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로비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Guideposts 2022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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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비에서 보낸 크리스마스리스


We were stranded in Kenya for the holidays. 

Could we really celebrate this far from home?

우리는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케냐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집과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진정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을까?

By EDWINA PERKINS, Cary, North Carolina

에드위너 퍼킨스  노스캐롤라이나주 캐리  

That doesn’t look anything like our Christmas tree at home,” said Austin, one of our 10-year-old twins.

“I know,” I said, adjusting the green garland I’d taped to the wall in our small rented apartment in Nairobi, Kenya. Weeks earlier, we had traveled there from our home in Orlando, Florida, on a mission trip to work at a conference. I stood back and checked the garland. Did it look more like the outline of a Christmas tree now?

Anderson, the other twin, pointed to the yellow construction paper star on top. “The star’s crooked.”

“Why couldn’t we go home for Christmas, Mom?” 14-year-old Garrett asked. “I miss doing all the fun holiday stuff with my friends.”

“We couldn’t get a flight back for all six of us in time,” my husband, David, said. “It may be a little different, but we’re still having Christmas.”

It was different, all right. Back home, we’d be juggling a month-long calendar full of parties and outings for the kids. Each year, I wished we could slow down, yet things only seemed to get busier as our children grew older. Well, it was definitely slow this year. I was worried. Would our children be able to embrace the changes to their holiday season? Would I?

Our oldest, 16-year-old Danielle, tried to help me tape the carved elephant ornaments we’d bought at an open market to the tree on the wall, but when they fell off for the third time, we gave up.

Each child placed the brown-paper-wrapped presents they’d bought at the market beneath the little makeshift tree. With limited space in our suitcases, the many gifts they usually received were reduced to one, a small one. 

“This will have to do,” I said.

“저건 우리 집 트리하고 하나도 안 똑같아요.” 

열 살인 쌍둥이 아들 오스틴이 말했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빌린 작은 아파트 벽에 테이프로 붙인 초록색 가랜드를 이리저리 조정하며 답했다. 몇 주 전, 우리는 고향인 플로리다주 올랜도를 떠나 회의 참석 차 선교여행을 왔다. 이제 좀 트리 윤곽이 드러났으려나?

쌍둥이 아들 앤더슨이 꼭대기의 노란색 종이별을 가리켰다. 

“별이 비뚤어졌어요.”

“엄마, 왜 크리스마스 때 집에 못 가요?” 

열네 살 아들 가렛이 물었다.

“크리스마스 때 친구들과 하던 재미있는 모든 일들이 그리운데.”

“우리 여섯이 탈 비행기표를 제때 구하지 못했단다.” 

남편 데이비드가 말했다. 

“평소와 조금 다를 테지만, 우리는 여전히 크리스마스를 기념할 거란다.”

그렇다. 이전과 달랐다. 집이었다면 파티와 아이들을 위한 여행으로 가득 찬 한 달치 일정을 짜느라 애를 먹고 있을 텐데. 매년, 나는 우리가 여유를 가지길 바랐지만, 아이들이 커 갈수록 점점 바빠질 뿐이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확실히 여유로웠다. 우리 아이들이 올해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어떨까?

첫째 대니얼이 시장에서 산 코끼리 조각 장식을 내가 벽에 붙은 트리에 테이프로 붙일 수 있게 도와주었는데, 장식이 세 번째로 떨어지는 순간 우리는 코끼리 붙이기를 포기했다.

아이들은 시장에서 산 갈색 포장지에 쌓인 선물들을 임시방편으로 만든 작은 트리 아래에 놓았다. 여행 가방 공간의 제약으로, 평소라면 수두룩하게 받았을 선물이 자그마한 선물 한 개로 줄었다. 

“이게 최선이야.” 

내가 말했다.

We ended up heading to a church in an open-air stadium that we had heard about from local missionaries. I longed for the candlelight service with familiar Christmas songs at our church in Orlando. I wanted to see my friends and the festive outfits they wore for the holidays. By the time we arrived at the stadium, it was uncomfortably hot. Sweat beaded along my hairline. Air-conditioning was not an option; that was something I missed too.

