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CE IN A LIFETIME

Dad’s 54 Dreams

아빠의 꿈이 내게로


Guideposts 2024 | 1


ONCE IN A LIFE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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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d’s 54 Dreams

아빠의 꿈이 내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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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 never completed his bucket list. Now I wanted to do it for him

아버지는 한 번도 당신의 버킷리스트를 완성한 적이 없다. 

이제 내가 아버지를 대신해 완성하고 싶다.


By LAURA CARNEY,  

Montclair, New Jersey

로라 카니  뉴저지주 몬트클레어





My brother told me there was something I needed to see. I had no idea on that day six years ago that my whole life was about to change. Dave handed me three creased pages scrawled with familiar handwriting—our dad’s—titled “Things I would like to do in my lifetime!” Dad had died in a car crash 13 years earlier. Dave said he’d found the list in a small pouch when he was moving into his new house.

There wasn’t a date on the list, but my mother later told me my dad wrote it in 1978. The year I was born. Dad was just 29 then. My eyes flew down the list of 60 items. Dad had checked off a few—“be interviewed on the radio,” “do a comedy monologue in a night club,” “own a great record collection,” “help my parents enjoy their retirement” and “see a World Series game live”—but there were 54 more items to go. My father’s unmet dreams.

My husband, Steven, looked at the list and said what I was thinking: “You have to finish this.” I wanted to embark on this grand adventure, but I had no idea how I’d accomplish the dozens of unchecked items. It was the opposite of what I’d expected to focus on at this stage: buying a house, having kids, growing my career in magazine publishing.

Dad had sold advertising, but he was also brilliant and creative—a writer and a singer. A lot of the things that people assumed fathers did, Dad did not do. He switched from job to job, car to car, home to home—even girlfriend to girlfriend after he and Mom divorced when I was six. I was embarrassed by how Dad couldn’t settle down, how he seemed professionally unfulfilled. At a young age, I determined my life would be different—stable, secure, defined by a steady rise up the career ladder.

Now God seemed to be giving me a glimpse of the man Dad had been before disappointment left its mark. Although my dad and I had been close, I hadn’t known this version of him. Was the list a chance to know him better? I felt compelled to find out.


남동생이 나에게 꼭 봐야 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6년 전 그날, 나는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줄 전혀 몰랐다. 데이브가 익숙한 필기체로 휘갈기듯 쓰여 있는 구겨진 종이 세 장을 건넸다. 아버지의 글씨체였다. 제목은 ‘살면서 꼭 해 보고 싶은 일!’이었다. 아버지는 자동차 사고로 13년 전에 돌아가셨다.

데이브는 새집으로 이사하던 중, 작은 주머니 안에서 그 목록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종이에는 날짜가 적혀 있지 않았지만, 나중에 어머니가 말하길 1978년에 아버지가 적은 것이라고 했다. 내가 태어난 해였다. 당시 아버지는 겨우 스물아홉이었다. 내 눈은 60개의 목록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라디오 인터뷰하기’ ‘나이트클럽에서 1인 코미디 공연’ ‘명작 레코드판 수집하기’ ‘부모님이 은퇴 생활을 즐기도록 돕기’ ‘월드시리즈 게임 생방송으로 보기’같이 몇 가지는 이미 체크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54개가 더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들.

남편 스티븐은 목록을 보더니 내가 생각한 바로 그것을 말했다.

“당신이 마무리 지어야겠네.”

이 거대한 모험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수십 개나 되는 나머지 항목을 어떻게 이뤄 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것은 집을 사고, 아이를 갖고, 잡지 출판계에서 경력을 쌓기와 같이 당장 집중해야 할 것으로 여기던 것과 전혀 달랐다.

아버지는 광고업에 종사했는데, 명석하고 창의적이어서 작가이자 가수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보통의 아버지라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버지는 하지 않았다. 직업도 차도 자주 바꾸고, 집도 자주 바꾸었으며, 내가 여섯 살 때 엄마와 이혼한 이후 여자친구까지도 자주 바꾸었다. 나는 아버지가 정착도 못하고, 직업적으로 성취하지도 못한 모습이 부끄러웠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정착하고, 안정되며, 차곡차곡 사다리를 밟아 올라가는,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실망이 큰 영향을 미치기 전에, 아버지라는 사람을 이해해 볼 기회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 같다. 아버지와 나는 가까웠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이 리스트가 아버지를 더 잘 알게 되는 기회가 될까? 나는 꼭 알아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I was amazed that in my first year of list-checking I completed 14 items, things such as “run 10 miles straight,” “swim the width of a river,” “skydive at least once,” “ride a horse fast” and “surf in the Pacific Ocean.” These tasks mostly required courage, along with a pinch of athletic prowess. I even managed to “talk with the president.” I’d learned that President Jimmy Carter—who had been in office when my dad wrote his list—still taught Sunday school at his hometown church in Plains, Georgia. Steven and I went to Plains one weekend, sat in on the Sunday school class and spoke to President Carter briefly afterward.

