다. 나는 로렌스의 귀가에 대비해 집 안을 정리하느라 일찍 깨어 있었다. 전화에서 남편의 오른팔인 데이비드가 흐느꼈다. 단편적인 것들만 파악할 수 있었다. 의식이 없고 심장마비. 

“정말… 정말… 유감이에요. 프랑수아즈. 그가 세상을 떠났어요.” 

전화를 움켜쥐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라고 속삭였지만, 마음속에서는 사실임을 알았다. 

그 소식은 마치 폭탄처럼 툴라 툴라를 강타했다. 우리 직원 70명을 위로할 길이 없었다. 로렌스는 그저 수장이 아니었다. 그의 줄루식 이름은 음쿨루 즉 ‘할아버지’였다. 다들 남편을 그렇게 여겼다. 직원들에게는 강인하고 로렌스가 없어도 괜찮다고 안심시켜 줄 내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나는 생각할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내 머리는 추억 속에 빠져 버렸다. 

우리가 처음 만나던 때처럼 말이다. 런던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우리는 둘 다 업무차 런던을 찾았다. 눈비가 뒤섞여서 얼어붙을 듯 추웠다. 마침내 줄 맨 앞에 섰다. 호텔 안내인은 나와 마찬가지로 컨벤션 센터로 향하는 뒤쪽 남자와 택시를 같이 타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1월 중순이었는데 로렌스는 마치 사파리에 있는 것처럼 밝은 파란색 바람막이 점퍼 차림이었다. 저런 사내와 택시를 같이 탄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뇨. 절대요.” 

내가 말했다. 

아주 놀랍게도 나중에 지하철역에서 그를 우연히 만났다. 그 바람막이 점퍼는 알아보지 못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날 소개하고 무례를 사과했다. 로렌스가 믿는 보이지 않는 힘이 연출한 순간 중 하나였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하고 재즈 공연을 보러 만났다. 1년 후 나는 파리를 떠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향했다. 로렌스와 함께라면 미지의 세상과 직면하는 일도 걱정 없었다. 남편 덕분에 덜 두려웠다.  

남편 없이는 알 수 없는 것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치열한 정신과 아량이 없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았다. 로렌스가 없는 삶? 불가능해. 불가능하다고! 

로렌스가 세상을 뜨고 이틀이 지난 일요일, 나는 여전히 침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사람들이 애도를 표하려고 집에 들락날락했다. 내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들이 여기 있어요!” 

누군가 헐떡이며 말했다. 누가 여기 있지? 목소리 다음에 고함이 이어졌다. 온갖 소란. 무슨 일이야? 

I dragged myself downstairs and opened the front door. The staff was gathered outside, all staring in the same direction, eyes wide.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 on our property were 21 distinct gray shapes. The elephants. Lawrence’s elephants.

Nana gazed at me. So did the rest. As if they were waiting for something. Or someone. They remained like that for more than an hour, then marched up and down along the fence, rumbling. The same noise they’d always used to “talk” with Lawrence. They seemed edgy. Distressed. Finally, they lined up one by one and made their solemn 12procession back into the bush.

The work at Thula Thula continues, as my husband would have wanted it to. Most people have moved on. But an elephant never forgets.

The year after Lawrence’s death, on March 4, the elephants returned. Led by Nana in the same procession. The year after that, again on March 4, they were back. And again on March 4 the following year. They mourned him like one of their herd.

How did they know? Who sent them? What does it mean? Some things in this world are beyond human understanding—cannot be explained by reason, cannot be seen.

몸을 이끌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현관문을 열었다. 직원들이 밖에 모여서 눈을 크게 뜨고 일제히 한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 부지 위의 울타리 맞은편에 회색 형체 21개가 또렷이 보였다. 코끼리들이었다. 로렌스의 코끼리들이었다.  

나나가 날 응시했다. 나머지 코끼리들도 그랬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대로 1시간 넘게 머물다가 울타리를 따라서 위아래로 행진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로렌스와 ‘이야기할’ 때 노상 내던 그 소리였다. 코끼리들은 초조하고 괴로워 보였다. 마침내 한 마리씩 줄지어 엄숙하게 행진하며 덤불로 돌아갔다. 

툴라 툴라의 과업은 남편이 원했을 모습대로 계속되었다. 다수의 사람은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코끼리는 절대 잊는 법이 없다. 

로렌스가 세상을 뜨고 1년이 지난 3월 4일, 코끼리들이 돌아왔다. 나나가 이끄는 같은 행렬이었다. 그 후로 1년이 지난 3월 4일에도 코끼리들은 돌아왔다. 그리고 그다음 해 3월 4일에도 또다시 그랬다. 코끼리들은 로렌스가 무리의 일원이었던 것처럼 애도했다. 

그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누가 그들을 보냈을까? 그건 무슨 의미일까? 이 세상의 어떤 일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다. 이성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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