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나는 '일터 예배자'입니다


Guideposts 2023 |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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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posts 2023 | 07

나는 ‘일터 예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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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지 않았다. 거절할 수 없는 은혜라고 믿었으므로. 그저 새로 주어진 소명에 응답하여 성실히, 곧게 나아갈 뿐이었다. 사법시험 고시생에서 배관 전문가로, 10년의 세월을 딛고 진입한 전혀 다른 세계 속에서 그는 새로이 빚어졌다. 그것은 신분의 변화가 아니라 정체성의 변화였다. ‘무엇을 하는가(Doing)’를 묻는 세상에서 그는 ‘어떤 존재인가(Being)’로 답하는 일터 예배자가 되었다. 지상 곳곳의 막힌 혈관을 뚫으며 전심으로 예배하는 ‘네모난 하수구’의 공병철 대표, 그가 엮어 가는 하나님 나라의 스토리를 들어 봤다.






사법시험 고시생으로 10년, 배관 전문가로 8년, 만만치 않은 시간입니다. 도합 18년의 세월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요?


‘훈련’이요. 욥기에 이런 말씀이 있잖아요.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9-10). 당시에는 몰랐어요. 그저 힘겹기만 했으니까요. 하나님은 매 순간 저와 함께하셨지만, 과거의 저는 ‘하나님이 어디 계시지?’  하며 사방을 헤매기만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되짚어 보니 그 모든 과정이 ‘훈련’이라는 단어로 수렴되더라고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훈련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10년간의 고시생 시절도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시간이었을까요?


그렇죠. 그 시절을 통과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가게 되었으니까요. 이 일을 배우는 고된 과정을 감내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고시생으로 보낸 10년이 받침이 되었어요. 제가 일을 배울 당시 제 또래 수습생들은 대부분 해가 지기 전에 적정 매출을 채우면 일찍 퇴근을 했거든요. 제게 일을 가르쳐 주신 사장님은 그런 모습을 못마땅해하셨어요. 저는 사장님 덕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정까지 일을 하고 사장님을 댁에 모셔다 드린 뒤 집에 와서 서류 작업을 하고 새벽 1시쯤에나 잠자리에 들었어요. 대여섯 시간 자고 일어나서 새벽 6시 반에 큐티를 했고요. 자정 넘어 새벽 1시까지 공부하던 고시생 시절의 근성으로 버틴 셈이죠. 그 10년의 세월 동안 제 몸과 마음이 훈련되어 있었던 거예요.



기나긴 시간 붙들던 고시 공부를 뒤로하고 새로운 길에 들어섰을 때 마음이 복잡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하수구 설비 사업을 업으로 삼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품지는 않았어요. 혹여 제가 자존심 상할까 봐 조심스레 권유하시는 청년부 목사님의 말씀에 응해 한번 경험해 본 것이 시작이었죠. 수습생이 되기에 앞서 사흘 동안 시간을 달라고 한 뒤 깊이 고민해 보았어요. 다른 무엇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제 발목을 잡더라고요. 그래서 슬그머니 물러나려고 했죠. 그런데 얼마 뒤 봉사자로 참여한 고등부 수련회에서 신세 한탄하는 기도를 드리던 중 생각지 못한 반전이 일어났어요. 거창한 표현이지만 ‘거절할 수 없는 은혜’가 저를 사로잡았거든요. 조금도 망설일 이유가 없었어요. 기도실을 뛰쳐나와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죠. “저, 이 일 하겠습니다.”



그날로부터 8년이 흘렀습니다. 뒤돌아보거나 곁눈질 한번 하지 않고 오로지 직진하면서요.


사업을 시작하면서 굳게 결심했거든요. 뒤돌아보지 않기로요.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때마다 저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했죠. 실제로 후회한 적이 없거든요. 사실 다시 돌아가는 게 더 엄두가 안 났으니까요. 기나긴 세월 고시 공부하다가 고작 새 일 조금 경험해 보고 다시 공부하겠다고 돌아가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아득했어요. 제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이라서(웃음) 오히려 이전으로 되돌아갈 경우 쏟아질 사람들의 평가와 판단이 더 견디기 힘들 것 같았어요. 덕분에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늘에 이르렀죠.

현장에서 위험하거나 난감한 일도 많이 겪으셨겠어요.