It was item number 48, “grow a watermelon,” that threatened to derail the whole mission. The only plant I’d ever kept alive was a lucky bamboo plant on my desk at work, and that was only because bamboo requires almost no maintenance.

At Home Depot, Steven helped me choose potting soil, a blue bucket and a tomato cage, for trellising watermelon vines. The watermelon seeds I bought were for a variety called sugar babies; they’d grow no larger than a bowling ball. One day in late June, I planted the seeds in the bucket, which we set on our tar-roofed fire escape since we didn’t have a yard. I named each seed after a member of my family, then prayed: Small may be my garden space, but great the prayer I pray: May every seed that’s planted here bring beauty to the day.


그 리스트를 실천하기 시작한 첫해에 내가 14개나 완수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이런 것들이었다. ‘10마일을 쉬지 않고 뛰기’ ‘수영해서 강 건너기’ ‘최소 한 번 스카이다이빙 해 보기’ ‘빠르게 말 타 보기’ ‘태평양에서 서핑하기’. 대부분 운동신경이 좀 있고 용기가 필요한 것들이었다. 나는 심지어 ‘대통령과 이야기해 보기’ 목록도 해냈다. 아버지가 그 목록을 작성한 시기에 재임한 지미 카터 대통령이 아직도 자신의 고향인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한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주일에 플레인스를 찾아가 주일학교 수업에 참여하고 나서 카터 대통령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48번이던 ‘수박 키우기’는 내 계획을 모두 무산시킬 만큼 위협적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살린 식물은 사무실 책상에 있던 운 좋은 대나무 화분이었다. 대나무는 크게 관리를 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홈디포(미국 대형 공구매장-역주)에 가서 스티븐이 화분용 흙, 파란색 양동이, 수박 덩굴이 타고 올라갈 토마토 지지대 고르는 일을 도와주었다. 내가 구매한 수박씨는 슈거 베이비라는 품종이었는데, 볼링공보다 크게 자라지 않는 품종이었다. 나는 6월 말에 그 씨앗을 양동이에 심었다. 집에 마당이 없어서 타르가 발린 지붕의 비상탈출구 위에 두었다. 나는 씨앗마다 우리 가족의 이름을 따서 똑같이 지어 주고, 기도드렸다. 나의 정원은 비록 작았지만, 나의 기도는 위대했다.

‘제가 이곳에 심은 씨앗이 모두 아름다운 결실을 보게 하소서.’


Around that time, I got laid off from my magazine job. I decided I’d take the risky step of becoming a full-time writer (item 3 on the list) and work on a book about fulfilling Dad’s goals. Because I feared being labeled an ineffectual dreamer, as my dad had been, I resolved to finish the first 100 pages by the time my watermelon fruited, in about three months. My story would grow like the seeds in that blue bucket.

I’d never had to do anything that required as much waiting and watching and wondering as item 48. But I was finding that, in its own way, each list item brought me back in touch with my father’s spirit. Growing a watermelon reminded me of Dad’s gift for being present. All I could do was water the seeds. I needed to let go and let God take care of the rest. Would I be able to?

Two weeks in, I found myself wishing I’d planted the seeds in a glass container. At least then I would be able to see their progress. One day, as I struggled to write a single paragraph, something told me to check the bucket. The seed named after me had sprouted, followed shortly by the one named after my brother. A few days later, the two sprouts vined, forming new and broader leaves. Then the third seed sprouted, the one named after my mom. A white feather marked the spot for my dad’s seed, and I waited anxiously. I came home from an overnight trip to find that my dad’s seed had sprouted too!


그즈음 나는 다니던 잡지사에서 해고되었다. 나는 전업작가 되기(버킷리스트 3번 항목)와 아버지의 목표를 이뤄 내는 과정을 책으로 내기라는 모험적인 결정을 내렸다. 왜냐하면 아버지처럼 능력 없는 몽상가라는 이름표가 붙을까 두려웠기에, 첫 번째 수박이 결실을 맺을 때까지 3개월 안에, 100페이지를 쓰기로 결심했다. 나의 이야기는 그 파란색 양동이 속 씨앗처럼 자라날 것이다.

