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함께, Child First


Guideposts 2023 |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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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posts 2023 | 09

함께, Child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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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주 잊는다.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인생의 중요한 가치에 대해, 자주 순서를 잊고 허둥거린다. 이 세상이 ‘함께’ 살아가는 터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 일상의 스텝이 꼬이고 만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도 ‘함께’의 가치를 단단히 붙든 채 부동(不動)의 우선순위를 지켜 내는 한 사람이 있다. ‘Child First’,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결연후원팀의 천성규 팀장은 나눌 때 배가되는 행복의 신비를 시시로 목격한다. 요동치는 세상의 논리에도 그의 우선순위가 결코 뒤바뀔 수 없는 이유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 만 13년을 재직하셨어요. 본래 아동에 대한 마음을 품고 계셨나요?


사실 아동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어요. 다만 보편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있었지요. 저의 첫 일터였던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이하 기아대책)에서 진행한 구호개발사업들은 주요 타깃이 아동이긴 하지만 지역 사회 내에서 포괄적으로 사업이 이루어졌거든요. 아동에 대한 관심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와서 아동 결연 업무를 하는 동안 더 깊어진 것 같아요. 아동들의 사연을 접할 때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던 저의 어린 날이 떠오르곤 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일종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겪어 보았기에 알 수 있는 마음이겠군요. 팀장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눠 주시겠어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아버지께서 사업을 시작하셨어요. 한창 사업이 잘되었는데 중학교 2학년 무렵에 모든 게 무너졌어요. 수습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고, 결국 부도가 나서 아버지가 1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셨어요. 제가 중2에서 중3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는데, 당시 저희 가족의 한 달 수입이 십여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입시 공부를 할 때도 참고서가 없어서 친구 것을 빌려서 공부하기도 했죠. 아버지는 지병으로 일을 그만두실 때까지 한 번도 편하게 쉬지 못하셨어요. 가족을 위해 몸부림쳤지만 재기도 어려웠고, 건강도 잃으셨죠. 그렇게 어려운 시기를 보내면서 저는 오로지 명문대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저나 가족을 위해서 좋은 대학을 가야 살길이 열린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막상 목표한 대학에 들어간 후 한동안 길을 잃고 헤맸지만요. 여러 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이곳에 도달했네요.



지나고 보면 돌고 도는 시간 또한 결코 헛되지 않잖아요. 그간 어떤 과정을 거치셨나요?


꿈을 잃은 채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무언가에 깊이 열중해 본 적 없이 청년기를 흘려보냈어요. IMF 이후로 취업 자체가 어려운 시기였고, 무엇보다 저 자신이 사회에 나갈 준비가 안 되어 있었죠. 여러 시행착오 끝에 2002년 7월 기아대책 총무팀 간사로 뒤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입사 후 8, 9개월 동안은 건물 및 비품 관리, 주차 관리 등을 담당했죠. 당시 막연히 국제협력팀에서 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저에게 기회가 왔어요. 2003년 4월 무렵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퇴사하자 담당 실장님이 그 업무를 저에게 해 보겠냐고 제안하신 거예요. 영어 실력도, 관련 분야 경험도 부족했지만 몸으로 부딪히며 차근히 일을 배워 나갔죠. 그러다 재직 8년 차가 되던 2009년, 매형이 뇌종양으로 투병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간병하는 누나를 돕기 위해 휴가를 내고 미국에 갔어요. 미국에 머무는 동안 지인의 도움으로 관심 있던 전공 분야 교수님과 면담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어요. 그 일을 계기로 마음속에 고이 접어 둔 꿈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죠. 그동안은 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에 포기해야만 했거든요. 하지만 다시 공부를 이어 가 보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당시로서는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한국에 돌아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 준비를 했어요. 감사하게도 어머니가 제 꿈을 응원해 주셨죠. 하지만 2006년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신 후 홀로 되신 어머니를 두고 떠나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어요. 학기가 시작될 무렵 미국에 들어갔다가 결국 진학을 포기하고 (유학 비자의 체류 기간 만료 시점이던) 2010년 1월 말 한국행 비행기를 탔죠. 그때를 돌아보면 다시 일할 곳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적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당시 제가 38세여서 관련 분야 경력직으로 취업이 쉽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귀국 다음 날 지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어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 해외사업 담당 팀장을 뽑는데, 이력서를 준비해서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현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로 가 보라더군요. 당시 저희 재단에서 유관 단체들을 통해서 대상자를 찾고 있었나 봐요. 그 단체의 사무총장님이 저를 재단에 추천해 주셔서 채용 면접을 볼 수 있었고,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리 준비된 선물처럼 적시에 찾아온 기회였군요.


