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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라오스에서 첫 야구 리그가 열렸는데요. 지금의 결실을 맺기까지 그 과정이 녹록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많이 부었습니다.(웃음) 2014년 11월, 난생 처음 라오스에 도착했을 때가 생각나네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라오스의 경제력이 세계 139위로 196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 모습이었죠. 선수들의 상황도 열악했어요. 12명이 전부인 선수들은 비쩍 말라 있었고, 그중 5명이 맨발로 왔더라고요. 꿈이 뭐냐고 물으니 하루 세끼 밥 먹는 거래요. 충격적이었죠. 그래서 선수 모집 광고에 빵과 물을 지급한다고 했더니 400~500명이 지원했어요. 최종 40명을 뽑았는데 그들이 라오스 유일의 야구단 라오J브라더스의 선수였고 동시에 라오스 최초의 국가대표였습니다. 방문 첫해 뎅기열에 걸려 기분 나쁜 미열이 한 달 넘게 지속됐던 기억도 생생하네요.
재능기부 활동을 더 체계적으로 하려고 재단도 설립했는데요.
선수 시절 별명인 ‘헐크’를 붙여 ‘헐크 파운데이션’으로 지었습니다. 재능기부에 너무 많은 사비가 들어 주위에 고민을 털어놨더니 엄홍길휴먼재단을 만든 친구가 재단 설립을 권했어요. 2014년 창립 준비 TFT를 발족하고, 이듬해 라오스 야구장 건립 프로젝트 팀과 라오스 야구협회 창립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킨 뒤 2016년 4월 공식 발족했습니다. 친구가 재단 운영의 원칙으로 “네 돈을 쓰기 시작하면 망하니까 그것만 명심하라”고 했는데, 말처럼 쉽지 않더군요. 직원 월급 줄 돈이 없어 아내가 다 맡고 있는데 잔고가 바닥입니다.(웃음) 결과적으로 재단 꾸리며 인생을 많이 배웠습니다. (스타 선수·감독으로 살다 보니) 평생 누구한테 굽실거려 본 적이 없는데 기부해 달라고 참 많이 굽혔습니다. 또 거절에 익숙해졌죠.
남모를 고생이 많았지만, 보람도 컸을 것 같습니다.
음악이 삶을 바꾼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처럼 야구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구나, 그걸 알게 됐죠. 선수들이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싶어 부산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2016년에 처음으로 라오스 선수들을 한국에 초청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루 세끼 밥 먹는 게 꿈이라던 선수들이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라오스의 문맹률을 낮추는 교사, 정치 경제의 변화를 이끌 정치인·사업가가 되고 싶다고들 했습니다. 병원이 없어 아프면 태국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의사를 꿈꾼 친구도 있었죠. 물론 야구선수도 꿈꿨고요. 초창기 40명이던 선수는 이제 150명으로 늘었는데, 구단을 거쳐 간 이들까지 합치면 200명의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셈이에요.
라오스 최초의 야구장이 2019년 문을 열었는데, 뿌듯하시겠습니다.
한국을 다녀간 라오스 선수들에게 국제야구대회 출전과 같은 또 다른 동기부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라오스 야구협회 설립을 추진하던 중 야구장 건립으로 이어졌습니다. 라오스가 공산국가라 외부인을 경계하다 보니 야구협회 설립에 2~3년이 걸렸어요. 정부 관계자 미팅에서 그들이 대접한 지네와 박쥐 요리까지 먹으며 설득했습니다. 결국 라오스 정부에서 땅을 줄 테니 야구장은 알아서 지으라고 해 우여곡절 끝에 대구은행 회장님의 기부금 3억 원에 제 사비를 보태 야구장 건립 비용을 마련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베푸는 삶을 모르다가 라오스에 가서 억지로 내 손에 움켜쥐고 있던 돈을 내놓게 됐죠. 그렇게 재물, 명예, 건강이 다 날아가나 싶었는데 뒤돌아보니 더 많은 것을 얻었더라고요.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저를 헐벗게 하진 않으셨고, 진짜 행복을 선사하셨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