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밝히는 빛

Guideposts 2022 | 03


Guideposts 2022 | 03

어둠을 밝히는 빛

A chaplain on the front lines of the epidemic 

talks about what’s inspired him.

사제는 코로나19 대유행의 최전방에서 

스스로를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By ADAM RUIZ, Louisville, Kentucky

애덤 루이즈  켄터키주 루이빌

John was the first Covid-19 patient I spoke with over the phone at Norton Women’s & Children’s Hospital, where I am a chaplain.

According to my patient list, John was 33, Hispanic. It was March 2020. He had been in our hospital two days. That spring, as the deadly virus was first diagnosed in Kentucky, we chaplains were encouraged to comfort patients by phone to conserve protective equipment and reduce the risk of infection. It was difficult not being able to see them.

“How are you?” I asked.

“Better,” John said. His labored breathing indicated otherwise. He sounded as if he was suffocating, every breath a battle.

He said he had no family nearby. “I’d be happy to pray with you,” I said.

“I don’t believe….” 

A long pause.

I tried to complete his thought: “You don’t believe in God?”

With his last ounce of strength, he gasped, “I will recover.”

I wasn’t sure what he meant, but it felt wrong to keep him on the phone any longer. I promised to call him the next day. He thanked me. By evening he was dead. My first Covid-related death. We were both Hispanic, soon to be defined as a high-risk demographic. He could have been me, I thought.

A novel virus, Covid-19, had arrived on American shores in January. For weeks, I’d lived with the hope that the virus would be contained before it reached Kentucky. 

I hadn’t let myself consider any other scenario. Reality shook me to my core.

“Covid has arrived, and now we walk through a dark valley…and I am very much afraid,” I wrote in my journal.

존은 내가 원목으로 있는 노턴 여성‧어린이 병원에서 전화상으로 이야기를 나눈 최초의 코로나19 환자였다. 

환자 목록에 따르면 존은 33세의 히스패닉(라틴 아메리카 출신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역주)이라고 했다. 때는 2020년 3월이었고 존이 병원에 입원한 지 이틀째였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켄터키주에서 처음 진단된 그해 봄, 우리 목사들은 방호 장비도 아끼고 감염 위험도 낮출 겸 전화로 환자를 격려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들을 볼 수 없다는 게 힘들었다. 



존이 답했지만, 가쁜 호흡은 달리 말하고 있었다. 질식하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매 호흡이 투쟁이었다. 

그는 근처에 가족이 없다고 했다. 

“기꺼이 당신과 함께 기도할게요.” 

“나는 믿지 않아요….”

한참 말이 끊겼다. 그의 생각을 완성해 보려고 애썼다.

“신을 믿지 않나요?”

존은 최후의 힘을 그러모아 가쁜 숨을 쉬었다.

“나는 회복할 거예요.” 

그가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환자를 계속 전화에 붙들어 두는 게 옳지 않은 일 같았다. 다음 날 전화하겠다고 약속하자 존은 고마워했다. 저녁 즈음, 그는 세상을 떠났다. 내가 마주한 첫 코로나19 사망자였다. 우리는 둘 다 히스패닉이었고, 곧 고위험 인구층으로 분류되었다. 

‘그는 나일 수도 있었다.’  

유례없는 바이러스 코로나19는 1월에 미국에 상륙했다. 몇 주 동안은 바이러스가 켄터키주에 도달하기 전에 막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살았다. 내가 다른 시나리오를 고려하는 걸 그냥 둘 수 없었다. 현실은 엄청난 충격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코로나19가 닥쳐 왔다. 이제 우리는 어두운 골짜기를 걷고 있으며… 매우 두렵다.” 

그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Part of my job as a hospital chaplain—a position I’ve served in for 14 years—is to help calm the anxieties of the patients I minister to. I understand the fear that comes with facing a medical trauma. As a teenager, I survived a brain tumor. I saw how God worked through the love of others. As a chaplain, I got to pay that love forward. But Covid felt different. It was hard to be hopeful, hard to know if I was helping.

