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의의 나무라 일컬음을 받기까지


Guideposts 2022 |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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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나무라 일컬음을 받기까지


뮤지컬 〈영웅〉의 안중근부터 〈레미제라블〉의 장발장까지 선 굵은 역할을 도맡아 해 호탕한 경상도 남자일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낯을 가렸고, 말도 조용조용했다. 내면 깊숙한 열정은 대화를 나눌수록 서서히 드러났다. 특히 추진력이 마하급이라며 “덕분에 아내가 고생이 많다”고 쓱 웃었다.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는 틈틈이 찬양 사역자로 활약하는 양준모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오페라 가수로 데뷔했으나 우연히 뮤지컬 〈금강〉에 출연했다가 관객들이 웃고 우는 모습에 감동해 뮤지컬 배우로 전향했다. 탄탄한 발성과 쩌렁쩌렁한 성량을 지닌 그는 〈영웅〉의 안중근,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지킬 앤 하이드〉의 지킬,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 〈명성황후〉의 대원군, 〈스위니토드〉의 스위니토드 등 지난 20년간 남성 뮤지컬 배우라면 누구나 꿈꾸는 역을 소화했다. 지난 5월엔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 다섯 딸을 둔 신앙심 깊은 유대인 가장 테비예를 연기했다. 지금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뮤지컬로 만든 〈웃는 남자〉를 공연 중이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보고 내심 놀랐습니다. 기존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달리 재미있고 자상한 아버지 역할이 맞춤옷처럼 잘 맞더라고요. 


그동안 보통의 유머러스한 남자를 연기할 기회가 없었는데요. 배우로선 정말 하고 싶었고 또 관객으로서 보고 싶었던 작품이 바로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에요. 〈사운드 오브 뮤직〉도 그렇고 고전만의 매력이 있잖아요. 하지만 상업성을 고려하면 쉽게 올리기 어려운 작품이죠. 이번에 서울시뮤지컬단에서 1년 만에 재연해서 업계 일원으로서 참 고마웠어요. 뜨거운 관객 반응에 고전의 힘을 다시금 확인했고, 배우로선 무게감 있는 작품을 해 리프레시하는 기회가 되었어요.    



테비예가 고된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하나님께 푸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신앙심이 깊은 배우가 연기하니 더 진정성 있게 다가왔어요. 


저 역시 하나님과 싸우고 원망해 본 적이 있으니, 아무래도 보는 사람들의 느낌도 달랐던 것 같습니다. 〈영웅〉의 안중근 의사나 〈레미제라블〉의 장발장도 신앙심이 깊은 캐릭터인데, 특히 크리스천 인구가 전체의 1%도 안 되는 일본에선 크리스천 배우가 크리스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경우가 드물어 〈레미제라블〉에 참여했을 때 큰 주목을 받았어요. (양준모는 2014년 오디션을 통해 토호 극단의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역할을 따내 일본 무대에 올랐으며 “진정으로 하나님과 교류하는 장발장을 봤다”는 호평을 얻었다. 2017년엔 한국인 배우로선 유일하게 〈레미제라블〉 30주년 기념 무대에 섰다.)  



일본 공연 당시 유일한 크리스천 장발장이었나요?


네. 저를 포함해 세 명의 배우가 장발장을 연기했는데, 두 배우가 제게 성경책을 어떻게 들어야 하냐고 묻기도 해서 크리스천으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어요. 일본 언론에선 크리스천이 연기하는 장발장을 신기해했죠. 크리스천 팬들 중 한 젊은 목회자 사모는 편지로 제게 장발장을 연기해 줘서 고맙다고 하셨어요. 언제 자기들이 섬기는 교회로 와서 찬양해 달라고 하기에 공연 쉬는 다음 주말, 차로 2~3시간 거리의 지방까지 내려가 1시간짜리 콘서트를 한 적이 있어요. 근방의 신도들이 많이 왔고 반응이 정말 뜨거웠던 기억이 나네요. 


하나님께 푸념하는 테비예의 대사가 아주 실감 났는데 본인의 경험이 반영된 건가요?


