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밥공기에 사랑을 담아 따밥, 따봉!


Guideposts 2023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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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posts 2023 | 12

밥공기에 사랑을 담아 따밥, 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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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이 넉넉한 단어에 안도하고 위로받는 사람들이 있다. 가까스로 마련한 한 끼니 식사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 사람들이다. 삼시(三時) 중 한 끼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이들이 ‘마음껏’ 밥그릇을 채울 수 있는 곳, ‘따뜻한밥상’은 그런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복음의 장소다. 단돈 삼천 원으로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 한 냄비에 마음껏 밥을 퍼 담을 수 있는 이곳의 남다른 인심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난 것이다. 밥공기에 예수의 사랑을 담아 전하기 위해 식당을 차렸다는 최운형 목사는 매일 아침, 안수하듯 밥솥에 손바닥을 얹고 밥물을 잡는다. 진심과 전심으로.





미주 한인교회 목회자로 16년을 섬기다 돌연히 식당의 밥상지기로 삶의 방향을 전환하셨습니다. 전환점을 찍기 전과 후의 근원적인 차이점을 말씀해 주세요.


교회를 목회할 당시, 해를 거듭할수록 성도들에게 전하는 설교와 가르침과는 멀어져 가는 내 삶의 행태를 보면서 ‘이게 맞나?’ 하고 자문하곤 했어요. 계속 안락해지려 하고, 사십 대 후반에 노후 설계를 하고 있고…. 어느덧 ‘이건 아니다’라는 답을 얻었죠. 결론을 내리고 나서 곰곰 돌아보니 제가 목사로 안수받을 때 스스로 했던 다짐이 떠오르더라고요. 목회는 딱 20년만 하자. 공교롭게도 제가 전환점을 찍은 시점이 목회한 지 20년째(한국에서의 목회 포함)가 되던 해더라고요. 애초에 들고 있는 게 없었으니 내려놓을 것도 없었죠. 그저 홀가분했어요. 목회하는 동안은 삶이 버라이어티했는데요.(웃음) 그에 비해 지금은 심플해진 내 삶이 참 좋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잠시 앉아 있다가 출근해서 온종일 일하고 저녁에 조금 쉬다가 잠을 자요. 복잡한 생각과 갈등이 끼어들 틈이 줄어든 거예요.



홀가분했다고 하시지만 막상 한국행을 추진하면서 소위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을 것 같은데요.


제가 섬기던 교회의 담임목사 교체 과정을 직접 주도해야 했기에 한동안은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지냈어요. 적어도 석 달 동안은 그랬죠. 그러다가 미국을 떠나기 직전에 제 발목을 붙잡는 한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됐어요. 바로 ‘먹고사는 문제’ 말이에요. 삼천 원짜리 김치찌개 팔아서 먹고는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저는 그때까지 이 문제로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은 먹고살 것이 늘 마련되어 있었으니까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설교하던 저였는데, 그 장벽 앞에서 심각하게 멈칫하는 저 자신이 부끄럽더라고요. 그 무시무시한 현타를 맞은 뒤 한국행을 포기할까 생각하기도 했죠.



그래도 결국은 한국에 들어와 식당을 차리셨어요.


새벽 기도에서 즉답을 받았거든요. 결정을 무를 수 없도록요.(웃음) 사실 제가 좀 간사한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고, 성경대로 살겠다고 결정한 이 길이 어쩌면 위험한 길일 수도 있다, 내가 남을 돕겠다고 나섰는데 혹여 내가 궁핍해져서 밥도 못 먹게 되면 어쩌나, 그래서 누군가 나를 도와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야말로 폐를 끼치는 삶이 아닌가. 그런 생각으로 기도를 하고 있는데 문득 이런 내적 음성이 들려왔어요. “걱정하지 마라. 너는 밥집을 할 거니까 내가 밥은 먹게 해 줄게.” 정말이지 변명의 여지가 없더라고요. 바로 짐 싸서 떠났어요.



