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예수님이 나의 브랜딩
Guideposts 2022 |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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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나의 브랜딩
윤선디자인 사무실의 첫인상은 밝고 따뜻했다. 바(Bar) 형식의 홈 카페 구성 옆에 놓인 널찍한 나무 테이블은 매서운 회의보다는 다정한 담소에 어울렸다. 이런 공간에서라면 누구나 일하고 싶겠다. 예정된 시간을 넘겨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정돈된 말과 제스처, 정제된 단어 선택 속에 담긴 그 사람의 온도를 느끼면서 이분이 과연 그렇게 힘든 일을 겪으신 분이 맞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광로에서 뽑아 나온 단단한 철과 같이, ‘디자인은 한 편의 메시지’라는 정윤선 씨의 말에서 교회를 향한 애정과 윤선디자인의 지향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윤선디자인이 만들어지고 난 뒤로는 그냥 쭉 바쁘게 사는 것 같아요. 제가 여기서는 대표이지만 집에서는 아이들의 엄마거든요. 요즘 아이들이 학교생활 중에 코로나 감염 우려가 많다 보니까 아이 아빠랑 저랑 교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코로나 검사도 받으러 다니고 그렇게 바쁘게 살고 있어요.
반복해서 받는 질문일 수 있지만 윤선디자인의 출발과 성장 과정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십 년 전 즈음에 성동구에 있는 저희 집 작은 방에서 혼자 시작했어요. 한 손으로 아이 젖을 물리고 남은 손으로 작업을 했죠. 그때 마음의 소원이 있었어요. 작은 사무실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소원이란 게 그저 바라는 바일지도 모르지만, 믿는 사람들에겐 하나님의 가능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어요.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일으켜 주실 거야, 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작은 소망으로 4~5평 되는 원룸 사무실에서 보조하는 직원 한 명과 같이 시작한 일이 점점 커져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너무 간단하게 설명 드렸죠? 장황하게 할 수도 있긴 해요.(웃음)
장황과 간단 사이는 있나요?
그 사이요? 한번 해볼까요.(웃음) 사실 저는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어요. 인터넷으로 디자인을 배웠죠. 밤을 새워 가며 검색해서 디자인을 배웠는데 그게 너무 고맙더라고요. 그런 정보가 있다는 게요. 그래서 저도 제가 배운 것을 블로그에 올려 보자고 생각했어요. 전공자들이 보면 이게 무슨 디자인 블로그냐고 했을 거예요. 제목이 ‘일러스트에서 작업창 열기’ 같은 거였으니까요. 그래도 저 같은 아기 엄마들, 혼자 디자인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아기 엄마들을 상대로 강의도 했고요. 하루는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책을 한번 내보지 않겠냐고요. 아니 제가 어떻게 책을 내요, 했더니 그동안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사람들과 소통하고 강의한 것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대요.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포토샵 + 일러스트레이터 작업의 기술』이에요. 과연 팔릴까 했는데 베스트셀러까지 되었어요. 교회 수련회 포스터나 목사님 명함 만들기같이 대놓고 교회적인 요소들이 많아서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그걸 계기로 윤선디자인이 세상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어요.
윤선디자인은 나눔과 함께 성장했어요. 어느 날 작은 교회로부터 로고 디자인 의뢰를 받았는데, 목사님이 당시 15만 원의 디자인비도 힘들다 하시더라요. 저는 이해해요. 제가 다닌 교회도 그랬으니까요. 이 얘기를 들은 남편이 마침 자기가 일하고 받은 돈 15만 원이 있다면서 무명으로 기부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디자인 나눔이 정기적인 나눔이 되고 그게 또 점점 알려지면서 많은 교회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아마도 저희에게 디자인을 의뢰하는 까닭은 그 비용이 언젠가 어딘가로 흘러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감사하죠.