Until I turned my focus to the people around me, looking outward instead of inward. I began noticing acts of compassion. And the more I looked, the more I found—a practice I continue to this day. Compassion is everywhere, as contagious as any virus.

One of the first times this struck me was early in the pandemic, during a code blue. I saw Deb, a pharmacist nine months pregnant, literally running from our Covid unit to the ICU and back. Even in the urgency of the moment, Deb’s selflessness seemed remarkable. Everyone would have understood if she hadn’t. Yet it was a lesson that would stay with me throughout the hard months to follow: Compassion demands courage. It takes great courage not to turn away from those in such desperate need, to put yourself at risk for the good of others.

Later I asked Deb about it. 

“If you’re not willing to run for someone who is dying, when will you ever do it?” she told me. “We have husbands and wives and mothers and daughters dying of Covid in the hospital. If I run fast enough, maybe we can save at least one of them.”

After our conversation, I remembered a Jewish proverb: “Before every person, there marches an angel proclaiming, ‘Behold, the image of God.’” During the code, I beheld the image of God. And it was lovely. That moment stayed with me.

It’s been said that when we watch a film together, none of us sees the same film. The same is true for traumatic events. We all experienced the pandemic together but felt it differently. Some grieved; some raged; some took action; some retreated into denial. At times I tried to escape. But everywhere I ran led me right back to Covid. The virus was all-consuming, relentless. So often I wanted to flee, to spend time with my wife and my pets, away from the pain, the sorrow, the anguish I dealt with daily at work. My home was quiet and less anxious than anywhere else. At one point, my wife and I discussed living in separate quarters for safety, but the thought of doing so was infinitely more stressful than going through this together, whatever the outcome. So we limited our time together, and I had a ritual of throwing my clothes in the washer as soon as I entered the house. I mostly stayed downstairs, and she mostly stayed upstairs. It was simple yet proved effective.

병원 원목‒14년 동안 맡아 온 자리‒으로서 내 업무 중 하나는 보살피는 환자의 불안을 덜어 주는 것이다. 나는 의학적 외상을 직면할 때 따라오는 공포를 이해한다. 십대 때 뇌종양을 딛고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타인을 위한 사랑으로 애쓰시는 모습을 보았다. 목사로서 나는 그 사랑에 선행으로 보답해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달랐다. 희망을 품기도, 나 자신이 도움이 될 거란 확신도 하기 어려웠다. 

내 마음을 보는 대신 바깥세상을 보면서 주변 사람에게 초점을 돌릴 때까지 그랬다. 측은지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 많이 볼수록 더 많이 찾았는데, 이는 내가 오늘날까지 계속하는 습관이기도 하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어디에나 있고 바이러스처럼 파급력이 있다.  

이런 생각이 처음 떠오른 건 팬데믹 초기, 응급 상황에서였다. 임신 9개월째인 약사 뎁이 코로나19 병동에서 중환자실까지 말 그대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긴급한 순간에도 뎁의 이타심은 남달랐다. 뎁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해도 모두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이은 혹독한 시기 내내 나와 함께한 교훈이 있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용기를 ‘요구한다.’ 절박한 어려움에 빠진 이에게 등 돌리지 않고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타인을 위하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나중에 그 일을 물었더니 뎁이 답했다.

“죽어 가는 사람에게 기꺼이 달려가지 않는다면 언제 그러겠어요? 병원에는 코로나로 죽어 가는 남편과 아내, 어머니와 딸이 있어요. 내가 충분히 빨리 간다면 최소한 그들 중 한 명은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뎁과 대화를 나눈 뒤 “천사는 모든 이 앞에서 ‘보라, 하나님의 형상을’이라고 선언하며 행진한다”라는 유대인 속담이 떠올랐다. 나는 응급 상황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으며 그것은 고귀했다. 그 순간이 내 곁에 머물렀다. 

