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하나님이 길을 내십니다


Guideposts 2022 | 11


Cover Story

Guideposts 2022 | 11

하나님이 길을 내십니다


ㅡ 

대학을 졸업하고 십 년 가까이 직장엘 다녔다. 연봉도 나쁘지 않은 괜찮은 조건의 회사였다. 그러다 우연히 지인과 함께 시작한 사업이 그만 제대로 망하고 말았다. 다시 취업을 해야 할까 고민 끝에, 더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다. 남들보다 한참 늦은 공부, 그러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졸업한 그는 시간 강사로 일했다. 늦은 나이에 받은 학위라 교수 임용도 벽에 부딪혔다. 이런 인생의 부침 중에도 ‘미얀마 선교’를 10년째 이어 오고 있다. 그것도 인생에서 가장 바닥에 내려온 늦깎이 석사 대학원생 시절에 시작한 일이다. 미얀마가 어디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다는데, 어떻게 미얀마를 마음에 품게 된 걸까? 얼마 전 모 국립대학 회계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는 따끈한 소식을 전한 전경민 교수를 만났다.






이제는 전경민 교수님이라 불러야 하나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해요. 지난주는 짐을 꾸리느라 조금 정신이 없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잘 안 믿겨요. 



정말요? 좋은 소식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조금 편하게 첫 질문을 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저는 선생님이 대학에 연구원으로 계시면서 미얀마 선교에 오래 참여해 오신 분으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저도 사실 좀 얼떨떨한 기분입니다. 미얀마는 다니는 교회의 해외 선교 사역이에요. 처음부터 어떤 선교적인 마인드로 시작한 건 아니고, 저더러 같이 가자고 말해 주던 분이 계셨는데 계속 거절하기가 미안해서 가게 되었어요. 그때가 한 십 년 전인가 봅니다. 



그때라면 뒤늦게 공부를 막 시작하려던 시기가 아닌가요?


그렇죠. 더군다나 석사 때라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해외 선교라고 하니까 더 부담이 되더라고요. 한번 가면 계속 가야 할 것 같기도 했고요. 그래서 계속 다음에 가겠다고 미루다가 2013년 2월에 처음 미얀마에 가게 되었어요. 그 전까진 미얀마가 어디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는데 막상 가 보니 오지도 이런 오지가 없더라고요. 수도도 전기도 물론 없었고요. 너무 불편했어요. 여길 왜 오지? 다신 오지 말아야지 생각했어요.(웃음) 그런 마음으로 일주일을 보냈는데, 떠나기 전날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오지 마을에, 전기도 안 들어오고 물도 안 나오는 동네에 교회는 어떻게 생겼지? 그게 갑자기 너무 궁금한 거예요. 미얀마는 불교 국가라 기독교인이 된다는 자체만으로 사람들에게 돌도 맞고 핍박을 당하는 곳이에요. 심지어 살던 마을에서 쫓겨나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그분들은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어요. ‘아, 여기에 하나님이 계시구나!’ 그때 처음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어요. 

‘다신 오지 말아야지’ 하고선 십 년을 하셨네요.


그러게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점점 제 삶의 일부가 된 것 같아요. 처음 미얀마 선교를 다녀오고 나서 한 번만 더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두 번째부터는 준비팀을 시켜 주시더라고요. 그러다 준비위원장도 하게 되고, 이어서 부장까지 하다가 임기를 다 마쳤는데 마침 코로나로 직분이 자동 연기되었어요. 이제 미얀마는 저에게 또 하나의 고향이 되었어요. 가기 싫을 때도 있지만 좋든 나쁘든 가야 하는 곳이요.  



