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IMALS AND HEALING
Apache’s Other Life
아파치의 이중생활
Guideposts 2023 | 10
ANIMALS AND HEALING
Guideposts 2023 | 10
Apache’s Other Life
아파치의 이중생활
He left the house every morning and didn’t return until late afternoon.
It was as if he had someplace he needed to be
아파치는 매일 아침 집을 나가 저녁 늦게야 돌아왔다.
가야 할 곳이라도 있는 걸까?
By ANTOINETTE L. OLIVEIRA, Hamden, Connecticut
앤트워넷 L. 올리베라 코네티컷주 햄든
Apache was really my son Scott’s dog. He was a beautiful white, gray and brown large mixed-breed—part Alaskan malamute and part German Shepherd was our best guess. (There weren’t dog DNA tests back in the mid-1980s.) He joined our family immediately after the death of our beloved family dog. One of my friends convinced me that getting a new pet right away would help the children deal with the loss and took 12-year-old Scott and his 11-year-old sister to the animal shelter to pick out a puppy. I wasn’t ready to love another dog, but I went along with the idea for the kids.
I met Apache when I got home from work that day. He was cute but jumpy—always hiding under something and frightened by noise. A few days later, I called the shelter and said I was worried something was wrong with the dog.
“He’s been traumatized,” the adoption coordinator told me. “His mother was hit by a car and killed, and we found him lying on her dead body, whimpering.”
Just what I need, I thought, a dog with emotional problems. I was a single mom working several jobs in order to raise my kids. I didn’t have the time and energy for a disturbed dog, I explained to the coordinator. “I don’t think Apache is the right choice for us,” I said. “You might have arranged a better match.”
“It was your son who was drawn to the dog,” she said. “I didn’t have anything to do with it.”
아파치는 그야말로 내 아들 스콧의 개였다. 아파치는 흰색, 회색, 갈색이 섞인 근사한 잡종 대형견으로 반쯤은 알래스칸 맬러뮤트, 반쯤은 저먼 셰퍼드라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추측이다. (1980년대 중반에는 개 DNA 테스트가 없었다.) 아파치는 우리가 애지중지하던 반려견이 세상을 떠난 직후에 가족이 되었다. 내 친구가 바로 새로운 반려동물을 들이면 아이들이 반려견의 죽음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날 설득했다. 그러고는 열두 살 스콧과 열한 살 스콧의 여동생을 동물 보호소에 데려가 강아지를 고르게 했다. 나는 다른 개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위해 친구의 아이디어를 따랐다.
그날 퇴근하고 아파치를 만났다. 아파치는 귀여웠지만 불안해했다. 늘 무엇인가의 아래에 숨었고 소음에 깜짝 놀랐다. 며칠 후 보호소에 전화해서 개가 무언가 잘못되었을까 봐 걱정스럽다고 전했다.
“그 개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어요. 어미가 차에 치여서 죽었거든요. 우리는 죽은 엄마 위에 누워서 낑낑거리던 강아지를 발견했고요.”
입양 책임자가 말해 주었다.
‘나한테 아주 딱 맞네(반어적 표현-역주). 정서적 문제가 있는 개라니.’
나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여러 일을 하는 싱글맘이었다. 불안에 떠는 개에게 내어 줄 시간과 기력이 없었다. 책임자에게 설명했다.
“아파치는 우리에게 알맞은 선택지가 아닌 것 같네요. 더 잘 맞는 개와 연결해 줄 수도 있었잖아요.”
“그 개에게 끌린 건 댁의 아들이에요. 저는 그 일과 아무 관련이 없어요.”
That evening, I told the kids what the adoption coordinator had told me and strongly suggested we exchange this dog for one who didn’t have issues. “We have to keep Apache!” Scott said. “I overheard them saying he’d be put to sleep tomorrow if no one adopted him.”
He had tears in his eyes. “I’ll train him, Mom, I promise,” he said. “I’ll love him, and he’ll settle down.”
And Scott did it. His love helped Apache feel secure, and he grew into an easygoing dog who liked people. Scott trained Apache so well that the dog would do anything he asked. “Smile, Apache,” Scott would say, and the dog would throw his head back and raise his upper lip, showing his gums and teeth.