아무래도요. 오래된 건물의 경우 배관이 삭아 있게 마련이라 공사 중에 깨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배관 안에 꽉 차 있던 물이 고스란히 아래층으로 쏟아져 버리죠. 특히 문제가 발생한 배수관의 아래층에 금융기관이 입주해 있는 경우, 혹시라도 배수관이 깨지면 컴퓨터 등의 기계에 물이 들어가 시스템이 마비되기 때문에 섣불리 공사를 진행할 수 없어요. 그래서 사고 날 가능성이 큰 노후 건물은 되도록 공사를 하지 않고 돌아오죠. 이런 사고를 몇 차례 겪고 나면 트라우마가 생겨서 작업할 때마다 겁이 나거든요. 저 역시 8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데도 매번 긴장을 놓지 못해요. 작업 후 물이 잘 빠져나가는 걸 본 뒤에도 아래층이 괜찮은지 확인을 해야만 안도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불안감을 견디지 못해 중도에 일을 그만두는 분들도 있어요.



전혀 새로운 일을 배우다 보니 개인적으로나 대외적으로 체감하는 변화 또한 컸을 것 같아요.


하루에도 몇 번씩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죠. 막힌 하수구의 물이 싹 빠져나갈 때, 가슴에서 체증 같은 것이 내려가는 듯 시원해요. 이 일에 흥미를 붙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한편으로는 도움을 받는 사람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것을 대외적인 변화로 꼽을 수 있겠네요. 고시생으로 공부하는 동안에는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입장이라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지냈거든요. 배관 설비 사업을 시작한 뒤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서 고시 공부를 하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생활비 등을 지원해 주기도 해요. 사람 구실을 하게 되었다고 할까요.(웃음) 덕분에 제 마음이 충만하게 채워지고 자존감도 회복되었어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경제활동을 하고, 이를 통해 벌어들인 재정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흘려보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오늘에 이르기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 중에 특별한 의미로 남아 있는 분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제가 속해 있던 청년부를 담당하신 김재윤 목사님이요. 고시 공부를 하던 당시 청년부 회장을 맡은 적이 있는데, 그때 김재윤 목사님께서 열정적으로 청년부를 이끌어 주셨어요. 처음에는 목사님을 전적으로 따르지 못했는데 나중에 청년들을 향한 그분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한결 친밀해졌지요. 목사님은 공부에 짓눌려 있던 저를 안타까워하며 배관 설비 사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셨어요. 무일푼인 제가 사업 자금을 마련할 때 대출까지 받아 도와주려 했을 만큼 저를 많이 아껴 주셨죠. 또한 저에게 배관 설비 기술을 가르쳐 주신 사장님이야말로 제게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분이에요. 작업 중에는 누구보다 엄하고 거친 분이지만, 그 덕분에 꼼꼼하고도 체계적으로 일을 배울 수 있었으니 감사할 따름이죠. 언젠가 사장님께서 “그래도 병철이가 너희 중에서 기술이 제일 좋아” 하고 말씀하셨는데, 참 뿌듯하더라고요. 그리고 허브공동체 유영아 대표님도 제게 무척이나 특별해요. 교회 내에서 진행된 BAM(Business As Mission) 훈련의 일환인 아둘람 모임에서 처음 뵈었죠. 유 대표님은 건축과 기획, 카페와 출판사 등 다양한 커뮤니티의 대표로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고 계시는데, 동종 사업을 하는 저를 유난히 살뜰하게 챙겨 주셨어요. 저에게 일터 사역 훈련을 소개해 주고, 여러 면에서 지도해 주셔서 일터 사역에 대해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일터 사역 훈련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어요?


우리가 왜 일을 해야 하는지, 또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는 훈련이에요. 히브리어 중에 ‘일’을 지칭하는 ‘아바드’라는 단어가 있어요. 그 단어에는 경작하다(cultivate), 일하다(work), 섬기다(service), 예배하다(worship)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해요. 주일에 성전에서 드리는 것만이 예배가 아니라 현장에서 몸으로 작업하는 제 일이 곧 예배예요. 이 사실을 알고 무척 흥분되더라고요. ‘이게 예배였구나. 내가 예배를 드리고 있었구나.’ 우리가 착하고 충성된 종처럼 신실하게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는 데 동참한다는 사실을 배우고 난 뒤로 저의 마음 자세가 달라졌어요. 그래서 《하수구 뚫는 법대생》(2022, 일터개발원×HUB)을 쓰게 되었고요. 세상 논리를 좇으며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동생들에게, 또 사회 곳곳에서 저마다의 일을 감당하시는 분들에게 예배의 본질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요. 


