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생명, 너머


Guideposts 2023 |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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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posts 2023 | 05

생명,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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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서로에게 잇대어 있을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 ‘사람(人)’이 스스로 서기 위해서는 결국 누구 또는 무엇에 기대어 서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선다는 의미의 ‘자립’은 결코 홀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람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는’ 사회적 기업 ‘브라더스 키퍼’의 김성민 대표는 자립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 자신이 누구 또는 무엇에 기대어 섰던 것처럼, 누군가가 기대 설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주는 것.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의 어제와 오늘, 다가올 내일까지 품어 안은 그의 분투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지키는 자’로 살겠다는 결단을 ‘브라더스 키퍼’를 통해 실현해 오셨어요. 그간의 여정 가운데 어떤 점이 가장 큰 보람으로 여겨지시나요?


개인의 혁신과 사회의 혁신이 만나 근본적인 문제들이 개선되어 간다는 점이 가장 큰 보람이죠. 지난 4년간 저희가 자립준비청년과 관련하여 고용노동부에서 2개, 보건복지부에서 5개의 법안을 만들었고, 12개의 지원 제도를 만들었거든요. 보육원 퇴소자들이 겪게 될 여러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법안과 제도들이죠. 사실 제가 보육원을 퇴소한 이후로 19년 동안 끊임없이 자립준비청년들의 목소리를 내 왔거든요. 제가 퇴소했을 무렵만 해도 사회가 이 청년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대체 언제까지 사회가 이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느냐 하는 인식이 주를 이뤘거든요. 지원은커녕 차가운 시선과 냉대가 쏟아졌죠.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개인의 인식 변화가 일어났고, 그에 따라 사회의 담론이 형성되어 정부 부처의 제도 변화도 이루어지기 시작한 거죠.



몸소 체감하는 변화가 있나요?


참 감사하게도 사회적 기업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에서도 자립준비청년들을 우선 채용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동안 브라더스 키퍼가 증명한 좋은 사례들을 접한 기업들이 자립준비청년들을 고용하기 위해 컨설팅을 요청하기도 하고요. 얼마 전 참석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간담회에서는 디지털 관련 여러 사업들을 통해 자립준비청년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원할 방안을 논의했어요. 대기업에는 장애인 의무 고용 비율이 책정되어 있잖아요. 이처럼 자립준비청년들에 대해서도 의무 고용 비율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어요. 이와 관련하여 실제적인 법안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발의하려고 해요.



때때로 달걀로 바위를 치는 듯한 벽을 느끼신 적도 많을 것 같아요.


성인이 된 아이들을 언제까지 국가가 지원해야 하느냐는 말을 들을 때 그런 마음이 들죠.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의 삶을 자신의 일처럼 공감하게 할 수 있을까 참 고민이 되더라고요. 한번은 정부 관계자분을 뵙게 되어 그분께 이런 질문을 했어요. “○○님은 혹시 언제까지 부모님이 필요하세요?” 그러자 그걸 어떻게 설정할 수 있냐고 반문하시더군요. 그때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맞습니다. 언제까지 부모가 필요한지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아이들에게 언제까지 지원이 필요한지 설정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습니다.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는 기회 자체가 상실된 아이들에게는 국가라는 부모가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국가의 지원을 언제까지 필요로 할지 그 기한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 지원을 바라는 건 아닐 겁니다. 그 지원을 받은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수긍하시더라고요.



브라더스 키퍼를 설립하신 것도 자립준비청년들의 고충과 아픔에 공감하셨기 때문이잖아요. 과연 ‘공감’의 힘이 큰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저는 “역경은 곧 경력이 된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제가 보육원에서 성장한 역경의 시간이 자립준비청년들의 삶에 공감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힘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먼저 퇴소한 선배가 보내 준 5만 원을 들고 서울에 상경해 6개월간 노숙하면서 겪었던 뼈저린 경험들이 결국 브라더스 키퍼를 설립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사람’과 ‘자연’ 곧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게 되셨어요.


