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ING STRONGER FAMILIES
In Praise of Praise
칭찬을 칭찬해요
Guideposts 2023 | 11
BUILDING STRONGER FAMILIES
Guideposts 2023 | 11
In Praise of Praise
칭찬을 칭찬해요
A family tradition that started one Thanksgiving many years ago
수년 전 어느 추수감사절에 시작된 우리 집 전통
By JEANETTE LEVELLIE, Paris, Illinois
저넷 레빌리에 일리노이주 패리스
Does your family go around the table at Thanksgiving sharing what they’re grateful for? My family has its own twist on that tradition, and we do it year-round—not just the fourth Thursday of November. It goes back to me losing the spirit of the holiday many years ago.
“This tablecloth will never do,” I’d told my husband, Kevin, as we set the table one Thanksgiving when our kids, Esther and Ron, were young. “It’s got a stain.” Kev said it didn’t matter, that I could cover the stain with my new turkey salt and pepper shakers. “But my parents will be here!” I said. They were coming from out of town, and I wanted everything to be perfect.
Although I’d been out of Mom and Dad’s home and married for more than a decade, I was still trying to prove myself to them as a wife and a mother. Criticisms from my childhood constantly echoed through my mind: “No, that’s not the right way,” Mom would tell me, or “If I want something done right, I’ll just have to do it myself.” Whenever she and Dad visited us, I braced myself for more faultfinding.
I knew I’d lost sight of the reasons for Thanksgiving: celebrating God’s care and provision, showing others how much we appreciate them, spending time with the ones we love. There was just so much to do! That year, like every year, I got bogged down in the long list of details, from cooking to cleaning to decorating. That—along with my perfectionism—stole the joy from our celebration. Until God got my attention as only he could.
여러분은 가족끼리 추수감사절에 감사한 것을 돌아가며 말하는가? 우리 가족은 이 전통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는데, 11월 넷째 주 목요일뿐만 아니라 1년 내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 전통은 오래전 내가 명절 기분을 잃어버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식탁보는 안 되겠어요.”
어느 추수감사절에 식사를 준비하면서 남편 케빈에게 말했다. 우리 아이들 에스더와 론이 어렸을 때였다.
“얼룩이 묻었어요.”
남편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면서 새로 산 칠면조 모양의 소금 후추통으로 가리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친정 부모님이 오시잖아요!”
내가 말했다. 타지에 사는 부모님이 오실 예정이라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었다.
부모님 품을 떠나 결혼한 지 십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부모님께 아내와 엄마로서 나를 증명해 보이려고 애썼다. 어렸을 때 끊임없이 듣던 비판들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엄마는 나에게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돼”라느니 “내가 나서지 않으면 제대로 되는 일이 없구나”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부모님이 우리 집을 방문하실 때면 더 많은 흠을 잡힐 각오를 해야 했다.
내가 추수감사절의 목적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나도 알았다. 그날의 목적은 하나님의 보살핌과 공급하심을 찬양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단지 할 일이 너무 많을 뿐이다! 여느 해와 다름없이 그 해도 요리부터 청소, 장식까지 세부 사항이 적힌 기다란 목록에 발목이 잡혔다. 거기에 내 완벽주의 성향까지 더해져 명절의 즐거움이 싹 달아났다. 하나님께서 그분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내 관심을 끌기 전까지는.
The summer Esther was 12 and Ron was 9, Kevin and I attended a marriage retreat for pastors and their spouses. I found myself leaning forward when the speaker talked about correcting others. “When you criticize someone, tell them in person,” she said. The speaker explained that seeing the kindness in your eyes and hearing the gentle tone of your voice will show your loved one that you want to make the relationship better. Not change them. “But when you have a compliment, put it in writing,” the speaker told us. “Then the person you’re praising can save it to read whenever they feel invisible and unappreciated.” As a mom of tweens and the wife of a busy youth pastor, I knew that feeling well. Did Kevin and our kids ever feel the same way?
On the drive home from the retreat, I thought, I do a lot of correcting, but I don’t know how often I give compliments. Especially in writing. I made a mental note to put this idea into practice at the next Thanksgiving, when there would be just the four of us. I mentioned it to Kev that fall, and he was all for it.