일터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는 하나님을 체험한 적이 있다고요.


자주 있어요. 간혹 아무리 애써도 하수구가 뚫리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 혼잣말로 하나님께 이야기해요. “이제 더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의 일을 하나님이 예배로 받아 주셨다면 그걸로 됐습니다. 이만 철수할게요.” 그러고 나서 현장을 정리하고 있노라면 물이 시원하게 빠져나가는 거예요. 처음에는 사고가 난 줄 알고 아래층에 내려가서 확인해 보았는데, 전혀 이상이 없고 내시경을 넣어서 보니까 깨끗하게 뚫려 있더라고요. 이런 일이 몇 차례나 있었어요. 내가 행하는 일을 하나님께 예배로 올려 드리는 순간, 도저히 풀리지 않던 일이 단숨에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아, 하나님이 이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한편으로는 일터 예배 중에 이 사회의 병리적인 부분들을 겪게 되지 않나요?


배관 설비 일을 하다 보면 빈번하게 겪는 일이 있어요. 보통 건물에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건물의 관리 소장님이 의뢰를 하시거든요. 작업을 마치고 비용을 치를 때, 간혹 제가 청구한 금액보다 많은 금액을 지불한 것으로 처리해 달라는 관리 소장님들이 있어요. 건물주는 그렇게 부풀린 금액으로 영수증을 받아 처리하게 되고, 남은 금액은 관리 소장이 챙기는 거지요. 처음부터 그런 거래를 제안했다면 애초에 거절했을 텐데 작업을 마친 후에 요구하기 때문에 난처한 경우가 생겨요. 결과적으로 속이는 일에 동참하게 되는 거니까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그래서 단호히 말씀드렸어요. 이런 부탁하실 거면 저에게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요. 듣기로는 건설업계에 이런 눈먼 돈들이 많다고 해요. 안타까운 일이죠.



정치인을 꿈꾸며 법대에 진학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셨잖아요. 훗날 정치 분야에 몸담게 된다면 어떤 일에 기여하고 싶으신가요?


실은 고시생 시절 잠시나마 정치를 경험해 본 적이 있어요. 앞서 말씀드린 김재윤 목사님의 권유로요. “막연히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정치가 너에게 정말 가치 있고 맞는 일인지 경험해 봐”라고 말씀하셨거든요. 2, 3년 정도 선거 캠프에서 청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바가 있어요. 이 사회의 문제를 바꾸는 일은 특정 분야의 뛰어난 정치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정치를 하려면 사회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죠. 그런 의미에서 특정 정치인의 도덕성이나 능력에 기대는 게 아니라, 각 정당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할 수만 있다면 군소 정당들의 의사가 균형 있게 반영되도록 선거 제도를 개편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저의 관심사인 청년 문제, 출산과 주거 문제를 개선하려면 무엇보다 근본적인 구조가 바뀌어야 할 테니까요.



현재 청년들의 창업 준비를 돕는 일도 하고 계시지요?


현장에 나가지 않는 날에 창업 교육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사업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아는 장로님이 본인이 운영하는 청소 회사의 직원들에게 하수구 뚫는 기술을 알려 주면 좋겠다고 제안하셨어요. 그래서 사무실에서 강의를 한 뒤, 현장에 데리고 다니면서 일을 가르쳐 주었죠. 일을 많이 해 봐야 숙달이 될 텐데 현재로서는 많지 않아서 진전이 빠르지는 않은 상태예요. 그래도 제가 일을 가르친 집사님 한 분이 일머리와 손재주가 뛰어나서 현재 사업을 잘해 나가고 있어요. 제가 가르쳐 드린 것 이상으로요. 어떤 일이든 적극적이고 굳건한 의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대표님 역시 굳건한 의지로 지금 여기에 이르셨잖아요. 15년 전, 고시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과거의 공병철을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해 주고 싶은가요?


그 시절의 저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막함과 사투했어요. 그런데 오늘의 저는 끝을 봤잖아요. 이렇게 말해 주고 싶어요. “병철아, 언젠가는 끝난다.”



끝으로 ‘일터 예배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성경 구절이 있다면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기뻐하고,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모든 것을 가진 자로 살았잖아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항상 기뻐하는 사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사람, 모든 것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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