미얀마에서 만난 하나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미얀마에서 만난 성도들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어요. 여러 가지 여건도 안 좋고 사회로부터 핍박도 받는 그들의 얼굴에서 빛을 보았어요. 늘 밝은 그분들에게 오히려 저희가 위로를 받았죠. 초창기에 의료 사역을 하던 중 눈이 불편한 자매를 만난 적이 있어요. 저희가 응급 처치를 한 뒤 남은 치료는 한국에 와서 받게 했어요. 이후 그 자매의 가정이 모두 기독교인이 되었는데 그 대가로 자신들이 살던 마을에서 쫓겨나야 했죠. 한 2년 정도 지났을까요. 저희가 그 자매가 사는 마을 근처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쌀 한 포대를 메고 왔더라고요. 걸어서 3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인데 저희가 왔다는 얘기를 듣고 그걸 들고 온 거예요. 너무 감사하다면서요. 자기는 생명을 얻었다고, 지금 핍박받고는 있지만 이전보다 더 행복하고 좋대요. 저희가 한 건 사실 조금의 도움을 준 것뿐인데, 그 자매는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그 무거운 쌀 포대를 메고서 저희를 찾아온 거예요. 하나님이 저 자매의 가족을 지켜 주시는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놀라운 일들이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구나, 미얀마에 갈 때마다 매번 새롭게 배우고 경험하고 있어요. 

 


십 년의 직장생활과 사업 실패 그리고 뒤늦게 시작한 공부… 이제는 교수님이 되셨어요.


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서 십 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했어요. 그 기간에 사업도 잠깐 했는데 소위 말해서 쫄딱 망했죠. 30대 초반에 꽤 많은 연봉을 받았어요. 그 돈을 모아서 강남에 집도 마련했죠. 그런데 사업을 하면서 도로 날려 버렸어요. 그렇게 망하고 나니까 다시 취업을 하기도 그렇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공부할 형편은 안 됐죠. 빚도 좀 있었고요. 그래도 뭐 더 잃을 건 없다는 생각에 서른 중반에 석사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학업에 매진하신 건가요?


그렇지도 않아요. 석사에서 박사로 갈 때 한 번에 안 됐어요. 이 길이 아닌가 하고 고민도 많았죠. 그 사이에 현실적인 문제로 취업도 잠깐 하다 보니 1, 2년의 시간이 지나 버렸습니다. 이제 마지막이다 하고 지원한 박사과정에 합격해서 4년 전에 학위를 받았어요. 그즈음에 결혼도 했는데, 시간 강사다 보니 가장 노릇도 잘 못했는데, 다행히 올해 교수로 임용되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담백해서 그렇지 저는 좀 놀라워요. 그냥 한마디로 사업이 망해서 집도 날린 거고, 늦게 시작한 공부마저 잘 안 풀린 거잖아요. 그러면서 한편에선 십 년째 미얀마를 오가신 거고요. 어떻게 그런 도전적인 결정들을 하실 수 있었나요?


사업이 망했을 때는 정말 기도도 잘 안 나오고 그랬어요. 그래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더 기도의 자리에 가려고 했어요. 매일 새벽 교회로 갔어요. 하루도 안 빠지고요. “나 또 왔어요, 주님. 알아서 해 주세요. 데려가시려면 빨리 데려가 주시고, 아니면 먹고살게 해 주세요.” 마치 빚 받으러 온 사람처럼 미사여구 하나 없이 제가 정말 하나님 자녀라면 하나님이 좀 어떻게 해달라고, 책임져 달라고, 지금 너무 힘들다고 한숨만 푹푹 쉬며 기도했어요. 20대에 방황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힘들다고 술로 달래 봐야 공허하기만 하다는 걸 이미 알았어요. 정말 하나님밖에는 답이 없다는 것도 알았어요. 나한테 진짜 왜 그러시는 거냐고 하나님께 떼를 썼어요. 그렇게 기도하며, 떼쓰며 버틴 거죠.        

그래도 이렇게 회상할 수 있어서 감사하네요.


지난 7월 말에 미얀마로 가는 일정이 있었는데, 하필 교수 임용과 관련한 면접 일정과 겹칠 것 같더라고요. 서류심사 결과가 발표 나면 면접 준비도 해야 하는데, 이 상황에 미얀마로 가는 게 맞나 싶었죠. 어쩌면 내 인생에서 마지막 지원일 수도 있으니까요. 잠시 머리가 복잡했지만, 그냥 하나님께 다 맡기고 다녀오기로 했어요. 감사하게도 다녀와서 면접까지 잘 마쳤고, 얼마 전 최종 발표가 난 거죠. 지금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요.   