그런 셈이네요. 브라더스 키퍼(Brother’s Keeper)는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하고 법률, 경제, 주거 등에 관한 교육을 진행하며, 그들의 인권과 권익을 대변하는 활동을 해요. 제가 브라더스 키퍼를 시작하기 전에 비영리 단체에서 7년 정도 근무하면서 아이들을 후원하고 지원 및 교육하는 업무를 담당했어요. 그때 진행한 프로그램들이 매우 효과적이었기에 브라더스 키퍼에서도 그 교육들을 제가 직접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편, 브레스 키퍼(Breath Keeper)는 친환경 인테리어 브랜드로서 식물과 관련된 다양한 사업들을 만들고, 이것들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아 자립준비청년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식물을 다루려면 섬세한 관심과 정성이 필요하잖아요. 식물 사업을 시작하신 궁극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이전에 아이들을 일반 회사와 연계해 주는 일을 했어요. 100명이 넘는 친구들이 기업과 연결이 되었지만 단 한 사람도 그 자리에 남지 못했죠. 가장 오래 근무한 친구가 버틴 기간이 3개월이었으니까요. 기업과 아이들을 인터뷰한 결과, 보육원 출신이라는 자격지심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정서적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자리를 갖는 건 위험하다는 사실을 절감했지요. 그 무렵 ‘창조원’이라는 조경회사로부터 후원 제안을 받았어요. 저는 후원 대신 일자리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드렸고, 그 회사에 두 친구를 연결해 주었어요. 한 친구는 입사하는 날 나타나지 않았고, 나머지 한 친구는 잘 안착해서 6개월 이상 꾸준히 근무했지요. 그 동력은 바로 식물에서 비롯된 것이었어요. 매일 식물을 대하면서 이 친구의 마음이 회복되고 정서가 안정되었던 거예요.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사람은 사랑을 받을 때보다 사랑을 줄 때 정서적 회복력이 열 배나 높아진다는 논문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이 친구가 식물에 관심과 사랑을 주면서 오히려 자신의 삶이 살아난 걸 경험한 거죠. 이 일을 계기로 식물이 자립준비청년들의 해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업을 시작할 때 많은 준비가 필요하셨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식물 관련 전공자도 아니고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잖아요.(웃음) 그런 저를 위해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셨어요. 때마침 창조원에서 저희에게 벽면 녹화 사업을 무상으로 이전해 주겠다고 제안하신 거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이때 크리스천 기업 임팩트스퀘어 도현명 대표님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구체화할 수 있었어요. 자립준비청년과 조경업을 접목하기 위해 시장 조사를 하면서 세 가지 기회 요소를 발견했어요. 첫째, 보육원을 퇴소한 친구들의 70~80퍼센트가 공업고등학교 또는 농업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이었어요. 즉 조경업에 종사할 기본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죠. 둘째, 이 조경업이 고령화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세대 교체가 전혀 안 되고 있는 이 분야에서 매년 2천, 3천 명씩 쏟아져 나오는 보육원 출신의 자립준비청년들이 제 몫을 다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셋째, 미세먼지가 극심해지는 시대에 식물 사업의 확장이 충분히 기대된다는 점이었지요. 실제로 당시에 벽면 녹화 사업의 규모가 전 세계적으로 250조 원 정도 형성돼 있었어요. 모든 산업군의 10퍼센트를 한국이 책임진다는 전제로 보면 우리나라가 25조 원의 몫은 하고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나 당시에는 해당 사업이 전혀 시작도 안 된 단계였기 때문에 향후 충분히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지요.



벽면 녹화 사업은 주로 어떤 곳에서 의뢰가 들어오나요?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서 의뢰가 많이 와요. 소위 B2G(Business to Government), B2B(Business to Business) 사업이라고 하죠. 여기에서 더 확장해 일반 고객들에게도 판매할 수 있는 B2C(Business to Consumer) 제품을 개발했어요. 가정이나 사무 공간에 둘 수 있는 ‘식물 가전’이라고 해야 할까요. 식물과 공기청정기를 결합한 제품이라고 보시면 돼요. 이를 판매하고 서비스할 수 있는 대리점을 전국적으로 10개 정도 개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각 지역에서 퇴소한 친구들을 해당 지역에서 고용하는 모델을 만들고자 해요. 단순히 대리점에 그치지 않고 식물 카페로 공간을 꾸려서 커피와 베이커리를 판매하고, 식물과 관련된 다양한 상품과 제품을 판매할 예정이에요. 그곳에서 가드닝 클래스도 여는 등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어 확대해 나가려고 합니다. 좀 더 장기적으로는 ‘공기를 컨설팅하는 회사’로 성장해 자립준비청년들이 ‘공기 컨설턴트’로 활동할 수 있도록 영역을 확대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브라더스 키퍼만의 특별한 동료 문화가 있다면서요?


