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길에서 사랑을 '잇다'


Guideposts 2022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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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사랑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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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오가는 말소리. 간간이 터져 나오는 명랑한 웃음소리.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 저마다의 사연이 실린 소리를 타고 은은한 커피 향이 흐른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로로카페 1호점의 풍경이다. 그 공간을 분주히 오가며 보이지 않는 ‘틈’을 온몸으로 메우는 한 사람이 있다. 2021년 10월 24일, 로로카페가 정식으로 오픈하기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하나의 비전을 품고 달려온 이지예 매니저다. “사랑을 받으면 반드시 변해요.” 확신에 찬 얼굴로 힘주어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이 이긴다.






모든 이름에는 뜻이 있죠. 발음도 어감도 사랑스러운 로로카페, 그 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로드 온 더 로드(Load on the road), ‘길 위에서 만난 예수님’이란 뜻이에요. 하나의 키워드로 압축하면 ‘길’이죠. 길 위의 사람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 길 위의 사람들을 섬기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으니까요. 어느 날 하염없이 골목을 거닐던 저의 사연부터 꺼내야 할 것 같은데요. ‘나는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 걸까’ 제 인생의 방향성에 대해 여러 생각을 곱씹으며 청파동 일대 골목을 걸은 적이 있어요. 한참 동안 상상의 나래를 펴며 길을 거닐고 있으려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모두는 길을 찾고 있고, 그 길의 골목대장은 예수님이시다!’ 이 생각은 이전부터 제 마음속에 둥지를 튼 ‘로로’라는 캐릭터와 자연스레 연결되었어요.  



카페가 생기기 전부터 이미 ‘로로’라는 이름을 하나의 캐릭터로 품고 계셨다고요?


네. ‘로로’라는 캐릭터는 제가 섬기는 교회의 사랑나눔부 사역 대상자분들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었어요. 뭇 사람들에게 껄끄럽고 불편한 대상으로 여겨지는 취약 계층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들 각자를 들여다보면 저마다 존귀한 인간이고, 인생이라는 길 위에 서 있는 고유한 인격체니까요. 이 메시지를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고심하던 중에 ‘로로’라는 한 아이가 제 마음속에 쏙 들어왔어요. 사역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 녹아 있는 아이죠. 길 잃은 로로가 골목대장 예수님을 만나면서 길의 법칙을 배우고, 길에서 살아가는 법도 배워 가는 이야기를 동화로 꾸려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동화 캐릭터로 구상한 그 이름이 카페 이름으로 먼저 쓰일지는 생각지 못했지만요. 



동화보다 카페가 먼저 탄생했군요. 근사한 반전이네요. 매니저님의 인생에도 그런 반전이 있나요?


생각해 보면 정말 그래요. 저는 원래 디자인을 전공했고 패션디자이너로 7년간 일했어요. 본래 저는 오직 ‘나의 꿈’만을 생각하며 달려가던 사람이었어요. 꿈은 많으나 자존감은 낮아 속이 텅 빈 도넛 같았죠. 제 삶의 주어는 온통 ‘나’였어요. 기도할 때도 이런 식이었죠. “하나님, 저는 하나님 앞에서만 무릎 꿇고 세상 앞에서는 기죽지 않고 싶어요. 제가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게 해 주세요!” 욕망덩어리 같았어요.(웃음) 그렇게 나 자신한테만 집중하던 제게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가 아닌 ‘너’를 보여 주셨어요. 타인을 향한 눈을 열어 주신 거죠. 그때 제 인생의 반전이 일어난 것 같아요. 가치관 자체가 바뀌었거든요. 

어떤 식의 변화였지요?


모든 직업에는 저마다 메시지가 있잖아요. 제가 몸담았던 패션디자인업은 사람의 ‘외형’을 중시하는 업종이다 보니 제 마음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리는 불편한 메시지가 있었어요. “옛것은 헌것이에요. 그걸 입으면 당신도 헌것이 돼요. 이제 새것이 나왔어요. 새것을 입으세요. 더 값진 것을 입으세요. 그래야 당신도 값진 사람이 돼요.” 스스로 늘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일하다 보니 제 직업에 대한 갈증이 생겼어요. 오랫동안 그 문제를 품고 기도하던 중에 레바논 난민 사역을 위한 선교를 떠나게 되었어요. 전쟁으로 무참히 짓밟힌 인생들이 모인 텐트촌에서 꿈과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보며,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간구했던 저의 기도가 얼마나 치기 어린 것인지 깨달았죠. 그때 같이 선교를 떠난 언니가 ‘꿈꾸는 사람들’을 보여 주겠다며 한 센터에 저를 데려갔어요. 그곳의 아이들에게는 정말 ‘꿈’이 있었어요. 센터를 찾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품은 거죠. 그 아이들을 보며 누군가를 ‘꿈꾸게 하고 싶다’는 새 비전을 품게 되었어요. 그러기 위해 ‘복음의 스포일러’로서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죠. ‘첫발’을 내딛어야겠다고 결심하면서요. 그래서 사직서를 내고 짐을 꾸렸어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텐데요. 짐을 꾸려 어디로 가신 건가요?