The church members greeted us with warm smiles and handshakes. Many Kenyan women wore dresses more brilliantly colored than any I’d ever seen. I saw rows and rows of beautiful brown faces, maybe 300 in all. At that moment, it struck me that our family was not in the minority for once. At home this was not the case. In our jobs, church, neighborhood and even the kids’ homeschool community, we were always part of the minority culture. Here in Nairobi, we were surrounded by people who looked like us.

We made our way to open seats on a cement bench. People around us chatted in English. The official languages of Kenya are English and Swahili. The pastor, dressed in a suit of yellow, green and black, stepped to the microphone and began speaking. I studied the empty stable behind him. No Joseph, Mary or Baby Jesus. No elaborate reenactment of the birth of Christ. My heart sank a little. My home church celebrated with lights and production elements worthy of Broadway.

The pastor’s words drew me back. “Why am I telling you the story of Jesus? Let us show you.” He stepped away from the stage.

The pastor’s words drew me back. “Why am I telling you the story of Jesus? Let us show you.” He stepped away from the stage.

Trumpets blared, and we all jumped. Actors playing Mary and Joseph led a processional, with Mary holding a real baby in her arms. They were followed by a dozen musicians playing horns and different kinds of drums. After they rounded the far end of the stadium, a rider came into view seated on an elephant. The kids leaped to their feet. My mouth dropped open. An elephant? Wise men entered in elaborate costumes and headpieces so large, I wondered how they stayed on. Each carried a gift box covered in jewels. Next came camels, sheep and several shepherds. Once Mary, Joseph and the baby were in place, a wise man stepped to the microphone. 

“Here is the story of our Savior.”

When a slight breeze wafted through the stadium, I could smell the animals. Was this what the first Christmas had been like, in that little stable in Bethlehem? As I listened to the voices of the people in the play and the cries of the baby, I was moved in a way I hadn’t expected to be. God had given me the opportunity to embrace the Christmas story in a country halfway around the world. My heart swelled with awe.

우리는 결국 지역 선교사들에게 들은 옥외 경기장에 있는 교회로 향했다. 나는 올랜도 우리 교회에서 듣던 익숙한 크리스마스 음악과 촛불 예배가 몹시도 그리웠다. 나의 친구들과 그들의 축제 분위기 물씬 풍기는 복장도 보고 싶었다. 우리가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쯤, 찝찝한 더위가 느껴졌다. 이마 라인을 따라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내가 그리웠던 것 중 하나인 에어컨은 꿈도 못 꾸었다. 

교회 성도들이 따뜻한 미소와 악수로 우리를 맞이했다. 많은 케냐 여인들은 내가 여태껏 본 어느 옷보다 훨씬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었다. 아름다운 갈색 피부의 성도들이 모두 합쳐 300명 정도 줄지어 있었다. 순간 깨달았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소수인종이 아니란 사실을. 올랜도에서는 이런 경우가 없었다. 직장이나 교회, 동네 그리고 아이들 홈스쿨 공동체에서조차 우리는 항상 소수인종 문화에 속했다. 여기 나이로비에서 우리는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우리는 야외 콘크리트 벤치를 향했다. 주변 사람들은 영어로 대화했다. 케냐의 공식 언어는 영어와 스와힐리어다. 노랑, 초록, 검은색이 섞인 정장을 입은 목사님이 마이크로 다가와 설교를 시작했다. 나는 목사님 뒤편의 텅 빈 마구간을 살폈다. 요셉도, 마리아도, 아기 예수님도 없었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정교하게 재현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낙심했다. 우리 고향의 교회는 조명과 브로드웨이에 버금가는 장치로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했다.

목사님의 말씀에 나는 움찔했다. 

“제가 왜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합니까? 우리가 보여 줍시다.” 

