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내면까지 건강한 사회를 위해 Rise Together!
Guideposts 2023 |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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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posts 2023 | 06
내면까지 건강한 사회를 위해 Rise Together!
어느 날 갑자기 삶이 멈췄다. 그리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삶이 준 쓰디쓴 레몬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든 사람, 바로 한국인 최초로 존스홉킨스대학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진에 합류한 지나영 교수다. 지 교수는 대구 토박이로 봉제공장에 다니던 부모 밑에서 자라 대구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했다. 평소 희망하던 정신과 레지던트에 떨어진 뒤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간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곳에서 원하는 삶을 이뤘다. 그러나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할 것만 같던 일상에 난치병이 찾아왔다. 지난 2017년 결혼한 지 6개월 만이었다.
노스캐롤라이나 의대 정신과 레지던트와 소아청소년정신과 펠로우 과정을 이수하고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진이 되기까지 지나영 교수는 자신의 일을 사랑해 마지 않았고, 쉴 새 없이 바쁘게 살았다. 그는 당시를 “빠르게 달려가지 않으면 이 소중한 기회와 시간들이 모조리 낭비되어 사라질 것”으로 생각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내게 맡겨진 일은 빈틈없이 해내려고 노력했다”고 돌이켰다.
자율신경계 장애인 ‘신경매개저혈압’이라는 병명을 알아내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고통의 터널을 거쳐 지금도 난치병과 함께 살아가는 지 교수는 그때의 경험을 자양분 삼아 지난 2020년 작가로 거듭났다. 에세이 『마음이 흐르는 대로』를 출간하고 방송도 제법 탄 그는 교육에 극성인 한국 부모를 위한 육아서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2022)와 청소년 심리서 『들숨에 긍정 날숨에 용기』(2023)를 펴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 출간 후 만들어진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이 유튜브 ‘닥터지하고’ 17만 구독자를 포함해 25만 명에 달한다. “병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그는 ‘내면이 건강한 사회가 되기까지’ 함께하자는 의미를 담아 ‘라이즈 투게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요즘 건강은 어떤가요? 근황도 궁금합니다.
전반적으로 좋아진 편이나 아무래도 만성질환이라 계속 잘 다스려야 합니다. 환자를 돌볼 정도는 아니라서 지난해부터 레지던트 교육과 강의만 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아픈 상태로 힘겹게 환자를 계속 봤더니 너무 지쳐서 의사로서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결단을 내렸죠. 덕분에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지난 1년간 책 2권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 몇 점을 받았고 무슨 대학에 갔다는 등 아이들을 서열화한 학원 광고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는데요. 청소년 심리서를 쓰게 된 계기인가요?
저는 아이와 청소년에게 가장 마음이 갑니다. 계획에 없던 육아서를 쓰게 된 것은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방법 중 하나가 부모 교육이기 때문이죠.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 출간 후 온라인에 독자 커뮤니티가 지역·연령별로 여러 개 생겼는데 ‘사춘기방’의 회원이 천 명이 넘습니다. 우울, 무력감에 등교를 거부하고 자해, 자살까지 시도하는 아픈 10대들을 둔 부모들끼리 24시간 고민 상담을 하더라고요. 급한 불부터 꺼야겠다는 생각에 청소년과 그들 부모를 위한 책을 썼습니다.
한국 청소년의 현실을 보면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이들의 저마다 가진 다양한 재능을 고려하지 않고, 공정성을 내세워 획일적인 잣대로 아이들을 평가합니다. 이는 모든 동물을 나무 타는 능력으로 평가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부모에게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너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I love you just the way you are)’ ‘너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가치 있는 사람이야(You are worthy no matter what)’라는 말을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해 주라고요. 부모는 자녀에게 너의 강약점과 모든 특성을 다 합한 네 모습 그 자체로 귀하고 존중받고,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말해야 합니다.