레바논으로요. 가자마자 쿠데타가 일어나 6개월 내내 격리되어 있어야 했지만요. 별수 없이 멈춰 있어야만 했던 시간이 제게 많은 깨달음을 안겨 줬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너를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사랑 고백을 들었거든요. 레바논에서 평생을 헌신하겠다는 각오로 갔지만, 결국 2020년 2월에 한국에 돌아왔어요. 6개월 만에요. 때마침 코로나가 막 퍼져 가던 시기라 예배가 갈급했어요. 그때 사랑나눔부에서 간사로 섬기던 언니의 권유로 부서 예배에 참석하며 본격적으로 사역에 합류했죠.



어떤 의미에서는 비로소 본격적인 ‘첫발’을 내디딘 거군요.


사실 제게는 선교지로 향한 걸음이 궁극적인 ‘첫발’이었고, 그 걸음이 다음 사역의 마중물이 된 것 같아요. 제가 속해 있던 사랑나눔부는 서울역 일대의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나누어 주는 부서였어요. 삼삼오오 모인 청년들이 사비를 털어 매주 화요일에 주먹밥과 컵라면을 나누면서 시작되었죠. 외부의 반대로 사역이 중단될 위기도 있었지만, 성도들의 신실한 의지와 노력 덕분에 그 섬김을 이어 올 수 있었어요. 공식 부서가 된 후로는 그들 각자가 예배자로 설 수 있도록 예배와 말씀 양육이 병행되었어요. 그런데 이 사역이 지속될수록 안타까움도 커졌어요. 노숙인들에게 한 끼 식사를 나누어 줄 수는 있어도, 그들이 자립에 이르도록 돕지는 못한다는 점이었죠. 거기서부터 출발했어요. 그들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온전히 설 수 있도록 기반을 닦는 일부터요.

물고기를 잡아 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일처럼 말이죠?


그렇죠. 일상의 행복이라는 게 사실 가장 본능적인 필요를 채우는 데서 비롯되잖아요. 머물 곳과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충족되는 것에서요. 우리는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어요. 먼저 고시원을 임대해 그들에게 주거지를 제공하고, 정서교육 차원에서 미술이나 독서 활동, 성경 공부 등을 진행했어요. 무엇보다 궁극적인 목표는 그들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여 온전한 자립을 이루는 일이기에 직업 교육을 통해 취업까지 이어지도록 돕는 일을 구상해야 했어요. 사실 오랜 시간 노숙인으로 지내 온 분들이다 보니 근로 능력이 평균에 못 미치는 경향이 있어요. 그들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죠. 

때마침 사랑나눔부의 장로님 지인분을 통해 커피 교육을 받는 통로가 열렸어요. ‘커피’라는 아이템을 발견하는 순간, 이거다 싶었죠.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온종일 서서 콩을 볶고 커피를 내리는 고된 업종이긴 하지만, 작업대 앞에 서는 순간 그 공간을 주도하는 주인공이 되거든요. 카페라는 공간이 그야말로 ‘스스로 서는(自立)’ 무대가 되는 거지요.



그 무대가 완성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저를 비롯한 몇몇 분들이 커피 교육을 받고 난 뒤, 2020년 9월부터 약 6개월간 주말에만 카페를 빌려서 시범 운영을 해 보았어요. 직접 부딪혀 보니 ‘이거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때부터 카페를 창업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지요. 카페를 만드는 데 수반되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았어요. 그러나 그 또한 하나님의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해결되었죠. 2021년 8월, 교회와 기아대책이 MOU 체결을 하게 되었거든요. 교회가 초기 자금과 공간을 지원하고, 기아대책이 커피 전문성을 지원해 로로카페가 탄생했어요. 현재 기아대책이 커피협회와 제휴를 맺고 바리스타 교육을 전담하고 있어요. 



단순히 바리스타 교육만 하는 게 아니라 경제적 자립과 전인적 회복을 함께 이루어 가고 있잖아요. 사업과 사역의 경계에서 어떤 일들을 감당하고 계신가요?