살면서 48번 항목처럼 그렇게 오래 기다리고 관찰하고 궁금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각각의 항목이,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아버지의 영혼과 만나게 해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박을 기르면서, 어떤 일에 온전히 정신을 쏟던 아버지의 재능이 떠올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씨앗에 물 주기뿐이었다. 나는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나머지를 돌봐주시길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가능할까?

2주가 지나자, 씨앗을 투명한 통에 심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그러면 적어도 씨앗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단 한 문단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양동이를 확인해 보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을 딴 씨앗의 새싹이 돋아 있었고, 얼마 안 되어 남동생의 이름을 딴 씨앗이 자라 있었다. 며칠 후, 그 두 새싹이 넝쿨을 이루더니 더 넓은 잎이 새롭게 자랐다. 그런 다음 세 번째 씨앗인, 엄마 이름을 딴 싹이 자랐다. 흰 깃털로 표시해 둔 아버지의 씨앗이 자라길 간절하게 기다렸다. 하룻밤 여행을 다녀오자 아버지의 씨앗도 자라 있었다!


The following week, the sprouts flowered—tiny yellow blossoms. I remembered John Denver’s “Garden Song,” which my dad used to sing to me when I was a little girl: “Inch by inch, row by row / Someone bless the seeds I sow.” I prayed for my flowers to fruit. One morning as I walked out the door, a monarch butterfly flitted alongside me, as if taking a stroll. When I returned home that night, the watermelon named after me had fruited. It was the anniversary of my dad’s death.

My fruit slowly shifted from a tiny oblong to the size of a golf ball. I named her Audrey II, after the plant in the movie Little Shop of Horrors. As she grew, so did my book. By September, Audrey II had turned into a heart. But she was still only golf ball–size.

I cut Audrey free on the night Steven and I left for my next list item: “visit London.” She fit into the palm of my hand, a pocket-size snack for the trip to the airport. I cried a little after I cut her open and ate her, but then I laughed. “I’m grieving over a watermelon!” I said to Steven.

I never thought I would be able to be present and patient enough to grow a watermelon, much less write a whole book. But it turned out that I could do both. By the start of this year, I’d checked off every item on Dad’s list and gotten a publishing contract.

I’d also gotten a fuller understanding of, and appreciation for, my father. Dad lived freely, not bound by material status as most people are. He dared to have dreams, wrote them down and tried to live them out. I believe his list was meant for me, a God-given opportunity to discover more about my dad and myself. Inch by inch, row by row, item by item, I did.


그다음 주, 새싹이 꽃을 피웠다. 아주 작은 노란 꽃이었다. 존 덴버의 ‘가든 송’이 생각났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내게 한 번씩 불러 주던 노래다.

“조금씩, 한 줄씩, 누군가 내가 심은 씨앗을 축복해 주네.”

나는 꽃들이 열매를 맺게 해달라고 기도드렸다. 어느 날 아침, 문을 열고 나섰는데, 제왕나비 한 마리가 마치 함께 산책하듯, 내 옆에서 날갯짓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왔을 때, 내 이름을 딴 수박이 열매를 맺었다. 그날은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그 수박은 아주 작은 타원형에서 골프공 사이즈로 천천히 자라났다. 나는 그 수박에게 영화 〈흡혈식물 대소동(Little Shop of Horrors)〉에 나오는 식물의 이름을 따 오드리 2세라고 지어 주었다. 수박이 자라면서, 내 책도 점차 완성되었다. 9월쯤, 오드리 2세는 하트 모양으로 자랐다. 그러나 여전히 골프공 크기였다.

스티브와 내가 다음 버킷리스트인 ‘런던 가 보기’를 위해 출발하던 날 밤 나는 오드리를 잘라 주었다.

로드리는 내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공항 가는 길에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작은 사이즈의 간식이 되었다. 나는 수박을 잘라 먹은 후에 조금 울었지만, 다시 웃었다.

“내가 수박까지 애도하네!” 

스티븐에게 말했다.

책은 당연하고, 내가 수박을 기를 만큼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고 인내심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었다. 올해 초, 아버지의 버킷리스트 전체를 이루었고 출판 계약도 맺었다.

또한 아버지를 훨씬 더 많이 알게 되었고, 그래서 감사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처럼 물질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았다. 그는 과감하게 꿈을 꾸었고, 그것을 글자로 적고, 그대로 살아 냈다. 나는 아버지의 버킷리스트가 나를 위한 것이며, 나 자신과 아버지를 더 잘 알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라고 생각한다. 조금씩, 한 줄씩, 한 개씩, 나는 이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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