After our tummies were full of turkey, mashed potatoes, seven-layer salad and cherry pie, I put our names in a basket, then handed out pens and blank note cards. “Okay, we’re each going to pick a name and write a message to that person saying what we appreciate about them.” Esther and Ron rolled their eyes practically up to the ceiling. I could tell what they were thinking: Great, another one of Mom’s family-improvement plans.
Kevin told the kids that he and I had agreed beforehand about the Thanksgiving messages. Ignoring Esther and Ron’s sighs and slumped shoulders, I passed around the basket. “God, please make this work,” I whispered. “Or at least let it not be a total failure.”
에스더가 열두 살, 론이 아홉 살이던 여름, 남편과 나는 목사와 배우자를 위한 부부 치유 여행에 참여했다. 연사가 타인의 행동을 바로잡는 것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나도 모르게 귀를 세웠다.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할 때는 직접 이야기하세요.”
그녀가 말했다. 친절한 눈빛과 다정한 말투는 소중한 사람에게 당신이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 줄 거라고 연사는 설명했다.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만 칭찬은 글로 써 보세요. 당신이 칭찬하는 대상은 스스로 보잘것없고 하찮게 느껴질 때마다 그것을 꺼내 볼 수 있으니까요.”
십대 초반의 아이들 엄마이자 바쁜 청소년 사역자의 아내인 나는 그 기분을 잘 알았다. 남편과 아이들도 그 기분을 알까?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잔소리를 너무 많이 해. 하지만 칭찬은 자주 하지 않는 것 같아. 특히 글을 통해서는.’
다음 추수감사절에 우리 네 식구만 있을 때 이를 실천해 보리라 마음에 새겼다. 그해 가을, 남편에게 제안하자 남편이 대찬성이라 했다. 우리는 칠면조, 으깬 감자, 세븐 레이어 샐러드, 그리고 체리 파이로 배를 채웠다. 식사를 마친 뒤 나는 우리 이름이 적힌 카드를 바구니에 넣고 펜과 메모지를 돌렸다.
“자, 이제부터 이름 카드를 하나 고른 다음에 그 사람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적는 거예요.”
에스더와 론은 말 그대로 천장이 닿을 정도로 눈알을 굴렸다.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다.
‘어휴, 엄마 또 시작이군. 그놈의 가족 관계 개선 프로젝트.’
남편이 추수감사절 메시지는 사전에 엄마와 아빠가 동의한 일이라고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나는 에스더와 론의 한숨과 축 처진 어깨를 무시하고 바구니를 돌렸다.
“하나님, 성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적어도 완전한 실패는 되지 않게 해주세요.”
나는 중얼거렸다.
The room was silent as we labored over our notes. After we all finished and exchanged cards, we read the compliments we’d received aloud. I thought Ron’s note, “You are smart,” was too brief, but Esther sat up straighter in her chair after reading what her brother had written about her. And when I read Kev’s declaration, “I am proud of your singing and writing talents,” I fought back a couple tears.
I decided from then on to write more notes to our family. A list of five things I liked about someone tucked into a lunch sack. A note of praise left on a pillow. A card that read, “I miss you already” hidden among the clothes in a suitcase.
The unexpected bonus was the depth of joy I felt while writing those messages. Was it the act of writing? The extra effort it took? Or the tangible expression of gratitude? Whatever the reason, this renewed sense of thankfulness seeped into our family life. Giving thanks became a year-round habit, not just once a year.
Kevin began giving me greeting cards more often, something I’d missed from our dating days. I saved every card, tucking them into a drawer in my nightstand, so I could dip into them whenever I was feeling sad or stressed. Reading that Kev appreciated my constant prayers for our family or my hard work reassured me that I was valued. It even helped me let go of some of that penchant for perfectionism.
I still have a letter tacked to the wall in our bedroom that Kevin had written me during a very hard time in my life: “You will accomplish great things for God. The Lord is holding you close to his heart. Jesus has great plans for your future.” The knowledge that someone—not just anyone but the man who lived with me and knew all of my faults—believed in me was a game changer.
메시지를 적는 동안 방 안은 정적이 흘렀다. 메시지를 다 적은 뒤에 당사자에게 준 다음, 각자 받은 칭찬의 메시지를 큰 소리로 읽었다. 나는 “엄마는 똑똑해요”라고 적은 론의 메시지가 너무 짧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에스더는 동생이 자신에게 쓴 메시지를 읽고 나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당신의 노래 실력과 글 쓰는 재능이 자랑스러워요”라고 쓴 남편의 메시지를 읽을 때는 눈물을 참아야 했다.