예쁜 짓을 해야 예쁨 받는다고 생각하게 마련인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서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어릴 적부터 절대적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공부 잘해야 예쁨 받는다와 같이 조건적 사랑의 메시지를 주면 내면이 단단하지 못한 사람이 됩니다. 또 이런 메시지는 잘나면 존중받고, 그 반대면 인간 취급 못 받는다, 나보다 못나면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을 심어 줍니다. 그렇다 보니 한국 사회는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죽자 사자 공부하고 있죠. 서양 매체에서도 ‘갑질(gapjil)’이라는 단어로 소개된 갑질 문화는 한국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인데요, 조건적 사랑과 상대적 가치의 메시지를 부모와 사회가 지속적으로 주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한국에서는 대입의 중요성이 크다 보니 교수님 말씀대로 다들 죽자 사자 공부합니다.
다들 입시제도가 바뀌길 기다리는데, 나부터 변하면 됩니다. 문제가 있다는 걸 모두 공감하니 함께 변화하자는 취지로 ‘라이즈 투게더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챗GPT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듯 급변하는 사회입니다. 예측하기 힘든 미래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닙니다. 회복 탄력성과 적응력이죠. 실패해도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화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죠. 또 외부 상황과 상관없이 스스로 단단히 설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건강한 마음(정신)이 필요합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씨름하는 과제가 자살이라고요?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많은 부모가 불안에 휩싸인 나머지 근시안적인 육아를 하고 입시교육에 몰입한 결과가 어떠한가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OECD 회원 38개 국가 중 36위로 바닥 수준입니다. 한국의 자살률은 2020년 기준 10만 명당 27.5명인데 이는 미국의 자살률(14명)과 타살률(7.5명)을 합한 숫자(21.5명)보다 높습니다. 게다가 합계 출산율은 2022년 상반기 0.81명에 불과합니다. 한국 사회가 한강의 기적을 통해 아무리 (외적으로) 이룬 게 많아도 정작 우리 어른도, 다음 세대인 아이들도 행복하지 않다면 정말 많이 이룬 것일까요? 이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 자녀를 건강하지 않게 키우는 문화를 시급히 바꿔야 합니다.
이번 신간 『들숨에 긍정 날숨에 용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습니다. 바로 ‘다양한 그 모습 그대로 괜찮다’와 ‘실패 권장’입니다. 실패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많이 넘어진 사람이 더 크게 성장합니다. 한국 사회는 실패할까 전전긍긍하며 10대들에게 오직 한 길을 가라고 하는데, 사실은 엄청 많은 길이 있습니다. 세상을 제한된 시각으로 보면, 꿈도 제한됩니다.
교수님의 삶은 참 의외의 연속입니다. 무모한 도전정신은 어디서 나왔고, 끝까지 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역설적이게도 부모님이 바빠서 자유롭게 자란 덕분인 것 같습니다. 어릴 적에 ADHD가 심해서 교과서를 안 갖고 가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이 저만 교과서를 학교에 두고 가라고 했죠. 결과적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해결책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기본적으로 해 보고 싶으면 일단 하는 성격입니다. 한국에서 레지던트에 떨어졌을 때 하향 지원하지 않고 미국에 가서 정신과에 지원한다니까 주위에서 말렸어요. 부족한 영어로 완수하기 어렵다면서요. 그래도 일단 해 보겠다고 했어요. 두려워서 하고 싶은 것을 못하면 안타깝잖아요. 넘어지면서 배우는 게 많습니다. 저의 경우는 실패가 또 다른 기회의 문을 열어 줬습니다. 궁금하면 두들겨 보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해 보세요.
존스홉킨스 병원 자체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세워진 병원이더군요. 범죄율이 높은 볼티모어 근무를 불사한 교수님의 선택도 놀랍습니다.
