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사랑'한 것만 '영원'히 남습니다


Guideposts 2023 | 03


Cover Story

Guideposts 2023 | 03

'사랑'한 것만 '영원'히 남습니다


ㅡ 

그의 메시지는 언제나 심플하다.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Back to Basic).” 그가 말하는 ‘본질’은 무엇일까. 바로 성경이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일까. 그가 들고 있는 성경의 물빛 테두리가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다. ‘아, 저것은 생명수구나!’ 투명하도록 맑은 물빛은 분명 생명수를 상징하는 듯했다. 매일, 그 성경을 펼쳐 생명수를 길어 올리는 베이직교회 조정민 목사. ‘영원한 것’을 붙들기 위해 ‘세상의 것’을 떨치고 오직 ‘본질’만을 좇아 걸어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MBC 기자 시절, 기독교를 ‘폭로’하려다 예수의 ‘포로’가 되어 버리셨죠.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감회가 어떠신지요?


1997년(46세)에 처음 교회에 가서 1998년에 세례를 받았으니 벌써 26년이 되었네요. 사실 제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요. 좀 더 일찍 신앙생활을 했으면 좋았겠구나.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실수가 없으시니, 가장 적절한 때에 저를 부르셨다고 믿어요. 아마 좀 더 일찍 부르셨다면 크리스천으로서 실수를 더 많이 했겠죠. 그랬다면 예수님 이름에 누를 많이 끼쳤을 테고요. 실수를 할 만큼 하고 나서 부름을 받았으니, 그 실수들에 대해 관용할 수도 있고 또 실수 없는 사람처럼 위선 부릴 이유도 없죠. 그래서 감사하고요.

 


기자, 앵커를 거쳐 iMBC CEO가 되기까지 세상 기준으로 탄탄한 성공 가도를 걷고 계셨잖아요. 53세에 신학의 길에 들어섰을 때 ‘내려놓음’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들으셨을 것 같아요. 그때 목사님은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저도 인간인지라 처음에는 내려놓음으로 생각했지요.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개념이 바뀌었어요. 더 좋은 걸 붙들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걸 떨어뜨린 것일 뿐이라고요. 저에게 주어진 ‘까닭 없는 은혜’를 선택하고자 가지고 있던 것을 기꺼이 버린 것이지, 뭔가 대단한 결심을 하고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진짜와 가짜가 구별이 안 될 때는 갈등이 되지만, 진짜를 알고 나면 가짜를 놓는 것이 아쉽거나 힘들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예요. 진짜를 붙드는 순간, 가짜가 손에서 떨어져 나가 산산이 깨어지는 모습을 보면 어떤 면에서는 속이 시원해지죠. 그것 때문에 가슴을 치고 억울해하거나 아까워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사실 목사님은 ‘모태 불자’시죠. 불심 깊은 어머니께서 목사가 되겠다는 아들의 결심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어머니는 제가 고교 시절에 출가를 결심했을 때도 별로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본래 종교심이 강한 분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신학교에 가겠다는 제 결정 또한 담담히 받아들이셨죠. 제가 영원히 잘되기 위해서 가는 길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납득하셨어요. 무엇보다 제가 크리스천이 된 후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무엇인지 몸소 느끼신 거예요. 목사 안수를 받은 뒤에는 당신이 목사로서의 길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가 되면 안 된다며 스스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으셨어요. 자기 어머니도 전도 못하는 아들이 될까 봐 염려하셨던 거죠. 목사 안수식에 참석하러 서울에 올라오기 전에는 절에 들러 부처님께 작별 인사를 하고 오셨다더라고요. 어떤 면에서는 참 쿨한 분이에요. 뭘 한번 시작하면 대단히 열심히 하는 분이라 기도를 참 많이 하셨는데, 저는 그저 감사할 뿐이죠.

사실 직장 역시 일종의 사역지라고 볼 수 있잖아요. 크리스천 언론인으로서 소명을 감당할 수도 있었을 텐데, 끝내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셨어요.


그것도 가능한 일이긴 하죠. 하지만 저는 부르심에 확신이 있었어요. 이전에는 배드 뉴스(Bad News)를 전하는 메신저였다면, 예수님 영접 이후에는 굿 뉴스(Good News)를 전하는 메신저가 되기로 한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제 직업이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때도 저는 뉴스 전달자였고, 지금도 뉴스 전달자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으니까요. 필드가 바뀌고 그에 따라 전달 방식이 바뀐 것도 사실이지만, 그 무엇보다 내용이 바뀌었다는 게 엄청난 변화라고 볼 수 있을 거예요. 입만 벌리면 비판적으로 쏟아내던 날카로운 언어들이 좀 더 정갈하고 온유해졌다는 점, 누군가를 정죄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위로하고 격려해서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죠. 



뉴스를 전하는 ‘메신저’라는 점에서 직업이 크게 바뀐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정체성의 변화는 지각 변동에 가까웠을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힘겹지는 않으셨나요?