We lived in a tiny house on the tiniest street in the quiet south end of Hamden, Connecticut. No one enforced leash laws back then, and Apache loved to run free. He would roam the neighborhood while my kids were at school. He would always be waiting on the front porch when they got home though.
In high school, Scott worked weekends at a Mr. Steak restaurant and didn’t get home until after midnight. No matter the weather, Apache would wait on the porch and not come inside until Scott was back.
Scott graduated and joined the Air Force. I knew that Apache was going to miss him, but I never imagined how deeply. For weeks, the dog wouldn’t come into the house at night. He stayed on the porch, through rainstorms, snowstorms and freezing temperatures, waiting for Scott. He didn’t eat, didn’t drink, even though I put out food and water. Sometimes around midnight he would bark, but it was more of a plaintive wail. I thought he might die of a broken heart.
그날 저녁 아이들에게 입양 책임자가 한 말을 전하면서, 문제가 없는 개와 이 개를 맞바꿔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스콧이 말했다.
“우리는 아파치를 지켜야 해요! 아무도 입양하지 않으면 내일 안락사된다고 말하는 걸 우연히 들었어요.”
아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엄마, 내가 훈련시킬게요. 약속해요. 내가 사랑해 주면 개도 안정될 거예요.”
그리고 스콧은 그렇게 했다. 스콧의 사랑 덕분에 아파치는 안정감을 느꼈고, 사람을 좋아하는 느긋한 개로 자랐다. 스콧이 훈련을 매우 잘 시켜서 스콧이 요구하는 건 무엇이든 했다. 스콧이 “아파치, 미소 지어 봐” 하면 아파치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윗입술을 올리면서 잇몸과 이빨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코네티컷주 햄든의 조용한 남쪽 끄트머리에서 아주 작은 거리의 조그마한 집에 살았다. 당시에는 아무도 ‘목줄법(개 주인의 소유지 밖에서는 개를 매어 두어야 한다는 조례-역주)’을 시행하지 않았기에 아파치는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걸 즐겼다. 아들딸이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집에 돌아올 시간이면 늘 현관에서 기다렸다.
고등학생이 된 스콧은 주말이면 미스터 스테이크 식당에서 일하느라 자정이 지나도록 귀가하지 않았다. 아파치는 날씨가 어떻든 간에 스콧이 돌아올 때까지 집 안에 들어오지 않고 현관에서 기다렸다.
스콧은 학교를 졸업하고 공군에 입대했다. 아파치가 그를 그리워하리라는 건 알았으나, 그 정도일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아파치는 몇 주 동안 밤에도 집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폭풍우에도, 눈보라에도, 혹한의 기온에도 스콧을 기다리며 현관에서 지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내가 먹을 것과 물을 밖에 내주었는데도 그랬다. 가끔 자정쯤에 짖기도 했는데, 구슬픈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녀석이 낙담해서 죽을 것 같았다.
Finally accepting that Scott was not coming home, Apache turned to me for consolation. When I sat on the sofa, he would come to me and put his paw in my lap, looking up at me with pleading eyes, as if to ask, “Please hold me.” I’d say okay and he’d jump onto my lap. Apache was a big dog, but he would cuddle in my arms like a baby. I’d pet him and talk with him until he felt comforted. Or if I found him lying on Scott’s bed, crying, I would climb onto the bed and hold him. This was how Apache became my dog.
At last, after months, he seemed like himself again. He left the house every day at 7:50 A.M., when I left for work. I would get home around 5:30 P.M.to find him waiting for me on the porch—hungry, thirsty and tired but happy to see me. After he ate, drank and napped, I had the pleasure of his company for the evening. When I went to bed, he did too—in Scott’s bed, where he’d slept since he was a puppy. He really seemed to understand whatever I said. If he misbehaved, I would send him up to his room—Scott’s room—and he would go with his head and tail down. He wouldn’t come downstairs again until I gave him permission.
It wasn’t until Apache was six years old, and I was home on temporary disability, that I suspected this dog had another life. I had injured my leg and was on crutches. I looked forward to spending all day with Apache and felt certain that he was going to be overjoyed at spending all day with me. But that was not the case. He still left every day at 7:50 A.M. and didn’t return until late afternoon, around 4 P.M. Where did he go all day? It was a mystery.