저도 하나님께 푸념을 늘어놓은 적이 없진 않지요. 그렇다고 테비예의 대사를 제가 바꾸거나 뭔가를 덧붙이진 않았어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원작자인 숄렘 알레이켐(1859~1916)은 현재 우크라이나에 속한 유대인 집성촌에서 태어났어요. 대사에 이미 유대인의 습관과 관습이 녹아 있더라고요. 위고가 쓴 〈웃는 남자〉의 원작을 보면 제가 맡은 우르수스에 대해 혼잣말을 하는 인물이라고 적혀 있어요. 신에게 혼잣말을 하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라고 하는데, 작가 자신도 그랬던 것 같아요. 장발장의 여정을 봐도 그렇고요.

 


〈웃는 남자〉는 벌써 세 번째 무대인데요. 우르수스 캐릭터와 닮은 면이 많은가요?


우르수스는 겉보기엔 외향적이지만, 입이 찢어진 어린 그윈플렌과 눈먼 젖먹이 데아를 거두기 전만 해도 고독하게 살던 내향적인 남자예요. 저도 성격유형검사인 MBTI를 해 보면 내향적인 ‘I유형’이라는 결과가 나오거든요. 위고는 그를 철학자라고도 했는데요. 저와 비슷한 면이 많아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은 없어요. 〈웃는 남자〉 엔딩에서 아들이 죽으러 가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가 순순히 보내 주는 장면이 있어요. 이 엔딩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전 이해할 수 있어요. 그윈플렌과 데아는 한 몸과 같은 사이고 또 둘이 하늘에서 왔다고 믿기에 다시 하늘로 가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레미제라블〉 일본 공연 당시 일본 내 기독교 인구가 1%도 안 되어 남다른 사명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배우 활동에서 신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나요?


문화 사역자라고 따로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크리스천 배우라서 고민되는 지점은 있어요. 종교적 가치관과 충돌하는 캐릭터를 연기해야 할 때가 있잖아요. 나쁜 남자 역할도 많이 했는데, 그럴 때면 기도를 합니다. “내가 살인자를 연기하지만, 영광받아 주세요.” 이러한 고민 덕분에 어떤 인물을 연기하더라도 인간적으로 보이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되었어요. 〈스위니토드〉의 경우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가족을 잃은 주인공이 복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데, 살인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공감이 되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지를 두고 많이 고민했어요. 〈오페라의 유령〉도 판타지 속 인물이 아니라 인간적인 지점을 찾아 연기했더니 당시 연출하신 분이 제 리허설을 보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죠. 



지금껏 맡은 배역 중 가장 공감하는 인물을 꼽는다면?


장발장과 안중근 의사입니다. 저는 〈레미제라블〉의 핵심 메시지를 ‘하나님이 내면에 들어온 사람은 어떻게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장발장의 1번 곡 ‘독백’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19년간 옥살이를 해 신을 원망하던 장발장이 어느 주교와 만남 이후 진정으로 속죄하고 “난 다시 태어날 거야”라고 노래한 곡입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절대자의 터칭이 있다면 다를 수 있습니다. 장발장은 딸 코제트와 그녀의 연인 마리우스를 위해 목숨마저 거는데, 이는 하나님이 코제트를 주셨다고 믿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런 장발장의 마음이 잘 표현된 넘버가 영화 버전에만 있는 ‘서든리(suddenly)’인데, 극장에서 그 노래를 듣다가 정말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서른한 살에 〈영웅〉의 안중근 의사를 연기한 유일한 배우로 유명한데요.


제겐 로또나 다름없는 기회였죠. 안중근 의사가 서른에 체포돼 서른한 살에 돌아가셨는데 제가 동년배에 이 인물을 연기했어요. 개신교 신자인 저와 달리 안중근은 천주교 신자였지만,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가 더욱 가깝게 느껴졌죠. 또 〈영웅〉에서 안중근은 강한 의지를 가졌지만 한없이 약한 아들의 모습도 보여 주는데, 저 역시 고등학교 때 유학을 간 러시아에서 어머니와 통화할 때면 그렇게 눈물이 날 수가 없었어요. 〈영웅〉의 넘버 중 ‘우리의 이름이 잊힐지라도 지금 이 순간은 나라를 위해 후회 없이 살고 싶다’는 가사가 있는데요. 내뱉는 가사 하나하나를 통해 이런 감정을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부단히 애쓰며 연기했습니다.  