정체성이라는 게 내가 바꾼다고 해서 바뀌는 게 아니죠. 그래서 ‘거듭남’이라고 하는 거예요. 위로부터 임하는 생명으로 새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기대감으로 흥분되고 색다른 소망을 품게 되죠. 마치 태아를 품은 여성처럼요. 임신을 하면 입덧이 시작되고 배가 불러 오며 숱한 몸의 변화를 겪잖아요. 그 와중에 태아의 건강을 위해 좋은 음식을 섭취하고, 태교에 힘쓰며 삶 전반을 태아 중심으로 재편성하죠. 그렇게 열 달을 품고 나면 해산의 고통이 또 얼마나 큽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힘겨운 시간을 감내하는 까닭은 새 생명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분명하기 때문이죠. 큰 소망을 품게 되면, 소망을 이루는 과정이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자체가 축복이고 기쁨이 됩니다. 그게 바로 신앙생활이죠. 내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려 한다면 아마 죽는 날까지 힘들 거예요.



신앙 여정 가운데 때때로 새로운 국면에 서게 되는 순간이 있죠. 목사님께도 이른바 ‘신앙의 변곡점’이라고 할 만한 지점이 있을까요?


어떤 사건으로 인해 신앙이 다음 단계로 접어든다거나, 새로운 믿음이 자란다거나 하는 그런 시점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에요. 대개 자기 뜻이 꺾이는 사건을 통해서 그런 일들을 경험하게 되죠. 저는 예수 믿기 전에도 기자로서 큰 사건을 많이 경험했지만, 예수 믿고 나서 힘든 일을 여러 차례 겪었어요. 특히 신학교 시절 안면신경마비로 두 차례 입이 돌아가고, 심장 수술을 두 차례 하는 등 건강에 적신호가 잦았어요. 또 보스턴에서 교회를 개척해 목양하는 동안 꽤 힘겨운 시간을 보냈죠. 자존심이 부서지는 여러 사건들 속에서 내가 바라고 기대해 온 하나님의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어요. 돌아보니 결국 신앙생활의 걸림돌은 나 자신이더군요. 그것을 깨닫는 과정 자체가 매우 중요한 통과의례였죠.


목사님의 책 제목처럼 그야말로 ‘고난이 선물’인 셈이네요.


그렇죠. 몸이 몹시 아프거나, 누군가로부터 철저히 무시 또는 배신을 당하거나, 때로는 모욕을 받거나… 이런 사건들은 오히려 신앙을 빚어 가는 하나님의 손길이라고 생각해요. 하나님께서는 수술대에 우리를 눕히시고 사람에게로 기울어져 있는 신앙의 축을 하나님께로 옮겨 놓으시죠. 수술 중에 우리는 아프다고, 못 살겠다고 한껏 비명을 지르지만 수술이 끝나고 나면 중력과도 같은 자아중심성으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진정한 구원을 경험하게 돼요. 믿음의 테스트, 곧 믿음의 연단을 잘 통과하고 나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 가게 마련입니다. 수술을 경험하고 통과한 후에야 고난이 위장된 축복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죠. 자신의 한계를 처절히 깨닫는 가운데 불멸의 존재, 영원한 존재에 대한 사랑이 점점 더 커지는 겁니다. 그렇게 신앙이 무르익어 가는 거죠.



재작년 코로나를 앓고 건강이 많이 위태로우셨어요. 병상에서 어떤 말씀을 묵상하셨나요?


병상이라고 다를 게 있나요. 내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떠나는가는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며, 늘 그렇듯이 매일 성경을 펼쳐 그날그날의 말씀을 묵상했어요. 특정한 어떤 구절만을 묵상하는 것보다 그날 주시는 말씀에 귀 기울여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묵상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제가 옛날에는 말씀 하나를 몇 년간 붙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건 일용할 양식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조금씩이라도 매일 말씀을 섭취하는 게 중요하지요.



‘성경으로’ 그리고 ‘성경대로’의 핵심은 매일, 꾸준히 읽는 것이군요.


맞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 면역력을 심어 주는 유일한 책이에요. 성경 말씀이 내 안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기준이 분명해지죠. 성경의 특정한 한 부분만을 취해서 내 생각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체적으로 흘러가는 맥락을 이해하며 읽어 나가야 합니다. 성경을 해마다 일독씩 한다고 가정해 보죠. 한 3년 읽으면 질문이 많이 줄어들어요. 5년쯤 읽으면 80~90퍼센트는 의문이 사라져요. 그러나 그전에 중요한 전제가 있죠. 바로 ‘믿음’입니다. 믿지 않은 채로 성경을 읽으면 내 안에서 전혀 소화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의지적 결정이고 태도예요. 창조를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지만 일단 믿고 시작해야 동정녀 잉태, 예수님의 기적과 부활도 믿을 수 있죠. 안 믿으면서 100독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선 성경을 믿음으로 읽어 나가면서 말씀을 삶에 적용하기 시작하면, 교회라는 제도가 나를 빚어 가는 게 아니라 생명의 말씀이 나를 빚어 가는 것을 깨닫게 돼요. ‘로고스’가 ‘레마’라는 생명의 사건이 되었는가의 여부가 우리 신앙의 갈림길이 되는 거죠. 


