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당신을 위해 울겠습니다

Guideposts 2022 | 04


Guideposts 2022 | 04

오늘은 당신을 위해 울겠습니다

Is anything greater than a mother’s sorrow?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케이 코저 스트링햄  조지아주 애선

It is spring—the world around me slowly reawakening, blushing with early blooming azaleas—but I don’t feel its promise. As I drive through my neighborhood on my way to perform in my church’s Easter production, I feel only the darkness that has been hovering over me for weeks, that has threatened to overwhelm me every spring since I lost my six-year-old son, Jeremy.

It was spring when he died, hit by a car as he was riding his bike just a few blocks from home. Six years have passed, and most of the time I am able to drive down the street where he was killed and not think about what happened. But now I can’t help remembering how the sunlight filtered through the unfurling leaves that afternoon in 1992 when Jeremy left our house on his bicycle, zipping down the driveway for what would be the last time.

I shake my head, as if I can dispel the memories crowding my mind, and try to focus on the evening’s performance, the final one, in which I will play Mary at the foot of the cross, singing a song of mourning for her dead son.

Several months ago, the director of the Easter production had come to me and asked if I would play the part. She knew about Jeremy, and she said with great tenderness, “I know it will be very hard for you, but you can do it. The Lord will use you.” There was no pressure—I could have said no. But I had prayed so many times for the Lord to help me make sense of my grief, to turn it into his glory. How could I refuse?

So far I have managed to get through the weeks of rehearsals and the two performances before this one. I cannot sing without crying. I cannot even think of the song without tears, but I have managed. Still, the pain of my loss, renewed each year around the anniversary of my son’s death, is more intense than ever. I haven’t felt the slightest whisper of the joy I know Easter is supposed to bring.

Just get through tonight, I tell myself as I pull into the church parking lot, and then it will be over. You won’t have to relive your suffering again.

내 주변은 일찍 피어난 진달래로 붉어지며 천천히 다시 잠에서 깨어나는 봄이 되었지만, 나는 그 희망을 느끼지 못한다. 교회 부활절 공연을 하러 차로 동네를 지나가며, 지난 몇 주간 나를 맴도는 어두움을 느꼈다. 여섯 살 아들 제러미를 잃은 후 매년 봄이면 나를 압도하며 위협하는 어두움이었다. 

아이가 세상을 떠난 것은 봄이었다. 집에서 몇 블록 안 떨어진 곳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차에 치인 것이다. 6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대부분은 아이가 사고를 당한 길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제는 마지막이 된, 제러미가 자전거를 타고 진입로를 쌩하고 떠났던 1992년 오후, 피어나는 나뭇잎들 사이로 새어 나오던 햇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마치 내 마음 가득한 기억들을 떨칠 수라도 있는 듯. 그리고 그날 저녁 있을 공연에 집중하려 했다. 거기서 나는 죽은 아들로 인한 애통함을 노래하는, 십자가 아래 마리아 역을 연기할 것이다.

몇 달 전, 부활절 공연 감독이 내게 와서 그 역할을 맡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제러미에 대해 잘 알았고, 굉장히 다정하게 말했다. 

“자매님께 굉장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주님께서 자매님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압박은 없었다. 거절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주님께 나의 상실감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상실감을 그의 영광으로 변화시켜 달라고 수없이 기도드렸다. 그런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몇 주에 걸친 리허설과 그보다 이전에 있은 두 번의 공연도 문제없이 해냈다. 눈물을 참고 노래를 부르는 일은 어려웠다. 눈물 없는 그 노래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지만, 나는 잘해 냈다. 여전히 매년 돌아오는 아들의 기일이면 새로워지는 상실감으로 인한 고통의 강도가 점점 강해진다. 부활절이 안겨 주는 기쁨의 속삭임을 아주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오늘만 버티자.’ 

교회 주차장에 들어가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오늘만 지나면 끝이야. 그 고통을 또다시 회상하지 않아도 돼.’

