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세요
Guideposts 2024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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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세요
오늘을 살지 못하는 날이 있다. 어제에 붙들린 채 지난 일을 되짚거나, 오지도 않은 내일로 달음질치느라 지금, 여기를 놓치고 만다. 히얼, 나우 성장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오늘’에 발붙이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북돋워 주는 곳이다. 하현 연구소장은 저마다 다른 보폭으로 성장하는 아이들과 그들의 보호자들과 함께 지금, 여기의 소중한 의미를 발견해 나간다. 천하보다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천천히 한 발씩. 더디더라도 함께 나아가는 걸음, 그 자체가 성장의 여정이기에 오늘도 그는 한 존재 한 존재를 보듬어 안는다.
히얼, 나우. 어떤 의미를 심어 지은 이름인가요?
삶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잖아요. 스쳐 지나가는 소중한 순간들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의미를 담아 지었어요. 그동안 많은 수업을 통해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목도하고 또 보호자들의 진심 어린 마음을 경험하면서 ‘성장’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생겼어요. 지금 여기의 순간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것도요. 성장연구소를 준비하기까지 많은 임상 경험을 쌓으면서 깨달았어요. 한 아이의 성장과 발달은 누구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그런 의미에서 교사, 아동, 보호자 모두가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지요. 저희 연구소의 목표는 대한민국 최고, 우주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한 아이 한 아이에게 최고, 보호자 한 분 한 분께 최고의 기관이 되어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최고의 수업과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죠. 곧 전문성을 가지고 동행하는 것, 그것이 저희 연구소의 목표이자 방향성입니다.
어느덧 창업 4년 차가 되었어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 마음이 드세요?
감사하죠. 만나교회에서 진행한 ‘MCLC 청년창업프로젝트’ 3기로 선발되어 재정적인 후원은 물론 멘토님들의 가이드를 받아 연구소를 창업하고 운영할 수 있었으니까요. 첫 1년은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사업장을 운영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어요. 부모님 아래에 있다가 독립해 1인 가구를 꾸리는 그런 기분을 느꼈다고 할까요. 좀 더 폭넓은 시각으로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야만 했어요. 세세히 하나하나 준비하는 과정 가운데 운영자의 고충들을 실감할 수 있었죠. 첫해에 통과한 어려움들이 노하우가 되어 2년 차, 3년 차의 밑거름이 되었어요. 덕분에 저희 연구소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본래 아동 관련 기관에서 치료사로 일하다가 창업을 구상하셨어요. 진로를 선택할 당시 이 길에 들어서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처음에는 어떤 비전을 품고 들어선 길이 아니었어요. 보건직이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직종이라고 생각되어 작업치료와 특수교육을 공부했죠. 단순한 이유로 이 분야를 선택했지만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세심한 인도가 있었어요. 제 직업이 치료사이기 때문에 사실 병원 근무를 희망했어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길이 다 막히더라고요. 주변에서 다들 의아해했어요. 제 성적이나 실력이 부족하지는 않았거든요.(웃음) 그러던 중에 우연히 장애 전문 어린이집의 치료실 채용 공고를 보았어요. 그곳에 입사해서 5년 동안 근무하다가 대학원 논문을 준비하느라 퇴사했는데, 이후 재입사를 해서 2년을 더 다녔어요. 재입사 기간 포함 총 7년을 근무했으니 길지 않은 시간이잖아요. 그만큼 저에게 그 일이 잘 맞았고 보람도 컸어요.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으니까요. 산만함을 조절하고 싶지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 친구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은데 관계 조절이 어려운 친구들, 정작 자신의 마음을 몰라 왜곡된 행동으로 표현하는 친구들 그리고 그 곁에서 함께 아파하는 보호자들…. 임상에서 보여지는 것들이 눈을 통해 머리로, 마음으로 스며들었죠. 단순히 직업으로 시작한 이 일이 이제는 비전이자 사명으로 변화된 거예요.
아이들을 품는 환경으로 이끄신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군요.
사실 갓 대학생이 된 스무 살부터 주일학교 교사로 섬겨 왔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교회에서 아이들을 만났고, 또 해외 선교도 무척 많이 나갔어요. 교회 안에서 여러 행사들을 기획하고 준비한 경험들이 큰 자산이 되었죠.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활동해 온 지난날의 경험이 지금 이 일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은혜다 싶어요. 매 순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지고 인도해 주시는 것 같아요.
치료사로 일하던 과거와 창업 후 연구소장으로 일하는 지금의 차이가 있나요?
