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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푸념하는 테비예의 대사가 아주 실감 났는데 본인의 경험이 반영된 건가요?
저도 하나님께 푸념을 늘어놓은 적이 없진 않지요. 그렇다고 테비예의 대사를 제가 바꾸거나 뭔가를 덧붙이진 않았어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원작자인 숄렘 알레이켐(1859~1916)은 현재 우크라이나에 속한 유대인 집성촌에서 태어났어요. 대사에 이미 유대인의 습관과 관습이 녹아 있더라고요. 위고가 쓴 〈웃는 남자〉의 원작을 보면 제가 맡은 우르수스에 대해 혼잣말을 하는 인물이라고 적혀 있어요. 신에게 혼잣말을 하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라고 하는데, 작가 자신도 그랬던 것 같아요. 장발장의 여정을 봐도 그렇고요.
〈웃는 남자〉는 벌써 세 번째 무대인데요. 우르수스 캐릭터와 닮은 면이 많은가요?
우르수스는 겉보기엔 외향적이지만, 입이 찢어진 어린 그윈플렌과 눈먼 젖먹이 데아를 거두기 전만 해도 고독하게 살던 내향적인 남자예요. 저도 성격유형검사인 MBTI를 해 보면 내향적인 ‘I유형’이라는 결과가 나오거든요. 위고는 그를 철학자라고도 했는데요. 저와 비슷한 면이 많아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은 없어요. 〈웃는 남자〉 엔딩에서 아들이 죽으러 가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가 순순히 보내 주는 장면이 있어요. 이 엔딩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전 이해할 수 있어요. 그윈플렌과 데아는 한 몸과 같은 사이고 또 둘이 하늘에서 왔다고 믿기에 다시 하늘로 가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레미제라블〉 일본 공연 당시 일본 내 기독교 인구가 1%도 안 되어 남다른 사명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배우 활동에서 신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나요?
문화 사역자라고 따로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크리스천 배우라서 고민되는 지점은 있어요. 종교적 가치관과 충돌하는 캐릭터를 연기해야 할 때가 있잖아요. 나쁜 남자 역할도 많이 했는데, 그럴 때면 기도를 합니다. “내가 살인자를 연기하지만, 영광받아 주세요.” 이러한 고민 덕분에 어떤 인물을 연기하더라도 인간적으로 보이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되었어요. 〈스위니토드〉의 경우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가족을 잃은 주인공이 복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데, 살인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공감이 되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지를 두고 많이 고민했어요. 〈오페라의 유령〉도 판타지 속 인물이 아니라 인간적인 지점을 찾아 연기했더니 당시 연출하신 분이 제 리허설을 보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죠.
지금껏 맡은 배역 중 가장 공감하는 인물을 꼽는다면?
장발장과 안중근 의사입니다. 저는 〈레미제라블〉의 핵심 메시지를 ‘하나님이 내면에 들어온 사람은 어떻게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장발장의 1번 곡 ‘독백’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19년간 옥살이를 해 신을 원망하던 장발장이 어느 주교와 만남 이후 진정으로 속죄하고 “난 다시 태어날 거야”라고 노래한 곡입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절대자의 터칭이 있다면 다를 수 있습니다. 장발장은 딸 코제트와 그녀의 연인 마리우스를 위해 목숨마저 거는데, 이는 하나님이 코제트를 주셨다고 믿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런 장발장의 마음이 잘 표현된 넘버가 영화 버전에만 있는 ‘서든리(suddenly)’인데, 극장에서 그 노래를 듣다가 정말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