스콧이 집에 오지 않는다는 점을 드디어 받아들인 아파치는 위로받으려고 내게 기댔다. 내가 소파에 앉으면 다가와서 내 무릎에 발을 얹고 간청하는 눈으로 올려다보았는데 “안아 주세요” 하고 부탁하는 듯했다. 내가 허락하면 내 무릎 위로 뛰어올랐다. 아파치는 큰 개였지만, 아기처럼 내 품에 쏙 안겼다. 개가 안심할 때까지 쓰다듬으며 말을 걸었다. 혹은 스콧의 침대에 누워서 아파치가 울면 나도 침대에 올라가서 안아 주었다. 그렇게 아파치는 내 개가 되었다.
몇 달 뒤에야 마침내 아파치가 제 모습을 찾은 듯했다. 아파치는 매일 내가 출근하는 오전 7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5시 30분쯤 퇴근하면 현관에서 날 기다리는 아파치를 보았다. 허기지고 갈증 나고 피곤하지만 날 보며 행복해했다. 개가 먹고, 마시고, 낮잠을 자고 나면 나는 같이 저녁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을 누렸다. 내가 잠자리에 들면 아파치도 그랬다. 강아지 때부터 줄곧 자던 스콧의 침대였다. 정말이지 내가 말하는 건 무엇이든 이해하는 것 같았다. 버릇없이 굴면 녀석의 방-스콧의 방-으로 보냈는데, 그러면 머리와 꼬리를 떨구고 갔다. 내가 허락할 때까지는 아래층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아파치가 여섯 살 때 내가 일시적인 장애로 집에서 지내게 되고 나서야 아파치에게 또 다른 생활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나는 다리를 다쳤고 목발을 짚었다. 종일 아파치와 함께하기를 기대하면서 아파치도 나와 종일 지내는 걸 아주 좋아할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아파치는 여전히 매일 아침 7시 50분이면 집을 나서서 거의 4시에 가까운 늦은 오후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종일 어딜 가는 거지? 수수께끼 같은 일이었다.
One afternoon, there was a frantic knocking on the door. It was our mail carrier. “Apache got run over!” she told me, sobbing. Just a few blocks away. I drove over immediately. A police officer wrapped Apache’s limp, unconscious body in a blanket and put him in my back seat. I rushed to the vet’s office. Though they worked on him, his injuries were too severe. Apache died.
I was devastated. I called Scott, stationed in Germany. “I’m so sorry,” I said. “You left Apache in my care, and now he’s dead.”
“He had a good life,” Scott said. “He spent his last day running free, doing what he loved.”
Scott seemed at peace with Apache’s death, but I wasn’t. People started coming by the house. First, the mail carrier. She said Apache met her every day around 11 A.M., 10 blocks from our house, where she parked her truck. She usually delivered the mail on foot because she liked to walk. Apache scampered along and visited with the folks on her route. When it was raining or snowing, she’d drive her route with Apache in the truck, and he’d jump out with her as she went up to put the mail in people’s boxes. There were some elderly people who looked forward to seeing Apache every day. He would run ahead and scratch on the door, waiting for his dog biscuit. When she walked by the neighborhood park, Apache would run back and forth through the grounds as she went from house to house across the street. That was what he was doing the day he got hit. “I feel so guilty,” she said. I told her what Scott had told me.
어느 날 오후,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우체부였다.
“아파치가 차에 치였어요!”
우체부는 흐느끼며 말했다. 고작 몇 블록 떨어진 곳이었다. 나는 당장 차를 몰고 갔다. 경찰관이 아파치의 축 늘어지고 의식이 없는 몸을 담요로 감싸서 내 차 뒷좌석에 놓았다. 동물병원으로 급히 달려갔다. 병원에서 애썼지만 부상이 너무 심각했다. 아파치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독일에 주둔하고 있던 스콧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말 미안하구나. 아파치를 돌봐 달라고 내게 맡겼는데, 이제 세상을 떠났어.”
“아파치는 즐거운 삶을 살았어요. 자유롭게 달리면서 생애 마지막 날을 보냈잖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요.”