그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트럼펫이 울리자, 모두가 벌떡 일어났다. 마리아와 요셉 연기자들이 마리아 품에 안긴 진짜 아기와 행렬을 이끌었다. 그들 뒤로는 십여 명의 연주자가 호른과 각기 다른 북을 들고 따랐다. 그들이 경기장 끝까지 원을 만들자, 코끼리를 탄 사람이 나타났다. 아이들이 벌떡 일어났다.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코끼리? 동방박사들이 화려한 복장에 어떻게 붙어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큰 머리장식을 하고 들어섰다. 각각의 동방박사는 보석으로 장식한 선물상자를 들고 있었다. 그 뒤로 낙타, 양, 여러 명의 양치기가 나타났다. 마리아, 요셉, 아기 예수가 제자리를 찾자, 한 동방박사가 마이크 앞으로 나왔다. 

“여기 우리 구세주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산뜻한 바람이 경기장을 통해 불어오자, 동물들의 냄새가 느껴졌다. 베들레헴 작은 마구간에서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배우들의 목소리와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예상치 못한 감동이 밀려왔다.

After the ceremony, we headed to the kids’ favorite outdoor restaurant. Danielle, Garrett, Austin and Anderson chatted excitedly in the back seat. They all agreed an elephant needed to be part of the Christmas story.

Our driver, Barnabas, glanced in the mirror and said, “Such small pleasures bring your children joy.”

But would the kids be okay without the Christmas dinner they were used to? No ham or turkey with all the fixings. No plates of Christmas cookies. Our meal consisted of burgers and fries—or chips, as the Kenyans called them—served in plastic baskets lined with red-and-white-checkered paper. We invited Barnabas to join us.

Boy, was I surprised when Austin said, “This is the best Christmas dinner ever!” Danielle, Garrett and Anderson nodded in agreement, their mouths too full to speak.

Barnabas chuckled. “Christmas is best celebrated with good food and time with family and friends. We focus on being in each other’s presence, not on the presents we can give. God is good to us.”

That Christmas in Nairobi changed the way I celebrate the holidays with my family. The experience helped me slow down and really value people during a season that is often driven by activities. Sometimes that means saying no to events. Each year, as we hang the carved elephant ornaments on our tree, I think about Barnabas’s words. Presents aren’t that important. What truly matters is being in each other’s presence, with God’s presence over us all.

의식을 마치고, 우리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야외 레스토랑을 찾았다. 대니얼, 가렛, 오스틴, 앤더슨은 뒷좌석에 앉아 신이 나서 떠들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코끼리를 크리스마스 일화에 넣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운전기사 바나바 씨가 거울로 힐끗 보더니 말했다. 

“이 작은 즐거움이 아이들을 기쁘게 하네요.”

그런데 아이들이 익숙했던 크리스마스 만찬을 즐기지 못해도 괜찮을까? 햄이나 터키 고기가 모두 빠진 음식일 텐데. 크리스마스 쿠키도 없고. 우리가 시킨 식사는 빨간색과 흰색 체크무늬 종이가 깔린 플라스틱 바구니에 버거와 감자튀김—또는 케냐 명칭으로 칩—이 담겨 나왔다. 우리는 바나바 씨도 식사에 초대했다.

이런! 나는 오스틴이 이렇게 말했을 때 놀라고 말았다. 

“최고의 크리스마스 만찬이에요!” 

대니얼과 가렛, 앤더슨은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입안 가득 음식을 먹으며,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바나바 씨가 껄껄 웃었다. 

“크리스마스는 가족,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과 시간을 함께할 때 가장 좋지요. 우리는 우리가 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니라, 서로의 곁에 있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부분에 있어 우리 곁에 잘 계셔 주시지요.”

나이로비에서의 크리스마스는 이후 내가 가족과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때의 경험으로 나는 여유를 갖고 종종 여러 활동으로 넘치곤 하는 연휴 동안 사람의 가치를 더 중시하게 되었다. 때로는 이벤트 참석을 거절하는 것도 거기에 포함된다. 매년 트리에 코끼리 조각 장식을 걸 때마다 나는 바나바 씨의 말을 떠올린다. 선물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온전히 임재하심과 동시에, 서로의 곁에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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