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Guideposts 2023 |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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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간절히 ‘다시’를 갈망하는 순간이 있다. 또 한 번의 기회가 다시 주어지기를, 중도에 포기한 일을 다시 이어 갈 수 있기를, 비틀리고 무너진 것들을 이전처럼 다시 되돌릴 수 있기를. 그러나 ‘다시’라는 단어를 발음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스러져 가는 생명줄을 붙든 채 생과 사를 오가는 이들 말이다. 이들의 갈망은 오직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는 것, 그야말로 ‘부활’이다. 서울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의 장예림 교수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이들의 곁에서 끊임없이 ‘다시’를 꿈꾼다. 차마 ‘다시’를 꿈꿀 수 없는 이들의 곁에서 그가 ‘다시’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부활을 믿기 때문이다.
언제 어떤 환자를 맞이할지 몰라 늘 긴장 상태이실 것 같아요. 어떤 일상을 보내시나요?
보통 의사들은 정규 회진, 외래 진료, 수술, 이런 식으로 루틴이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언제 올지 모르는 환자를 기다리는 게 일상이에요. 항상 5분 대기조 상태로 있어야 하는 거죠. 저희 중증외상센터는 외상외과 전문의 세 명이 사흘에 한 번씩 돌아가며 당직을 보는 시스템으로 운영돼요. 1년 365일 24시간 내내, 10분 이내로 외상환자를 진료할 수 있도록 세팅한 것이죠. 환자가 오면 응급실에서 소생하는 과정을 거쳐서 수술 또는 시술을 하고, 중환자실 치료도 하죠. 환자가 병실에 입실하는 순간부터 퇴원할 때까지 모든 케어를 총괄해요.
대형 사고나 재난 등이 발생하면 무척 바쁘시겠어요.
맞습니다. 이태원 사고 때도 그랬어요. (잠시 침묵) 그래도 감사한 건, ‘예방 가능한 중증 외상 환자 사망률’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부끄럽게도 해당 통계에서 서울 지역이 꼴찌를 했거든요. 대학병원이 이렇게나 많은 지역인데도요. 서울에서 다치면 사망할 확률이 타지역보다 더 높다는 게 참 아이러니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2020년에 서울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를 개소하게 된 것이고, 그해 12월에 제가 이곳으로 이직하게 되었죠.
본래 단국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근무하셨지요. 이직을 결심하신 이유가 있나요?
이직 제안을 받고 기도를 했는데, 가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어요.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남수단 구호 활동을 갔을 때 어떤 한계를 느꼈거든요. 그곳 아이들의 발에 난 상처가 염증이 심해져 매일같이 치료를 받으러 오는 걸 보면서 ‘이 아이들이 신발만 신어도 발에 상처가 안 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 안타까웠어요. 언제까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만 해야 하나,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일들을 예방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이런 마음이 들었죠. 미력하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어요. 국제 보건을 위해 여러 일을 시도하는 데 서울대학교병원이 좀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사실 확신에 차서 이직을 했다기보다는 기도 가운데 순종하는 마음으로 움직였죠.(웃음) 막상 녹록지 않은 현실에 부딪히니 무력감이 정말 컸어요. 중증외상센터는 보건복지부 산하의 권역외상센터와 달리 서울시 사업의 일환이기에 구조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거든요. 지난 2년간 줄곧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어요. ‘저를 왜 이곳에 보내셨나요?’ 아직은 답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으로서는 그저 하나님의 뜻을 묻고 발견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해요.
교수님이 결성하신 환우회 역시 그러한 고민 가운데 탄생했겠군요.
사실 결정적인 계기가 있어요. 재작년 말에 중증 외상을 극복하고 생존한 환자분들을 대상으로 질적 연구(연구 대상의 말이나 글, 행동, 그들이 남긴 흔적 등을 분석하여 해석하고 의미를 찾는 연구 방법)를 진행했거든요. 외상 관련 일을 하는 의료진들에게 외상환자들의 어려움을 알리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어요. 그때 환자분들을 인터뷰하면서 정말 많이 감동했고, 그분들을 서로 연결하고 연대하게 하는 모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어요. 그분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힘을 실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고요. 중증외상센터 동료이자 후배인 이신애 교수가 뜻과 힘을 모아 주어 함께 모임을 준비해 첫 문을 열었죠. 일단은 저와 깊은 신뢰 관계에 있는 환자분들을 모아서 시작했고, 이제 무게 중심을 서서히 환자분들에게로 옮기는 중이에요.