요즘은 디자인이라는 말이 참 다양하게 사용되는 거 같아요. 생각이나 꿈을 디자인한다고도 하고요. 선생님은 디자인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음. 디자인은 한 편의 설교라고 생각해요. 특히 교회 디자인은 더욱 그래요. 예전에 본 어떤 디자인에서 굉장히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어요. 마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같은 경험이었죠. 그때 디자인이 한 편의 설교가 될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떤 디자인이 교회에 걸린다는 것은 목사님과 교회의 리더들이 성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함축하여 전달하는 거잖아요. 화려한 색감이나 현대적인 감각을 따라가는 유니크한 디자인보다는 한 편의 설교가 될 수 있는 그런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멋진 디자인 철학이네요.
저희 디자인 중에 십자가가 있어요. 성도들이 교회 본당에 걸린 십자가를 보며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디자인이에요. 그런데 막상 작업하려니 십자가의 소재를 뭘로 해야 할지부터 고민이 되었어요. 제가 사는 왕십리 지역은 재개발로 공사하는 곳이 많아요. 하루는 어떤 공사장을 지나는데 길에 버려진 철심이 눈에 띄는 거예요. 우리가 버려 놓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저런 모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철을 소재로 정하고, 최대한 부식을 시켜서 거기서 나오는 검붉은 것들이 예수님께서 흘리신 핏방울처럼 느껴지게 만든 작품이 ‘십자가’입니다. 크리스천 디자이너가 살려야 하는 브랜딩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어요. 윤선디자인의 정체성이기도 하고요.
디자인 일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작년인가요, 저희가 매년 난방비 지원 이벤트를 하고 있는데, 선정되신 분께 전화를 드렸어요. 난방비 지원에 선정되었다고요. 그런데 그분이 지금은 좀 바쁘니 내일 연락하자며 전화를 끊는 거예요. 되게 반가워할 줄 알았는데 당황했죠. 다음 날 그분께 연락이 왔어요. 어제 마침 그 시간에 암 수술을 하려던 참이었대요. 그분이 이제껏 열심히 목회하며 힘들게 살았는데 나에게 남겨진 게 고작 암이구나 하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많이 원망하셨대요. 그러면서 어떤 방법이라도 좋으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자신을 좀 위로해 달라고 기도했대요. 그때 마침 저희가 전화를 드린 거예요. 그 전화를 받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군요. 아, 하나님이 일하시니 정말 신기하다, 이런 방법으로도 우리를 사용하시는구나 싶었죠. 이처럼 윤선디자인 일을 하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일보다는 좋았던 일이 훨씬 더 많아요.
선생님께 처음 신앙을 알려 준 분이 새어머니라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혹시 하나님을 알려 준 사람이랑 나에게 고통을 안겨 준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혼란스럽진 않았나요?
우선 이 말은, 학대받는 환경에 있는 분들에게 이해도 안 되고 용납도 안 되는 말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조심스러워요.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다르다는 걸 먼저 얘기하고 이어 갈게요. 나에게 신앙을 가르쳐 주신 분이 바로 나에게 상처를 준 분이라는 거 맞아요. 그런데 이제는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해요. 제가 많이 사랑해야 할 분이 되었다는 거예요. 왜냐면 지금은 진짜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거든요. 너무 많이 변해 버리셨어요. 저한테 “우리 딸, 사랑하는 우리 딸” 막 이러세요. “엄마가 사는 이유는 너야” 이러시고요. 그런 말이 적응이 안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해가 돼요. 엄마도 힘들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어쨌든 엄마가 저를 처음부터 때린 건 아니거든요. 저에게 하나님을 가르쳐 주셨고, 성경을 가르쳐 주셨고…. 물론 학창 시절 내내 저를 정말 힘들게 하셨어요. 도망가고 싶었고 심지어 죽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신기하게도 회복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살아요. 저희 가족은 아직도 회복되고 있는 과정이에요.