사실 이 자리에 오게 된 계기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제가 이러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고 멋지게 말하고 싶잖아요. 하지만 솔직히 저는 생계를 위한 경제 활동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사명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기아대책에 입사한 것도 처음부터 그곳을 목표로 했다기보다 꿈을 찾는 과정에서 들어가게 된 것이잖아요. 돌이켜 보면 이 자리에 이른 것은 제 의지와 노력의 결과라기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같아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우리가 다 알 수 없잖아요. 당장 몇 달 후 제가 어디에 가 있을지도 알 수 없죠. 하루하루 살아가며 그 순간에 충실히 임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때에 적합하게 사용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는 지인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죠. 꿈을 갖는 것도 중요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요. 그래야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기꺼이 응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인도하심을 따라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단단한 신앙 덕분이겠지요. 부모님으로부터 신앙의 유산을 받으셨다고요.


네, 특별히 어머니로부터요. 제 위로 누나가 있는데요. 아버지께서 아들을 많이 바라셨대요. 그래서 어머니도 아들을 바라며,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처럼 서원기도를 하셨다고 해요. 제가 목회자가 되기를 바라셨지만, 지금은 제가 하는 일을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하세요. 목회 사역 현장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돕는 일에 기여하고 있으니까요. 어머니는 특별히 엄격한 신앙 교육을 하진 않으셨고, 다만 삶으로 몸소 가르쳐 주셨어요. 예를 들면, 타인을 향한 언행과 섬김 같은 것이요. 다른 사람에게 좀 더 좋은 말을 하고 좀 더 좋은 것을 베푸는 것, 이런 소소한 것에서부터 실천하셨죠. 그리고 무엇보다 주일예배와 헌금을 중요하게 여기셨어요. 저희 어머니는 빚을 낸 것조차 십일조를 하셨어요.(웃음) 그저 율법적으로 드리는 헌금이 아니라 일상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헌금이죠.



어머니의 나눔과 섬김의 태도가 팀장님께 고스란히 전해진 것 같네요. 현재 여러 아동을 후원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이름으로 국내 아동 1명, 해외 아동 3명을 후원하고, 제 아이의 이름으로 해외 아동 2명을 후원하고 있어요. 제가 후원하는 아동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어요. 처음으로 만난 국내 결연 아동은 약 6년 동안 후원했는데, 그 아이는 성격이 참 밝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원하는 분야로 대학에 진학했어요. 마침 제가 이전 직장을 퇴사하면서 받은 퇴직금 중 일부를 대학 등록금으로 후원했죠. 그 후 현재 후원하는 아이와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 그때 아이가 여섯 살이었는데, 지금 고2가 되었어요. 힘든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그 아이와 가정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 미약하나마 저의 작은 도움으로 아이가 꿈을 잃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요. 제가 어렸을 때, 정말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후원받을 곳이나 방법을 찾지 못해 힘든 시간을 보냈거든요.



후원 아동들에게 참 애틋한 마음이 들 것 같아요.


맞습니다. 제가 후원하는 해외 아동 3명 중 2명은 올해 각각 만 18세, 만 19세가 되었어요. 참고로, 만 18세가 되면 자립 연령기여서 후원이 종결되는데 필요하면 더 이어 가기도 해요. 두 아이 모두 가정 형편이 어렵지만, 장래에 대한 구체적인 꿈을 키우면서 계속 공부하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현지 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의 장래 희망과 학업을 위해 필요한 재정이 얼마인지 확인했죠. 한 명은 의사, 다른 한 명은 경찰관이 꿈이더라고요. 아이들이 대학 졸업할 때까지 계속 후원하기로 약속했어요. 그래서 매년 등록금 지원을 위해 매월 일정액을 떼어서 모아 두었다가 선물금(정기 후원금 외에 목적성을 둔 추가 지원금-편집자 주)으로 보내고 있어요. 음, 아이들이 저를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그저 아이들이 꿈을 놓치지 않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부모님 덕분에 이렇게 평범하고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있었잖아요.


사실 후원을 시작하는 것보다 지속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텐데요.


저는 단순히 후원금을 낼 뿐이지만 도리어 후원 아동들로부터 많은 걸 받아요. 진심이 담긴 편지와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 저의 작은 액션이 이 아이들의 꿈을 이어 가는 동력이 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제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받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이 이름으로 후원을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아이가 아직은 어리지만, 성장하면서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친구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삶의 소중한 가치를 배우고, 또 부모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답니다. 저는 ‘후원자’라는 말보다 ‘서포터’라는 명칭을 더 선호해요. 우위에 서서 무언가 베푸는 사람이 아니라, 동일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손잡고 같이 걸으며 격려하고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전해지니까요.