‘책임’의 차이가 커요. 단순히 책임의 크고 작음의 차원이 아니라, 책임에 대한 ‘영역’의 차이 말이죠. 한 기관의 책임자가 되어 보니 제가 만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의 아이들과 보호자 그리고 선생님들을 알고 관리해야 해요.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선생님을 붙여 주기 위해서죠. 또 기관의 방향성 등을 설정하는 등 책임지고 이끌어 나가야 할 영역이 참 많더라고요. 여러 영역을 책임지고 이끌고 갈 수 있는 것은 저희 연구소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보호자, 함께 연구하며 나아가는 선생님들과 협력하고 호흡을 맞추기 때문이에요. 함께 합을 잘 맞춰 갈 때 감사와 보람이 더욱 배가되죠.
‘느린 학습자’의 성장을 돕는 기관인 동시에 그들의 ‘보호자’를 더불어 살피는 기관이라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창업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시한 부분이 ‘가치관’이었어요. ‘한 아이, 한 가정을 더욱 잘 살게 하는 동행’이라는 모토를 세웠죠. 그러한 이유로 다른 아동발달센터와 달리 아이뿐만 아니라 ‘보호자’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요. 사회적으로 보면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많은데 정작 보호자를 위한 프로그램은 제한적이거든요. 보호자들은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어려움도 감내하고 기꺼이 희생하지만, 정작 본인을 위해서는 시간과 재정을 여유롭게 사용하지 못해요. 그런 의미에서 보호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소소하게나마 진행하고 있어요. 매주 비슷한 루틴으로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 아이를 돌보다 보면 다소 지칠 수 있거든요. 그럴 때 연구소에서 제공하는 소소한 이벤트가 보호자들의 정서적 환기를 돕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가족의 장점 적기’ 미션에 참여하면 기프티콘을 제공한다든지, 아이와 함께 등산을 다녀온 뒤 인증하면 수업료를 할인해 준다든지(등산은 육체적·정서적으로 이로운 점이 많아요), 원데이 힐링 프로그램(감정 아로마 등)도 진행하고요. 또한 연구소 내에 안마의자를 구비해 보호자와 선생님들이 휴식을 취하실 수 있도록 했어요. 이 중에서 수업료 할인 이벤트가 가장 호응이 커요.(웃음) 이곳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기관에서도 여타의 치료를 병행하기 때문에 수업료 부담이 크거든요. 그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릴 수 있어 보람 있죠.
히얼, 나우 성장연구소만의 특별한 점이군요. 보호자들의 변화를 체감하시나요?
그럼요. 보호자분들의 변화는 항상 실감해요. 아이가 수업을 통해 성장하고 나아지는 것을 보며 안 좋아하는 보호자는 없죠. 보호자분들 안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를 옆에서 같이 경험해요. 물론 수업의 피드백이 항상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지도를 받으며 서서히 나아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보호자분들은 기대가 생기고 위로를 받죠. 그래서인지 저희 성장연구소를 다녀간 친구들은 하나같이 전부 특별하고 기억에 남아요. 처음에는 어려움을 가지고 만났지만, 점차 바르게 성장해 나가는 멋진 친구들이 참 많거든요.
반면 안타까운 기억으로 남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바로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한 친구들이에요. 상담을 통해 아이에게 필요한 수업을 안내받았으나 아이의 상태를 인정하기 어려워 보호자가 수업을 연기한 경우죠. 그러한 선택을 한 보호자의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아이를 위한다는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이보다 보호자 자신의 마음을 방어하기 위한 경우가 적지 않거든요. 아동 발달 서비스라는 것이 단순히 수업을 받는 것 이상으로 다른 차원의 의미가 있기에 부모로서 아이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게 참 어렵죠.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를 위해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해요.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바로 수업을 시작하면 돼요. 지금의 선택으로 우리 아이의 학령기, 청소년기, 성인기 이후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어요.
이 일을 하는 데 있어 대표님의 무기가 되는 성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무지에 의한 순종이랄까요. 뭣 모르고 무작정 덤벼드는 성미거든요.(웃음) 하나님이 길을 보여 주시면 잘 몰라도 일단 순종하고 보는 거죠. 뭘 잘 모르기 때문에 이것저것 재지 않고 시도해 보는 것 같아요. 이 일을 꾸준히 지속해 갈 수 있는 힘은 인내심과 책임감 덕분인 것 같고요.
아이들을 통해 신앙적 통찰을 얻는 순간도 있을 것 같습니다.
