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물 가운데서도, 불 가운데서도


Guideposts 2023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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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posts 2023 | 11

물 가운데서도, 불 가운데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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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으로 향하는 도로 위, 가슴이 조여 온다. 채근하듯 울리는 맹렬한 사이렌 소리. 도로 위의 차들이 양옆으로 비켜나는 동안 그는 들숨과 날숨, 모든 호흡에 기도를 싣는다. 분초가 긴박하게 흐르는 긴급 출동 상황 속에서 신음처럼 뱉는 외마디 기도는 단 한 번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물과 불 사이로 뛰어들 때마다 쏘아 올린 절박한 기도, 그 끝의 감사. 수원소방서파장119안전센터 박원열 소방관의 7년은 그렇게 더없는 은혜로 채워졌다.





‘나’가 아닌 ‘너’ 나아가서는 ‘우리’를 위한 직업을 택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소방관이 되기로 결심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본래 저는 체육 교사가 되고 싶어서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했어요. 하지만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 여러 면에서 저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이내 꿈을 접었죠. 그래서 한동안 진로에 대한 고민에 골몰해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기숙사 헬스장에서 운동하던 중에 텔레비전에서 소방서를 취재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게 되었어요. 그동안 잘 모르던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지요. 그 후 교회 수련회에 가서 진로와 직업을 두고 기도를 하는데 문득 소방관이 떠오르는 거예요. 하나님이 부어 주신 마음이었겠지요.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위험에 빠진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소방관의 희생과 겹쳐졌어요. 감히 예수님의 사랑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저의 자그마한 도움으로 한 사람의 육신과 영혼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느 직업과는 근무 형태가 다르고 업무 강도도 높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근무 형태는 3조 1교대 체제인데요. 당번, 비번, 비번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하루 꼬박 24시간 근무 후 이틀 연속 쉬는 형태예요.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근무하는 데다 수면 시간이 일정하지 않으니 육체적으로 많이 고단하고 피로해요. 때로 밤에 울리는 출동 벨 소리에 심장 통증을 느끼기도 해요. 늘 긴장 상태로 근무하니까요. 또한 국가적으로 이슈가 되는 상황이나, 관내 대형 화재 발생 시, 비상경보 시에도 출동 대기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죠. 사실 이러한 상황들은 수차례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아요. 매번 처음 겪는 일처럼 긴장되고 두렵죠. 이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충분한 휴식과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회복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현장으로 출동하기 직전, 습관처럼 행하는 자기만의 의식(ritual)이 있나요?


(불안으로) 고조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의식적으로 기도를 해요. 신고 내용만으로는 현장이 어떤 상황인지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감이 상당하거든요. 모든 출동이 긴급하고 저마다 어려움이 있지만, 특히 화재나 교통사고 벨 소리가 들릴 때는 마음가짐이 더 달라요. 그래서 출발하기 직전부터 현장을 향해 가는 내내 기도하며 마음을 다스리죠. 저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과 구조 대상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합니다.



현장에 출동하지 않을 때는 어떤 직무에 임하시는지요?


소방 행정, 화재 예방, 장비 관리와 관련된 여러 업무들을 처리합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불시에 터질지 모르는 재난 상황에 대비해 소방서 차원에서 인명 구조 훈련, 구급 처치 훈련, 화재 진압 

훈련 등 매주 다양한 훈련을 하죠. 저희가 출동하는 곳이 항상 똑같은 현장이 아니라 매번 상황도 다르고 건물 구조와 형태도 다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늘 훈련이 필요하죠. 거기에 더해 건강 관리를 위해서 개인적으로 운동도 하고요. 운동을 하면 직무에 대한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건강해지니까요.(웃음)


‘소방기술경연대회’라는 것도 열리던데요, 어떤 내용으로 진행되나요?


‘현장’에 강한 소방관이 되도록 소방 기술 신장, 역량 강화, 체력 증진 등을 위해 1년에 한 번 실시되는 행사예요. 종합 순위에 반영되는 다섯 개(화재·구조·구급 전술, 최강 소방관, 화재 조사) 종목과 개별 종목 다섯 개(몸짱 소방관, 생활 안전 구조, 소방 드론, 신속 동료 구조, 의용 소방대)가 있어요. 이 열 개 종목에서 실력을 겨루며 경연을 펼치죠. 경기도 내에서 소방서별로 경쟁해 대표를 선발하고, 그 대표 인원이 전국 대회에 나가서 각 시와 도 대표들과 실력을 겨루는 방식으로 진행돼요. 수상한 대원에게는 특별 승진 기회도 주어지고요. 애석하게도 제가 참여한 해에는 지침이 바뀌어서 경쟁이 아닌 추첨으로 대표를 뽑는 바람에 실력 발휘를 못 했네요.(웃음) 그래도 이 대회를 준비하며 동료들과 서로 소통하면서 합을 맞추다 보니 관계가 더 끈끈해졌어요.