고난 중에 있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그 상황이 너무 힘들었어요. 빠져나오고 싶었고요. 왜냐하면 매일같이 맞고, 혼나고, 커서는 술을 마시고 따라야 하는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어느 밤에 엄마가 호프집 셔터를 닫고 나간 일이 있어요. 저랑 어떤 사람만 남겨 두고요. 방송에서도 말하지 못한 게 많은데, 그런 밤들을 견뎌야 하는 순간들이 진짜 힘들고 괴로웠어요. 아마 제가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면 버티기 어려웠을 거예요. 구세군 교회에 다녔는데, 부교님이라고 하죠, 그분들의 사랑이 저의 상처를 상쇄할 만큼 컸어요. 지금도 그분들의 이름을 기억해요. 힘들어하는 저를 그분들이 사랑으로 보듬어 주셨죠. 그분들 덕분에 ‘나는 존귀한 사람이야, 나는 소중한 사람이야, 엄마가 나한테 그러지? 세 명, 네 명도 더 되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 이러면서 이겨 냈어요.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저는 그게 교회라고 생각해요. 특히 작은 교회요. 윤선디자인을 세우신 목적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고 믿어요.
배우자분의 건강은 어떠세요.
저희 남편이 아픈 거는 사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세요. 2010년 9월에 뇌종양으로 개두 수술을 했고요, 3~4년 전에 다시 재발된 상태예요. 최근에 병원에 갔는데 조금 커져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뭐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본인도 좋아하는 음악 작곡 일 계속하면서요. 물론 바람이 불면 홍해 갈라지듯이 머리의 수술 자국이 확 드러나긴 하지만요. 우리 가족에게는 기도 제목이죠.
처음 발병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겠어요.
그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유방암이나 이런 거는 조직을 떼어 내서
악성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거는 뇌 한가운데 있어서 열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6개월 된 아기를 안고 있었어요. 옆에는 시어머님이 계셨고요. 저는 잘 안 울어요. 어릴 때부터 이런 저런 일들을 많이 겪어서 그런지 맷집도 좀 있고요. 그 얘기를 듣자마자 핸드폰에서 ‘뇌종양 명의’ ‘뇌종양 수술 잘하는 곳’ 이런 걸 막 검색했어요. 근데 집에 돌아와서 아이도 잠이 들고, 그냥 왜 그 있잖아요. 해가 지는 무렵, 불을 켜야 될 것 같은 그 알 수 없는 시간대가 되면, 제 머릿속에서 상상이 소설이 되고 소설이 실제가 돼 버려요. 남편이 제 옆에 없는 순간까지도 현실처럼 느껴져요. 정말 힘든 순간이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물어봐요. 많이 힘들겠다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랑 남편은 힘든 것보다는 감사한 마음이 더 커요.
선생님의 자녀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나요?
요즘 저의 최대 관심사예요. 아이한테 가장 어려운 부분이 신앙 교육이에요. 사실 저는 그게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요즘 집 근처 작은 교회로 옮겼는데 큰아이가 교회 가기를 싫어해서 주일 아침마다 전쟁이에요. 그래도 참 신기한 건 어느 날 사모님이 카톡으로 사진을 하나 보내 주셨는데, 인호가 교회에 불이 켜져 있다고 들어왔다면서 목사님이 인호를 위해 기도해 주는 모습을 찍어서 보내 주셨더라고요. 어렸을 때 엄마한테 매 맞고 갈 데가 없을 때 교회에 가면 사모님이 저에게 밥을 차려 주신 것처럼, 이 아이를 맞아 주는 사람이 있고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데 저는 희망을 느껴요. 아이들은 학교에서나 세상에 나가서나 힘든 일을 겪겠죠. 외로움도 느낄 거고요. 하지만 그때 교회를 기억하고 교회를 찾아갈 것이라 믿어요.
마지막으로 가이드포스트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이 누구든지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원함을 아신다고 생각해요. 저희들은 다 기억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저희를 이끌어 가실 거라고 믿습니다. 지금 모습이 어떠하든 하나님은 나를 망하게 하시지 않는 분이라는 믿음을 붙잡고 삶으로 예배하며 살아갔으면 해요. 그러면 언젠가는, 물론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을 쓰시고 있지만,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행해 주실 거라고 저는 확신해요. 분명히 그런 삶을 살게 될 거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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