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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쉬고 내일부터 하자.” 오늘도 ‘작심삼일’인 대다수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선지원(31) 러너는 달리 생각했다. “일단 오늘 해 보고 내일부터 하지 말자.”
시각장애 러너인 그를 만난 날은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이렇게 추울 때도 뛰느냐고 묻자 그는 “오히려 추울 때 땀이 안 나 달리기 좋다”며 웃었다. “오늘은 오전 6시부터 한강을 달렸어요. 회사가 유연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어서 달리고 출근했죠.”
그는 한국컴패션 후원자성장팀에서 일한다. 미국의 애버렛 스완슨 목사가 1952년 한국의 전쟁고아를 돕기 위해 만든 이 기관은 전 세계 27개국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결연해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하는 국제어린이양육기구로 자리 잡았다. 선지원 러너는 한국컴패션의 직원이자 동시에 후원자다.
“마라톤은 늘 힘들어요. 제가 웃으면서 달리니까 늘 좋기만 한 줄 알지만,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은 몇 분에 불과해요. 건강을 위해 조금만 참자, 그런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일주일에 며칠이나 달리나요?
겨울이라서 로드로 직접 나가는 것은 일주일에 4회, 러닝머신 합하면 매일 달려요. 오는 3월 풀코스를 준비 중이거든요. 처음에는 재미로 했다면 지금은 선수 활동도 겸하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훈련합니다. 2017년부터 달렸는데 선수 활동이 꾸준히 달리는 데 도움이 됐어요. 선수니까 기량이 늘어야 하잖아요. 그래야 제가 달리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는 사람들에게 계속 용기를 줄 수 있으니까요.
기량이 얼마나 늘었나요?
처음 10km 출전 당시 75분 걸렸는데 지금은 50분으로 단축됐어요. 현재 충청남도 소속인데 2021년 우연한 기회로 대회에 출전했다가 성적이 좋게 나오면서 선수로 활동하게 됐어요. 지난해 소속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열심히 하다가 되레 많이 다쳤어요. 그래도 제42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3위로 메달권엔 들 수 있었어요. 평소보다 순위가 떨어지긴 했지만요. 가이드러너가 회사에 연차 쓰고 울산까지 내려왔는데, 메달 없이 돌려보내면 미안할 것 같아서 열심히 뛰었습니다.
선천적 시각장애라 천국에 가서나 뛸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요. 달리기를 결심하기까지 두려움이 컸을 텐데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너무 막연하니까 이게 가능할까 그런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다치지 않을까 두려우면서도 설렘을 안고 뛰었던 기억이 나네요. 달린 첫 순간의 느낌은 하도 오래돼 흐릿한데 일단 놀라웠어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을 하고 있으니까 아주 신기했죠. 달리기를 결심하기까지 시간은 별로 안 걸렸어요. 건강이 악화돼 뭐라도 해야 했거든요.
사회 초년 시절 폐결핵에 걸렸다고요. 달리기 전에는 어떤 운동을 했나요?
거의 안 했죠. 숨쉬기 운동만 했어요.(웃음) 몸이 아프면서 살기 위해 운동을 했어요. 헬스장이나 필라테스 센터에 가면 장애인이라 받아 줄 수 없다고 거절당했어요.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이 무엇일까? 한창 고민하던 중에 친구의 소개로 달리기를 만났죠.
가족도 아닌 타인끼리 ‘트러스트 스트링’을 잡고 달리는 경험이 그 자체로 특별한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를 믿어야 하잖아요.
솔직히 처음부터 서로를 다 믿는 건 아니에요. 사람이 자기 자신도 잘 못 믿는데, 타인을 온전히 믿기란 쉽지 않죠. 믿어 주는 것부터 시작해요. 내가 달리려면 이 사람(가이드러너)을 믿어 줘야겠다, 그렇게 여러 경험을 함께하면서 서로 놀라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면서 믿음을 세워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