동료들과의 유대 관계가 다른 직군보다 더 견고하겠어요.


맞아요. 24시간 붙어 있다 보니 서로의 희로애락을 다 알게 되죠.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관내에서도 사람 사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거든요. 속내를 터놓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족만큼 애틋하고 친밀해지죠. 또 위험한 현장에 나가면 서로를 챙겨야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실제로 저도 동료의 도움으로 위험한 상황에서 목숨을 구했고요.



아찔한 순간이었겠습니다. 어떤 현장에서 일어난 일인가요?


화성소방서에서 근무하던 때 위험에 빠진 적이 두 차례 있었어요. 한 번은 물에 빠져서, 한 번은 건물이 무너져서 목숨을 잃을 뻔했죠. 저수조에 빠진 사건은 3년 차쯤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화재가 난 공장 안 부지에 저수조가 있었는데 화재 진압 중에 빠지고 말았어요. 발이 땅에 닿지 않은 걸로 보아 물이 꽤 깊었던 것 같아요. 풍덩 하고 빠진 직후 잠깐 떠오른 사이에 난간을 붙잡았어요. 저희는 현장 활동 시 2인 1조로 움직이기 때문에 뒤에 있던 동료의 도움으로 살아나올 수 있었죠. 두 번째 사건은 필름 공장 화재 현장에서 일어났어요. 공장 안에 들어가자 순식간에 연소 확대가 되면서 불길이 오르더니 건물이 무너졌어요. 건물이 붕괴될 만한 화재 규모가 아니었는데, 어떤 원인이 작용해서 불길이 확 번졌던 것 같아요. 긴급 대피하라는 무전이 들려오는 중에 철근 구조물이 무너지면서 제가 그 아래 깔리고 말았어요. 무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패닉이 오는 순간이었죠. 그때도 다행히 동료가 저를 구해 주었어요. 저희가 가까스로 빠져나오고 나서 2분 정도 뒤에 건물이 주저앉았고요.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위험하고 긴박한 상황이었어요.



이처럼 위험한 현장에 노출된 직업이다 보니 트라우마나 슬럼프도 클 텐데요. 소방관들의 정서 건강을 위한 지원이나 공식 프로그램이 있나요?


소방서 차원뿐만 아니라 소방본부, 소방청 차원에서도 다양한 심리 상담과 힐링캠프를 지원하고 있어요. 분당 서울대학교 병원과 협력해 경기도소방심리지원단을 운영해 순회 상담 및 교육이 지원되죠. 소방본부에서는 트라우마와 슬럼프를 겪는 직원들을 위해 소방동료상담소, 119마음돌봄차 등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요. 그중 소방동료상담소는 특채로 심리 상담 전공자를 소방관으로 뽑아 상담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저는 소방청 및 본부에서 운영하는 힐링캠프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선배 소방관들에게 마음을 풀어 놓을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롤링페이퍼를 통해 저도 몰랐던 제 모습을 알게 되었는데, 그 시간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교대 근무를 하는 직업 특성상 신앙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텐데요. 어떻게 신앙을 지켜 가시는지요?


가장 큰 어려움은 3주에 한 번씩 주일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이죠. 교회에 갈 수 없는 주일에는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온라인 예배를 드려요. 만약 출동 등의 업무로 인해 온라인 예배조차 드리지 못할 때는 수요일에 드리는 셀 예배에 참석하고요. 셀 예배는 일종의 구역예배와 같아요. 서너 명의 성도가 한 가정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죠. 리더가 주일 예배 설교를 정리한 내용을 나누면, 셀 구성원들이 말씀을 듣고 받은 은혜를 나눕니다. 삶의 이야기도 더불어서요. 셀 예배를 통해 각자의 가정과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과 고민을 털어놓고 서로 위로하고 기도하면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천 소방관으로서 품고 계신 소명 또한 남다를 것 같습니다.