명색이 회계학 교수이신데, 하나님께서 일정도 조정해 주시겠지 하는 생각은 좀 회계학과는 거리가 있지 않나요?(웃음)


사람들은 제가 정확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실제 제 성격은 의외로 안 그래요. 막연한 믿음도 있는 것 같고 맷집도 좀 생긴 것 같고요. 사업도 망해 보고, 하는 일이 잘 안되다 보니 그만큼 단련이 된 거겠죠. 이제는 무슨 큰일이 생겨도 하루 자고 다음 날 되면 그냥 털어 버려요. 오래 고민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하루라도 빨리 털어 내고 다시 시작하는 게 좋으니까요.



그렇게 가신 미얀마에서 평생의 배우자를 만나신 거군요.


네.(웃음) 미얀마 선교는 70~80명이 가요. 항공편 좌석도 무작위로 배정하는데, 그날 아내가 제 옆에 앉게 된 거죠. 아내는 첫 미얀마 선교였고요. 평소에 저는 피곤해서 바로 자는데, 그날따라 잠도 안 자고 둘이서 대화를 나누었어요. 한두 시간 얘기했는데 마치 소개팅 하는 것 같았어요. 미얀마에 가서도 아내가 제 눈에 계속 띄더라고요. 다녀와서 수고했다는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왔어요. 그 뒤로 한두 번 만나다가 계속 만나게 되었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어요. 



짧은 시간에 결혼을 결정하신 건데 배우자의 어느 부분이 가장 신뢰가 가셨나요?


서로 생각하는 게 비슷했어요. 신앙의 색깔이랄까, 그런 것도 같았고요. 최근 미얀마 간 일만 봐도 그래요. 사실 그 시기는 선교 여행을 잠시 뒤로하고 중요한 면접을 준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죠. 그럼에도 아내는 제 결정을 신뢰해 주고, 공감해 주고, 기도해 주었어요. 그런 부분이 참 고맙고 그래요.



요즘 미얀마 상황은 어떤가요?


지금 미얀마는 기도가 많이 필요해요. 2년째 도로마다 바리게이트가 쳐 있고, 공항에도 티켓이 있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어요. 가족이라도 공항 안으로 들어갈 수 없죠. 그리고 공항 밖은 모든 것이 무너진 상태예요. 치안, 경제, 교육… 하나님께서 왜 이 땅을 그냥 지켜만 보고 계실까 하는 생각마저 들어요. 아프가니스탄도 그렇고요. 물론 저희는 다 알 수 없겠죠. 예전처럼 미얀마에 직접 방문하여 선교하는 일은 시간이 더 걸릴 듯합니다. 미얀마의 평화와 회복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있어요. 



저희도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을에 어울리는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 우리의 열매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하잖아요. 선생님은 자신의 신앙의 열매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간사로 섬기던 팀원들이 신앙이 성장해서 리더가 되고 또 간사가 되어 섬기는 것을 볼 때 제일 기뻐요. 그 친구들을 열심히 섬긴 저의 모습이 그들에게 이정표 같은 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기뻐요. 지금도 그들은 저를 간사님이라고 불러요. 아마 백발이 되어도 저를 그렇게 부를 거예요. 그들 앞에서 영원히 간사로 살아가려면 신앙생활을 충실히 해야겠죠. 물론 그들이 잘 성장한 것은 제가 한 일이 아니에요. 다만 그 친구들이 이제는 또 다른 이들을 섬기는 자리에 간 것이 저는 감사하고, 이것이 주님께 드릴 저의 감사의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우편 보내실 곳

[03727]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서대문 우체국
사서함 181호

고객관리

Tel. 02-362-4000

(평일 09:00 ~ 17:00 | 점심 11:30 ~ 12:30)

E-mail. guideposts@fnnews.com

계좌안내

기업은행 082-112675-01-014

(예금주 가이드포스트코리아 주식회사)


우편 보내실 곳

[03727]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서대문

우체국 사서함 181호

고객관리

Tel. 02-362-4000

(평일 09:00 ~ 17:00 | 점심 11:30 ~ 12:30)

E-mail. guideposts@fnnews.com

계좌안내

기업은행 082-112675-01-014

(예금주 가이드포스트코리아 주식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