환우회 이름이 ‘여우비’라고요.
여우비는 ‘볕이 난 날 잠깐 오다가 그치는 비’잖아요. 사고로 인한 고통과 괴로움도 우리 인생의 여우비일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여기, 우리, 비움’의 약자이기도 하고요. 활동 영역을 좀 더 넓히기 위해 올해 안에 법인으로 만들고자 준비하고 있어요. 사실 ‘외상’이 공공 의료 영역에 속하는데 사회 제도나 법규, 보상 등 모든 문제가 환자 개인 또는 가족한테 짐 지워져 있거든요. 사회 복귀도 못하고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어떠한 지원도 없이 고군분투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아요. 그러한 분들이 모여 서로 위로하고 또 위로받으며, 어떻게 하면 새로운 외상환자분들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을지 매달 같이 공부하고 있죠. 국내에 이런 모임이 없어서 사전 준비 기간만 6개월 정도를 거쳐 작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첫 모임 때, 그저 모였다는 것 자체만으로 큰 위로를 받으시더라고요.
교수님 역시 환자분들로부터 받는 위로와 보람이 클 것 같아요.
환자분들은 저희가 한 일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돌려주시죠. 보람이 클 뿐만 아니라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정말 많아요. 중증외상센터에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깨어나신 분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중환자실에서 의식 없이 오랜 기간 사경을 헤매다가 죽음을 이겨 내고 살아나신 분들이 처음 만나는 사람이 바로 저희거든요. 오리가 태어나자마자 처음 본 존재를 어미라고 인식하는 것처럼 그분들은 저희를 정서적으로 깊이 의지하게 돼요. 그래서 저희에게 말로는 설명 못 할 깊은 신뢰와 감사를 표현하세요. 편지도 정말 많이 주시고요. 그럴 때마다 ‘아, 이 힘든 공부하길 정말 잘했다. 이 직업 선택하길 진짜 잘했다’ 이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겠군요.
거의 중독이죠.(웃음) 너무 힘겨워 나가떨어질 것 같은 날, 엄청난 기쁨이 찾아와서 다시 일어서게 되거든요. 그런 식으로 제가 딱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 같아요.
‘전공 기피 0순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업무 강도가 높은 외상외과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이유가 ‘국경없는의사회’에 지원하기 위해서였다고요.
제가 가진 것들, 제가 할 수 있는 일들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거잖아요. 이 모든 것을 나누며 살면 훨씬 풍성해지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경없는의사회’는 최전선에 갈 수 있는 단체인 데다 외과의사로서 전문성을 발휘 할 수 있는 곳이라서 지원했어요.
사실 저희 외할아버지 김문식 교수님의 발자취가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죠. 서울대학교 농업경제학과(현 농업·자원경제학과) 교수셨던 저희 외할아버지는 우리나라가 가난하던 시절, 본인이 배우고 갈고닦은 지식을 통해 농촌 발전에 기여하셨거든요. 또 한편으로는 한국전쟁 때 목숨 걸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헌신하신 분들을 떠올렸어요. 그 시절의 우리처럼 도움을 갈구하는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을 이제 우리가 도와야 할 차례라고 생각했죠.
최전선에 나가는 단체인 만큼 한편으로 염려되는 부분도 있을 텐데요. 가족이나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첫 파견지는 남수단 아곡이었는데, 2019년 10월에 나가서 3개월 동안 지내다 왔어요. 솔직히 처음 파견을 앞두었을 때 엄청난 각오를 하긴 했어요. 현지에서 납치되었을 때의 대응 방법을 숙지하거나, 신변에 대한 서류를 작성하면서 온갖 상상을 하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나가 보니 워낙 안전 수칙을 철저하게 지키기 때문에 그리 위험하지 않더라고요. 저의 파견 소식을 듣고는 정말 많은 분들이 열렬한 지지와 응원을 보내 주셨어요. 편지와 선물은 물론이고 후원금을 주시는 분들도 있었죠. 선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이렇게 많구나, 현장에 직접 가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 함께하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구나 싶어서 큰 힘이 되었죠.
원래는 간담췌외과 전문의셨잖아요. 외상외과로 전환하는 과정이 쉽지 않으셨겠어요.