Inside the building, I change into my costume, a simple robe and a blue veil. Backstage, I mentally rehearse my song. As always, when I reach the words “Is this the boy I raised?” I falter, thinking not of Mary’s son but of my own. And I see not Jesus’ face but a freckled reflection of my son’s. My Jeremy. The ache goes so deep, it is all I can do not to cry out.

I close my eyes, weary from thinking of things I’ve trained myself not to dwell upon. Oh, Lord, I pray, I have cried long enough for Jeremy. Tonight let me cry for you.

But as soon as I take my place on stage, past and present collide in my head, relentless.

The actor playing Jesus kneels before a whipping post. As a soldier scourges him, he flinches, then moans in pain.

“Jeremy’s been in an accident,” my husband tells me and leads me to a waiting police car.

A sneering Roman forces the crown of thorns onto his head. Blood trickles down his cheek. Moments later, Jesus looks directly into my eyes as he strains to carry the heavy wooden cross on his back. I reach toward him, desperate to stop his suffering.

I hear my husband pray, “We gave him to you when he was born, Lord, and he is yours now.” I want to scream, “But this was not what we meant. Please, Lord, not this!”

The sound of the hammer as it drives spikes through Jesus’ hands and feet makes me shudder.

A solemn-faced nurse stands in the doorway of the waiting room. “The doctors have been trying to revive him for so long. They will have to stop soon. There’s nothing more we can do.”

Jesus hangs from the cross and stares down at me, his eyes burning with agony. A soldier hurls water at him, mocking his pain. I cannot look; neither can I turn away. He cries out, “Why have you forsaken me?” The torment in his voice echoes in my soul.

Then when he is still, his body is brought down from the cross. I rest his head on my arms and remove the thorny crown. Gently I wipe the blood away from his eyes, peacefully closed now.

“I want to see him,” I tell the doctor. We are led down a corridor to the room where Jeremy lies on a stainless-steel table, wearing the blue shorts he changed into just a few hours earlier.

When my son was born, I remember counting his fingers and toes, touching his face and examining it for the tiniest likeness to anyone else in our family. As he lies there, cold and still, I do the same, trying to memorize the shape of each finger, the softness of his blond curls. I trace the curve of his upper lip, the pale shell of his ear, knowing this one touch will have to last me for the rest of my life. I don’t want to forget a single precious detail.

건물 안에서 나는 의상을 갈아입었다. 소박한 도포와 파란 망사였다. 무대 뒤에서 나는 속으로 리허설을 해봤다. 늘 그렇듯 “이 아이가 제가 기른 아이입니까?”라는 대사에 이르자, 나는 성모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라 내 아들을 생각하며 불안정해졌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얼굴이 아닌 주근깨가 있는 아들의 얼굴이 보였다. 나의 제러미. 고통이 너무 깊어져,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자꾸 생각하지 않기로 내 자신을 단련시켰던 것들을 생각하다 지쳐 눈을 감았다. 


나는 기도했다. 

‘저는 제러미 때문에 많이 울었습니다. 오늘은 당신을 위해 울도록 해주십시오.’ 

그러나 무대에 오르자마자 과거와 현재가 내 머리에서 끊임없이 충돌했다. 

예수님 역할의 배우가 태형 기둥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군병이 예수님을 채찍질하자, 예수님은 움찔하며 고통에 신음했다.

“제러미가 사고를 당했어.” 

남편이 내게 말하며 대기 중인 경찰차로 나를 데려간다.

조롱하는 로마 병사가 그의 머리에 가시관을 억지로 씌운다. 피가 그의 뺨에 흐른다. 얼마 후, 예수는 등에 멘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안간힘을 써서 옮기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나는 그의 고통이 멈추길 간절히 바라며 그에게 다가간다. 

남편의 기도가 들린다. 

“저희는 그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는 이제 주님의 아들입니다.”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다. 

“그러나 저희가 말한 뜻은 이게 아닙니다. 제발, 주님, 이건 아닙니다!”

망치가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내리치는 소리에 나의 몸이 떨렸다.

침통한 표정의 간호사가 대기실 입구에 서 있었다. 