공연 전에 크리스천 배우들끼리 기도한다고요?


네. 다치는 사람 없게 해 달라, 예배 같은 공연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작품마다 기도를 주도하는 사람이 있는데, 늘 막이 오르기 전에 모여서 기도를 드려요. 그중에는 과거에 교회와 싸워서, 혹은 사역자에게 상처받아서 교회를 떠난 이들도 있죠. 〈영웅〉에 출연할 때는 일주일 내내 공연해서 우리끼리 주일예배도 드렸어요. 〈장발장〉 때는 하나님께서 숨겨 놓은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잘 전달하자고 다짐했고요.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도 여러 배우들이 크리스천이었죠.



신앙이 두터운 배우로 유명한데 신앙심이 특별히 깊어진 계기가 있나요?


제 신앙심이 특별히 깊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저 역시 항상 죄짓고 회개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저 모태신앙이고 온 가족이 크리스천이고 처가 역시 마찬가지라 제게 신앙은 마치 공기 같다고 할까요. 태어날 때부터 늘 함께해 왔습니다. (양준모의 큰삼촌은 성경번역선교회에서 20년 이상 사역한 선교사로, 가족들을 선교사의 길로 이끌었다. 부모는 남해에서 선교사로 활동 중이고, 친누나와 처남네 가족도 학생 선교단체 출신의 간사 및 목회자로 사역하고 있다.) 



신앙심이 흔들린 적은 없나요?


항상, 매일매일 흔들려요. 하지만 외면한 적은 없습니다. 부산 예술 고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찬양단을 만들어 학교 근처로 순회 집회도 다녔어요. 성가대는 꾸준히 하다가 제대 후 어느 순간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어요. 그래서 일반석에 앉아 예배를 봤죠. 신앙심은 오히려 결혼 후 아내 덕분에 더 단단해졌어요. 아내(맹성연 작곡가)는 교회에서 양육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 ‘양준모의 의의나무’ 채널을 개설해 찬송가를 올리고 있는데요.


제가 과거 사랑의교회에서 찬송가로만 콘서트를 한 적이 있어요. 당시 아내가 음반으로 만들자고 했는데, 어느 날 예배드리다 지금이라는 느낌이 들어 한 달 만에 준비해서 뚝딱 발매했습니다. 제가 추진력이 남달라요.(웃음) 일을 벌이는 타입이라 아내가 힘들어하죠. 저는 ‘그때그때 주어진 것을 잘하면서 살자’ 주의자예요. 2019년 공연 기획·개발사인 몽타주컬처앤스테이지를 차린 것도 비슷한 경우예요. 〈포미니츠〉라는 영화를 보고 이 작품을 뮤지컬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몽타주컬처앤스테이지를 설립했어요. 원작자를 찾아 저작권을 해결하고 대본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사람을 모아서 이듬해 아내와 함께 무대에 올렸죠.



찬송가는 어떤 기준으로 선곡했나요? 채널명을 의의나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내와 같이 불러 보면서 선곡했는데, 결과적으로 십자가에 대한 내용이 많아요. 찬송가가 좀 더 자주 불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내가 다시 편곡했고요. 유튜브 채널엔 정기적으로 업로드하는데, 전부 지난 3월 발매된 앨범 수록곡입니다. 앨범 커버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직접 그렸어요. 어쩌다 보니 가족 프로젝트처럼 되었어요. 성경을 묵상하다가 아내와 함께 늘 의의 나무가 되려고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앨범명이 되었고요.



평소 좋아하는 성경 말씀이 있나요?


이사야 61장 1-3절인데요.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이드포스트’ 독자에게 한마디 부탁합니다.


저 역시 자주 “하나님 저 잘 살고 있나요?”라고 묻는 사람이에요.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고 있나요”라고 질문을 던지며 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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