‘터널’을 이용한 수업을 할 때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곤 해요. 수업에 사용되는 터널 속에 아이를 집어넣으면 보통은 까꿍놀이를 하거나 즐거워하며 터널을 통과해 밖으로 빠져나와요. 그런데 안 들어가겠다고 울면서 거부하는 아이가 있어요. 터널 안에 장난감을 넣어 두거나 그조차 거부하면 아이의 양말을 넣어 둬요. 그러면 자기 양말을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에 억지로 들어가는 거예요. 하지만 애착이 불안정한 친구는 들어갔다가도 이내 물러나요. 사실 그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거잖아요. 인생도 마찬가지죠. 하나님이 우리 각자의 성장을 위해 저마다에게 터널과도 같은 고난을 허락하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터널 안에 들어서서는 통과하지 못하고 돌아 나오는 건 유익하지 않죠. 영화 〈기생충〉에 이런 대사가 있잖아요.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계획이 다 있으세요. 우리는 그분을 신뢰하고 고난을 잘 통과하면 되는 거죠.
대표님 본인 또한 ‘성장’을 위해 개인적으로 시도하는 일이나 노력이 있는지요?
먼저 하루의 마음을 살피려 해요. 인간으로서 제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지 아니까요.(웃음) 제 안에 속상한 마음이 있는데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아이들을 만난다면 자칫 실수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제 마음부터 살피고자 매일 성경을 읽어요.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롭고, 그 말씀을 통해 제 마음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신비로워요. 더 나아가 그 말씀이 하루를 잘 살아가게 하는 힘이 돼요.
더불어 새로운 경험을 하려고 여러 가지를 시도해요. 이 일을 한 지 14년 차가 되니 아동발달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긴 했지만, 좀 더 폭넓게 눈과 귀를 열어 두지 않으면 바깥세상의 흐름을 놓칠 수가 있어요. 고인 물이 얼마나 잘 썩는지 알기에 저 자신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려고 해요. 운동은 물론이고 만들기나 이색 경험 등의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하죠. 요즘에는 성인 취미 활동이 다양해져서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체험이 가능해요. 새로운 활동을 통해 저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제가 만나는 아이들과 보호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 같아요.
독서도 꾸준히 해요. 바쁜 일상에서 성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 ‘독서’라고 생각해요. (물론 개인차가 있을 수 있어요.)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다양한 관점과 경험을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희 연구소 대기실에는 다양한 책들이 구비돼 있어요. 인테리어 목적은 아니고요.(웃음) 한 달에 2권씩 주기적으로 책들을 업데이트하며 보호자분들과 함께 성장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체감하는 사회적·제도적 구조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개선할 점이 있다면요?
요즘 발달장애 관련 뉴스를 보면 필수적으로 보호자들의 이야기도 함께 다뤄져요. 뉴스로 다뤄진다는 건 그만큼 사회적인 관심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더 필요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뉴스로 공론화되는 건 감사하지만, 사건의 배경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보도되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까워요. 수익이 크게 창출되는 영역이 아니다 보니 기업들의 관심도 덜하고요. 발달이 늦은 ‘느린 학습자’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잘 성장하기 위해선 정부의 제도적인 지원 확장이 절실하게 필요해요. 문제 제기되는 사안들에 대해 공감은 하지만 정작 실질적인 지원은 미미한 게 현실이거든요. 정부 차원에서 지원 시설 확장, 수업료 지원, 활동 지원 영역의 확대, 보호자 상담 서비스 등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길 기대해요.
이 연구소를 통해 이루고 싶은 비전, 소망을 말씀해 주세요.
장애와 비장애로 구분해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사회적 인식과 사고가 개선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이들은 누구나 소중한 존재잖아요. 한 가정 안에서도 장애, 비장애 자녀가 함께 지내는 경우도 많고요. 보호자들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바르게 교육하며 당당하게 나아가실 수 있도록 응원해 드리는 것이 저의 비전이자 사명이에요. 저희 연구소를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이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싶어요.
저는 ‘보통날’이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사람들은 특별한 날을 기리고 주목하지만, 사실 모든 (보통)날이 다 소중하잖아요. 기쁜 일이 있는 보통날, 속상한 일이 있는 보통날,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해요. 그 소중한 보통날에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가면 좋겠어요. 소소한 행복을 누리면서요.
끝으로 ‘성장’이라는 단어로 이행시 부탁드립니다.
성! 성장에는
장! 장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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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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