목회 경력만으로 식당을 꾸리기에는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그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많이 경험하셨을 것 같습니다.


‘청년밥상문간’을 운영하시는 이문수 신부님의 기사를 SNS에서 보고 또 하나의 밥집을 내겠다고 용기를 냈고,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단돈 삼천 원에 마음껏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을 운영하겠다는 일념 하나 품고 덤볐지만, 사실 식당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었어요. 무엇보다 재정이 충분하지 않았어요. 한국에 도착해서야 식당을 꾸릴 건물과 제가 머물 집 등을 구하기엔 자금이 턱없이 부족한 걸 깨달았으니까요. 그런데 때마침 제가 한국에서 부목사로 섬길 때 같이 성경 공부를 한 성도님들이 저를 찾아오셨어요. 당시 제 수중에 있는 돈이 삼천오백만 원 정도였는데, 세 분을 통해 부족한 삼천만 원을 채울 수 있었지요. 그중 제게 각각 천만 원씩 도움을 주신 부부가 계셨는데, 코로나19 초기에 확진이 되어 일주일 간격으로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이곳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또 기쁨으로 섬겨 주신 그분들의 귀중한 씨앗이 이 가게에 심겨 있죠. 생각해 보니 그 일이 지난 5년 중에 제일 힘든 경험이었어요. 제가 식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길이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 혼란스러워할 때 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총장이자 저의 은사이신 서정운 목사님께서 제게 해 주신 말씀이 있어요. “이 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고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최 목사에게 순조로움을 선물해 주실 것이다.” 그 말씀을 증명하듯 성도님들의 재정 지원과 응원 덕분에 식당을 꾸리는 일이 순조롭게 풀렸지요.


‘청년밥상문간’에서 ‘따뜻한밥상’으로 이름을 바꾼 계기가 있나요?


처음에는 ‘청년밥상문간’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형제 식당으로 시작했죠. 그런데 식당을 오픈한 지 1년 반 정도 지났을 무렵 이 식당을 운영하고 싶다는 목사님이 찾아오셨어요. 이 문제를 청년밥상문간 측과 의논하던 중, 이번 기회에 우리가 새로운 이름으로 자체적인 길을 가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져서 이름을 바꾸게 되었죠. 전에 한 청년이 ‘청년밥상문간’이라는 단어가 어르신들의 발길을 막을 수 있다는 의견을 주었고, 서정운 목사님도 처음 식당에 오셨을 때 “야, 나 같은 노인네는 못 오겠다” 하신 게 마음에 걸려 사실 식당 이름을 바꾸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이 일을 계기로 새로운 이름을 짓게 되었어요. 서정운 목사님이 제 부탁을 받고 새로 지어 주신 이름이 바로 ‘따뜻한밥상’입니다. 처음 받았을 때는 참 소박한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자원봉사자분들에게 새 이름을 공개하자 한 분이 단박에 이렇게 외치시더라고요. “따밥이다, 따밥!” 그 뒤로 저희 식당의 캐치프레이즈가 “따밥, 따봉!”이 되었어요. 따뜻한 밥상, 따뜻한 봉사자란 의미죠.



포근하고 정감 있는 이름입니다. ‘따밥’의 로고에서도 따스함이 묻어나는데요.


사연 있는 로고죠. 어느 날 키가 크고 말끔한 분이 식당을 찾아오셨어요. 저는 손님을 보면 우리 밥집이 필요해서 오신 분인지 아니면 식당이 궁금해서 한번 둘러보러 오신 분인지 대략 구분이 돼요. 그런데 그분은 후자인 것 같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식사를 마친 뒤 제게 와서 대화를 청하더군요. 본인은 붓으로 글씨를 쓰는 사람인데 혹시 도울 일이 필요하면 이야기해 달라는 것이었어요. 때마침 새로운 이름에 대한 디자인이 필요하던 터라 망설일 것도 없이 로고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죠. 그분이 수십 개를 정성스레 써서 보내 주셨고, 그중에서 하나를 골라 ‘따밥’의 로고로 결정했어요. 알고 보니 그분이 유명한 서예가이자 문자 예술가인 최일섭 작가(빛글 캘리그라피 대표)더라고요.