“의사 선생님들께서 아이를 살리기 위해 굉장히 오래 애쓰셨습니다. 곧 중단해야 할 거예요. 더 이상 저희가 해드릴 것이 없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나를 빤히 내려다보는 예수의 눈은 고통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한 병사가 그에게 물을 집어던지며, 그의 고통을 조롱했다. 나는 쳐다볼 수도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그가 외쳤다.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내 마음속에서 메아리쳤다.

그런 다음 그의 움직임이 없자, 그의 시신은 십자가 아래로 내려졌다. 나는 품에 그의 머리를 안고 가시관을 벗겼다. 이제는 평온하게 감긴 그의 눈에 묻은 피를 부드럽게 닦았다.

“아이를 보고 싶어요.” 

나는 의사에게 말한다. 우리는 제러미가 있는 방으로 향하는 복도로 안내받는다. 아이는 그 방의 철제 테이블 위에 불과 몇 시간 전에 갈아입은 파란색 반바지를 입고 누워 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아이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세어 보고,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가족 중 혹시 누구와 조금이라도 닮았는지 살펴봤던 기억이 난다. 차가워진 채 미동도 없이 아이가 누워 있는 동안, 손가락 하나하나의 모양과 금발의 부드러운 곱슬머리를 기억하려고 노력하며, 그때처럼 했다. 

아이의 윗입술의 굴곡과, 창백한 귓바퀴를 따라 만지며, 이렇게 만진 기억으로 남은 인생 동안 버텨야 함을 알고 있었다. 소중하고 사소한 어느 하나도 잊지 않길 바랐다. 

At the foot of the cross, I begin my song. I stroke Jesus’ hair and hold his hand against my cheek, as I know Mary would have. In sorrow, in mourning, I sing, “Is this the boy I raised?”

The words float from my lips. I look down at the one I cradle in my arms and, as always, I weep. But this time they are tears of release. My grief has let go, and I think, Oh, Jesus, thank you...

For tonight it is his face alone I see. And I see in it how much he is with me, even in my suffering. Especially in my suffering. In reliving it, I have been drawn closer to him because once, long ago, he lived it too.

At the end of the production, when the choir sings in celebration of the Resurrection, I step back onstage and join in. “Hallelujah!” My voice lifts, as does my heart.

It is spring. As I drive through my neighborhood, I see that everything around me is transformed, warmed by the sun, graced with the green of budding trees, and I remember my son...not so much the pain of losing him but the joy of loving him. For the world is tinged with hope, the Lord’s true promise of spring.

십자가 아래에서 나는 노래를 시작한다. 예수님의 머리칼을 넘기며 그의 손을 내 볼 옆에 잡는다. 내가 아는 한 성모 마리아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비통함에 신음하며 노래를 부른다. 

“이 아이가 제가 기른 아이입니까?”

그 대사가 내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나는 내 품에 안고 있는 그 아들을 바라보며, 언제나처럼 흐느낀다. 그러나 이번에는 안도의 눈물이었다. 상실감이 사라졌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오, 예수님, 감사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얼굴만 보인다. 또한 그의 얼굴을 통해, 예수님께서 얼마나 많이 나와 함께, 심지어 내가 고통스러울 때도 함께하셨는지도 보인다. 특히 내가 고통받을 때도. 고통을 다시 체험하면서, 나는 예수님과 더 가까워졌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그 고통을 오래전에 겪으셨기 때문이다.

공연 마지막에 합창단이 부활 축하 노래를 부를 때, 나는 무대로 돌아가서 함께했다. 


나의 목소리는 내 마음처럼 드높아졌다.

이제 봄이다. 차로 우리 동네를 지나가면서 주변의 모든 것이 변했음을, 햇살로 따뜻하게 데워졌음을, 싹이 트기 시작하는 푸른 나무들로 아름답게 바뀌었음을 본다. 그리고 나의 아들을 기억한다…. 그를 잃은 고통보다는 그를 사랑하는 기쁨을 더 기억한다. 세상은 희망으로, 주님의 진실한 봄에 대한 희망으로 물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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