솔직히 그 도시의 범죄율이 그 정도로 심각한지 몰랐습니다. 인터뷰 당시 부동산업자가 존스홉킨스 과장님의 부탁을 받고 좋은 동네만 보여 주셨거든요.(웃음) 하지만 이미 학교 자체에 감명을 받은 뒤라 알았어도 달리 결정하지 않았을 겁니다. 병원 구관 로비에 거대한 위로자 그리스도상이 있는데 거기에 적힌 글을 보는 순간 마치 하나님이 내게 ‘이곳이 네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어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저는 정신과 의사가 된 것을 하늘이 부른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힘들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위로자가 되어 주고 싶다는 나의 바램이 볼티모어라는 험한 도시로 나를 이끌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맞벌이 부모를 대신해 교회에서 돌봄을 받으면서 하나님과 가까워졌다고요.
네. 모태신앙이었어요. 엄마가 신혼 초부터 장사를 했는데 아침마다 언니와 저를 집 앞 교회에 맡기고 일 보러 가셨어요. 교회는 정말로 일용할 양식을 준 곳이죠.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교회 어른들이 해 준 밥을 먹으며 버텼어요. 제 신앙심은 미국에서 크게 성장했죠. 도미한 그 해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이참에 교회를 제대로 다니면서 공부해 보자고 다짐했어요. 그때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진심으로 믿게 됐습니다. 세례를 받은 것도 그때입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서문에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을 인용하셨어요. 투병 당시 하나님이 원망스럽진 않았나요?
원망의 마음은 들지 않았어요. 분명히 저를 꺼내 주실 것이다, 저를 벌주시려는 게 아니라고 믿었거든요. 다행히 제가 의사였기에 병은 아무에게나 이유 없이 온다는 것을 알잖아요. 병이 어느 정도 회복된 뒤에는 그 병도 하나님 계획 안에 있었구나, 이 모든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서 나라는 사람이 됐구나, 전 아팠던 뒤의 내가 더 좋습니다. 지금은 그 병을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죠.
발병하면서 자식을 낳을 기회를 잃었는데요. 대신에 더 많은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챙기고 있습니다.
어느 날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제 삶을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보니까 정말 계획이 잘돼 있더라고요. 저는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지금은 풍요롭게 살고 있고,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그 시간만큼 미국 사회를 경험했으며, 의사지만 환자도 되어 봤잖아요. 이 모든 것은 제가 계획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사람을 쓰실 때 뛰어난 사람 대신 부족한 사람을 쓴다고 하잖아요. 일부러 부족한 나를 쓰셨구나. 어머니는 “하나님이 우리 딸을 (큰일에) 쓰려고 자식을 안 주신 것 같다”고 하셨죠. 아이가 있었으면 지금처럼 자주 한국과 미국을 오가지도 못했을 겁니다.
이 시대에 교수님의 소명은 무엇인가요?
『목적이 이끄는 삶』을 쓴 릭 워렌 목사가 “당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무엇을 하느냐? 그것에 대한 답을 찾으면 삶의 목적을 찾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제 소명은 내면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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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말미 ‘라이즈 투게더’가 쓰인 티셔츠를 입은 지나영 교수의 어머니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웃는 인상의 그는 지난 2년간 딸의 유튜브 ‘닥터지하고’를 구독하며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됐다고 했다. 녹록지 않은 시집살이를 겪으며 자존감이 낮아졌다는 어머니는 “그동안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인 줄 몰랐다. (딸의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나를 찾게 됐다. 행복해졌다”며 웃었다.
지 교수는 이날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라이즈 투게더 캠페인’이 우리 사회에 더욱 강력한 물결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 줄 종교계 인사를 만나러 간다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는 “제 일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제 기도는 다음 세대인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잘못된 육아와 교육으로 인해 건강하지 못한 신념을 가진 청년들을 계속 길러 낸다면? 그런 청년들이 자라 우리 사회의 리더가 된다면? 한국 사회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요? 우리 사회는 지금 흥망과 성패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제는 내면이 건강한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됐다고 생각하시면, 제게 이 중요한 일을 함께할 사람을 붙여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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