선한 나눔으로 로고조차 순조롭게 탄생했군요! 그러나 오늘의 ‘따밥’이 있기까지 오랜 기간 적자를 면하지 못하셨다고요.


‘청년밥상문간’으로 식당을 시작한 뒤 1년 6개월가량 영업 적자가 이어졌어요. 시간이 갈수록 빚이 쌓여 갔죠. 그러던 중에 〈국민일보〉에 기사가 실린 덕분에 후원을 받아 단번에 빚을 갚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후로도 빚을 져야만 했죠. 근본적인 적자가 해결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후원의 통로가 열렸어요. 김상숙 권사님이 주도하는 홀리네이션스 선교회에서 꽤 큰 액수로 저희 식당을 끌어 주신 덕분에 적자 상황에서도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었죠. 그리고 여러 개인 후원자들의 지원도 적자 가운데 버티고 올 수 있는 큰 힘이 되었고요.



연신내에서 시작된 ‘따밥’이 어느덧 13호점에 이르렀습니다. 어떤 분들이 식당을 운영하시는지요?


13개의 따밥 중 11개 따밥은 목회자들이 운영하지만, 나머지 두 곳인 11호점 부산은 장로님, 문산 12호점은 집사님이 운영합니다. 얼마 전 문산에 오픈한 12호점을 운영하는 김수열 집사님은 낮에는 학원 강사로 일하고 밤에는 식당을 운영하세요. 원래 식당을 운영하던 누나가 매형을 병간호하느라 1년 동안 가게 영업을 중단하자, 발벗고 나선 거죠. 이처럼 ‘따밥’의 취지에 동감하고 동참하기 원하는 마음이 간절한 분들이 각 분점을 이끌어 가고 있어요. 새로 식당을 오픈하는 목사님께 저는 이렇게 말해요. “2년 동안 망하지 말고 잘 버티세요. 2년 뒤에는 어떻게든 자리를 잡고, 길이 보이고, 돕는 손길들이 생겨나고 나아질 겁니다.” 이건 제 경험이기도 하잖아요. 제가 걸어간 길을 보고 따라오는 분들이 있으니 좋은 모델을 만들어야죠.

목사님께서 직접 대구 지역에 14호점을 준비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고요. 저희 부모님이 미국에 계시다 지난봄에 한국에 돌아와 경북 성주에서 지내고 계시거든요. 두 분 모두 연로하셔서 장남인 제가 곁을 자주 지켜야 하는 상황인지라 차라리 대구로 내려가서 ‘따밥’을 오픈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상황이 여의치 않아 고민이 많죠. 그런데 얼마 전 어릴 때 같이 신앙생활 하던 교회의 형으로부터 거의 40년 만에 연락이 왔는데, 대구에 있는 본인 건물에 ‘따밥’을 오픈하고 싶으니 네가 와서 그 일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왔어요. 무엇보다 임대료를 받지 않고 공간을 내주겠다는 거예요. 그 형은 제가 대구에 ‘따밥’ 오픈을 고려하고 있다는 걸 알 턱이 없어요. 이것 또한 하나님이 강력하게 인도하시는 일인가 싶은 마음에 기도 중에 있습니다. 어쩌면 연초에 대구에 14번째 ‘따밥’이 생길 수도 있겠어요. 