큰 틀에서는 스태프 관리가 저의 주된 역할인데, 그중에서도 스태프들의 신앙을 돌보는 일을 최우선 순위에 두려고 해요. 카페 특성상 주일에도 영업을 하기 때문에 스태프들과 봉사자들이 모여 주일 오전 9시에 예배를 드려요. 스태프들 중에는 무너진 정서 회복을 위해 심리 치료를 받는 이들이 있는데, 자신의 증상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부적합한 약을 먹기도 해요. 이들이 정확한 진단을 받고 올바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병원에 동행하거나,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연결해 주고 있어요. 그다음으로는 재정 관리를 도와요. 당사자의 동의하에 전담 봉사자가 월급을 관리해 주는 것이죠. 주택을 얻어서 독립할 때 대출을 연결해 주기도 하고요. 그 외 재판 진행 중인 스태프가 있다면 법원에 동행하기도 해요. 또한 매장 관리, 봉사자 관리와 심방 등 운영 전반의 크고 작은 일들을 담당하고요. 커피 맛을 잡는다든가 베이킹을 하는 것은 물론, 직접 메뉴 개발을 하기도 해요. 카페를 원활하게 운영하려면 매출 증진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로로카페를 알리고 방문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그래서 시간을 내어 다른 카페를 방문해 운영 방식이나 인테리어 등을 벤치마킹하기도 하죠. 그 덕분인지 인근의 숙명여대 학생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요.

그야말로 ‘커피’와 ‘복음’을 연결한 곳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커피와 복음의 공통분모는 무엇일까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라는 점이 아닐까요. 커피를 매개로 바리스타와 손님, 또는 손님과 손님이 서로 소통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잖아요. 복음 역시 사람과 사람의 만남 속에서 상호작용이 일어나 선한 영향력이 흘러간다는 점에서 닮아 있죠. 커피를 매개로 복음이 흘러가는 것, 이것이 하나의 문화가 되기를 꿈꿔요. 

하나님의 진리는 아름답고 멋진 것인데 세상 속에서 기독교 문화는 다소 폐쇄적이고 고리타분하잖아요. 복음을 감각적으로 해석하고 풀어내서 문화적으로 확장하고 싶어요. 로로카페가 그 통로가 되도록 단단하게 브랜딩하고 싶고요.



‘문화’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어요?


문화는 곧 인식과 연결되어 있을 텐데요. 로로카페 기사가 보도되고 나면 ‘노숙인 카페’라는 타이틀 때문에 스태프들이 심적으로 힘들어하곤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노숙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이루어 가는 것이 우선적인 문화적 과제라고 생각해요. 카페 내부적으로는 스태프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세워서 ‘탈수급’ 구조를 안착하는 일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단번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기에 단계별 시스템을 정착해 나가려 해요. 앞으로 좀 더 다양한 직군이 이 문화에 합류하게 되길 바라고요. 

대외적으로는 제가 쌓아 온 디자인 경험을 기반 삼아 다양한 굿즈를 개발하려고 구상 중이에요. 앞서 말씀드린 ‘로로’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스토리텔링한 그림책 등의 문화 콘텐츠를 창작하는 것도 구상하고 있어요. 이와 같은 철학을 담은 브랜딩은 결국 본질적으로 ‘이웃 사랑’이라는 메시지와 닿아 있죠. 그 메시지를 삶으로 살아 내는 것 자체가 문화로 형성되길 바라요.



매니저로서 가장 힘든 순간과 보람된 순간을 꼽는다면요?


아무리 사랑을 부어도 상대방에게 스며들지 않는 것 같을 때 가장 힘들어요. 현재 로로카페의 스태프는 8명이에요. 그중 청년이 4명, 장년이 4명이죠. 우리의 인식과는 달리 노숙인 중에는 청년 세대가 상당수 있어요. 시설에 있던 친구들의 경우, 퇴소 후 정착 지원금을 단번에 탕진해 길을 전전하거나, 어린 시절의 결핍을 극복하지 못해 범죄를 하며 20대를 길에서 보내기도 해요. 전과자 신분을 받아 주는 곳이 없으니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요. 나이에 관계없이 그들 중 대부분이 그 정서가 아직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어요. 자신의 존재가 ‘끝까지’ 받아들여진 경험이 없으니 마음을 열지 않고, 그러니 당연히 서로 신뢰 쌓기가 쉽지 않죠. 최근에 한 스태프가 나갔다 들어오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많이 묵상했어요.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진정한 ‘가족’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생각해요. 아직은 서툴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중이고요. 하지만 마냥 힘들지만은 않아요. 감사하게도 10월에는 스태프 중 두 사람이 탈수급을 시작했어요. 쉽지 않은 결단인데 자발적인 의지로 이루어 낸 멋진 성과죠. 무엇보다 큰 보람이라면, 우리 스태프들에게 ‘꿈’이 생긴 것이에요.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로로카페에 방문하시는 분께 커피와 함께 건네고 싶은 성경 말씀 또는 찬양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감히 저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러브레터를 받은 자’라고 자부하는데요, 저를 이토록 멋진 길로 초대하고 인도하며 응원해 주신 그분의 사랑 고백을 소개하고 싶어요. 아가서 2장 10절 말씀이에요.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저의 존재 가치를 한껏 높이시며 “사랑한다” 말씀해 주신 그분의 ‘목소리’를 여러분께도 들려 드리고 싶어요. 그 사랑의 여정을 닮은 ‘나의 하나님’이라는 찬양과 함께요.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온 세상을 덮는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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