함께 영화를 봐도 같은 영화를 보는 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외상을 남기는 사건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팬데믹을 겪었지만, 서로 달리 느낀다. 누군가는 슬픔에 잠기고 어떤 이는 격분한다. 행동을 취하는 사람도 있고 부인(否認)하며 틀어박히는 사람도 있다. 때로 나는 달아나려고 애썼다. 하지만 어디로 달아나든 코로나19로 돌아왔다. 바이러스는 모든 걸 태워 버렸고 잦아들 줄 몰랐다. 종종 도망치고 싶었다. 아내와 반려동물들과 시간을 보내며 매일 직장에서 다루는 고통, 슬픔,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집은 조용하고 다른 어느 곳보다 덜 불안했다. 한때 아내와 나는 안전을 위해 서로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일을 의논했지만, 그렇게 지내는 걸 생각하는 편이 결과가 어찌 됐든 어려움을 함께 이겨 내는 일보다 훨씬 더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보내는 시간을 제한하고, 나는 귀가하자마자 옷을 세탁기에 던져 넣는 의식을 치렀다. 나는 주로 아래층에 머물고 아내는 거의 위층에서 지냈다. 단순했지만 효과적이라는 게 입증되었다. 

Even at home, people were contacting me late at night to share their anxiety. I often didn’t know what to say. I admitted to a friend once, “I have nothing to offer you. I have only tears.” I felt as if I’d failed her, but those words gave her comfort. They reminded her she wasn’t the only one struggling with the pandemic.

Similarly, that April, a chaplain friend told me, “I don’t feel safe anywhere because I don’t think anyone knows what safe is.” Her vulnerability filled me with compassion. I reminded her (and myself), “Covid is strong, but we are stronger.” I wasn’t sure if I totally believed it, but I wanted to believe that strength, like faith, comes not from what we can see with our eyes but what we feel in our hearts.

The governor of Kentucky chose the color green to honor all Covid-19 victims and their families. Homes, banks, landmarks, hospitals and universities across the state were lit up with green lights. Each night in my own neighborhood, most of the homes were lit in green. Many places across the country, indeed all around the world, were displaying similar acts of support for their community.

My friend Carola told me how people in Nova Scotia created a Facebook page to support each other through music, recipes, crafts and uplifting photos. Another friend, Laura, said that when her upstate New York community went into lockdown, within 24 hours free lunch stations were set up all over town to ensure no child would go hungry, especially those who depend on school meals.

My high school friend Julia’s husband died two weeks before Covid slammed into her northern Virginia community. Forced separation from friends made Julia’s grief even harder to bear. She said what really saved her from spiraling into the abyss was that her local YMCA provided virtual support. Every day, instructors came into her home via her computer, providing connection, motivation, inspiration and prayer. Despite having to navigate their own personal life challenges, they were faithful visitors, giving her what she needed during this incredibly difficult time.

Hearing all these stories made me ponder. So much of the love and solidarity in the world we’re unaware of—or at least I am. And yet when you stop to think about it, the impact is incalculable, awe-inspiring, like trying to count the stars that fill the heavens.

집에 있을 때조차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연락해서 근심을 나누려 했다. 종종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에 한번은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네게 해 줄 게 없어. 눈물밖에 없거든.”

친구의 기대에 어긋났다고 느꼈지만, 그 말은 친구에게 위안이 되었다. 덕분에 친구는 자기가 팬데믹으로 고군분투하는 유일한 사람이 아님을 다시금 깨달았다.  

마찬가지로 4월에는 목사 친구가 얘기했다. 

“어디서든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어. 누구도 무엇이 안전한지 모르잖아.”

친구의 약한 모습이 내 마음을 연민으로 채웠다. 나는 친구(와 나 자신)에게 다시 말했다. 

“코로나19는 강하지만, 우리는 더 강해.”

내가 그 말을 전적으로 믿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신앙처럼 그 힘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에서 우러난다고 믿고 싶었다. 