현장에 나갈 수 있는 실력을 갖추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어요. 레지던트를 거쳐 펠로우 때까지 줄곧 암 환자 치료만 배웠으니까요. 현장에 나가면 세분화된 각 분과의 역할을 혼자서 다 아울러야 하는 터라 2015년부터 권역외상센터에서 외상외과 전문의로 근무를 했어요. 처음에는 준비 기간을 1년으로 잡았는데, 권역외상센터 사업이 확장되는 시기라서 할 일이 너무 많아 계획이 지연되었죠. 그러다가 더 지나면 못 나가겠다 싶어 2019년에 부랴부랴 지원을 했어요. 파견 나가기 직전에 한 달 정도 좀 더 구체적으로 준비를 했고요. 구호 현장에서는 제왕절개수술이나 사지절단술, 화상 치료 등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각 분야 전문가 선생님들을 직접 찾아가 배우는 시간을 가졌죠.
구호 현장에서 만난 환자 중 기억에 남는 단 한 사람을 꼽는다면요?
남수단 아곡에서 만난 소년이요. 당시 일곱 살이었으니 지금은 아홉 살이 되었겠네요. 제가 현장에 도착해서 일주일 만에 처음 만난 환자였어요. 어디선가 날아든 총알을 맞아서 수차례 수술을 했는데 결국에는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어요. 그 아이가 보조기를 의지해 처음으로 혼자 걸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동료들과 함께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순간도요.
한편으로는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은 환자들도 있겠어요.
네, 그런 분들이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죠. 그런데 사실 구호 현장보다는 우리나라에서 겪는 일들이 훨씬 더 가슴 아프고, 눈물 흘릴 일이 많아요.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 죽을 만큼 다치거나 심지어 사망했는데도 사고 처리가 되지 않아 현지의 가족들이 전 재산 털어 비행기를 타고 와서 시신을 수습해 가요. 한편 자살 시도를 했다가 실려 오는 분들도 상당히 많고요. 이런 일들을 볼 때면 마음이 정말 아프죠. 외상외과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환자를 잃은 뒤 그 여파에 짓눌려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나의 최선은 여기까지라는 걸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요. 저는 그저 죽음 쪽으로 기울어 가는 환자를 힘껏 끌어당겨 다시 삶 쪽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뿐이죠.
수술장에 설 때마다 절박한 심정이실 것 같아요. 수술 전 습관처럼 붙드는 말씀이 있나요?
아무래도 촌각을 다투는 응급 수술이다 보니 어떻게 수술할지 계획을 세우고 온갖 정보를 취합하는 데 정신을 집중하느라 말씀을 떠올릴 틈이 없어요. 다만 수술 직전 손 소독을 할 때 ‘도와주세요’ 하고 간절히 기도하죠. 수술 집도 전에 붙드는 성경 말씀은 아니지만, 평소 제가 가장 좋아하고 자주 묵상하는 말씀이 있어요. 로마서 12장 15절이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이 말씀을 따라 환자분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그분들의 손을 잡아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일상이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는 일 중심으로 흘러가다 보면 정작 본인에게는 소홀해질 수 있잖아요. ‘인간’ 장예림을 위해서는 무엇을 하시나요?
유튜브에서 여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해요. 일주일에 두세 권 정도 읽어요. 여러 분야의 도서를 틈틈이 돌아가면서 읽죠. 근무 중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틈에 전자책으로도 읽고, 주말에 쉴 때는 몰아서 푹 잠겨 읽기도 하고요. 복잡한 생각은 잠시 접어 두고 새로운 지식에 몰입할 수 있으니 책을 유일한 도피처로 삼게 되네요.(웃음)
앞으로의 계획이나 비전이 있다면요?
지난 2년 동안 배우게 된 중요한 사실이 있어요. 일단 나에게 주어진 이 하루하루를 성실하고 기쁘게 그리고 감사함으로 잘 살아가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사실 말이죠. 그래서 지금은 너무 추상적인 비전을 세우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제 곁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잘 섬기고, 또 환자분들과 더불어 울고 웃으면서 함께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에 힘쓰려 해요.
세상의 가치보다 하늘의 비전을 좇아 살아가려는 〈가이드포스트〉 독자들께 응원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주님이 주신 비전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달려가더라도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잖아요. 일이 어그러지거나 원치 않는 일을 경험할 때, 우리 인생을 이끌어 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다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것이 신앙 여정이 아닌가 싶어요. 낙심케 하는 일이 계속되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면서 일상을 견딜 수 있는 소소한 기쁨과 감사로 매일을 채워 가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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