목사님은 SNS를 ‘노방 전도’의 장으로 활용하고 계시는데요. 복음의 통로로서 활용되는 온라인 플랫폼의 순기능과 역기능은 무엇일까요?


온라인 커뮤니티가 점점 커지면서 온오프라인 결합 모델로서의 교회 가능성이나 새로운 패러다임이 계속 등장하고 있지요. 이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따라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유튜브가 복음의 통로로 중요한 기능을 했잖아요. 덕분에 기독교 콘텐츠의 유튜브 비중이 커진 것도 사실이고요. 성도들은 온라인 플랫폼들을 통해 다양한 양질의 말씀과 양식을 접함으로써 은혜를 받고, 그 힘으로 또 자신이 속한 교회 공동체를 섬길 수 있죠. 다만 온라인 목회가 기독교의 천박함 내지 피상성을 강화할 우려가 있다는 게 한계이기도 합니다. 즉 자기중심성을 강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온라인에서 선택적으로 영적 유익을 취하고 정작 헌신이나 희생은 회피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성숙할 기회를 스스로 박차거나 놓치게 되는, 그리하여 여전히 천박하고 아주 깊이가 없는 기독교인을 만들 수가 있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려 하지 않고, 기꺼이 십자가를 지려 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므로 기존 교인들이 공동체성을 지키려고 늘 애써야 합니다. 태초부터 인간은 공동체로 존재해 왔고 공동체로 성장하고 성숙하지 않았나요.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구원을 이루어 가시기 때문에 교회의 공동체성 내지 교회의 대면성은 절대로 무시되거나 사라질 수 없는 겁니다.



베이직교회 홈페이지에는 “예수님을 모르는 분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세워진 교회”라는 소개문이 있지요. ‘예수님을 모르는 분’이 비단 ‘불신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읽혔습니다.


그렇죠. 불신자가 일차적인 대상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여기면서도 예수님과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까지도 포함하고 있어요. 유대인들에게 ‘안다’라는 개념은 깊은 ‘관계’를 의미해요. 날마다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교제하는 사람들이야 본인 자신이 교회이기 때문에 어느 교회를 가든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겠죠. 한 영혼을 그러한 성도로 세우는 것이 베이직교회가 지향하는 바입니다. 저희 교회에는 예수님을 전혀 모르던 사람이 와서 영접하는 경우도 있지만, 평생 교회를 다니면서도 주님이 누구신지 잘 몰랐던 사람이 새롭게 신앙생활하기로 결단해 기존의 직분을 다 내려놓고 새가족반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있어요. 특별 계시로 주어진 성경을 읽어 감으로써 예수님을 알아 가고 만나고 그분과 동행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경 중심 교회’라고 정의하는 게 더 정확할 거예요. 좀 과격하지만 “성경을 안 읽으려면 여기 오지 마라, 성경을 읽었는데도 변화가 없다면 당신은 성경을 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아는데도 변화가 없다면 그게 기적이다”라고 이야기하죠.



마지막으로 창간 600호를 맞은 〈가이드포스트〉와 독자 분들께 격려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가이드포스트〉가 600호를 넘어 6000호, 1만 호로 이어져서 주님 오실 때까지 장구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 너머, 소위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러니 보이는 것을 전부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소개해야 할 책임이 있지요. 출구 없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복음은 생명의 근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자기 자신이 진리 안에서 참 자유를 누려야 하고,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사랑하며 진실로 참된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그 누림이 누군가에게 귀한 도전이 될 수 있도록 말이죠. 한 인간을 사랑하는 길은 예수를 전하는 것,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 그분의 사랑을 알게 하는 것뿐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죽음을 앞두면 누구나 왜 더 사랑하지 못했나, 왜 용서하지 못했나 후회하죠. 우리는 노후 대책이 아니라 사후 대책이 있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사후 대책은 진정 끝까지 사랑하다 가는 것뿐이에요. 이 땅의 어떤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지만, 사랑한 것은 영원히 남습니다. 그러니 더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이드포스트〉 독자 분들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십자가의 사랑을 알고, 받기만 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비로소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니까요. 여러분이 그런 사랑을 알고 누리고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편 보내실 곳

[03727]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서대문 우체국
사서함 181호

고객관리

Tel. 02-362-4000

(평일 09:00 ~ 17:00 | 점심 11:30 ~ 12:30)

E-mail. guideposts@fnnews.com

계좌안내

기업은행 082-112675-01-014

(예금주 가이드포스트코리아 주식회사)


우편 보내실 곳

[03727]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서대문

우체국 사서함 181호

고객관리

Tel. 02-362-4000

(평일 09:00 ~ 17:00 | 점심 11:30 ~ 12:30)

E-mail. guideposts@fnnews.com

계좌안내

기업은행 082-112675-01-014

(예금주 가이드포스트코리아 주식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