그 후로 나는 가족들에게 더 자주 메모를 남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사람의 좋은 점 다섯 가지를 적은 목록을 도시락 가방에 접어 넣었다. 칭찬이 담긴 쪽지를 베개 위에 올려놓았다. “벌써 당신이 보고 싶어요”라고 적은 카드를 여행 가방 속 옷 밑에 숨겨 두기도 했다.
그런 메시지를 쓸 때 느끼는 깊은 즐거움은 예상치 못한 덤이었다. 글 쓰는 행위 그 자체 때문일까? 글을 쓰는 데 들이는 노력 때문일까? 아니면 실체가 있는 감사의 표현 때문일까? 이유가 뭐든 다시 시작된 이 감사의 마음이 우리 가족의 삶에 스며들었다. 감사 메시지를 쓰는 일은 1년에 한 번이 아니라 일 년 내내 이루어지는 행사가 되었다.
남편은 나에게 카드를 더 자주 쓰기 시작했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부터 내가 그리워하던 것이었다. 나는 카드를 전부 모아 침대 협탁 서랍 안에 넣어 두고는 우울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꺼내 읽곤 했다. 가족을 위한 나의 끊임없는 기도, 나의 노력을 알아주는 남편의 카드를 읽으면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심지어 내 완벽주의 성향을 조금은 버릴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인생의 고비를 맞았을 때 남편이 써 준 편지를 지금까지도 침실 벽에 붙여 놓고 있다.
“당신은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들을 이루어 낼 거예요. 주님께서는 당신을 꼭 끌어안고 계세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앞날을 위해 위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죠.”
다른 누구도 아닌 한 집에 같이 살고 내 모든 허물을 알고 있는 남자가 나를 믿는다는 사실이 내게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When Esther went to college 1,500 miles from us, Kevin and I were thrilled to receive a thank-you letter from her that first semester. Our daughter highlighted our generosity, unconditional love and understanding. When Ron moved away after high school, we got a note thanking us for having rules. “I’ve met a lot of people lately whose parents didn’t care what they did,” Ron wrote. “I realize now what a different person I’d be if you hadn’t set some boundaries in our family.” That message made all the conflicts during our kids’ teen years seem worth it.
I branched out beyond our family. “God will never let you go” to a friend whose family was falling apart. “Atta Girl” on the essays and math tests of the motherless student I tutored. Thank-you notes to coworkers and friends. Nothing long or flowery, just simple expressions that showed how much I valued that person.
These days, I send my compliments via email or social media more often than I do with pen and note cards. But I still make a conscious effort to look for, and praise, good qualities in others—a habit that’s made a positive difference in my perspective.
I no longer need to have everything perfect on the Thanksgiving table or at any other time. I’m more interested in how I can help the people around me feel loved and appreciated. Especially in writing. Because the power behind every word is the power of God’s love.
에스더가 2400km 떨어진 대학에 간 첫 학기에 감사 편지를 보냈을 때 남편과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에스더는 우리의 너그러움, 맹목적인 사랑과 이해를 특히 힘주어 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난 론은 집안에 규칙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 감사를 전했다.
“요즘 부모님이 자식에게 무관심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을 많이 봐요. 엄마 아빠가 집안에서 규칙을 정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 거예요.”
론은 이렇게 썼다. 이 편지들은 아이들이 십대였을 때 겪은 모든 갈등이 가치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나는 가족의 테두리 바깥으로 이를 확대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널 놓지 않으실 거야.”
가정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친구에게 이렇게 썼다.
“네가 장하구나!”
내가 개인 지도하는 학생의 에세이와 수학 시험지에는 이렇게 썼다. 엄마가 없는 학생이었다. 직장 동료와 친구들에게도 감사 카드를 썼다. 길고 화려한 내용은 아니었다. 단순한 표현으로 그 사람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전달했다.
요즘에는 펜과 카드보다는 이메일이나 소셜 미디어로 칭찬의 글을 더 자주 보낸다. 하지만 타인에게서 칭찬할 만한 점이나 장점들을 의식적으로 찾으려는 노력은 여전히 하고 있다. 이 습관은 내 시각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이제 추수감사절 식사 준비나 다른 일에서 더는 완벽주의를 추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이 사랑받고 인정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 특히 글을 통해서. 모든 단어가 지닌 힘 뒤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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