육체와 영혼을 살리는 소방관이 되는 것, 이것이 저의 소명이에요. 생명을 구하는 일은 단지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급박하고 위험한 현장에서 육체와 더불어 영혼까지 살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지금은 제가 있는 자리에서 가까운 사람들부터 돌아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소방서에서 동료들과 함께 24시간 근무를 하다 보면 가정, 직업, 결혼, 자녀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해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교회와 신앙 이야기를 꺼내곤 해요. 한번은 한때 신앙생활을 하다가 코로나19 이후로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저는 그 동료에게 저의 신앙 이야기를 들려주며 저희 교회를 소개하고 자랑했죠. 그 덕분인지 동료의 마음이 열려서 다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어요. 직업과 육아에 대한 고충이 저와 동료를 묶어 주는 공통분모가 되어서 지금도 같이 긴밀히 소통하고 기도하며 지내고 있어요. 직장 동료와 함께 같은 교회에서 예배하고 기도할 수 있으니 참 감사한 일이죠.



소방관으로 일하면서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저의 첫 근무지가 대한민국 화재 출동 1위인 화성소방서였어요. 거기서 뉴스에서 주요하게 보도되거나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사건들을 꽤 겪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대문짝만한 뉴스가 아닌 사소한 순간들에서 보람이 느껴지더라고요. 소방대원들에게 시원한 물과 커피를 건네며 감사 인사를 전하시는 시민들에게서, 화재 진압 후 소방서로 돌아가는 길에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손 흔들어 주는 해맑은 아이들에게서 큰 위로와 감동을 받죠. 불에 그을리고 땀범벅이 되어 꾀죄죄한 모습인데도 저희를 보며 환호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더할 나위 없이 자부심이 솟아요. 제가 다니는 교회가 제 근무지의 관할 구역이어서 교회 선교원 아이들이 견학을 온 적이 있어요. 저희 교회 집사님들, 또는 친한 형이나 누나의 자녀들이라서 더욱 친근하고 애정이 갔죠. 견학 이후 주일에 교회에 갔더니 아이들이 저를 대스타처럼 반겨 주더라고요. 그때 참 뿌듯했어요. 소방관으로 일하는 7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사랑하는 사람과 믿음의 가정을 일구고 또 하나님의 선물로 아들을 낳아 키우고 있는데요, 아이가 자라서 소방관인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 기분 좋은 상상에 잠기곤 합니다. 아들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배우며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깊은 행복과 은혜를 느낀답니다.



귀한 수업을 받고 계신 것 같습니다. 다리 수술로 인해 잠시 쉬어 가는 시기를 보내기도 하셨지요. 휴직 중에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셨나요?


선천적으로 뼈에 관련된 질병을 앓고 있어서 수술을 받고 3개월 동안 병가를 냈어요. 화성소방서에서 근무한 지 4년 차 되던 해였죠. 휴직 기간 동안 지난 4년간의 소방서 생활을 차근히 돌아보았어요. 각종 재난 현장에서 저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묵상하는 시간이었죠. 재난 현장 하나하나를 떠올릴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사무치더라고요. 매 순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감사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죠. 한편으로 저의 상황을 이해하고 또 걱정하며 저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 준 팀원들을 떠올리며 속히 회복하기 위해 열심히 재활에 임했어요.

소방관님의 방화복에는 특별한 말씀이 새겨져 있다고요.


이사야 43장 2절 말씀이에요.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저는 두 가지 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겪었잖아요. 공교롭게도 각 사건이 물과 불에 연관되어 있었고요. 이 일들을 겪고 나니 이사야 43장 2절 말씀이 그야말로 ‘레마(Rhema)’로 다가왔어요.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제 안에 찾아든 공포와 불안 그리고 현장에서 순직한 동료들을 향한 슬픔과 애통을 믿음으로 다스리기 위해 방화복에 말씀을 새겼어요. 방화복을 입을 때마다 어떤 위험한 현장에서도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는 믿음으로 무장하며 출동에 임하고 있습니다.



간절히 품고 있는 기도 제목을 나눠 주세요.


저는 전국의 소방관들의 육신과 정신 건강 그리고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다양한 사고 현장에서 겪는 트라우마, 동료를 잃은 뒤 겪는 정서적인 아픔 등 소방관들은 여러 가지 고통을 감내하고 있거든요. 각종 재난 현장에서 분투하는 전국의 소방관들에게 이사야 43장 2절 말씀이 동일하게 역사하여 모두 순직 사고 없이 안전하게 은퇴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 제 소명이고 기도 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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