스콧은 아파치의 죽음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듯했으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사람들이 집에 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체부였다. 우체부는 아파치가 매일 오전 11시경에 자기를 만났다고 했다. 우리 집에서 10블록 떨어진 거리였고 그녀가 트럭을 주차하는 곳이었다. 우체부는 걷기를 좋아해서 주로 도보로 우편물을 배달했다. 아파치는 종종걸음으로 뛰면서 우체부의 배달 구역에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비나 눈이 오면 우체부는 트럭에 아파치를 태우고 다녔는데, 그녀가 우편함에 우편물을 넣으려고 나서면 아파치도 뛰어내렸다. 매일 아파치를 보기를 학수고대하는 노인들도 있었다. 아파치는 앞서 달려가서 개 비스킷을 기다리며 문을 긁었다. 우체부가 근처 공원을 걸어서 지나면 아파치는 뛰어서 부지를 왔다 갔다 했다. 우체부가 길을 따라 가가호호 다녔기 때문이다. 차에 치인 날도 그랬다.
“죄책감을 많이 느껴요.”
우체부의 말에 나는 스콧의 말을 전해 주었다.
Next came Mr. Raccio, my neighbor. “My wife cried when she heard,” he said. “We will miss Apache’s daily visits so much.” Daily visits? He told me Apache met him every morning at 7:55, when he left the house to buy his morning paper at the corner store. Apache would walk with him. When they returned home, Mr. Raccio would make a pot of tea for his wife, who was disabled, and himself and set down a bowl of milk for Apache. Mr. Raccio read his newspaper while Apache cuddled with Mrs. Raccio, then took a nap at her feet. When Apache woke from his nap—around 9:55 A.M.—he left them. “I always felt he had an appointment,” Mr. Raccio said.
Then a young, athletic-looking man dropped by. “I’m Richard,” he told me. “Apache was my motivator.” For several years, Apache had joined him on his daily 10 A.M. run to Edgerton Park, a mile and a half away on the Hamden–New Haven town line. “There were mornings when I didn’t feel like running, but I would do it anyway because I knew Apache would be waiting,” Richard said. “My runs aren’t as fun anymore.”
I had no idea Apache had had all these friendships and been a blessing to people beyond my children and me. My son was right. Apache had lived a wonderful life. A life full of love—the love he got and the love he gave.
다음에는 이웃에 사는 라쵸 씨가 왔다.
“아내가 소식을 듣고 울었어요. 아파치가 매일 찾아오던 일이 무척 그리울 거예요.”
매일 찾아왔다고? 라쵸 씨는 매일 아침 7시 55분에 아파치를 만났다고 했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조간을 사려고 집을 나서는 때였다. 아파치는 그와 함께 걸었다. 집에 돌아오면 라쵸 씨는 장애가 있는 아내와 자신을 위해 차를 만들고, 아파치를 위해 우유 한 대접을 내어 주었다. 라쵸 씨가 신문을 읽을 때면 아파치는 라쵸 부인에게 바싹 달라붙어 있다가 부인의 발치에서 낮잠을 잤다. 그러다 일어나서는-오전 9시55분 무렵에-두 사람을 떠났다.
“항상 아파치에게 약속이 있는 느낌이었어요.”
라쵸 씨가 말했다.
그다음에는 운동선수처럼 보이는 젊은이가 들렀다.
“리처드라고 해요. 아파치는 제 의욕을 북돋워 주었어요.”
몇 년 동안 아파치는 매일 오전 10시에 에저튼 공원까지 달리는 리처드와 함께했다. 햄든과 뉴헤이븐 경계에서 2.4km 떨어진 곳이었다.
“뛰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 아침도 있었어요. 하지만 어쨌거나 해냈죠. 아파치가 기다리는 걸 알았거든요. 이제는 달리기가 그렇게 재미있지 않네요.”
아파치가 이 모든 우정을 쌓는 줄도, 내 아이들과 나를 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이었는지 몰랐다. 아들의 말이 맞았다. 아파치는 아주 즐거운 삶을 살았다. 아파치가 받고 나눠 준 사랑으로 가득한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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