결연(結緣), 말 그대로 인연을 맺어 주는 일이잖아요.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인 만큼 여러 사항들을 고려하게 될 텐데요. 결연 시 특정한 기준이 있나요?


후원자분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어요. 후원 대상 아동의 지역, 나이, 성별 등 요건을 미리 말씀해 주시는 유형과 반대로 누구를 연결하든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유형. 요즘은 구체적인 사항들을 미리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아무래도 본인의 거주지에 인접해 있거나, 바라는 나이와 성별에 합당하면 더 친근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가능하면 언급하신 요건에 맞추어 연결을 도와드리죠. 해외의 경우도 우선순위 결연 국가가 있기는 하지만 후원자분께서 적극적으로 특정 국가를 말씀하시면 가능한 그에 따른 매칭을 하고 있어요.



후원 아동들에게 실질적이고도 가시적인 변화가 있을까요?


스리랑카 소년 라히루(Lahiru)의 사연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 같아요. 라히루는 자신의 후원자분을 ‘큰아버지’라고 부를 만큼 깊은 유대감과 친밀감을 느껴요. 14년 동안 편지와 사진을 꾸준히 주고받으며 관계를 다져 온 덕분이죠. 라히루는 후원자분이 보내 주신 선물금으로 코코넛 나무 40그루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무럭무럭 자라났어요. 그리고 지금은 그 열매를 따서 팔아 생활 자금을 마련하고 있어요. 코코넛나무는 라히루에게 중요한 경제적 자산이에요. 후원자분께서 주신 선물금이 시드머니(Seed Money)가 된 거예요.



정말 큰 결실이네요. 해외 아동 결연과 국내 아동 결연에 차이점이 있나요?


“국내에도 열악한 환경에 처한 아동들이 많은데 왜 해외 아동을 도와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누군가를 돕는 이유는 ‘지역’적 문제가 아니라 ‘상황’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국내에는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와 제도가 갖춰져 있잖아요. 하지만 해외에 나가 보면 기본적인 인프라와 체계, 즉 정부 차원의 공적 지원이 부족한 곳이 굉장히 많아요. 교육 시설조차 열악한 곳이 허다하니까요. 제가 시에라리온에 출장 갔을 때 경험한 일인데요. 아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돌이나 깡통을 머리에 이고 학교로 모여들더라고요. 그 돌과 깡통의 쓰임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책걸상을 대신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교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 거죠. 공부할 아이들은 많은데 교육 시설이 없어 나무 밑에서 흙바닥에 글씨를 쓰며 공부해야 하는 곳도 많은 게 현실이에요. 그래서 해외결연아동 후원금은 많은 부분 지역 사회 개발을 위해 쓰여요. 아동 개인에게 지원하면 당장의 효과는 있지만 아동이 사는 지역 사회의 근본적인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으니까요. 예를 들어, 지역 사회에 식수 시설이 부족하면 무슨 문제가 발생할까요? 물을 얻기 위해 멀리까지 이동해야 하거나, 깨끗한 물을 사용하지 못해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겠죠.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지역 사회의 전반적인 여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통합적 지원이 필요한 것이죠.


국내는 아동 복지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중에도 사각지대가 존재하잖아요.


그렇죠. 아동의 정서적 돌봄이 가장 시급한 문제 같아요. 돈으로는 채워 줄 수 없는 영역이죠. 부모에게 안정적인 지도와 돌봄을 받는 아이들이 누리는 크고 작은 영역들이 후원 아동들에게는 결여되어 있어요. 접근하기 쉬운 예로, 진로 지도와 같은 것 말이죠. 어른이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적성과 특기, 관심사 등을 지켜보고 발견해서 아이가 꿈을 품고 나아갈 수 있도록 끌어 주고 지원해 주어야 해요. 물론 진로에 대한 지원이 있기는 하지만 실효성 있게 운영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죠. 그러한 갭을 다 메울 수는 없겠지만 힘닿는 대로 차츰 보완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에 따른 노력의 일환으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는 보호종료아동들을 대상으로 경제적인 지원과 함께 정서적인 지원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답니다.



끝으로 팀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나눔’이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마음과 일상을 ‘함께’하는 것. 그것이 시간이든 편지든, 그 무엇이든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나와 너의 심리적인 접촉면을 점점 넓혀 가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나눔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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