결근 또는 지각을 하거나 혹은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해도 무조건 1년 동안 기다려 주는 시간을 가져요. 모든 사람은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고 용서받는 시간을 통해서 성장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그런 시간이 완전히 상실된 채 성장해 왔거든요. 우리가 회사 차원에서 1년 정도는 아이들을 존재 자체로 품어 준다면 이전보다는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과연 1년 뒤에 참 특별한 모습들을 보게 되었죠. 보통은 새로운 후배들이 들어왔을 때 결근 또는 지각을 하거나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면 군기부터 잡으려 할 텐데 그저 묵묵히 기다려 주더라고요. 기다림을 배운 거죠. 사랑받고 인정받고 존중받은 1년의 시간을 통해서 후배들에게도 그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인식한 거예요. 단지 나만 사랑받고 나만 이해받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삶, 곧 후배들의 삶을 인정하고 또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특별한 시간이 된 거죠.



브라더스 키퍼의 선한 행보에 동참하는 후원의 손길 중 인상 깊은 사연을 소개해 주세요.


한홍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새로운교회에서 저희 회사를 방문해 협력을 청해 주셨어요. 자립준비청년들의 문제를 같이 풀어 가고 싶다고 하시면서요. 보통은 한 번 방문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뒤로도 지속적으로 방문하고 후원해 주고 계세요. 무엇보다 저의 개인적인 건강 문제를 염려하여 전문의 선생님을 연결해 주시기도 했어요. 보육원 퇴소자들에게 발생하는 여러 사건과 사고들, 특히 자살 기도 등의 문제들을 무수히 겪다 보니 저에게 공황장애가 찾아왔었거든요. 작년에는 심장 문제로 20번 정도 쓰러지기도 했고,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좋은 의사 선생님들을 연결해 주셔서 제가 안정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고된 시간을 통과하면서 몸과 마음이 큰 무게에 눌리셨을 것 같습니다. 그 시간 가운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이나 사람이 있다면요?


그동안 저는 ‘나에게는 부모님이 안 계시다’라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부모님이 안 계시니까요. 그런데 제 삶을 돌아보니 누구보다 부모님이 많았더라고요. 시시때때로 정말 많은 분들이 저에게 아버지와 어머니 역할을 해 주셨어요. 그런 의미에서 참 감사하게 생각해요. 가슴에 오래 남는 사연이 하나 있어요. 스물아홉 살 무렵이었을 거예요. 당시 저는 지하철 또는 버스를 타거나 공공장소에서 부모님 연배의 어르신과 눈이 마주치면 계속 그분의 눈을 바라봤어요. 부모는 아무리 오랜 시간 떨어져 지냈어도 자신의 자녀를 언제든지 알아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혹시 ‘저분이 나의 어머니가 아닐까’ ‘저분이 나의 아버지가 아닐까’ 이런 마음으로 계속 쳐다보곤 했어요. 어느 날 굉장히 왜소한 여자 어르신과 눈이 마주쳐서 계속 쳐다보았더니, 그분이 저와 눈을 맞추고 한참 바라봐 주시더라고요. 그러더니 저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셔서 혹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셨어요. 저의 사연을 듣고는 그분이 저를 꼭 껴안아 주시더라고요. 그 짧은 찰나에 그분은 저의 어머니가 되어 주신 거죠. 그러한 분들의 따스한 포옹 덕분에 제가 ‘지키는 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대표님의 사내 닉네임을 ‘바비아나’로 지은 것 역시 그러한 분들의 사랑 덕분이겠지요?


맞습니다. 브라더스 키퍼는 직급 대신 식물 이름으로 호명하는데요, 저는 ‘단란한 가정’이라는 꽃말을 가진 식물 ‘바비아나’를 닉네임으로 삼았어요. 우리는 가족이라고 하면 혈연을 떠올리잖아요. 저는 지금 나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이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동료들 그리고 저와 같은 환경에서 사는 모든 아이들이 제 가족이죠. 또 그들의 진정한 가족이 되어 주는 것이 제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며, 그 일들을 함께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우리의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브라더스 키퍼’라는 가정이 품고 있는 앞으로의 비전 또는 기도 제목을 나누어 주세요.


‘형제를 지키는 자’라는 의미를 품고 있는 브라더스 키퍼가 형제의 삶, 곧 생명을 살리는 데서 나아가 ‘영혼’을 살리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자문하게 되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저 자신부터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다져 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저의 영혼을 돌아보고 몸과 마음의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요. 앞으로 저희 브라더스 키퍼가 수많은 영혼을 살리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또 그 일을 저희가 넉넉히 감당해 낼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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