벌써 만 5년째 ‘말씀’이 아닌 ‘밥’을 전하는 목사로 살고 계시잖아요. 말씀과 밥, 목회와 요리의 같고도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사람을 먹여 살린다는 것과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 같죠. 저는 설교도 무척 즐겁게 했거든요. 귀한 시간 내서 예배드리러 온 성도들을 생각하며 정성껏 준비했죠. 이처럼 밥도 정성껏 지어요. 식당에 오신 분들이 맛있게 드시고 가게 하려고 애를 많이 쓰죠.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어요. 설교보다 밥에 대한 반응이 더 정직하더라고요. 성도들은 웬만하면 설교 듣고 은혜받았다고 말하는데 식당 손님들은 반응이 아주 솔직하죠. 맛있으면 다 먹고 맛없으면 남기거든요. 초기에는 요리 실력이 부족해서 솔직히 제 김치찌개가 맛이 없었어요. 어느 날 한 손님이 이 말을 툭 뱉고 가시더라고요. “아무리 삼천 원짜리여도 그렇지.” 상처를 받았죠.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자다가 깨서 기도할 정도였어요. “주님, 찌개를 맛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편으로는 그런 제가 너무 우스웠죠. 목회하는 동안 자다가 깨서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 적이 있나 싶더군요. 그 후 미국에 가서 설교할 때 성도들께 사과했어요. 목회하는 동안 자다가 깨서 기도하지 못한 걸 용서해 달라고.(웃음)



본래 식당을 하고 싶은 이유가 궁극적으로는 ‘소통’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손님들과 종종 교제를 나누시는지요?


처음에는 손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 시간이 좋았죠.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몸이 고단해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영업을 마감해야 할 시간에도 저와 대화를 하겠다고 몇 명씩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소통의 방식을 ‘밥’으로 바꿨어요. 목사일 때는 성도들의 ‘아멘’ 소리가 듣기 좋았다면, 이제는 손님들이 남은 밥과 찌개를 먹기 위해 밥그릇과 냄비를 긁는 소리가 노래처럼 들려요. 그 소리야말로 맛있게 먹었다고 화답하는 목소리니까요.



‘따밥’이 굶주리는 이웃뿐만 아니라 목사님 개인의 삶에 끼치는 선한 영향력은 무엇일까요?


‘기쁨’이 무엇인지 배우게 됐죠. 사실 식당 일이 참 힘들어요. 누군가에게 밥을 지어 주는 노동이 무척 고되거든요. 칼질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물가가 치솟는 지금도 여전히 밥값을 삼천 원으로 고수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님들에게 비좁고 지저분하고 허접한 공간과 음식을 제공해서는 안 되잖아요. 넓고 깨끗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식사할 수 있도록 정성껏 준비해야 하죠. 따지고 보면 힘들고 재미도 없는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 참 기뻐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기쁨이에요. 

한편으로는 신학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소망하고 추구하는 ‘하나님 나라’가 사회경제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함께 잘사는 나라, 밥상이 평등한 나라가 곧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 가난하고 배고프고 힘든 사람이 이 식당에 와서 식사를 하고 몸과 마음이 따뜻해져서 돌아갔다면, 이 밥집으로 그분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 아니겠어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처럼, 한 사람을 잘 먹이면 되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제가 설교하고 가르치는 하나님 나라에 조금은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따밥’을 통해 이루고 싶은 소망, 기도 제목을 말씀해 주세요.


그저 ‘따밥’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어떤 청년이 그러더라고요. “연신내는 따밥 보유 지역”이라고. 앞으로 ‘따밥’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또 한편으로는 역설적이지만 ‘따밥’이 필요 없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해요. 요즘 아주 바빠요. 손님이 많거든요. 그래서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점점 많아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따밥’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쨌든 우리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거예요.



끝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아 ‘따밥’에서 진행하는 이벤트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연신내점에서는 성탄 전야 음악회를 해요. 홍제동 따밥과 그들이 협력하는 특별한 카페 팀과 함께 준비해요. 손님들에게 미리 전단지를 드려 홍보를 하고, 자원봉사자분들도 함께 자리해요. 올해도 따스한 온기로 그 시간을 가득 채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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