켄터키주 주지사는 모든 코로나19 사망자와 그 가족을 기리는 색으로 녹색을 선정했다. 주 전역의 집, 은행, 명소, 병원, 대학이 초록 불을 밝혔다. 우리 동네에서도 매일 밤 대부분의 가정이 녹색으로 빛났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장소가 공동체를 지지하려고 비슷한 행동을 했다. 

친구 캐롤라는 노바스코샤 주민들이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해서 음악, 요리법, 공예품, 희망을 주는 사진을 통해 서로 버팀목이 되어 준다고 얘기했다. 다른 친구 로라는 자기가 사는 뉴욕주 북부가 봉쇄에 돌입하자 24시간 이내에 무료 점심 급식소가 온 동네에 설치되었다고 했다. 어떤 아이도 굶주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는데, 특히 학교 급식에 의존하던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고등학교 친구인 줄리아의 남편은 코로나19가 그들이 사는 버지니아주 북부를 강타하기 2주 전에 세상을 떠났다. 어쩔 수 없이 친구들과 떨어져 있어야 했기에 줄리아의 슬픔은 견딜 수 없이 한층 더 깊어졌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구렁텅이에 빠져들지 않은 건 동네 YMCA가 온라인 지원을 제공한 덕분이라고 했다. 강사들은 매일 컴퓨터를 통해 친구의 집에 찾아와서 소통, 동기, 영감, 기도를 나눴다. 자신들도 삶에서 맞닥뜨린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했지만, 그들은 신실한 방문자였고 대단히 어려운 시기에 줄리아에게 필요한 것을 전해 주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으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세상에 넘치는 사랑과 연대감을 우리가‒최소한 나는‒몰랐다. 멈춰서 그걸 생각하면 그 영향력이 헤아릴 수가 없으며, 경외심이 하늘을 가득 채운 별을 세는 것만큼이나 헤아릴 수 없이 일어난다.

I switched my work hours so that I could support our second- and third-shift employees. An ICU nurse named Hannah shared her first experience with a Covid patient. She was new to nursing and very afraid of contracting the virus. This patient was extremely ill. It was Christmastime. She cared for him nine days straight, even coming in on her days off. Being that she couldn’t be with her family and his family couldn’t be with him, she decided “we would be family for each other.”

Then Hannah told me, “There is the Christmas story where Mary and Joseph get to Bethlehem and there is no room in the inn for them. Well, there was room in my heart for my patient. He wouldn’t be left out in the cold by himself. I was going to be his angel even if he never knew it.” He never did know because he was intubated his entire hospitalization. Sadly, he died. “Taking care of him gave me the courage to help other Covid patients,” Hannah said. “I will never forget him.”

My friend Caroline, who lives in Belgium, told me about her 73-year-old neighbor, who had been taken to the hospital with Covid. It was touch and go for a bit, but she finally came home. “I put in front of her door a beautiful basket full of vegetables, fruits, biscuits, chocolates…and even a small bottle of Italian spritz prosecco,” Caroline said. “She was so happy. I know doctors and nurses are working all hours, and it is horrible to see. This is my contribution to the effort.”

In April 2020, an ICU nurse in my hospital, Myra, was caring for a Covid patient who eventually died. It was scary being in a Covid-positive room in those early days. When it came time to clean the room, Myra told the environmental service employee not to come in. “I will clean,” she said. “Don’t enter and risk infection.” Then she started mopping the room while we watched from the safety of the hallway. What Myra did was an extraordinary act of compassion. The whole world, according to Paul in Romans, stands on tiptoes waiting to see the marvelous things of God. It’s true. I felt blessed—as I have so many times during this pandemic—simply to bear witness.

Now it is 2021. The Delta variant sweeps the country, and there is a long way to go before we get to the other side of Covid. I am a different person than I was in the spring of 2020. I am more hopeful because I know I am not alone. There are billions of us around the world on this journey together. That thought alone gives me peace and reassurance.

I am greatly encouraged when I remember that the majority of people have mobilized to protect and sustain the most vulnerable among us. While Covid has had a devastating impact, the human spirit has not been extinguished or laid low. Quite the contrary. Heroes great and small, acts of kindness and compassion publicly acknowledged or privately treasured, all bear witness to the goodness of humankind. We have walked through this darkest of nights together, and we are also witnesses to the light that overcomes the darkness. Faced with sorrow, chaos and pain, our response has been love. Courage. Compassion. May it always be so.

저녁과 야간 근무조 직원을 격려하려고 근무 시간을 바꿨다. 중환자실 간호사인 한나는 코로나19 환자와 처음으로 함께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한나는 신입 간호사였고 바이러스와 접촉하는 게 무척이나 두려웠다. 환자는 중병이었고, 때는 크리스마스 기간이었다. 한나는 9일 연속으로 그 환자를 챙기며 비번일 때도 찾아왔다. 한나도 가족과 함께할 수 없었고 환자의 가족도 그와 같이 있을 수 없었기에 한나는 “우리가 서로에게 가족이 되기로” 결심했다.  

한나가 말했다.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여관에 방이 없었다는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있죠. 음, 내 마음에는 환자를 위한 자리가 있어요. 그는 추위 속에 혼자 방치되지 않을 거예요. 환자가 알지 못하더라도 내가 그의 천사가 되어 줄 거니까요.” 

환자는 입원 기간 내내 삽관(기도나 창자 등에 관을 삽입하는 일‒역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몰랐고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그 환자를 돌본 덕분에 다른 코로나19 환자를 도울 용기를 얻었어요. 그를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벨기에에 사는 친구 캐롤라인은 코로나19로 병원에 실려 간 이웃의 73세 할머니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다소 위태로웠지만 할머니는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그 집 문 앞에 채소, 과일, 비스킷, 초콜릿에다가… 이탈리아 스프리츠 프로세코 와인 작은 병까지 담은 예쁜 바구니를 뒀어. 할머니는 아주 기뻐했지. 의사와 간호사들이 내내 일하는 걸 알면서 그걸 지켜보는 건 참담한 일이야. 이건 그 노고에 대한 나의 감사야.” 

2020년 4월, 우리 병원의 응급실 간호사 마이라는 결국 세상을 뜬 코로나19 환자를 보살피고 있었다. 초기에는 코로나19 양성 병실에 있는 일이 매우 겁났다. 병실을 청소할 때가 되자, 마이라는 환경 관리 직원에게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내가 치울게요. 들어와서 감염 위험을 무릅쓰지 말아요.” 

우리가 안전한 복도에서 지켜보는 동안, 마이라는 대걸레로 병실을 청소했다. 마이라가 한 일은 측은지심에서 우러나온 특별한 행동이었다. 

로마서의 바울에 따르면, 온 세상이 하나님의 경이로운 일을 보려고 기다리면서 까치발로 서 있다. 사실이다. 그 증인이 될 수 있으니‒팬데믹 시기에 수없이 그랬듯이‒나는 축복받았다. 

이제 2021년이다. 델타 변이가 전국을 휩쓸었고 코로나19의 반대편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나는 2020년 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혼자가 아님을 알기에 더 희망적이다. 전 세계에 이 여정을 함께하는 수십억의 우리가 있다. 그 생각만이 내게 평화와 안심을 준다. 

우리 중 가장 취약한 이들을 보호하고 격려하려고 대다수가 모였다는 점을 기억할 때면 큰 용기를 얻는다. 코로나19가 끔찍한 영향을 미치는 와중에도 인류 정신은 스러지거나 패배하지 않았다. 그와 정반대다. 크고 작은 영웅들, 공공연하게 알려지거나 은밀하게 간직한 친절과 동정에서 우러나온 행동들이 모두 인류가 지닌 선량함의 증거다. 우리는 가장 어두운 밤을 함께 지나오며 암흑을 뛰어넘는 빛을 목격했다. 슬픔, 혼돈, 고통에 직면했을 때 우리 응답은 사랑이고 용기였으며 동정이었다. 언제나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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